1. 학술조사 분야와 조사단의 구성
Scientific Expedition’s Area of Expertise and Team Composition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 1947. 8.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 1947. 8.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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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의학반 명부 1947 | 12.3×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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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농림반 명부 | 1947 | 19.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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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편성 명부 | 1947. 8. | 20.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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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편성 명부 | 1947. 8. | 20.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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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편성 명부 | 1947. 8. | 20.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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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편성 명부 | 1947. 8. | 20.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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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
송석하(대장) | 조선산악회 회장, 국립민족박물관 관장
송석하는 민족주의 계열의 역사, 민속학자로 광복 후 서울대 문리대 교수를 역임했다.
1946년 소장유물 1,000여 점을 기초로 국립민족박물관(1950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통합)을 설립했다. 1947년 8월 1차 울릉도학술조사대를 이끌었다.
송석하는 민족주의 계열의 역사, 민속학자로 광복 후 서울대 문리대 교수를 역임했다.
1946년 소장유물 1,000여 점을 기초로 국립민족박물관(1950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통합)을 설립했다. 1947년 8월 1차 울릉도학술조사대를 이끌었다.
홍종인(부대장) | 조선산악회 부회장, 조선신문과학연구소
저명한 언론인으로 훗날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다. 한국산악회 회장을 역임하며 이후 울릉도·독도학술조사 등 산악회의 국토구명사업을 이끌었다.
저명한 언론인으로 훗날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다. 한국산악회 회장을 역임하며 이후 울릉도·독도학술조사 등 산악회의 국토구명사업을 이끌었다.
도봉섭(부대장) | 조선산악회 부회장, 서울대학교 약학대 학장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으로 식물학의 권위자였고, 광복 후 조선생물학회·조선약학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으로 식물학의 권위자였고, 광복 후 조선생물학회·조선약학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생물학A반(동물)
석주명(반장) | 국립과학박물관동물학 부장
나비박사로 유명한 곤충학자이다.
그가 채집한 표본과 연구업적은 범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나비박사로 유명한 곤충학자이다.
그가 채집한 표본과 연구업적은 범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생물학B반(식물)
심학진(반장) | 서울대학교 약학대 교수
서울대학교 약학대 교수였으며, 도봉섭과 함께 공동으로 식물연구를 진행하였다.
서울대학교 약학대 교수였으며, 도봉섭과 함께 공동으로 식물연구를 진행하였다.
사회과학A반(역사, 지리, 민속, 경제, 언어, 고고)
방종현(반장) |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국어학자로 우리말의 고어와 방언 연구에 정통했다. 1차 학술조사 이후 독도의 명칭이 돌섬(독섬)에서 비롯된 것임을 처음 밝혔다.
국어학자로 우리말의 고어와 방언 연구에 정통했다. 1차 학술조사 이후 독도의 명칭이 돌섬(독섬)에서 비롯된 것임을 처음 밝혔다.
김원룡 | 국립박물관 연구관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 2차 학술조사에 참가해 울릉도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를 진행했다.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 2차 학술조사에 참가해 울릉도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를 진행했다.
지질광물학반
옥승식(반장) | 국립지질광물연구소
1,2,3차 학술조사에 모두 참가했으며, 1차 학술조사를 마친 후「울릉도와 독도 지질 조사 개보」를 발표했다.
1,2,3차 학술조사에 모두 참가했으며, 1차 학술조사를 마친 후「울릉도와 독도 지질 조사 개보」를 발표했다.
의학반
조중삼(반장) |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울대병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인 최초로 방사선의학을 전공해 광복 후 한국방사선의학의 기초를 놓았다.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울대병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인 최초로 방사선의학을 전공해 광복 후 한국방사선의학의 기초를 놓았다.

029 제2차 울릉도·독도학술조사 계획서 중 편성 명부 1952. 9.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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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제2차 울릉도·독도학술조사 계획서 중 편성 명부 1952. 9.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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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제3차 울릉도·독도학술조사 계획서 중 편성 명부 195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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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제3차 울릉도·독도학술조사 계획서 중 편성 명부 195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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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제3차 울릉도·독도학술조사 계획서 중 편성 명부 195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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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편성 명부 부분 | 1947. 8. | 20×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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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정부 소속 4명의 공무원이 별도로 표기되어 있다. 추가된 과도정부 공무원은 신석호(국사관 부관장), 이봉수(문교부 편수관), 이준(외무처 일본과, 추인봉으로 수정됨), 최창근(상무부 공업국 전기과 기사)이다.
계획서 편성 명부에 기록된 인원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학술조사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1차 조사에는 학술조사 추진 과정에서 추가된 과도정부 독도조사단 4명이 있었고, 3차 조사에서는 등반반으로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이 계획서에 누락 되었다.
1차 조사에는 학술조사 추진 과정에서 추가된 과도정부 독도조사단 4명이 있었고, 3차 조사에서는 등반반으로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이 계획서에 누락 되었다.

독도 표석 설치 후 기념촬영을 한 3차 학술조사단 | 1953. 10. 15. | 김한용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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