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반의 조사활동

조사단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권위자들로 학술반을 편성했다. 학술반은 전공별로 인문과학(역사, 고고, 지리, 민속,언어 등), 사회과학(경제, 사회 등), 자연과학(지질, 광물, 동식물,농림 등) 등으로 팀을 나누고 각 팀별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보도반을 통해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 1947. 8.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 1947. 8.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 1947. 8.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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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 1947. 8.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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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 1947. 8.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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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 1947. 8.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 1947. 8.
- 독도·울릉도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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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 1953. 10. 15. | 촬영 김한용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제3차 울릉도·독도학술조사단 | 1953. 10. 15. | 촬영 김한용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제3차 울릉도·독도학술조사단 | 1953. 10. 15. | 촬영 김한용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제3차 울릉도·독도학술조사단 | 1953. 10. 15. | 촬영 김한용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제3차 울릉도·독도학술조사단 | 1953. 10. 15. | 촬영 김한용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032 울릉도민속조사(부 독도) 육필 원고 | 송석하 추정 | 17.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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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울릉도민속조사(부 독도) 육필 원고 | 송석하 추정 | 17.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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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울릉도민속조사(부 독도) 육필 원고 | 송석하 추정 | 17.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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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마을별 제사와 제신명, 울릉도 동제 축문 등 울릉도 민속에 대해 조사, 기록한 자료이다.

033 울릉도향토사료 | 송석하 추정 | 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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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울릉도향토사료 | 송석하 추정 | 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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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울릉도향토사료 | 송석하 추정 | 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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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울릉도향토사료 | 송석하 추정 | 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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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울릉도향토사료 | 송석하 추정 | 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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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지세, 기후, 교통, 통신, 교육, 산업, 종교, 행정기구 등에 대해 정리한 자료이다.

034 울릉도 수토관 박석창 각석문 탁본 | 1947년 탁본 추정(1711년 각석) | 48.4×58.8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1711년 5월 울릉도 수토관으로 파견된 삼척영장 박석창 일행이 수토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 바위에 새긴 글을 탁본한 것이다. 울릉도에 남아있는 수토관의 각석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1947년 조선산악회의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 때 탁본한 것으로 추정된다.

035 울릉도 수토관 구억의 각석문 탁본 | 1947년 탁본 추정(1735년 각석) | 38×58.3
- 독도·울릉도 산악회
- 독도·울릉도 산악회
1735년 울릉도 수토관 구억이 울릉도에 수토를 나와 새긴 각석문의 탁본이다.
1947년 제1차 학술조사 활동 중 울릉도에서 탁본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7년 제1차 학술조사 활동 중 울릉도에서 탁본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남일보, 2면 | 1947.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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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학술조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본사 특파기자 김득룡 기(記) (3)”
역사적으로 문헌이 전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만큼 본반(本班)의 탐사는 처녀 탐사라 하겠다.
… 동국여지승람, 삼국사기 등으로 본도의 인지는 신라 지증왕 12년(거금(距金) 435년 전) 당시의 강릉군 군주 이사부(異斯夫)가 목조 사자로 우산국(본도)을 토평(討平)한 것이 첫 사적(史蹟)이며 …
고적(古蹟) 토기(土器)로는 누석총(累石塚)은 각처에서 발굴되었으며 석기시대의 유물 토기 등이 발굴되었다 …
… 동국여지승람, 삼국사기 등으로 본도의 인지는 신라 지증왕 12년(거금(距金) 435년 전) 당시의 강릉군 군주 이사부(異斯夫)가 목조 사자로 우산국(본도)을 토평(討平)한 것이 첫 사적(史蹟)이며 …
고적(古蹟) 토기(土器)로는 누석총(累石塚)은 각처에서 발굴되었으며 석기시대의 유물 토기 등이 발굴되었다 …

독립신보, 2면 | 1947.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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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것!
악랄한 왜적의 촉수
증빙자료가 엄연히 증명”
악랄한 왜적의 촉수
증빙자료가 엄연히 증명”
… 또 한 가지 중대한 발견은 조선과 대륙, 대만에만 분포되어 있고 일본에는 절대로 없는 ‘대만 흰 나비’가 이 섬에 있는 것은 동물학상으로도 조선의 섬인 것을 확실히 증명해 준다 …

영남일보, 2면 | 1947. 8. 24.
- 신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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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1947년 8월 24일

【울릉도에서 본사 특파원 김득룡(金得龍) 발】
20일 조(朝) 학술조사단 일행은 독도에 도착 진지한 조사에 착수한 후 해안에서 ‘옷또세이’ 세 마리를 포획하여 석각(夕刻)에 숙박지인 울릉도 도동항(道洞港)에 귀환하였다 …
20일 조(朝) 학술조사단 일행은 독도에 도착 진지한 조사에 착수한 후 해안에서 ‘옷또세이’ 세 마리를 포획하여 석각(夕刻)에 숙박지인 울릉도 도동항(道洞港)에 귀환하였다 …

자유신문, 2면 | 1947.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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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신문
1947년 8월 24일

… 특히 이 섬에 흥미를 끌 때 생물반(生物班)도 환성을 올린다.
이 절해고도에 백합꽃과 나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각 반의 짧은 간시 중 눈부신 활동의 결과 이익물은 약 50여 종 그 계통은 역시 울릉도와 완전히 연결되는 것임은 알 수 있다는 것이고 …
이 절해고도에 백합꽃과 나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각 반의 짧은 간시 중 눈부신 활동의 결과 이익물은 약 50여 종 그 계통은 역시 울릉도와 완전히 연결되는 것임은 알 수 있다는 것이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