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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중일한관계사료

조선에 주둔하는 관군의 철수를 연기하겠다고 군기처(軍機處)가 총리아문에 보내는 주접(奏摺)

조선에 주둔하는 관군의 철수를 잠시 연기하여 조선의 요청에 따르겠습니다.
  • 발신자
    軍機處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83년 2월 28일 (음)(光緖九年二月二十八日) , 1883년 4월 5일 (光緖九年二月二十八日)
  • 문서번호
    4-10-03(713, 1144)
2월 28일, 군기처에서 서리 직예총독 이홍장이 올린 다음과 같은 주접을 보내왔습니다.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관군의 철수를 잠시 연기하여 조선의 요청에 따르고 그 안정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을 공손히 주접을 갖춰 아뢰오니 황상께서 살펴봐 주십시오.
작년 조선에서 내란이 발생하자 조정에서는 장수들에게 명하셔서 군대를 보내셨으니, 광동 수사제독 오장경이 통솔하는 회용(淮勇) 6개 영의 군대가 조선으로 건너갔습니다. 사건이 진정된 후에는 유지에 따라 오장경으로 하여금 그대로 군대를 감독하며 잠시 주둔하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작년) 10월 무렵 이홍장이 상주하여 이르기를, 올해 봄에 오장경에게 3개 영은 철수시키고 3개 영은 잔류시켜 보위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가, 일본군의 주둔 기한 1년이 되어 모두 철수하면 오장경 군대도 사정을 보아 철수시킨다고 하였습니다.주 001
각주 001)
조선 주둔군의 단계적 철수 계획은 이홍장이 광서 8년 10월 5일(1882년 11월 15일) 상주한 주접에서 확인된다. 원래 이홍장은 즉각적인 철수를 원하였지만, 일본군이 철수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여 광서 9(1883)년 봄에 3개 영을 먼저 철수시키고 일본군이 모두 철수하면 나머지 군대를 모두 철수한다는 계획이었다. 해당 주접의 원문과 번역문은 『국역『淸季中日韓關係史料』』 제4권 1. 조선과 각국 사이의 통상에 대한 중국의 지도, (47) 문서번호 2-1-1-105(624, 1030b-1041b)의 첨부문서 1번, pp.275-279, 283-291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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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제 보정에서 천진으로 갔을 때 마침 오장경도 조선에서 돌아와 있었는데, 이홍장과 군대의 철수 문제를 상의하였습니다. 그때 조선 국왕이 전담 사신으로 보낸 참의교섭통상사무(參議交涉通商事務) 변원규가 자문을 가지고 뒤따라 왔으니, 그 내용은 오장경이 조선에 있으면서 신의가 뚜렷하여 군민들이 기뻐하며 두려움 없이 의지하고 있어서 잠시라도 떠나면 안 된다는 내용을 저희가 대신 상주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으로서 그 감정과 언사가 매우 절박하였습니다.
생각건대, 조선의 쇠약함이 오래되어 군기가 사라지고 변란이 계속 발생하며 숙위(宿衛)하던 자들이 오히려 변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조선 국왕은 변란이 평정된 후에도 여전히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오장경은 조선이 고난을 당할 때 신속히 가서 지원하고 보호하여 위기를 안정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근래에는 또한 병사들을 선발하여 서양식 훈련법을 가르치면서 성실하고 공정하게 대하여 그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으니, 조선 국왕이 깊이 의지하는 바입니다. 하루아침에 군대를 나누어 내지로 건너오게 한다면 절박하게 잔류를 요청할 터인데, 이 또한 실로 진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일본이 기회를 엿보고 협박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조선인들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큰 변란이 비록 평정되었다고는 하나 반항하는 마음이 갑작스레 진정될 수는 없으므로 위엄있는 고위 관원을 조선에 주재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홍장이 길을 떠나기 전 저와 충분히 상의하여 응당 3개 영을 철수시키는 계획을 잠시 연기하고 오장경이 통솔하는 6개 영을 그대로 주둔시켜, 번복의 의지하려는 진심에 따라주면서 조정이 안정시켜 주는 덕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삼가 조선 국왕의 자문을 초록하여 공손히 올리니 살펴봐 주십시오. 조선에 주둔하는 관군의 철수 연기 연유에 대하여 삼가 주접을 갖추어 역참을 통해 신속하게 아뢰오니, 황태후, 황상께서 살펴보시고 훈시해 주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삼가 주를 올립니다.
 
광서 9년 2월 27일, 군기대신이 다음과 같은 상유를 받았습니다.주 002
각주 002)
본문에서 군기대신이 받은 상유의 내용이 누락되어 있는데, 다음 문서 (4)-10-4를 보면 “별도의 유지가 있을 것이다(另有旨).”는 내용이다.
닫기
[내용 없음]
이상.

  • 각주 001)
    조선 주둔군의 단계적 철수 계획은 이홍장이 광서 8년 10월 5일(1882년 11월 15일) 상주한 주접에서 확인된다. 원래 이홍장은 즉각적인 철수를 원하였지만, 일본군이 철수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여 광서 9(1883)년 봄에 3개 영을 먼저 철수시키고 일본군이 모두 철수하면 나머지 군대를 모두 철수한다는 계획이었다. 해당 주접의 원문과 번역문은 『국역『淸季中日韓關係史料』』 제4권 1. 조선과 각국 사이의 통상에 대한 중국의 지도, (47) 문서번호 2-1-1-105(624, 1030b-1041b)의 첨부문서 1번, pp.275-279, 283-291에 수록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본문에서 군기대신이 받은 상유의 내용이 누락되어 있는데, 다음 문서 (4)-10-4를 보면 “별도의 유지가 있을 것이다(另有旨).”는 내용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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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주둔하는 관군의 철수를 연기하겠다고 군기처(軍機處)가 총리아문에 보내는 주접(奏摺) 자료번호 : cj.k_0003_010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