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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휘고

망우초(莽牛哨) 및 호이산(虎耳山) 일대의 주둔 문제에 대한 조선의 자문(咨文)

請寢莽牛哨設汛咨
  • 발신자
    朝鮮國王
  • 발송일
    1731년 6월 23일(음)(辛亥六月二十三日)

請寢莽牛哨設汛咨

雍正 9년 6월 □일, 貴部의 咨文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운운. [“主客司”부터 “可也”까지. 原咨를 보라.]
이를 받고 삼가 공손히 생각건대 皇上께서 至仁하고 至明하셔서 무릇 小邦의 疾苦에 대해 필히 모두 곡진히 생각하셔서 閔覆해 주셨습니다. 지금 이 水路에 防汛을 설치하자는 請은 간악한 무리를 잡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皇上께서 萬里之見으로써, 혹 小邦에게 불편할까 염려하여 특별히 詢問을 지시하셔서 이렇게 咨文을 보내주심에, 더욱 皇上의 字小之仁이 內地와 다른 바가 없음을 우러러 볼 수 있으니, 小邦이 우러러 感激하는 바가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이번 일의 便否는 미루어 알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옛날 太宗 文皇帝께서는 宏遠之規와 懷緩之德으로써 그 封疆을 신중히 하시고 제후국을 돌보는 데 있어서 濶略함과 纖悉함에 둘 다 그 도리를 다 하셨습니다. 柵을 설치한 후에 그 번갈아 가며 巡檢하여 먼 지역을 단속하는 방도를 다하게 하셨지만 또 필히 地界를 비워두고 백성들이 인접하여 거주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그 聖意는 대단히 尋常함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우리 聖祖 仁皇帝 시절에 이르러서는, 寧古塔의 守將이 小邦의 北道에 있는 慶源府訓戎鎭 국경 너머에 주둔병을 배치하고 심지어 막사를 짓고 농토를 개간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小邦에서 아뢴 咨文으로 인해서 聖祖 仁皇帝께서 특별히 명하여 철수하게 하셨으니, 聖慮의 깊고 심원한 것은 前後에 한결같았습니다. 小邦이 변경의 일로써 皇朝로부터 잠시나마 큰 짐을 덜었던 것은 오로지 이에 힘입은 것입니다.
대저 이 草河靉河 두 강이 합류하는 지역은 곧 小邦의 邊界와 관련되는데, 小邦의 변방 백성들 중에 頑黠할 사람이 많아 조금이라도 기회를 얻게 되면 번번이 다시 간악한 일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지금 만약 水路의 防汛을 만들고 官弁과 兵丁을 添派하여 지극히 가까운 지역에 사람들이 머무는 것을 허용한다면 窩舖가 서로 이어지고 舟楫이 서로 통하게 되어 상당히 우려되는 바입니다. 하물며 中江의 市場이 또 그 옆에 있으니 여러 종류의 간사한 폐단이 반드시 없을 것이라고 보장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小邦이 비록 힘을 다해 지시하고 마음을 써서 금지시킨다 하더라도 아마 이루 다 막을 수 없어서 끝내 반드시 죄를 얻음에 이를 것이니, 皇朝의 字恤之德으로도 또한 어찌 번번이 용서하고 덮어주시겠습니까? 이에 감히 황제의 자애로움을 믿고 모든 사정에 대해 우러러 아룁니다. 원컨대, 그 시작을 신중히 하여 그 폐단의 싹을 아예 막아버리기 위해 옛 사례를 준수하여 小邦의 邊氓이 금령을 어기고 간사한 짓을 하는 폐단을 끊어버리게 한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이에 知中樞府事 金慶門을 專差하여 咨文을 가지고 가게 하니, 번거롭겠지만 貴部에서 대신 상주하여 시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운운.

雍正 9년 6월 23일.

색인어
이름
金慶門
지명
慶源府, 訓戎鎭, 草河, 靉河, 中江
관서
主客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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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초(莽牛哨) 및 호이산(虎耳山) 일대의 주둔 문제에 대한 조선의 자문(咨文) 자료번호 : dh.k_0048_0010_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