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동북지역 청동기문화의 특징과 전개 양상
1. 중국 동북지역 청동기문화의 특징과 전개 양상
기원전 2000년기 후반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을 표지로 하는 청동기문화권이 형성되어, 청동 예기(禮器)가 발달한 중국 중원(中原)지역, 동물 문양과 청동 단검 중심의 북방 초원지역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비파형동검은 검신(劍身)과 검병(劍柄, 손잡이)을 따로 제작한 후 결합하여 사용하는 조립식 동검이라는 점에서 검신과 검병을 함께 주조하여 사용하는 일체형의 중국 중원 동검이나, 일체형이되 칼자루 끝에 동물 문양 등을 장식한 단검 형식의 북방 오르도스식 동검과는 차이를 보인다.
고대 문헌에는 중국 동북지역에 예맥(濊貊), 숙신(肅愼), 동호(東胡), 산융(山戎), 발(發)등과 같은 여러 집단의 명칭이 등장하며, 『관자(管子)』나 『전국책(戰國策)』에 따르면 요동에는 예맥 종족이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비파형동검문화는 종족으로는 예맥, 정치체로는 고조선(古朝鮮)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비파형동검, 미송리식토기, 지석묘(석붕, 대석개묘) 등을 고조선의 고고학적인 지표로 삼기도 하나, 이들 요소의 분포범위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실체 규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고학에서는 중국 동북지역 일대의 청동기문화를 요서(遼西), 요동(遼東), 송화강(松花江)유역 등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내몽고(內蒙古)와 요서, 요동 지역을 하가점문화(夏家店文化)주 001
각주 001)

로 묶고 이를 시간적인 선후 관계에 따라 하층과 상층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도 하였으나, 각 지역별로 개별 문화 양상에 차이를 보이고 있어 문제가 된다.하가점문화는 내몽고 적봉시(赤峰市)의 하가점유적을 표지로 하는 중국 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이다. 하가점유적은 두 문화층으로 나뉘는데, 하층과 상층의 문화적 양상은 상당히 다르다. 기원전 2000~기원전 1500년경에 해당하는 하가점하층문화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청동기문화로, 실제 발견되는 청동기는 무기류가 아닌 소형 장식품 위주이다.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데, 토기류는 역(鎘), 언(甗), 정(鼎)과 같은 삼족기가 발달하고 채도(彩陶)가 주를 이룬다. 기원전 12세기~기원전 5세기경에 해당하는 하가점상층문화는 시라무렌하(西拉木倫河)과 노합하(老哈河)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청동기문화이다. 주된 묘제는 토광묘와 석곽묘이다. 북방계 청동기가 중심을 이루는 용두산(龍頭山)유형과 북방계 청동기가 중심이면서 중원계와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유형의 청동기가 출토되는 남산근(南山根)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조진선, 2015, 「청동기의 제작과 사용」, 『한국 청동기문화 개론』, 진인진).
우선, 영성(寧城)남산근(南山根)유적과 소흑석구(小黑石溝)유적으로 대표되는 내몽고 지역의 청동기문화는 기본적으로는 동물 문양과 북방식 단검이 특징인 북방 청동기문화권에 속하며, 변형 비파형동검이 일부 발견되기도 한다. 조양(朝陽)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유적으로 대표되는 요서 지역은 중원 청동기문화요소와 북방 청동기문화요소가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심양(瀋陽)정가와자(鄭家窪子)으로 대표되는 요동 지역은 내몽고, 요서 지역과는 달리 비파형동검과 다뉴경(多紐鏡), 점토대토기 및 흑도장경호 등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길림(吉林)과 장춘(長春)을 중심으로 하는 송화강 유역에서는 비파형동검 외에 석관묘와 미송리식토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서단산유형 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서단산문화(西團山文化)가 확인된다. 서단산문화의 영위 세력은 이후 부여(夫餘)로 발전하게 된다(한국고고학회, 2015).
표1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 청동기문화의 전개 양상
| 구분 | 기원전 15세기~ | 기원전 12세기~ | 기원전 9·8세기~ | 기원전 6·5·4세기 |
| 요서~ 요동 서부 | 고태산(高台山)문화 | 위영자(魏营子) 문화 | 십이대영자문화 | |
| 요동 북부 | 마성자(馬城子) 2기 | 마성자3기 | 신성자(新城子)문화 이도하자(二道河子)유형 | 정가와자유형 |
| 요동 남단 | 쌍타자(雙砣子)3기 | 상마석(上馬石) 상층 | 강상(崗上)유형 쌍방(雙房)문화 | 윤가촌(尹家村)상층 |
| 송화강 유역 | 서단산문화 | 서단산문화 | ||
| 두만강 유역 | 흥성(興城)3기 호곡1기 | 흥성4기 호곡2기 | 흥성4기 | |
| 서북한 북부 | 신암리2기 공귀리1기 | 공귀리2기 | ||
| 남한 | 미사리유형 | 가락동·흔암리· 역삼동유형 | 흔암리유형(중부) 송국리유형(서남부) 검단리유형(동남부) | 송국리문화 |
중국 동북지역 청동기문화의 개략적인 시기별 양상은 다음과 같다.주 002
기원전 15세기~기원전 12세기경 요서 지역은 고태산문화, 주 003
각주 003)

요동 북부는 마성자문화2기, 요동 남단은 쌍타자문화3기,주 004고태산(高台山)문화는 하가점하층문화에서부터 하가점상층문화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유하(柳河)와 서요하(西遼河) 사이의 평원지역을 중심으로 존속한 청동기문화를 지칭한다. 하가점하층문화의 무덤은 이단굴광 목관묘, 하가점상층문화는 석관묘 계열인 데 반해, 고태산문화의 무덤은 토광묘로 앙신 혹은 측신 굴지장이고 다리 부근에 토기가 부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하가점하층문화는 채도류를, 위영자문화는 청동예기와 삼족기를, 하가점상층문화는 청동무기와 예기 및 삼족기를 부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고태산문화의 무덤에는 호형토기와 고족발(高足鉢)이 세트 혹은 단독으로 부장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고족발 대신 천발형토기가 부장되기도 한다. 생활유적에서는 적색을 띄는 분신력(盆式鬲)과 통복력(筒腹鬲), 소량의 정(鼎), 언(甗), 그리고 호, 분(盆), 천발, 두형토기 등의 토기가 출토된다(천선행, 2010a, 「고대산문화의 시공간 검토」, 『嶺南考古學』 52).
각주 004)

길림 동부 및 동북한(두만강 유역)은 흥성3기주 005 혹은 호곡1기, 서북한 북부에서는 신암리2기와 공귀리1기, 서북한 남부는 신흥동1기문화에 해당한다. 이 시기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청동제 소형 공구와 장신구가 일부 확인될 뿐, 비파형동검과 같은 본격적인 청동기는 출현하지 않는다. 요서의 법고(法庫)만류가(灣柳家)유적에서 동물머리 장식의 도자를 비롯한 북방계 청동기와 청동부, 요동의 무순(撫順)왕화(望花)유적에서 청동 환두도자, 요동 남단의 여순(旅顺) 타두(砣頭)적석묘에서 낚시용 청동촉, 대련(大連) 대취자(大嘴子)유적에서 청동제 화살촉과 과(戈)등이 발견되었을 뿐이다.쌍타자(雙砣子)문화는 대련 쌍타자유적을 표지로 하는 조기 청동기문화를 지칭한다. 공간적으로는 요동반도 남단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시간적으로 쌍타자1기문화는 기원전 20세기~기원전 16세기, 2기문화는 기원전 16세기~기원전 14세기, 3기문화는 기원전 14세기~ 기원전 11세기경에 해당한다. 주요 유적으로는 대련-여순지구의 장군산(將軍山)적석묘, 노철산(老鐵山)적석묘, 왕보산(王寶山)적석묘, 토룡자(土龍子)적석묘, 상마석(上馬石)옹관묘 유적, 강상(崗上)동(東)적석묘, 쌍타자유적, 어가촌(於家村)유적, 대취자(大嘴子)유적, 묘산(廟山)유적, 단타자(單砣子)유적, 고려채(高麗寨)유적, 대구두(大溝頭)유적, 고려산성(高麗山城)유적 등이 있다(趙賓福, 2009, 『中國東北地區夏至戰國時期的考古學文化研究』, 科學出版社, 120쪽). 토기는 호, 관(罐), 발(鉢), 완(碗), 배(杯), 두(豆), 다족기(多足器), 분(盆), 반(盤), 주형기(舟形器)등이 있는데,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전이기에 해당하는 쌍타자2기문화까지는 산동반도의 특징적인 토기류가 공반한다. 이 밖에도 강상 동쪽 적석묘에서 청동단검, 우가촌(于家村)타두(坨頭)적석묘에서 동촉과 동포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요서 지역의 고태산문화유형은 단인장의 토광묘, 요동 북부의 마성자문화유형은 단인장의 무덤이 군집을 이루는 동굴묘, 요동 남단은 다인장 무덤이 군집을 이루는 적석묘, 길림 동부와 두만강 유역은 석관묘가 유행하였다. 태자하(太子河)유역 본계(本溪)일대의 동굴묘는 동굴 내부에 땅을 파고 1인의 시신을 안치한 다음 다수의 토기와 생활공구를 부장하는 방식으로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대련 일대의 적석묘 역시 다수의 인골을 매장한 단위분묘를 적석시설로 연접시켜 공동묘역을 조성하였는데, 무덤에 다수의 토기가 부장되었을 뿐 청동무기류는 확인되지 않는다. 무덤의 규모나 구조, 부장유물의 양상으로 보건데, 이 시기는 아직까지 위계화된 복합사회 단계로 진입하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기원전 12세기경이 되면 요동 지역에 비파형동검과 표주박모양의 초기 미송리식토기가 보급되기 시작한다. 지역별로는 요동 서부에는 위영자문화,주 006
각주 006)

요동 북부에는 마성자3기, 요동 남단에는 상마석상층,주 007위영자(魏营子)문화는 조양 위영자유적을 표지로 하며, 협사홍갈색토기와 청동예기군을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문화를 지칭한다. 공간적으로는 대릉하(大凌河)와 소릉하(小凌河)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시간적으로는 하가점하층문화와 하가점상층문화 사이에 위치한다. 토기는 대부분 협사홍도 혹은 협사홍갈도인데, 역(鬲), 언(甗), 천발, 대구관(大口罐), 옹(甕), 이중구연 분(盆) 등이다. 일부 승문(繩文)이 있거나, 구연부에 부가퇴문이 부가되기도 한다. 무덤은 대부분 단인직지장으로 토광묘나 토광목곽묘가 많다. 부장품으로는 토기와 청동예기 등이 있는데, 위영자문화의 중심부에서는 중원계 청동유물이 많고, 주변부에서는 북방계 청동기가 많이 확인된다(천선행, 2010b, 「비파형동검 성립전후 요서 지역 토기문화의 전개」, 『요하문명의 확산과 중국 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 이 밖에도 위영자문화 분포 지역에서는 객좌(喀左)를 중심으로 상(商)과 주(西周)교체기의 청동기 매납 유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각주 007)

길림 동부를 포함한 두만강 유역은 흥성4기나 호곡2기, 서북한 북부는 공귀리2기문화유형이 유행하였다. 이 시기에는 요서부터 요동, 한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걸쳐 비파형동검이 분포하지만,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른 형식의 동검이 확인된다.상마석(上馬石)상층의 문화유형은 대련의 장해현(長海縣)상마석유적에서 확인된 집자리와 출토유물을 표지로 한다. 토기로는 호와 관(罐)이 중심이며, 미송리식토기도 함께 발견된다. 유적에서는 집자리와 함께 17기의 옹관묘와 10기의 토광묘가 확인되었다. 두 개의 문화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쌍타자문화층에서는 옹관묘가, 비파형동검문화층에서는 토광묘가 발견되었다. 2호 토광묘에서는 변형 비파형동검(요령식세형동검)1점이, 3호 토광묘에서는 비파형동검 1점, 청동검손잡이 1점, 검병두식 1점, 장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韓國考古學專門事典: 靑銅器時代篇』).

그림1 | 요령 지역 비파형동검의 초기 형식과 검파두식(이후석, 2019, 그림1)
- 1. 철령 대산취자 2. 보란점 쌍방(M6) 3. 요양 이도하자(M1), 청원 대호로구 4. 조양 십이대영자(M2) 5. 객좌 화상구(M6/채집) 6. 영성 소흑석구(M8501)
- 1. 철령 대산취자 2. 보란점 쌍방(M6) 3. 요양 이도하자(M1), 청원 대호로구 4. 조양 십이대영자(M2) 5. 객좌 화상구(M6/채집) 6. 영성 소흑석구(M8501)
그리고 북방식 지석묘(石棚)와 개석묘, 석관묘 등이 요동과 서북한 지역에 걸쳐 분포하게 된다. 이들 지석묘를 축조한 집단은 부장유물로 볼 때 초기복합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기 요동 지역에는 다종다양하지는 않지만 비파형동검이나 청동도끼 등 일부 기종의 청동기가 제작 및 보급되었는데, 수암(岫岩)쌍방(雙房)개석묘에서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사례가 있다. 다만 청동기의 대량 제작과 보급의 중심지는 요서지역으로, 요동 지역에서는 비파형동검을 위시한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부장되지 않고 있어, 개인적인 위세가 분명한 후기복합사회인 군장사회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9세기~기원전 8세기경부터는 중국 동북지역에 전형적인 비파형동검이 보급된다. 요서 지역은 십이대영자문화,주 008
각주 008)

요동 북부는 신성자문화, 요동 남단은 쌍방유형,주 009 길림을 포함한 송화강 유역은 서단산문화,주 010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문화는 조양 십이대영자 석곽묘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을 포함한 청동유물을 표지로 한 요서 지역의 청동기문화를 지칭한다. 공간적으로는 대릉하와 소릉하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시간적으로는 대략 기원전 9세기~기원전 4세기에 위치한다. 토기는 발견된 수량이 적고 관(罐)이 가장 많다. 청동기는 비파형동검, 동모, 동과, 동촉 등의 무기류와 부채모양 동부, 동도 등의 공구류가 있으며, 다뉴경과 마구류 등이 집중적으로 출토된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韓國考古學專門事典: 靑銅器時代篇』). 십이대영자문화는 토광묘와 석곽묘가 유행한 점에서는 하가점하층문화와 유사하지만 공병식동검을 비롯한 북방계 청동기가 거의 확인되지 않는 대신 비파형동검과 다뉴조문경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구분된다(조진선, 2015, 「청동기의 제작과 사용」, 『한국 청동기문화 개론』, 진인진, 153쪽).
각주 010)

길림 동부지역은 그 이전 시기에 이어 흥성4기 유형이 유행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요서 지역부터 한반도까지 전형적인 비파형동검이 널리 보급된다. 요서에서는 십이대영자식동검과 번개무늬장식의 청동거울(銅鏡)이, 한반도 남부에서는 송국리식동검이 확인된다.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청동제 손잡이가 유행하면서 그 영향은 요동 지역까지 미치게 되지만, 요동 지역과 한반도에서는 기본적으로 이전 시기와 동일하게 목제 손잡이가 주로 이용되었다.서단산(西團山)문화는 제2송화강 유역에서 유행하던 청동기문화 중 하나로, 길림 서단산유적을 표지로 한다. 공간적으로는 길림과 영길(永吉)일대에 관련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는 대략 기원전 13세기~기원전 3세기에 해당한다. 서단산문화의 유적은 무덤유적이 많은데, 초기에는 석관묘가, 후기에는 토광묘와 옹관묘가 주로 축조되었다. 단인장에 굴신장이 많으며, 부곽에 호와 관(罐)등을 부장하였다. 가로손잡이가 부착된 토기는 혼하(渾河)와 태자하 일대에서 유행한 미송리형토기와 유사하다. 청동기는 도자, 도끼, 끌 등과 같은 공구류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비파형동검과 동모, 동촉과 같은 무기도 일부 출토된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韓國考古學專門事典: 靑銅器時代篇』).
이 시기에는 각지에서 다양한 묘제가 채택되었다. 요서의 조양 일대에서는 석곽묘와 토광묘가 축조되었고, 요동과 서북한 지역에서는 북방식 지석묘(석붕)가 대형화되며, 지하에 매장주체부 시설을 마련한 후 지상에 덮개돌을 덮은 대석개묘(大石蓋墓, 혹은 개석식 지석묘)가 나타나고, 석관묘도 역시 지속된다. 요동반도 남단에서는 적석묘 전통이 이어지지만 대련의 강상(崗上)유적에서는 이전 단계와 달리 적석묘역 내에서 개별 분묘 간 층차가 확인된다.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앞선 시기에 청동기를 소량 부장했던 것과는 달리 비파형동검을 포함한 각종 무기, 공구, 의기, 장신구 등 다양한 청동기를 부장한 무덤이 등장하고 있어 사회 복합화가 한층 더 진전되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수장급 무덤으로 비파형동검과 번개무늬장식 다뉴경 등이 함께 부장된 조양 십이대영자유적을 들 수 있다. 조양 일대는 중원 청동기문화권과 북쪽 내몽고 하가점상층문화권이 접하는 지역으로, 일찍부터 요하(遼河)유역에서 중원과 북방 내몽고 지역으로 내왕하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기원전 8세기~기원전 7세기경에는 십이대영자유적을 최상위급으로 하고 그 인근 수 km 이내에 그에 버금가는 원대자(袁臺子)유적을 비롯한 다수의 청동기 부장묘가 분포하고 있어, 후기복합사회 혹은 군장사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6세기~기원전 4세기경은 요동 지역에 비파형동검이 성행하는 시기로 청동단검문화의 중심은 이제 요서에서 요동과 한반도로 이동하게 된다. 비파형동검은 검신이 좁아지면서 직인화(直刃化)되고 등대의 융기부도 사라진다. 요서 지역의 무덤에서는 다뉴경의 부장이 확인되지 않으며, 동과나 제기와 같은 중원계 청동유물의 영향은 증대된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요서 지역에서 비파형동검문화가 급격하게 쇠퇴하며, 조양 원대자유적으로 대표되는 전국시대 연(燕)문화가 이를 대체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변두리인 요령성의 건창(建昌)과 객좌(喀左)일대, 내몽고 오한기(敖漢旗) 일대에는 여전히 비파형동검문화의 요소가 남아 있다(조진선, 2015).
반면, 요동 지역에서는 비파형동검과 함께 다뉴경의 출토 사례가 증가한다. 청동기문화로 요동 북부에서는 신성자문화에 이어 정가와자(鄭家窪子)문화유형이, 요동반도 남단은 쌍방유형에 이어 윤가촌상층주 011
각주 011)

문화유형이 출현한다. 정가와자유형은 이중구연토기 혹은 점토대토기, 흑도장경호의 토기상을 갖추고 있는데, 비파형동검과 점토대토기는 그 이전시기 요서 지역의 조양 원대자무덤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윤가촌(尹家村)유형은 요동 남단의 후기 청동기문화인 강상(崗上)유형(상마석상층문화)이 기원전 4세기 말~기원전 3세기 초에 초기철기문화로 전환된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대련시 일대를 중심으로 하며, 시간적으로는 초기철기시대이다. 이전 시기에 유행하던 적석묘(적석총) 전통이 사라지고, 십이대영자문화와 정가와자유형으로 이어지는 청동기와 함께 들어온 석곽묘와 북방식 토광묘가 중심이 된다. 검신이 좁아지고 돌기부가 약하게 형성된 윤가촌식변형비파형동검(요령식세형동검)과 나팔좌두(喇叭座豆), 이중구연토기(淺腹鉢) 등의 토착계 유물과 함께 연나라 계통의 전국계(戰國系)동검과 동과, 고병두(高柄豆), 회색토기와 명도전 등의 유물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세계한민족문화대전』).
이 시기의 무덤으로는 기존 묘제인 지석묘와 대석개묘, 석관묘, 적석묘 외에 목곽묘, 적석목관묘 등이 추가되었다. 특히 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경에 해당하는 심양(瀋陽)정가와자 6512호 목곽묘에서는 비파형동검과 함께 다뉴조문경, 마구, 의기 그리고 수백 점의 화살촉이 부장된, 요서와 요동 지역을 아우르는 당대 최상위급 청동기 무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수장급 무덤의 출현은 요서 지역에 이어 요동 지역 역시 후기복합사회로 진입하였음을 시사한다.
기원전 4세기~기원전 3세기경이 되면, 동검은 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 다뉴경은 번개무늬조문경에서 삼각거치무늬조세문경으로 양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다뉴경과 세형동검을 부장한 무덤은 그 이전 시기의 중심이었던 요동 지역 천산(千山)산맥의 서쪽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동쪽과 남쪽, 즉 요동 북부의 동쪽인 본계(本溪)상보촌(上堡村)유적과 압록강 하류인 관전(寬甸)조가보(趙家堡)유적 등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점토대토기가 요동 전역과 한반도로 확산되는데, 남한의 점토대토기문화는 정가와자유형을 조형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길림 화전현(樺甸縣) 서황산(西荒山)유적을 포함하여 제2송화강 상류역에서도 세형동검과 조세문경 등이 부장된 수장급 무덤이 확인된다. 무덤은 토광에 판석을 덮었는데, 요동 북부의 태자하 유역에서 유행하던 대석개묘의 전통과 유사하다. 서단산문화의 꼭지가 달린 심발과 바리모양의 토기가 함께 부장된다. 이 밖에도 압록강 중류 유역의 집안(集安) 오도구문(五道溝門)적석묘나 연해주의 이즈웨스토프(Izwestov)에서도 세형동검과 조세문경이 함께 부장된 예가 확인된다. 이들 무덤은 그 이전 시기 심양 정가와자무덤에 비해 부장 양상이 우월하지는 않지만, 각 지역에서 고대 정치체가 등장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주지하다시피 제2송화강 유역은 부여, 압록강 중상류 유역은 고구려, 연해주는 옥저와 관련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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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하가점문화는 내몽고 적봉시(赤峰市)의 하가점유적을 표지로 하는 중국 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이다. 하가점유적은 두 문화층으로 나뉘는데, 하층과 상층의 문화적 양상은 상당히 다르다. 기원전 2000~기원전 1500년경에 해당하는 하가점하층문화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청동기문화로, 실제 발견되는 청동기는 무기류가 아닌 소형 장식품 위주이다.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데, 토기류는 역(鎘), 언(甗), 정(鼎)과 같은 삼족기가 발달하고 채도(彩陶)가 주를 이룬다. 기원전 12세기~기원전 5세기경에 해당하는 하가점상층문화는 시라무렌하(西拉木倫河)과 노합하(老哈河)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청동기문화이다. 주된 묘제는 토광묘와 석곽묘이다. 북방계 청동기가 중심을 이루는 용두산(龍頭山)유형과 북방계 청동기가 중심이면서 중원계와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유형의 청동기가 출토되는 남산근(南山根)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조진선, 2015, 「청동기의 제작과 사용」, 『한국 청동기문화 개론』, 진인진).
-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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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3)
고태산(高台山)문화는 하가점하층문화에서부터 하가점상층문화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유하(柳河)와 서요하(西遼河) 사이의 평원지역을 중심으로 존속한 청동기문화를 지칭한다. 하가점하층문화의 무덤은 이단굴광 목관묘, 하가점상층문화는 석관묘 계열인 데 반해, 고태산문화의 무덤은 토광묘로 앙신 혹은 측신 굴지장이고 다리 부근에 토기가 부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하가점하층문화는 채도류를, 위영자문화는 청동예기와 삼족기를, 하가점상층문화는 청동무기와 예기 및 삼족기를 부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고태산문화의 무덤에는 호형토기와 고족발(高足鉢)이 세트 혹은 단독으로 부장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고족발 대신 천발형토기가 부장되기도 한다. 생활유적에서는 적색을 띄는 분신력(盆式鬲)과 통복력(筒腹鬲), 소량의 정(鼎), 언(甗), 그리고 호, 분(盆), 천발, 두형토기 등의 토기가 출토된다(천선행, 2010a, 「고대산문화의 시공간 검토」, 『嶺南考古學』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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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4)
쌍타자(雙砣子)문화는 대련 쌍타자유적을 표지로 하는 조기 청동기문화를 지칭한다. 공간적으로는 요동반도 남단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시간적으로 쌍타자1기문화는 기원전 20세기~기원전 16세기, 2기문화는 기원전 16세기~기원전 14세기, 3기문화는 기원전 14세기~ 기원전 11세기경에 해당한다. 주요 유적으로는 대련-여순지구의 장군산(將軍山)적석묘, 노철산(老鐵山)적석묘, 왕보산(王寶山)적석묘, 토룡자(土龍子)적석묘, 상마석(上馬石)옹관묘 유적, 강상(崗上)동(東)적석묘, 쌍타자유적, 어가촌(於家村)유적, 대취자(大嘴子)유적, 묘산(廟山)유적, 단타자(單砣子)유적, 고려채(高麗寨)유적, 대구두(大溝頭)유적, 고려산성(高麗山城)유적 등이 있다(趙賓福, 2009, 『中國東北地區夏至戰國時期的考古學文化研究』, 科學出版社, 120쪽). 토기는 호, 관(罐), 발(鉢), 완(碗), 배(杯), 두(豆), 다족기(多足器), 분(盆), 반(盤), 주형기(舟形器)등이 있는데,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전이기에 해당하는 쌍타자2기문화까지는 산동반도의 특징적인 토기류가 공반한다. 이 밖에도 강상 동쪽 적석묘에서 청동단검, 우가촌(于家村)타두(坨頭)적석묘에서 동촉과 동포 등이 출토되었다.
-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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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6)
위영자(魏营子)문화는 조양 위영자유적을 표지로 하며, 협사홍갈색토기와 청동예기군을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문화를 지칭한다. 공간적으로는 대릉하(大凌河)와 소릉하(小凌河)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시간적으로는 하가점하층문화와 하가점상층문화 사이에 위치한다. 토기는 대부분 협사홍도 혹은 협사홍갈도인데, 역(鬲), 언(甗), 천발, 대구관(大口罐), 옹(甕), 이중구연 분(盆) 등이다. 일부 승문(繩文)이 있거나, 구연부에 부가퇴문이 부가되기도 한다. 무덤은 대부분 단인직지장으로 토광묘나 토광목곽묘가 많다. 부장품으로는 토기와 청동예기 등이 있는데, 위영자문화의 중심부에서는 중원계 청동유물이 많고, 주변부에서는 북방계 청동기가 많이 확인된다(천선행, 2010b, 「비파형동검 성립전후 요서 지역 토기문화의 전개」, 『요하문명의 확산과 중국 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 이 밖에도 위영자문화 분포 지역에서는 객좌(喀左)를 중심으로 상(商)과 주(西周)교체기의 청동기 매납 유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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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7)
상마석(上馬石)상층의 문화유형은 대련의 장해현(長海縣)상마석유적에서 확인된 집자리와 출토유물을 표지로 한다. 토기로는 호와 관(罐)이 중심이며, 미송리식토기도 함께 발견된다. 유적에서는 집자리와 함께 17기의 옹관묘와 10기의 토광묘가 확인되었다. 두 개의 문화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쌍타자문화층에서는 옹관묘가, 비파형동검문화층에서는 토광묘가 발견되었다. 2호 토광묘에서는 변형 비파형동검(요령식세형동검)1점이, 3호 토광묘에서는 비파형동검 1점, 청동검손잡이 1점, 검병두식 1점, 장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韓國考古學專門事典: 靑銅器時代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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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8)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문화는 조양 십이대영자 석곽묘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을 포함한 청동유물을 표지로 한 요서 지역의 청동기문화를 지칭한다. 공간적으로는 대릉하와 소릉하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시간적으로는 대략 기원전 9세기~기원전 4세기에 위치한다. 토기는 발견된 수량이 적고 관(罐)이 가장 많다. 청동기는 비파형동검, 동모, 동과, 동촉 등의 무기류와 부채모양 동부, 동도 등의 공구류가 있으며, 다뉴경과 마구류 등이 집중적으로 출토된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韓國考古學專門事典: 靑銅器時代篇』). 십이대영자문화는 토광묘와 석곽묘가 유행한 점에서는 하가점하층문화와 유사하지만 공병식동검을 비롯한 북방계 청동기가 거의 확인되지 않는 대신 비파형동검과 다뉴조문경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구분된다(조진선, 2015, 「청동기의 제작과 사용」, 『한국 청동기문화 개론』, 진인진, 153쪽).
-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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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0)
서단산(西團山)문화는 제2송화강 유역에서 유행하던 청동기문화 중 하나로, 길림 서단산유적을 표지로 한다. 공간적으로는 길림과 영길(永吉)일대에 관련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는 대략 기원전 13세기~기원전 3세기에 해당한다. 서단산문화의 유적은 무덤유적이 많은데, 초기에는 석관묘가, 후기에는 토광묘와 옹관묘가 주로 축조되었다. 단인장에 굴신장이 많으며, 부곽에 호와 관(罐)등을 부장하였다. 가로손잡이가 부착된 토기는 혼하(渾河)와 태자하 일대에서 유행한 미송리형토기와 유사하다. 청동기는 도자, 도끼, 끌 등과 같은 공구류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비파형동검과 동모, 동촉과 같은 무기도 일부 출토된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韓國考古學專門事典: 靑銅器時代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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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1)
윤가촌(尹家村)유형은 요동 남단의 후기 청동기문화인 강상(崗上)유형(상마석상층문화)이 기원전 4세기 말~기원전 3세기 초에 초기철기문화로 전환된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대련시 일대를 중심으로 하며, 시간적으로는 초기철기시대이다. 이전 시기에 유행하던 적석묘(적석총) 전통이 사라지고, 십이대영자문화와 정가와자유형으로 이어지는 청동기와 함께 들어온 석곽묘와 북방식 토광묘가 중심이 된다. 검신이 좁아지고 돌기부가 약하게 형성된 윤가촌식변형비파형동검(요령식세형동검)과 나팔좌두(喇叭座豆), 이중구연토기(淺腹鉢) 등의 토착계 유물과 함께 연나라 계통의 전국계(戰國系)동검과 동과, 고병두(高柄豆), 회색토기와 명도전 등의 유물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세계한민족문화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