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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4장 고구려 건국설화에 대한 이해

고구려의 건국 과정은 설화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즉, 고구려 건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현전 텍스트는 설화적 성격을 짙게 띠고 있어, 고구려 건국설화, 고구려 시조설화, 주몽(朱蒙)설화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이 설화가 전하고 있는 내용을 역사 사실로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어왔다. 하지만 대부분 고대국가의 건국 과정은 다양한 신이(神異)한 요소들로 분식(粉飾)되기 마련이다. 신성한 건국 과정과 국조(國祖)에 대한 부각을 통해 국가 존립의 당위성을 표방하고, 나아가 그 혈통을 계승한 ‘현재’ 지배자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고구려 건국설화는 여타 한국 고대국가 형성 설화에 비해 그 내용이 상대적으로 풍부할 뿐만 아니라, 고구려인 스스로 남긴 금석문을 비롯해 다양한 문헌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어 고구려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여러 문헌에서 전하는 고구려 건국설화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대동소이하나, 세부적으로 건국자의 호칭, 출자 등 상이한 부분 또한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혈연 계보가 달리 나타나 혼란스럽기도 하다. 따라서 고구려 건국설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기초 사료에 대한 자세한 유형 구분 및 비교 검토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편, 초기 연구자들은 고구려 건국설화를 일종의 신비화된 고구려 건국사로 보아, 전승에서 신이한 요소를 제거해 역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상 건국설화는 정치적 목적이 투영되어 있는 일종의 ‘선언문’으로서, 특정 시기 완성되어 변함없이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대를 걸치면서 전승 주체의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가감되기 마련이다. 즉, 고구려 건국설화는 단순히 신성한 시조왕의 탄생과 건국 과정에 관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그 후대의 전승 주체가 ‘현재적’ 필요성에 의해 ‘창조’해낸 부분이 많다.
고대 설화는 역사 사실로 바로 환원할 수 없으며, 역사적·사회적 상황과 결부시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서영대, 1989). 그러므로 고구려 건국설화가 담고 있는 건국사·초기사 관련 내용도 물론 충분히 검토되어야 하겠으나, 후대 지배층의 정치적 의도 내지는, 전승이 형성될 무렵의 정치적 배경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나 현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 텍스트인 5세기 고구려 금석문에 보이는 여러 설화적 요소에 대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편, 고구려 건국설화는 부여(夫餘) 건국설화(동명설화)와의 유사성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어왔는데, 혹자는 부여 건국설화를 고구려 건국설화의 원형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두 설화의 관계 규명도 고구려 건국설화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이다.
이에 이 절에서는 이상과 같은 문제에 초점을 맞춰, 고구려 건국설화에 관한 기존 논의를 살피고, 그것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해를 정리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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