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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6장 정치 중심지의 형성과 초기 도성의 성격

공간은 시간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이 글에서는 고구려의 역사가 어느 공간을 무대로 하여 출발했는지, 또 어떤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를 가늠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고구려 국가형성기 취락의 입지, 정치 중심지의 형성 과정, 초기 도성인 졸본과 흘승골성, 국내 위나암의 위치와 그 성격을 둘러싼 논의 등을 서술한다.
국가형성기의 취락과 관련한 문헌사료는 거의 없지만, 초기 적석총의 분포 양상 등을 분석하면 대략적인 추이는 확인할 수 있다. 1절과 2절에서는 고고자료를 적극 활용해 국가형성기의 취락 입지 및 정치적 중심지가 형성되는 양상을 서술한다.
초기 도성에 관한 문헌사료를 보면, 고구려는 졸본에서 건국하고, 유리왕대에 국내 위나암으로 천도하였다고 전한다. 졸본과 국내 위나암의 위치에 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졸본의 위치는 대체로 중국 요령성 환인으로 비정하지만, 국내 위나암의 위치에 관해서는 지금의 중국 길림성 집안 일대로 비정하는 견해와 환인 일대로 보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위치 비정에 따라서 환인에서 집안 지역으로의 천도 시기에 대한 해석도 유리왕대설, 태조왕대설, 신대왕대설, 산상왕대설 등 다양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여전히 논쟁 중인 주제인 만큼, 3~5절에서는 관련 쟁점에 관한 기존 연구성과를 몇 가지 견해로 분류하고 각각의 논거를 자세히 비교한다.
마지막 6절에서는 국가형성기에 만들어진 고구려 초기 도성의 경관에 대해 검토한다. 구체적으로 ‘산성+평지성’이라는 오랜 통설에 대한 비판과 경관의 형성이라는 새로운 주제에 대한 소개가 중심이다. 이로써 고구려 역사가 전개된 구체적 위치와 고구려인들이 만들어간 공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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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정치 중심지의 형성과 초기 도성의 성격 자료번호 : gt.d_0001_003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