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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2. 정치 중심지의 형성

2. 정치 중심지의 형성

고구려 초기 적석총은 매장주체부가 지표 위에 있다는 점에서 요동의 적석총과 분명히 구분되며, 압록강 중류 유역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압록강 상류, 북쪽으로 용강산맥, 서쪽으로 충만강, 남쪽으로 청천강과 대동강 중상류를 포괄하여 분포한다. 이들 초기 적석총 축조 집단은 독자적 세력권과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여, 이후 고구려의 성립을 주도했으므로, 기원전 2세기경부터 압록강 중류 일대에 존재했던 이 세력집단을 원고구려사회(原高句麗社會)(池炳穆, 1987)혹은 구려종족사회(句麗種族社會)(여호규, 1996), 고구려사회(高句麗社會)(朴京哲, 1998)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구려 초기 적석총이 군집한 고분군의 분포는 몇 개의 권역으로 구분된다. 취락과 고분군의 관련성을 고려하면, 고분군의 권역 구분에 따라 취락의 권역도 구분되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분군이 압록강의 본류 및 지류의 수계를 단위로 구분 및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혼강의 지류인 육도하(六道河)를 따라 조성된 대전자고분군과 풍가보자(馮家堡子)고분군, 상고성자(上古城子)고분군 등을 육도하권역으로 묶을 수 있고, 마찬가지로 혼강의 지류인 부이강(富爾江)을 따라 조성된 왕의구고분군과 대황구(大荒溝)고분군 등을 부이강권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김종은, 2017). 권역 내 각 고분군들은 강줄기를 따라 놓인 교통로를 통해서 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권역 내의 개별 취락들을 수계를 따라 하나의 정치단위로 분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수계를 따라 분류된 권역을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곡(谷)’ 혹은 ‘천(川)’에 대응시키기도 한다(김종은, 2017). 주몽이 졸본으로 남하하던 중 모둔곡(毛屯谷)의 3인을 만났다거나 대무신왕대 매구곡(買溝谷)의 3인이 항복해왔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통해서 당시 ‘곡’을 골짜기를 단위로 하는 정치집단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임기환, 2004). 한편, 『삼국사기』에는 ‘곡’ 외에도 ‘국(國)’ 혹은 ‘나부(那部)’ 등 다양한 층위의 정치집단들이 등장하는데, ‘곡’ 단위의 정치집단을 ‘국’의 하위 정치단위로 보느냐(임기환, 2004), 아니면 ‘국’과 같은 위상의 정치단위로 보느냐(여호규, 2014a)에 따라서 이견이 있지만, ‘나부’는 ‘곡’의 상위 정치단위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임기환, 2004; 김현숙, 2005; 여호규, 2014a). 『삼국지』에서 부(部)로 표기되기도 하는 나부는 결국 여러 ‘곡’집단이 모여 이룬 정치단위인 셈이다. 만약 수계에 따라 분류된 고분군의 권역이 사료상의 ‘곡’집단에 대응한다면, 몇 개의 가까운 권역들로 구성된 대권역이 나부에 대응할 수 있다. 예컨대, 육도하권역과 부이강권역, 대아하권역 등을 묶은 대권역으로서 환인권역을 설정할 수 있고, 통구분지권역, 장천권역, 유수림하권역 등을 묶은 대권역으로서 집안권역을 설정할 수 있다. 이로써 대권역을 환인, 집안, 압록강 상류, 압록강 이남의 4개로 구분하거나(朴京哲, 1998), 환인, 집안, 압록강 이남, 임강, 장백의 5개로 구분하고(姜賢淑, 2000), 나아가 사료에 나오는 5개의 고구려 부/나부를 5개의 대권역에 각각 비정하기도 한다(姜賢淑, 2000; 조영광, 2010). 다만, 2000년대 이후 발굴성과가 축적됨에 따라 새로 확인된 고분군이 많아짐으로써, 권역에 대한 재구분이 불가피해져 환인, 통화, 집안, 서북한, 임강·장백의 5권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김종은, 2017).
단,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치단위로서 ‘곡’집단이 구성되기 위해서는 개별 취락들 가운데 중심이 되는 취락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곡’집단의 상위 정치단위로서 부/나부의 등장 역시 여러 ‘곡’집단의 중심 취락들보다 상위의 정치 중심지가 형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심취락의 등장, 정치 중심지의 형성을 알려주는 문헌사료는 없지만, 고고학적 정황을 통한 짐작은 가능하다. 초기 적석총의 분포 양상을 보면 각 권역 내에서 고분군의 규모와 개별 고분의 크기, 출토유물의 수준 등에서 다른 고분군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지닌 고분군이 확인된다. 이는 기원전 2세기경 이루어진 ‘나’집단의 성장(여호규, 1996)혹은 ‘지역집단’의 성립(朴京哲, 1998)등으로 해석되었다. 이를 바꿔 말하면, 그러한 고분군을 조영할 만한 우월한 지위를 지닌 사람들의 등장일 수 있고, 그들이 사는 우월한 취락, 곧 정치 중심지의 등장이기도 하다. 즉 위계화를 통한 중심 고분군의 등장은 정치 중심지의 등장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지표를 통해 중심 고분군을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고분이 100여 기 이상 군집하는 대규모 고분군의 형성이다. 고분군을 구성하는 고분의 수를 통해서 고분 축조 집단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개별 고분 한 변의 길이가 10m 이상 되는 대형고분의 출현이다. 고분 축조에 소용된 비용과 피장자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비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기단적석총의 등장이다. 고분 축조기술의 고급화는 비용의 상승을 동반함과 동시에 피장자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표를 통해서 고구려 초기 적석총 분포범위 내 중심 고분군을 추리면, 환인대권역에서는 육도하소권역의 상고성자고분군, 혼강본류소권역의 고려묘자고분군 등, 집안대권역에서는 유림하소권역의 대고려묘구고분군, 통구분지소권역의 우산하고분군 등, 서북한/압록강이남대권역에서는 독로강소권역의 노남리고분군 등이다. 만약 앞서 언급한 대로 대권역과 소권역이 각각 사료상의 부/나부와 곡집단에 대응한다면, 위의 중심 고분군들은 부/나부 내지는 곡집단의 지배자들이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 중심 고분군 인근에 정치 중심지가 위치했을 개연성이 크다. 예컨대, 육도하 하류에 위치하는 상고성자고분군의 경우, 초기 적석총만 200여 기가 넘는 대규모 고분군으로, 한 변의 길이가 10m에 육박하는 대형 무기단적석총이 조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변 길이가 12m 이상의 대형 기단적석총도 조영되었던 중심 고분군이다. 따라서 상고성자고분군은 육도하소권역, 나아가 환인대권역의 중심 고분군으로 평가받았고, 특히, 이 고분군에서 남쪽으로 1.5km 거리에는 평지성 유적으로 하고성자성유적이 위치하고, 다시 그 남쪽으로 위계 높은 부여계 지배집단의 무덤으로 망강루고분군이 확인됨에 따라 이 일대를 계루부(姜賢淑, 2000) 혹은 소노부(이준성, 2019; 임기환, 2019)의 정치 중심지로 비정하기도 한다.
요컨대, 고구려의 국가형성기에 형성된 정치 중심지에 관해서는 관련 자료가 거의 없는 까닭에 몇 가지 정황을 토대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먼저 곡, 국, 부/나부 등 여러 층위의 정치집단을 사료에서 포착한 후, 각각의 집단에 존재했을 정치 중심지를 압록강 중상류 유역에 분포하는 고구려 초기 적석총의 중심 고분군에 대응시키는 것이다. 특히, 고구려 초기 적석총은 압록강의 본류와 지류의 수계를 따라 분포하였고, 그 수계를 기준으로 권역-대권역을 구성할 수 있다. 이때의 권역-대권역은 사료상의 곡-부/나부에 대응할 수 있고, 그렇다면 권역-대권역의 중심 고분군은 곡-부/나부의 정치 중심지와 관련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까지 확인된 몇 개의 중심 고분군을 통해 고구려 국가형성기 정치 중심지의 위치와 경관을 상상할 수 있다. 다만, 사료에 등장하는 5개의 부/나부 혹은 여러 곡 집단을 특정 대권역 혹은 소권역에 비정하기 위해서는 중심 고분군을 포함한 압록강 중상류 유역 전반에 걸친 발굴성과가 보다 많이 축적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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