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고구려통사

2장 사회구조와 제의체계

  • 저필자
    강진원(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조교수)

2장 사회구조와 제의체계

국가(state)는 하나의 사회 공동체이다. 고구려 초기 사회는 국가가 형성되어 가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전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새롭게 자리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는 사회구조와 제의체계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구조는 인간 집단의 짜임새를 말한다. 신분제사회였던 당시 사회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실태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기록에 나오는 계층의 실상과 성격을 거론한 뒤, 기층사회라 할 읍락의 현황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계층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고구려 초기의 지배층은 대개 ‘제가(諸加)’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다시 대가(大加)와 소가(小加)로 구별되었다. 지배층에 이들만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다. 대가와 함께 언급된 주부(主簿)도 있었고, ‘대가(大家)’주 001
각주 001)
대가(大加)와 구별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대가(大家)’ 혹은 ‘대가’와 같이 따옴표를 붙임.
닫기
라 불린 이들도 존재하였다. 대·소가의 편제기준과 구체적인 실상에 관한 입장은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따라서 주부는 대가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그리고 ‘대가’에 해당하는 계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제가를 대가와 소가로 나눈 기준이 무엇인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피지배층의 경우, 먼저 기록에 많이 등장하는 하호(下戶)가 있다. 하호는 부여·옥저·동예 등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던 다른 공동체에 관한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정확히 어떠한 성격을 지녔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그 밖에 노복(奴僕) 혹은 노비도 존재하였고, 부여의 사례를 참조하면 호민(豪民)이라 불린 유력 민(民) 계층도 한 공간에 자리한 것 같다. 이들이 국정 운영의 주체는 아니었으나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수였기에, 그 실태를 파악해야만 초기 고구려 사회를 온전히 이해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읍락의 상황에 대해서는 대가와 하호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실상에 접근할 것이다. 당시 왕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으나, 공납이 조세 수취의 기본적인 틀로 작용했다는 점은 대개 동의하는 바이다. 그 면에 근거하여 읍락 공동체 성원들의 상황을 알아보고,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모해 나갔는지도 검토하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고구려 초기의 사회적 여건을 이해하는 데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통시대 의례가 지니는 위상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했는데, 그 가운데서 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였다. 따라서 제사, 즉 제의의 이해를 통하여 그 공동체의 사회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초기의 대표적인 제사로는 동맹(東盟)이라고도 일컫는 제천대회(祭天大會)와 시조묘(始祖廟) 제사 및 종묘·사직 제사와 묘제(墓祭)를 들 수 있다.
제천대회는 국왕의 주도 아래 치러졌는데, 도읍 동쪽의 큰 동굴, 즉 국동대혈(國東大穴)에 둔 수신(隧神)을 강가로 모셔 와 제사하는 방식이었다. 이때는 공회(公會)도 열려 지배층도 참여하였는데, 국왕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며, 여타 지배세력도 일정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다만 구체적인 제사 대상이나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한 상황이라 다양한 견해를 정리하여 소개할 것이다.
시조묘, 즉 시조의 사당에서 치러진 제사의 경우, 왕권과 연계된 의례라는 점에서 제천대회와 공통된 바가 있다. 졸본에 있는 시조묘까지 가서 국왕이 친히 제사한 사례가 기록에 드물지 않게 나오므로, 이는 분명 큰 의의를 지녔을 것이다. 아마도 이를 통하여 왕권 제고가 도모되었음은 물론인데, 시행 시기 등에서 당시 사회적 여건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엿볼 수도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면밀하게 알아볼 생각이다.
덧붙여 당시에는 왕실 이외에 소노부(消奴部), 즉 비류나부(沸流那部)에서도 종묘와 사직 등을 세울 수 있었으며, 무덤에서 지내는 제사, 즉 묘제(墓祭)가 이른 시기부터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들 제사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상의 논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여러 제사를 총체적으로 볼 때 나타나는 특징적 면모를 알아보겠다. 제의 행위는 시대의 산물이기에, 이들 의례는 고구려 초기라는 시대적 정황과 연관된 측면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에 관한 접근은 고구려 초기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매개가 될 것이다.

  • 각주 001)
    대가(大加)와 구별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대가(大家)’ 혹은 ‘대가’와 같이 따옴표를 붙임.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장 사회구조와 제의체계 자료번호 : gt.d_0002_001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