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초기 정치체제 해체와 중앙집권체제로의 전환

3세기 중반을 전후해 고구려에서는 초기의 나부(那部)가 점차 소멸하는 반면, 도성의 방위별 행정구역인 방위부(方位部)^{주 001}

각주 001)

방위부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동부, 서부, 남부, 북부 등 방위명을 갖는 부로서 방 위명부라고도 부른다. 이 글에서는 방위부로 칭한다.

가 등장한다. 이와 함께 패자(沛者)와 우태(于台) 등 초기의 관등이 소멸하면서, 대형(大兄)이나 소형(小兄) 등 대소로 분화된 형계(兄系) 관등이 새롭게 등장하고, 그 이전부터 있었던 사자(使者) 관등도 대소로 분화한다. 이러한 양상은 나부 및 제가(諸加)를 중심으로 운영하던 초기 정치체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정치체제가 성립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구려 초기 정치체제 및 3세기 중반 이후 나타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견해가 크게 둘로 나뉘어 있다. 다름 아니라 나부체제론(那部體制論)과 조기집권체제론(早期集權體制論)이다. 초기 정치체제를 나부체제로 보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등장을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로 전환한 것으로 이해하여 그 변화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나 초기 정치체제를 집권체제로 보는 견해에서는 같은 집권체제 내에서의 변화로 이해하고 있어 전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즉 초기 정치체제에 대한 이해에 따라 3세기 이후 정치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다만 조기집권체제론은 왕권의 집권력이란 요소가 초기와 중기에서 어떻게 다른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지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나부체제론과 조기집권체제론은 각각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사료 해석에서 보다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관련 사료 해석에서 북한 학계의 경우 봉건적인 영주제론(리지린, 1967)과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론(림종상, 1979)이란 입장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사료 해석에서 부체제론과 조기집권체제론의 차이와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러한 연구현황은 고구려 사회를 분석하는 이론 틀의 마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실증적 방법론으로서 사료 해석의 보편적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과제임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나부체제론의 입장에서 3세기 중반 이후 집권체제로의 전환양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 1장 ‘정치체제의 구조와 운영’ 서술과 연관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시기는 고국천왕대인 2세기 후반에서 미천왕대인 4세기 전반까지이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인 나부의 해체와 방위부의 등장은 전적으로 문헌자료에 입각하여 파악하였다. 『삼국지』 등 중국 사서의 고구려전보다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이는 나부 및 방위부 관련 기사가 주된 자료이다. 고구려본기의 자료가 변천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체제로 이행해 가는 과정은 나부의 지배세력이 본거지를 떠나 도성(都城)으로 집주(集住)하면서 중앙귀족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며, 그런 점에서 국내(國內) 도성의 형성도 중요한 이해 요소가 된다. 문헌자료로는 기내(畿內)와 왕경(王京), 왕성(王城) 개념의 등장 등을 통해 국내 도성의 정치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리고 국내 도성의 구성에서 방위부의 존재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문헌자료 및 현재 중국 집안(集安)의 국내 도성과 관련된 고고자료를 활용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나부체제의 해체와 중앙집권체제로의 전환은, 곧 정치세력의 관점에서는 ‘지배자공동체의 결집’ 양상이며, 동시에 계루부의 근거지였던 국내성이 중앙집권체제에서 정치적 도성(都城)으로 완비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