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지방통치조직 정비와 군사동원체계 확립
6장 지방통치조직 정비와 군사동원체계 확립
초기 고구려는 소국연맹체적 성격이 강하여 영역을 중앙과 지방이라는 개념으로 구분하여 파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태조왕 이후 왕실의 부(部)인 계루부를 중심으로 집권력이 강화되고 5나부(那部)체제를 형성하면서 중심지와 주변부가 서서히 중앙과 지방의 성격을 갖추어 가게 된다. 이 시기를 일반적으로 나부체제기라고 칭한다(임기환, 1995; 여호규, 1997). 물론 나부체제기는 중앙의 구심력과 주변의 원심력이 함께 작동하는 시기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일원적 관등체제와 지방행정조직이 완비된 때는 아니었다. 그리고 같은 고구려의 영향권이라도 옥저·동예와 같이 공납을 통한 간접지배가 이루어진 곳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나부체제기 고구려는 시간이 흐를수록 집권력을 강화해 가며 나부의 운동성을 제한하면서 해당 지역을 곡(谷)과 촌(村)을 중심으로 한 행정구역으로 재편해 나간다. 집권력의 강화에 따른 나부체제의 해체와 맞물려 정비되기 시작한 곡-촌 체제의 초기적 지방조직은 이후 대-중-소의 성(城)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특유의 지방제도로 발전하게 된다(김현숙, 1997).
지방제도의 형성과 더불어 초기 고구려는 수취체제의 확립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고대국가는 안정적이고 원활한 통치를 위한 수취체제의 확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국가 운영의 필수요소인 인적·물적 자원의 효율적 징발과 배분을 위한 것이다. 특히 고대사회의 초기는 인정(人丁)에 대한 지배가 토지에 대한 소유나 지배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가졌던 만큼 고구려 역시 초기에는 인적 자원의 효율적 수취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관련 시스템을 정비해 가게 된다. 이는 물적 자원의 수취 및 군사동원체제의 성립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이다.
왕권을 중심으로 집권체제가 강화되어 가고 그에 수반해 국가의 규모와 국력이 신장하면서 주변세력과의 충돌도 더 격렬하고 대규모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전쟁의 규모와 그에 따른 피해 역시 더욱 크고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효율적인 군사동원과 보급체제의 확립, 새로운 장비와 전술 개발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초기 고구려가 어떠한 형태로 군사를 동원하고 이들에게 주어진 장비와 그것을 토대로 한 전략을 밝히는 것은 초기 고구려의 국가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이다.
고구려는 국가방어체계 형성에 있어 초기부터 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소국연맹 단계에는 연맹체의 중심지에 성곽을 축조하고 이를 이용해 방어와 통치의 거점으로 삼았고, 나부체제가 작동하던 시기에도 적극적으로 성곽을 활용한 사실이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3세기 이후 나부의 해체와 더불어 진행된 고구려의 지방·군사제도 정비는 지역방어체계의 형성과 맞물려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고구려는 지역 방어를 위해 성을 쌓았고, 이를 군사거점과 지방행정 편제단위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고구려사에서 국왕권에 의한 집권체제가 더욱 강화되는 중기에 이르러 성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 지배와 방어체제의 완성으로 귀결된다.
이 글에서는 고구려가 초기의 연맹체적 성격을 극복하며 지방통치체제를 마련해 가는 과정과 체제 정비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 조달시스템인 수취체제의 확립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영역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과정에서 필수적인 군사조직의 정비와 산성 중심의 방어체제 형성, 생산도구와 무기체계의 발달, 병종 구성 등에 대하여 검토해 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