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태왕권과 정치이념의 확립
1장 태왕권과 정치이념의 확립
전근대 왕조국가에서 군주에 대한 호칭은 왕권의 대내적·대외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고구려에서 사용된 군주호의 사례는 당대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석문에서 ‘왕(王)’호 혹은 ‘태왕(太王)’호의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태왕(혹은 대왕)’이라는 호칭은 단순한 미칭(美稱)이 아닌, 고구려 국왕의 대내적・대외적 권위의 상승과 더불어 붙인 것으로 보는 의견이 다수이다. 즉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의 확립, 주변으로의 영토 확대,독자 연호의 제정 등 정치적 변화 속에서, 그 정점에 있던 고구려 왕권이 초월적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에 ‘태왕(太王)’으로 상징되는 절대적 권력과 지위를 과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태왕’호는 주로 4세기~5세기에 작성된 금석문에 보이는데, 이와 관련해 당시 ‘태왕’호의 현실적 기반과 당대 정치체제의 성격에 접근하려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는 4세기~5세기 고구려의 대외관계 및 고구려 중심의 국제질서 인식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으며, 태왕의 대내적 기반, 즉 태왕과 노객(奴客)으로 지칭하기도 했던 군신 관계, 태왕국토(太王國土)라는 영역적 기반, 태왕과 민(民)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태왕’호의 기원과 현실적 기반에 대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고구려의 정치체제 변화와 더불어 국가적 성격에 접근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