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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3장 불교 수용과 국가 제의

  • 저필자
    정호섭(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3장 불교 수용과 국가 제의

4세기 이후 고구려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마련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고등종교로서 불교의 수용이 이루어졌다. 불교는 사상적 측면에서 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문화를 꽃피우는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동아시아 고대문화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고구려의 불교도 이러한 점과 무관하지 않다. 불교 수용 이후 토착신앙과의 융합을 통해 발전하였고, 동아시아 불교의 흐름 속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불교의 전래와 수용 등을 살펴보는 것은 고구려 중기의 정치사상적・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고구려는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하면서 국가 의례 체계도 정비하였다. 바로 국가를 건국한 시조에 대한 제사인 시조묘, 국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례의 핵심인 종묘, 사직 등에 대한 정비를 통해 국가와 왕권의 권위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국가제사라는 가시적인 의례를 통해 왕권의 권위를 제도 속에서 체계화시켰던 것이다. 또한 왕권의 성장에 따라 초대형 적석총이라는 왕릉 축조와 함께 왕릉을 지키고 소제하는 수묘인 연호에 대한 관리와 이와 관련한 법칙도 마련하였다. 고구려인이 남긴 당대의 금석문인 〈광개토왕비〉와 〈집안고구려비〉가 이러한 내용을 전하고 있는데, 수묘제를 시행하다 문제가 발견되면, 법칙을 수정하고 보완해 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국가 의례의 정비를 살피는 것은 고구려 중기의 정치사상적・사회경제적 맥락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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