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고구려통사

4장 중기의 도성과 천도

  • 저필자
    기경량(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조교수)

4장 중기의 도성과 천도

고구려 중기의 도성은 크게 국내성시기와 평양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고구려의 발상지이자 초기 도성인 졸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국도(國都)가 바뀐 시점이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한다. 하지만 천도 시점이 언제인지와 별개로 국내 지역이 일찍부터 고구려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국내 지역은 지금의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일대이다. 이곳에는 고구려가 활용하였던 왕성(王城)유적이 두 곳 존재한다. 하나는 산성인 산성자(山城子)산성이고, 다른 하나는 평지성인 집안 평지성이다. 두 유적은 각각 역사 기록상에 등장하는 환도성(丸都城)과 국내성(國內城)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은 두 개이지만, 시가지 중심에 자리하고 있던 평지성을 중시하여 ‘국내성시기’라고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글에서는 집안 지역의 자연지리와 생태 환경 등을 간단히 살펴본 후 환도성과 국내성의 구체적인 규모와 용도, 그리고 두 성의 축조 시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여러 논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고구려는 427년 국내 지역에서 평양 지역으로 천도를 감행하였다. 이로써 국내성시기가 마무리되고 평양시기가 시작된다. 평양시기는 586년 장안성(長安城)으로의 이도(移都)를 기준으로 다시 전기 평양시기와 후기 평양시기로 구분된다. 이 글에서는 그중 전기 평양시기까지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전기 평양시기 고구려의 도성은 대동강 북쪽에 자리한 대성산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평양으로의 천도 시기와 동기, 산성과 평지성 모델의 적용 문제, 안학궁의 조영 시기를 둘러싼 논쟁 등이 주요 논쟁점이다.
고구려 중기는 고구려의 성장기와 전성기를 포함하고 있다. 천도가 이루어졌던 만큼 도성 형태와 운영에 있어서도 변동 폭이 컸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고구려의 도성 운영은 정치 및 외교 정책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는 만큼, 고구려사의 전개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도성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4장 중기의 도성과 천도 자료번호 : gt.d_0003_001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