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고구려의 낙랑군·대방군 지역 지배
6장 고구려의 낙랑군·대방군 지역 지배
4세기에 이르러 고구려는 사방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이 시기는 미천왕대 이후 광개토왕대까지로 볼 수 있다. 그 배경을 알아보면, 대내적으로는 강력하게 확립된 왕권을 들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원 진(晉) 왕조의 내부 분열로 인해 고구려가 요서・요동 지방으로부터 밀려오는 강력한 위협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천왕은 311년 압록강 하류에 있는 서안평을 점령하여 낙랑군(樂浪郡), 대방군(帶方郡)주 001과 요동 지역의 연결고리를 차단하였다. 이후 이 지역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하여 313년에 낙랑군, 314년에 대방군을 멸망시켰다. 이는 중원 정권과 연결된 이 지역을 고구려가 차지함으로써 차후부터는 낙랑군·대방군이 해오던 역할을 고구려가 대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문제는 고구려가 낙랑군·대방군 지역을 어떻게 지배하였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는 고구려가 이 지역을 장악, 통치하였을 것이라고 인식해왔다. 그런데 정작 『삼국사기』·『삼국유사』를 비롯한 국내외 문헌기록을 찾아보면 낙랑군·대방군 멸망 이후의 관련 기록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주 002
이로 인해 종래 이 방면에 대한 연구는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지역에는 상당수에 달하는 무덤 관련 자료가 남아 있다. 학계는 관련 고고자료에 대한 해석을 통해 고구려의 낙랑군·대방군 지역에 대한 지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고고자료만으로 당시 상황을 제대로 해석하기엔 한계가 있었고, 이는 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갖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이 글에서는 낙랑군·대방군 지역에 남아 있는 무덤자료에 나타난 상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학계에 제출된 견해를 알아보겠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고구려가 이 지역을 어떻게 지배해 나갔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