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고구려통사

2장 광개토왕대의 대외관계

광개토왕은 우리 역사상 영토를 가장 크게 넓혔던 왕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광개토왕릉비〉에 기록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시호, 『삼국사기』에 기록된 ‘광개토왕’이라는 명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는 374년에 출생하였는데, 왕으로서 재위 기간이 『삼국사기』에는 392~413년, 〈광개토왕릉비〉에는 391~412년으로 각기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본명은 담덕(談德)이며, 중국 측 기록은 안(安)으로 전한다. 재위 중에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광개토왕의 즉위를 전후한 시기,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는 급변하였다. 여러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광개토왕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는 서쪽으로 국경을 접한 북중국, 남쪽으로 국경을 접한 백제, 신라, 그리고 국경을 접한 주변 세력인 거란, 숙신, 동부여와의 관계였다. 이와 같은 상황은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고구려 서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요서, 요동 지역의 상황을 알아보자. 북중국 지방의 상황이 급변하였다. 이 시기는 변방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이민족이 중원으로 들어와 나라를 건국한 이른바 5호16국의 시대이다. 북중국 지방은 정치적 분열을 거듭해 혼란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384년, 모용수(慕容垂)가 후연(後燕)을 건국하였다. 그는 385년에 업(鄴: 하북성 한단)을 점령하고 황하 이북 지역을 대부분 장악하였다. 한편 요서 지방의 서북쪽에 있던 선비족 탁발규(拓跋珪)가 세력을 확장하며 후연을 압박해왔다. 385년, 탁발규 군대와 후연이 충돌했는데, 그 결과 탁발규가 크게 승리하였다. 탁발규는 386년에 위왕(魏王)을 자칭하였으며, 398년에 북위(北魏)를 건립하여 평성(平城: 산서성 대동)으로 도읍을 옮겼다. 후연은 북위 세력에 밀려 점차 국력이 약해져, 북중국 지방을 포기하고 그 중심이 요서 지방으로 옮겨진 상황이었다. 광개토왕은 북중국 지방의 분열과 혼란을 활용하여 후연과 대립, 갈등하면서 요동과 요서 지방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한편 요서 지방에 있던 후연이 멸망하면서 북연(北燕) 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또 다른 모용씨(慕容氏)의 일파가 남쪽으로 옮겨가 산동 지방에 남연(南燕)을 건립하였다. 광개토왕은 이 시기 백제와의 갈등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대외관계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를 위해 북연, 남연과의 우호관계를 추진하였다.
둘째, 고구려 남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백제와의 상황을 알아보자. 광개토왕은 북중국 지역의 정세를 활용하여 백제를 강하게 압박해 나갔다. 백제와의 관계는 일찍이 광개토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이 371년 백제 근초고왕에게 살해되면서 급격히 갈등관계로 전환되었다. 고국원왕 사후 등장한 소수림왕은 백제에 대한 복수보다는 율령 반포, 태학 설립, 불교 공인 등의 정책으로 국가체제를 확립하여 왕권강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 뒤를 이은 고국양왕은 축적된 힘을 바탕으로 하여 백제를 공략했으나 백제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때 백제는 바다 건너 왜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다. 왜는 백제와의 연합을 바탕으로 신라를 공격하곤 하였다. 광개토왕은 백제를 공격하는 한편 한반도 지역에 건너온 왜를 공략하였다.
셋째, 고구려 동남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신라와의 상황을 알아보자. 고구려는 백제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신라에 군사를 지원하는 등 우월한 힘을 발휘하였다. 사실 신라는 고구려를 매개로 하여 국력 신장을 도모해왔다. 수시로 영역을 침범하는 백제와 왜를 견제하기 위해 강력한 고구려의 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광개토왕은 군대를 파견하여 신라를 침략한 왜를 공격해 몰아내고 가야 지역까지 추격하였다. 이는 고구려 중심의 차별적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단초가 되었다. 고구려는 신라 구원군 파견을 계기로 하여 신라 내정에 간섭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넷째, 고구려의 주변 세력인 숙신, 거란, 동부여와의 상황을 알아보자. 고구려의 서북쪽과 북쪽 지방에 거란과 숙신, 동쪽 지방에 동부여가 있어 각기 고구려와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광개토왕은 거란을 공격해 수많은 가축을 노획했으며, 숙신을 정벌해 복속하였다. 그리고 동부여를 공격하여 종속적인 지배관계를 확립하였다. 이를 통해 고구려는 주변 세력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해 나갔다.
그림1 | 광개토왕 시기의 대외관계
이와 같은 흐름을 토대로, 다음에서는 광개토왕이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장 광개토왕대의 대외관계 자료번호 : gt.d_0004_001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