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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7장 고구려 군사방어체계의 역사적 변천

  • 저필자
    여호규(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7장 고구려 군사방어체계의 역사적 변천

고구려는 중원 왕조나 유목 제국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며 생존을 도모했다. 고구려는 이들의 침공을 물리치고 국가적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각지에 성을 축조해 물샐틈없는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만주 일대에만 200여 개 이상의 고구려 성이 남아 있다. 북한 지역에서도 많은 고구려 성이 확인되었고, 최근 남한 지역에서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고구려는 이러한 성을 중심으로 입체적 군사방어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지방통치조직을 정비했다. 성은 고구려 국가체제의 근간이자 생존의 필수시설이었다(노태돈, 1996; 1999a; 여호규, 1999a; 김현숙, 2005).
고구려의 군사방어체계에 관한 연구는 북한 학계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 북한 학계는 일찍이 국경지대인 요하(遼河) 유역에서 후기 도성인 평양성에 이르는 방어체계를 전초방어성(감시방어성), 전연방어성(기본방어성), 종심방어성(중간방어성), 수도방어성(최종방어성)으로 분류했고(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75; 1979; 리지린·강인숙, 1976), 1980년대 이후에는 이를 보완하는 연구를 다각도로 진행했다(채희국, 1985; 박창수, 1988a; 1988b; 박창수, 1990;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91; 박진욱, 1991; 남일룡, 1995; 손영종, 1997; 지승철, 2005).
중국 학계는 일찍이 국내성기의 군사방어체계를 고찰했지만(吉林省博物館輯安考古隊 외, 1964; 遲勇, 1993), 후기 군사방어체계는 거의 연구하지 않았다. 요동 지역 성곽을 종합적으로 다룬 연구성과가 많지만, 방어체계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언급에 그쳤다(陳大爲, 1985; 1995; 孫進己·馮永謙, 1989; 辛占山, 1994; 王綿厚, 1994; 2002; 王禹浪·王宏北, 1994; 2007; 馮永謙, 1994; 李殿福, 1998; 魏存成, 2002). 천리장성에 대해 길림성(吉林省)과 요령성(遼寧省) 학자들이 경로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어졌지만, 축성 배경이나 그 성격을 깊이 분석하지는 않았다(王綿厚, 1986;王健群, 1987; 李健才, 1991; 梁振晶, 1994; 馮永謙, 2002; 張福有·孫仁杰·遲勇, 2010a; 2010b).
일본 학계는 일찍부터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에 관심을 가졌지만(松井等, 1913; 津田左右吉, 1915), 당시에는 고구려 성곽이 거의 조사되지 않아 군사방어체계를 고찰하기는 쉽지 않았다(三上次男, 1997). 1990년대 이후 중국 학계의 고고 조사 현황과 고구려 성의 분포양상을 정리하고(西川宏, 1992; 林直樹, 1994; 東潮·田中俊明, 1995), 초·중기와 후기 군사방어체계를 비교하거나(田中俊明, 1997·1999) 수·당과의 전쟁에 나타난 성곽의 운용 양상을 검토하기도 했다(寺內威太郞, 1994). 다만 2000년대 이후 후속 연구가 이어지지는 못했다.
국내 학계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늦었는데, 중국과 북한에 산재한 고구려 성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고, 고고자료를 획득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 수교로 만주 지역의 고구려 유적 답사가 가능해지고, 고고자료의 획득이 용이해졌다. 이에 고구려 성에 관한 고고자료를 집대성하는 한편(서길수, 1994; 여호규, 1998a; 1999a), 성곽의 유형과 성격을 분석하고(공석구, 1998; 임기환, 1998), 방어체계를 본격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했다(여호규, 1998b; 1999b).
2000년대 이후 국내 학계는 남한 지역의 고구려 성을 활발하게 조사·연구하는 한편(최종택, 1999; 2013; 심광주, 2001; 2008; 백종오, 2005; 2006; 양시은, 2010a; 2010b; 이정범, 2010; 2015; 신광철, 2011a; 2011b; 윤성호, 2019; 박종서, 2022), 만주 지역의 성곽 사진자료집을 간행하고(이성제 편, 2006; 2010), 초·중기 도성과 서북 방어체계도 연구했다(이성제, 2013a; 2013b; 양시은, 2013; 2014a). 특히 고구려 성곽과 도성에 관한 단행본과 박사학위논문(서길수, 2009; 양시은, 2016; 정원철, 2017; 기경량, 2017; 이경미, 2017b; 권순홍, 2018; 강현숙 외, 2020; 이정범, 2021; 신광철, 2022), 고구려와 수의 전쟁에 관한 단행본(이정빈, 2018; 정동민, 2022) 등이 잇따라 간행되었다. 서북방 봉수체계가 검토되고(이성제, 2016), GIS나 위성사진을 활용한 공간 분석도 시도되었다(홍밝음·강동석, 2021; 김주형, 2022; 신광철, 2022). 이와 함께 중국 소재 고구려 성곽을 집대성한 자료집이 간행되어 연구기반을 크게 넓혔다(여호규 외, 2020a; 2020b; 2020c; 2020d; 2021a; 2021b: 2022a; 2022b; 2022c; 2022d).
고구려 성과 방어체계에 대한 국내 학계의 연구가 본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최근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고고자료와 문헌 사료를 유기적으로 연관시켜 고구려 군사방어체계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구려가 중원왕조나 유목국가와의 치열한 전쟁에서 장기간 생존하며 국가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배경을 파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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