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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9장 한반도 서북한 지역 성곽 분포와 방어체계

고대에는 점령지역이 모두 영토에 편입되지는 않았다. 점령지에서 곧바로 철수하거나 일시적인 점유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점령지를 영토화하려면 성을 쌓아 군사들을 배치하고 그 지역을 통치할 수 있는 행정체계도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고대국가의 방어체계와 영토의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핵심유적이 성곽이다. 성곽은 군사시설이자 통치의 거점이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일시적인 성곽 점유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성을 새로 쌓았다면 그 행위의 주체를 밝혀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곽은 축성 주체와 시기에 따라 축성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수축이나 개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곽은 중요한 공공시설이자 복합적인 토목기술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지역에 상관없이 같은 시기 같은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성곽에서는 공통적인 축성법이 확인된다. 그러므로 특정 시기의 방어체계를 이해하려면 축성법을 통해 해당 시기에 쌓은 성곽을 선별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고구려 성곽의 축성법에 관한 연구는 북한이나 중국보다 남한에서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남한에 있는 고구려 성곽은 다 해야 40여 개에 불과하지만 그중 50%가 넘는 성곽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남한 지역의 고구려 성곽은 대부분 ‘토심석축공법(土芯石築工法)’으로 쌓은 석성인 것으로 확인되었다(심광주, 2018). 이에 비하여 북한이나 중국에 있는 고구려 성곽은 지표조사나 부분적인 발굴조사가 대부분이어서 축성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서북한 지역의 방어체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성곽을 중심을 한 고구려의 방어체계는 전연방어체계와 종심방어체계, 위성방어체계로 구분할 수 있다(채희국, 1985). 전연방어체계는 국경방어체계다. 국경 부근에 성곽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여러 성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표적인 전연방어체계는 고구려 천리장성과 광개토왕 대에 구축된 국남 7성과 국동 6성이다. 6세기 중엽 이후 임진강 이북 지역의 고구려 성곽들도 전연방어체계에 속한다.
종심방어체계는 도성방어체계다. 국경에서 도성에 이르는 교통로를 따라 성곽을 구축하여 도성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종심방어체계는 도성의 위치에 따라 변화되었다. 고구려 도성이 국내성이었을 때에는 요동성이나 비사성 방면에서 국내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성곽이 그 기능을 담당하였다. 평양 천도 이후에는 압록강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성곽들과 임진강 유역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중심도로에 있는 성들이 그 기능을 대신하였다.
종심방어체계를 구축하는 성곽들은 전략적 중요도나 관할 영역의 크기에 따라 규모를 달리하였다.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중심도로의 결절점에는 대규모 성곽이 배치되고 그 사이사이에는 중소 규모의 성곽이 방사상으로 배치되었다. 대규모 성곽은 지역의 거점성으로서 작은 규모의 위성을 거느리며 종심방어체계인 동시에 중앙집권적인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지방행정의 중심으로 기능하였다.
위성방어체계는 도성이나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성곽을 배치하는 방어체계이다. 평양 천도 이후의 대표적인 위성방어체계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도성방어체계와 구도였던 국내성 일대와 남평양으로 추정되는 장수산성 일대 등을 들 수 있다.
한반도 서북한 지역의 고구려 성곽들은 요동 지역보다 늦은 시기에 구축되었다. 고구려는 4세기 초에 낙랑과 대방을 몰아내고 평양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이후 백제와의 각축양상을 고려하면 평양 천도 이후에야 새로운 방어체계가 완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5세기 후반에 고구려가 본격적으로 남하하기 시작하는 것도 천도 이후 새로운 방어시스템의 완비 시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475년 장수왕이 백제 한성을 공취한 이후 고구려군의 남진과 퇴각, 잔류, 재진출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렇지만 안성의 도기동산성과 청원의 남성골산성, 대전 월평동산성 등, 성곽의 분포양상을 보면 고구려가 금강 상류지역까지 진출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고구려가 임진강 이남 지역에 구축했던 성곽의 배치양상은 매우 독특하다. 모두 교통로를 중심으로 남북 방향으로 선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신라나 백제의 접경지역에 설치한 전연방어체계나 방사상으로 구축된 위성방어체계도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임진강 이남의 고구려 성곽은 별도의 방어체계라기보다는 서북한 지역의 전연방어체계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6세기 중엽 이후 고구려는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연방어체계를 구축하였다. 압록강에서 평양, 그리고 임진강에서 평양으로 이어지는 종심방어체계와 평양과 황해도 일원의 위성방어체계는 나당연합군의 고구려 평양성 함락 및 이후 전개되는 임진강 유역에서의 전투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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