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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1장 멸망 전후의 국내외 정세 변화

  • 저필자
    이동훈((주)동북아역사문화연구소 연구소장)

1장 멸망 전후의 국내외 정세 변화

7세기 초 고구려 원정 실패로 수가 멸망하고 당이 중국을 다시 통일해 나가던 시기 한반도 지역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상호 대립하고 있었다. 6세기 중반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 고구려와 백제는 직접적으로 전쟁한 적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신 한반도 중부와 동남부를 차지한 신라는 한반도 서남쪽에 위치한 백제와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였기 때문에 양면에서 적을 맞이하는 형세였다. 그러므로 이 시기 삼국의 대립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중국과 접경한 고구려는 삼국 항쟁에서 대륙 정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중국이 분열되면 서북방이 안정되어 남부 전선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통일되면 서북방의 방어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부 전선은 교착 내지는 불리한 상황에 몰리기 쉬웠다. 또한 북방 유목세계의 정세도 무시할 수 없었다. 7세기 북방 유목세계의 패자로 군림하던 돌궐 이외에도 고구려와 돌궐과 당 세력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거란, 말갈의 동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특히 당·돌궐·고구려의 세력 변화에 따라 향배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던 거란과 말갈 등은 고구려의 상시적 관심 대상이었다.
이 시기 한반도 남부는 백제와 신라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었다. 양국 간의 전쟁이 삼국 간의 전쟁 중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할 정도로 7세기 들어 양국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다(강종훈, 2004).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종국에는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만 전쟁이 종식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였다. 삼국은 외부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국제외교에도 힘을 기울였다. 당을 비롯하여 왜와 돌궐 등 주변세력과 외교관계를 맺고 도움을 얻고자 했다. 고구려는 당의 침략에 맞서 돌궐과 연계하고, 거란·말갈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백제의 세력을 이용하여 신라를 견제하는 한편 직접 공격하여 고토를 회복하려고 했다. 백제는 왜와 연계하는 한편 고구려와 협력하여 신라를 공략하려고 했다. 당과는 건국 초기부터 접근했지만 당의 신라에 대한 편향적인 태도를 확인한 후 관계를 단절하고 고구려 일변도의 정책으로 돌아섰다. 신라 역시 고구려와 백제에서 오는 압박을 극복하기 위해 내정을 개혁하고 군사전략을 정비하여 대항하는 한편, 고립무원한 형세를 탈피하기 위해서 외교에 주력했다. 그리하여 결국 당과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삼국이 합종연횡을 반복하고, 외국세력까지 끌어들이면서, 삼국 항쟁은 종국에 한반도와 만주를 넘어 동북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전쟁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수가 멸망하고 당이 들어서자 고구려는 당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645년 발생한 당의 고구려 침략은 그간의 노력을 수포로 돌렸다. 고구려는 계속되는 당의 침략에 맞서야 했고, 이것은 체제의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장기항전은 군사력 이외에도 총체적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는데, 고구려는 동북아의 강국이긴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당에 비해 열세였다. 이 시기 고구려는 대외전략 면에서 고차원적인 방정식이 필요했다. 서북방과 남방에서 오는 군사 압력에 맞설 수 있는 독자적인 군사력과 전력도 증대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적확한 외교정책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 고당전쟁 이후 적대적 태도로 일관한 당의 위협은 국가 생존이 걸린 중대 사안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다. 고구려는 당과의 대결을 위해서 세력을 확대해야 했고, 국제외교는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1절에서는 전쟁에 임하는 고구려 지배층의 군사·외교전략을 살펴보고, 교착상태에 빠진 서북방과 달리 국경의 변화가 심했던 신라와의 국경지대, 즉 고구려 남방전선의 변화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2절에서는 한반도 내에서의 국가 위기를 대당외교로 극복하려고 했던 신라의 외교와 나당군사동맹,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당이 고구려 선공에서 백제 선공으로 변경하게 된 과정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그리고 3절에서는 백제의 멸망 과정과 그 직후에 보여준 고구려의 반응,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의 연화설(連和說)에 대해 다룰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고구려 멸망 전후의 국내외 정세 변화를 설명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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