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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7장 고구려 유민의 향배와 존재방식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구려의 민은 ‘유민(遺民)’이 되었다. 멸망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고구려 유민의 대다수는 고구려의 고지에 그대로 존재하였지만 일부는 당으로 강제 사민되었고, 또 일부는 자발적 이주를 통해 다양한 지역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공간에서 삶을 개척해나갔다. 고구려 유민의 자발적 이주와 관련하여 먼저 주목되는 것은 부흥운동과 연동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검모잠(劍牟岑)과 안승(安勝)을 위시한 평양 일대의 고구려 유민이 한성으로 남하하여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이후 안승이 신라로 들어가면서 신라 영역 안에 보덕국(報德國)이 성립하였다. 보덕국은 ‘나라 안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어쨌든 왕과 고구려의 부명(部名)과 관등명(官等名)을 띤 관인들이 존재하였고 왜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형식적으로는 독립된 국가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다. 보덕국이 존재한 10년 동안 신라 정부의 입장과 신라 안의 보덕국의 성격, 보덕국 민이 된 유민의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난민의 상태로 산발적으로 입국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상황이 중앙까지 보고되는 데 시일이 걸렸을 것이고 또는 보고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유민들의 정확한 입국 시점을 기록할 수 없었고 8세기 초반까지 고구려 유민을 안치하는 내용만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왜는 유민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면 집단적으로 안치하고 필요에 따라 재배치하며 세금을 면제하였다. 지배층 출신 유민들에게는 관위와 작위, 녹을 주어 체제 안으로 포섭하였는데, 유민들은 8세기 후반까지 자신들의 출자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고구려 유민의 안치 지역을 살펴보고, 관인이 된 유민들이 조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정리하고자 한다.
고구려 멸망 직후 이적(李勣)은 보장왕(寶藏王)과 왕족, 대신 등 20여 만 명을 이끌고 당으로 돌아갔다. 강제 사민된 고구려 유민은 육로와 해로를 통해 강(江)·회(淮) 이남 및 산남(山南), 병주(并州)·양주(涼州) 이서의 여러 지역으로 이주되었는데, 하남도(河南道)와 농우도(隴右道)에 분산되어 안치된 것으로 보인다. 유민들이 강제 사민된 지역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당경(唐京)에도 고구려 유민은 존재했는데, 보장왕을 비롯한 왕족들, 천남생(泉男生) 일가와 같은 최상위 지배층 출신, 당에 협력했던 자들이 편제되었다. 이들은 대체로 당조에 출사하였고 묘지명을 남겼다. 묘지명 자료를 통해 유민들의 출사와 세대별 변화 양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사의 난을 전후로 고구려 유민들의 활동에도 큰 변화가 나타난다. 왕모중(王毛仲)은 현종의 최측근으로 활약하면서 당대 군사력의 핵심인 마정(馬政)을 장악하였는데, 관노(官奴)에서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오르면서 문자 그대로 입지전(立志傳)의 출세를 한 인물이었다. 왕사례(王思禮)는 토번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안사의 난을 수습하면서 공신(功臣)으로 이름을 남겼다. 고선지(高仙芝)도 당이 서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선봉장으로 끊임없이 원정에 나섰다. 또한 이정기(李正己)와 같이 번진(藩鎭)을 중심으로 당 중앙을 견제하며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방식과 규모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유민 후속 세대의 활약상도 확인할 수 있다.
돌궐로 들어간 고구려 유민의 동향은 고정부(高定傅), 고문간(高文簡), 고공의(高拱毅) 등을 통해 포착된다. 이들이 고구려 유민집단을 통솔하여 돌궐로 들어간 시점이나 경로를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돌궐 내부의 모순과 분열을 경험하면서 이탈하고 당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고구려 멸망 이후 50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도 일부 유민들은 이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유민들의 존재 양상을 통해 유민사를 조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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