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고구려의 영향과 동북아시아
8장 고구려의 영향과 동북아시아
700여 년간 동북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자기 세계를 구축하였던 고구려의 멸망은 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구려 멸망으로 수도였던 평양성 일대는 폐허가 되었으며, 태반의 영역은 30여 년 뒤에 건국한 발해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전쟁에 패하여 국가가 멸망한 고구려 유민(遺民)들은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유민들 가운데 일부는 고구려 영토가 신라에 병합되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연정토(淵淨土) 일파나 안승(安勝)을 들 수 있다. 또 유민들 가운데 원거주지에 살던 집단은 698년 발해가 건국되자 발해 주민이 되었다. 극히 일부 유민은 일본 열도로 이주해 가기도 하였다. 고구려 왕실을 비롯한 지배계층 유민들은 당의 장안이나 낙양 지역으로 옮겨진 집단이 있었고, 산서(山西)나 농우(隴右) 등 변경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한편 몽골 방면의 돌궐이나 유목민 사회로 간 집단도 있었다.
오랜 기간 동북아시아에서 자기 정체성을 가졌던 국가의 멸망 및 그로 인한 유민의 이동, 강제 이주로 인하여 동북아시아는 새롭게 편제되었다. 우선 고구려 고토(故土)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새로운 국가인 발해를 건국하였다. 발해는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에 관해서 살펴볼 것이며 고구려의 특징적이며 대표적인 고분벽화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인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고구려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