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고구려사의 전개와 역사적 성격
1장 고구려사의 전개와 역사적 성격
‘고구려사’는 과연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고구려’라는 국가체의 역사인가? 역사의 주체가 인간이라면 과연 고구려라는 국가체의 역사를 고구려사라고 하는 게 타당할까? 아니면 고구려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주민집단의 역사로 파악하는 것이 옳을까? 고구려인 혹은 고구려 주민이라고 할 때, 고구려인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오늘날과 같이 단순히 국적으로 귀속 여부를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인이라고 하는 정체성의 유무를 따져볼 수 있을텐데, 그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또 고구려인은 모두 자신이 고구려인이라는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었을까?
『삼국사기』 온달전에는 온달이 한강 유역을 되찾겠다고 출정하면서 “신라가 우리 한강 이북의 땅을 빼앗아 군현을 삼았으니, 백성들이 심히 한탄하여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는 적이 없습니다”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부모의 나라’라는 뜻은 곧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과연 그 시기에 귀족 등 지배층을 제외하고 일반 지방민이, 그것도 이미 신라의 군현으로 편제된 주민들이 여전히 고구려인으로서 귀속의식을 갖고 있었을까? 물론 이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온달의 발언으로 대표되듯이 6세기 후반 무렵에는 각 왕조국가마다 일반 민을 포함한 전체 사회 구성원에게 일종의 귀속의식이나 정체성을 부여하고 확대시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점은 인정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의 경우에도 출신 종족은 속말말갈(粟末靺鞨)로 추정되지만, 자료상으로 볼 때 속말말갈인이라는 정체성보다는 고구려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적어도 6세기 이후에는 지배층의 경우 고구려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음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고구려 국가의 정복활동에 의해 통합, 정복된 영역과 주민들은 고구려 국가의 통치범위에 들어갔다. 고구려인이라는 인식은 그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국가의 정복활동은 다수의 종족과 주민을 영역 내로 편제시킴으로써 고구려가 다종족사회로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다종족사회인 고구려에서 국가정체성이 어떤 형태로 구현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고구려인의 역사로서‘고구려사’라는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고구려사의 범주를 고구려 국가라는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명료해 보인다. 통상 국가를 구성하는 영토, 주민(국민), 주권이란 3요소를 고려하면, 고구려라는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와 주민으로 구성된 국가체의 범주에서 고구려사의 범주를 설정하는 것이 그나마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고구려라는 국가체의 역사라고 할 때 유의할 점은 고구려인들이 갖고 있는 정체성이다. 즉 정체성을 매개로 고구려라는 국가체와 주민의 일체화된 역사를 구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 점이 앞으로의 연구과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