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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5장 국내 문헌사료

고구려사를 이해하는 기본자료로는 고구려인에 의해 남겨진 문자자료가 1순위가 될 것이다. 고구려의 문자자료는 크게 고구려 당대의 문자자료인 금석문과 후대의 사서 편찬을 통하여 전해지는 문헌자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금석문 자료가 당대성이라는 점에서 역사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지만, 현존하는 자료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사료로 하여 고구려사를 체계적으로 구성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금석문 자료 현황에 대해서는 이 책 7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따라서 고구려인의 문자자료가 후대에 전해지고 이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후대 역사서에 기록된 자료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고구려사 연구의 주요 문헌자료로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 및 지(志)와 열전(列傳)의 일부,『삼국유사(三國遺事)』의 일부 기사, 그 외 『동명왕편(東明王篇)』에 인용된 『구삼국사(舊三國史)』 기사,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의 고구려 불교사 관련 기사, 『제왕운기(帝王韻紀)』 기사 등이 있다. 물론 각 사서들의 편찬 기술 태도 및 자료의 구성 과정에서부터 일정한 차이가 있어서 서로 대교하는 사료비판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컨대 『삼국유사』의 고구려 건국 전승 관련 기사와 『동명왕편』에서 전하는 『구삼국사』의 건국 전승은 고구려본기에 실려 있는 건국 전승의 대교 자료가 된다는 사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와 『해동고승전』의 고구려 불교 관련 기사 역시 고구려본기에 전하지 않는 사료라는 가치를 갖고 있다. 『제왕운기』에 전하는 기사 역시 관련 내용의 대교 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 저작물인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는 『삼국사기』의 본기를 기본자료로 하면서 『삼국사기』의 지와 열전, 『삼국유사』 등에서 해당 기사를 본문 및 세주(細註)로 인용하고 있다. 물론 고구려사 관련 기사의 경우 『삼국사기』 등에서 이미 확인된 기사이기 때문에 사료로서 가치를 특별히 갖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연구자료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1512년에 발간된 『삼국사기』 정덕본(正德本) 판본에는 오자가 다수 있는데, 『삼국사절요』에서 이용한 자료는 고려 아니면 조선 초 1394년(태조3)에 찍은 판본을 대본으로 이용한 것이므로, 정덕본 『삼국사기』의 교감에 주요 자료로 활용되고 있음이 유의된다. 그 외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도 고구려사 관련 서술이 약간 전하고 있지만, 사료로서의 활용 가치가 적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지 않겠다.
앞에서 언급한 각 역사서가 전하는 역사적 반영 시기 및 주제 내용 역시 매우 다르다는 점이 유의된다. 가장 기본이 되고 있는 고구려본기는 4세기까지의 상황을 국내 전승자료에 의거해 정리되고 있어, 이 시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구려 내부의 정치·사회상을 구성할 수 있는 편이다. 그런데 4세기 이후 본기의 기년 기사는 많은 부분이 중국 측 자료를 토대로 구성되어 있어 독자적인 전승자료는 드문 편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연구동향에서 고구려사 구성의 시대별 불균형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한편, 고구려사 관련 기록을 포함하고 있는 이 역사서들은 후대에 편찬된 것으로, 고구려시기의 기록과 문자자료가 전승되는 과정 및 변개의 양상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이런 면이 문헌자료에 대한 사료비판의 주요 요소가 된다. 이 글은 고구려사 연구의 기초자료가 되는 국내 문헌의 상황 및 이들 자료에 대한 사료비판의 방향, 그리고 관련 자료를 구성하는 원전 탐색과 관련된 연구현황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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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국내 문헌사료 자료번호 : gt.d_0010_00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