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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통사

7장 금석문과 문자자료

고구려시기에 『유기(留記)』와 『신집(新集)』 등의 역사서가 편찬되었지만, 이름만 전한다.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고구려 역사서는 고려 시기에 편찬한 『삼국사기』이다.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는 백제본기나 신라본기에 비해 신빙성이 높지만, 많이 윤색되었을 뿐 아니라 내용도 소략한 편이다. 특히 4세기 이후는 재이(災異)·전쟁·외교 관련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정치제도나 사회경제에 관한 기사는 거의 없다.
반면, 중국 측 사서에는 고구려의 정치·외교·사회경제에 관한 사료가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전하며, 상당수는 고구려시기에 편찬되어 동시성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외부자의 시선으로 관찰한 것이어서 구체성이 떨어지며, 화이론(華夷論)에 의해 왜곡된 부분도 적지 않다. 『일본서기』 등 일본 측 사서에도 고구려 관련 기사가 다수 있지만, 대부분 6세기 이후 외교나 정변과 관련한 단편적인 내용이다.
이런 상황이라 문헌사료만으로 고구려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이에 일찍부터 금석문과 문자자료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금석문과 문자자료는 고구려 당대인들이 직접 기술했다는 점에서 문헌사료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는 일급 사료라 할 수 있다. 특히 문헌사료에 전하지 않는 역사적 사건이나 특정 인물의 생애, 정치제도나 외교에 관한 내용이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된 경우가 많다.
다만 금석문과 문자자료도 찬자(撰者)의 생각이나 역사관에 의해 과장되거나 윤색된 경우가 있으므로 엄정한 사료비판이 필요하다. 또 광개토왕릉비와 같은 방대한 비문을 제외하면 대부분 단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 내용과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련 문헌사료나 고고자료와 다각도로 비교 검토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고구려 금석문과 문자자료의 전체 현황을 살펴본 다음, 주요 금석문의 내용과 핵심 쟁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금석문과 문자자료가 갖는 당대 기록이라는 동시성과 함께 찬자나 기록자에 의해 윤색되었을 가능성에 유의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금석문과 문자자료에 기술된 역사적 상황뿐 아니라 고구려인의 사유체계나 역사관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한편, 향후 고구려사 연구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주 001
각주 001)
이 글에서 금석문과 문자자료의 판독에 사용한 부호는 다음과 같다.〈br/〉【 】: 추독자(推讀字), ▣: 자획 잔존자, □ : 판독 불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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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금석문과 문자자료 자료번호 : gt.d_0010_003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