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고루성
瓠蘆古壘
규모
둘레: 0.529km
입지
성이 입지하고 있는 곳은 임진강이 크게 곡류함으로써 강물의 흐름이 늦어 도강이 가능한 여울목이다. 강의 본류와 그 지류인 하천 사이에 형성된 삼각형의 강안 대지상에 위치하며, 강에 연접한 두 면은 높은 현무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았고, 나머지 한 면에만 견고한 성벽을 쌓아 방어하였다.
유적개관
토지박물관에 의해 2001년, 2006년, 2009년, 2011년에 발굴조사 되었다. 이중목책이 폐기된 이후 석축성벽이 축조되었음이 밝혀졌는데, 성벽의 기단과 중심부는 토축으로 조성하였다. 성벽에서는 수직기둥홈과 홈돌 등이 확인되었다. 성 내에서는 고구려의 기와 건물지 및 지하석축 벽체건물지, 우물 등과 고려시대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고구려 이후 신라와 고려가 재활용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 연화문와당, 기와, 명문 토기, 금동불상, 동물뼈, 탄화곡물
참고문헌
「漣川 瓠蘆古壘」Ⅲ, 2007
해설
사적 제467호로 임진강 북안에 있는 연천 호로고루
는 현무암 대지 위에 구축되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강안 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호로고루가 있는 고랑포 일대의 임진강은 『삼국사기』에도 여러 차례의 전투기사가 등장할 정도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또한 위계가 높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단순한 군사적 요충지가 아닌 고구려 국경 방어사령부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호로고루에서는 토기와 기와류, 석기, 철기 등 다양한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기와이다. 고대사회에서 매우 귀한 건축자재인 기와가 이처럼 많이 출토된다는 것은 호로고루가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기와류 이외의 유물로는 남성용 소변기인 호자(虎子)를 비롯하여, ‘상고(相鼓)’라는 명문이 새겨진 고구려 악기, 가로손잡이가 달린 동이류와 접시, 시루, 저울추, 세 개의 다리가 달린 벼루도 출토되었다.
이 성은 동벽을 구축함에 있어 성벽의 기저부와 중간부분은 판축(版築)을 하고, 성벽 내외부는 석축으로 마감하였는데 체성벽 내부에서 기둥홈이 있는 내벽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목주(木柱)를 활용하여 성벽 내부의 석축을 쌓은 후 체성벽을 덧붙여 쌓았으며, 체성벽 바깥쪽에는 보축성벽을 쌓은 후 보강토를 쌓은 복잡한 공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토성과 석성의 장점을 결합한 축성 공법은 중국 집안의 국내성(國內城)과 평양의 대성산성(大城山城)
및 남한의 고구려 보루에서도 확인되는 고구려의 특징적인 축성공법이다.
호로고루에서는 토기와 기와류, 석기, 철기 등 다양한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기와이다. 고대사회에서 매우 귀한 건축자재인 기와가 이처럼 많이 출토된다는 것은 호로고루가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기와류 이외의 유물로는 남성용 소변기인 호자(虎子)를 비롯하여, ‘상고(相鼓)’라는 명문이 새겨진 고구려 악기, 가로손잡이가 달린 동이류와 접시, 시루, 저울추, 세 개의 다리가 달린 벼루도 출토되었다.
이 성은 동벽을 구축함에 있어 성벽의 기저부와 중간부분은 판축(版築)을 하고, 성벽 내외부는 석축으로 마감하였는데 체성벽 내부에서 기둥홈이 있는 내벽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목주(木柱)를 활용하여 성벽 내부의 석축을 쌓은 후 체성벽을 덧붙여 쌓았으며, 체성벽 바깥쪽에는 보축성벽을 쌓은 후 보강토를 쌓은 복잡한 공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토성과 석성의 장점을 결합한 축성 공법은 중국 집안의 국내성(國內城)과 평양의 대성산성(大城山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