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삭(改削)한 회답서한의 간지 기재 방식 논의
一. 동 20일, 등성하셨다. 이날 쇼군께서 닛코에 파견된 칙사(勅使)주 350 기쿠테이 다이나곤쿄(菊亭大納言卿)주 350를 접대하시어 후다이(譜代)주 350
각주 350)

들이 나가바카마(長袴)주 350를 입고 등성했다. 의례를 마친 뒤 개삭한 초안을 곤치인·도슌님·에이키님에게 보여 드렸더니 “간지를 기재하는 방식은 다른 행보다 1, 2글자 내려서는 안 되므로, 다른 행과 동열의 높이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머지는 문제없습니다”라고 하셨다.후다이 다이묘는 에도시대 다이묘를 출신에 의거해서 분류한 것. 원래는 여러 대에 걸쳐 주군 가문을 섬긴 가신을 지칭한다. 후다이 다이묘의 시작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정권하에서 관동(關東)지방으로 이봉되었을 때 주요한 후다이 무장(武將)에게 성지(城地)를 주어서 다이묘 격으로서 도쿠가와 가문을 지탱하는 번병(藩屛)으로 삼은 것에서 유래한다. 그 외의 가신들은 도쿠가와 가문의 직할군으로 편성되어 후에 하타모토(旗本)나 고케닌(御家人)의 원류가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최고 관직이자 막정(幕政)을 총괄하던 로주도 통상 3만 석 이상의 후다이 다이묘 중에서 보임(補任)되었다.
- 각주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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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이 다이묘는 에도시대 다이묘를 출신에 의거해서 분류한 것. 원래는 여러 대에 걸쳐 주군 가문을 섬긴 가신을 지칭한다. 후다이 다이묘의 시작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정권하에서 관동(關東)지방으로 이봉되었을 때 주요한 후다이 무장(武將)에게 성지(城地)를 주어서 다이묘 격으로서 도쿠가와 가문을 지탱하는 번병(藩屛)으로 삼은 것에서 유래한다. 그 외의 가신들은 도쿠가와 가문의 직할군으로 편성되어 후에 하타모토(旗本)나 고케닌(御家人)의 원류가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최고 관직이자 막정(幕政)을 총괄하던 로주도 통상 3만 석 이상의 후다이 다이묘 중에서 보임(補任)되었다.
- 각주 3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