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부에서 다이묘에게 지시한 제도의 조목과 파발로 로주(老中)에게 보고한 내용
一. 동 13일, 막부에서 각 다이묘들에게 지시하신 제도(制度)의 조목(條目)주 240을 받들겠다는 내용을 파발로 로주님들에게 보고하셨다.
그 조목(條目)에
一. 구니모치다이묘(國持大名)주 240 관련 업무 및 소송.
도이 오이노카미, 사누키노카미, 마쓰다이라 이즈노카미, 아베 분고노카미, 홋타 가가 노카미 5명이 한 달씩 맡음.
도이 도토미노카미,주 240 사카이 빈고노카미,주 240 미우라 시마노카미,주 240 오타 빗추노카미,주 240 아베 분고노카미주 240 5명이 한 달씩 차례로 맡음.
一. 금은의 납부는 사카이 우타노카미, 마쓰다이라 오스미노카미,주 240 마키노 다쿠미노카미,주 240 사카이 이즈미노카미,주 240 스기우라 구라노조주 240 5명이 맡음.
一. 증인 관련 업무 및 소송.
사카이 우타노카미, 마쓰다이라 기이노카미,주 240 마키노 다쿠미노카미, 마쓰다이라 오스미노카미, 사카이 이즈미노카미, 스기우라 구라노조 5명주 240이 맡음.
안도 우쿄노스케,주 240 마쓰다이라 이즈모노카미,주 240 호리 이키노카미주 240 위 3명이 한 달씩 차례로 맡음.
一. 마치카타(町方)주 240 관련 업무 및 소송인.
가가쓰메 민부쇼유,주 240 호리 시키부소유주 240가 한 달씩 차례로 맡음.
一. 관동(關東)지방 다이칸 및 백성 등에 관한 업무 및 소송인에 관한 일은 마쓰다이라 우에몬다유,주 240 이타미 하리마노카미,주 240 이나 한주로, 오코치 긴베에, 소네 겐자에몬주 240 5명이 1개월씩 2번 맡음.
一. 건축 관련 업무 및 소송에 관한 일은 사쿠마 쇼겐,주 240 사카이 이나바노카미,주 240 가미오 나이키(神尾內記)주 240 위 3명이 맡음.
一. 모든 증인에 관해서는 미즈노 가와치노카미,주 240 야규 다지마노카미,주 240 아키야마 스리노조,주 240 이노우에 지쿠고노카미주 240 4명이 맡음.
一. 소장 접수(目安裏判)주 240는 그 [담당] 관리가 맡음.
一. 후신부교(普請奉行),주 240 고부신부교(小普請奉行),주 240 미치부교(道奉行)주 240에 관해서는 마쓰다이라 이즈노카미, 아베 분고노카미, 홋타 가가노카미가 담당한다. 또한 거대 공사 및 대저 택의 토지 할당은 도이 오이노카미, 마쓰다이라 사누키노카미님과 상의한다.
一. 구니모치다이묘(國持大名) 업무 및 소송 접수일.
3일 9일 18일
마치카타(町方) 소송 접수일
9일 19일 27일
〃 같은 날, 야나가와 부젠,주 240
각주 240)

이테이안,주 240 류호인주 240의 도장과 의관 등을 조선에 반환한다고, 오이노카미님·사누키노카미님·이즈노카미님께 연서로 보고하셨다.야나가와씨의 경우 임진왜란 후 통교 재개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정부로부터 독자적인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중에는 조선으로부터 도서(圖書)를 받아 세견선을 파견할 권리를 인정받았던 수도서선 두 척의 권리가 있었다. 한 척은 시게오키의 조부 야나가와 시게노부와 부친 도시나가에게 허가된 ‘야나가와 송사(柳川送使)’이고, 또 한 척은 1605년 시게노부가 사거한 후 향화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신설한 ‘류호인 송사(流芳院送使)’이다. 이 두 척은 시게오키가 그 권리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야나가와 잇켄이 발생한 후 일단 모두 조선에 반환되었다. 그 후 소씨는 조선에 반환된 사송선의 권한을 재개시키고자 노력하여, 조선으로부터 야나가와 송사와 이테이안 송사의 파견을 다시 승인받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 두 사송선은 모두 번주 소씨가 장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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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가와씨의 경우 임진왜란 후 통교 재개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정부로부터 독자적인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중에는 조선으로부터 도서(圖書)를 받아 세견선을 파견할 권리를 인정받았던 수도서선 두 척의 권리가 있었다. 한 척은 시게오키의 조부 야나가와 시게노부와 부친 도시나가에게 허가된 ‘야나가와 송사(柳川送使)’이고, 또 한 척은 1605년 시게노부가 사거한 후 향화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신설한 ‘류호인 송사(流芳院送使)’이다. 이 두 척은 시게오키가 그 권리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야나가와 잇켄이 발생한 후 일단 모두 조선에 반환되었다. 그 후 소씨는 조선에 반환된 사송선의 권한을 재개시키고자 노력하여, 조선으로부터 야나가와 송사와 이테이안 송사의 파견을 다시 승인받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 두 사송선은 모두 번주 소씨가 장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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