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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통신사 일행이 바람이 불어서 사스나(佐須奈)에 도착했다는 보고

一. 간에이(寬永) 13 병자년(1636) 10월 6일 밤 축각(丑刻)주 020
각주 020)
오전 2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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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와니우라(鰐浦)주 020
각주 020)
쓰시마 북단의 항구. 이곳에 세키쇼(關所)를 두고 선박의 출입을 통제했다. 1672년에 오후나코시(大船越)의 해협이 개통되자 아소완(淺矛灣)을 경유하는 교역선을 관리하기 위해 사스나(佐須那)에 세키쇼를 두었다. 이후 여름에는 사스나 세키쇼에서 감찰을 하고, 와니우라 쪽은 악천후일 때나 겨울에 세키쇼의 임무를 맡았다.(『鄕土史料對馬人物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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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비선(飛船)주 020
각주 020)
쾌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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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서 전하길 “오늘 신사가 탄 배가 도해해서 사고고(佐護鄕) 사스나(佐須奈)주 020
각주 020)
쓰시마의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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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도착했고, 배는 모두 무사하다. 정사(正使)가 탄 배는 갑판이 조금 손상되었다”고 했다.
〃 평소에 [쓰시마와 조선을] 왕복하는 항구는 와니우라지만, 오늘은 바람이 나빠서 사스나에 도착했다고 한다.
一. 동 7일, 삼사를 문안하기 위해 사스나로 사자를 보내 선물을 전했다. 사자는 우치노 곤베에(內野權兵衛)가 맡았다. 또한 판사들에게는 도시요리(年寄)주 020
각주 020)
쓰시마의 가로(家老). 가로는 무가(武家)의 가신단 가운데 최고위 직책으로, 복수로 구성된다. 합의에 의해 정치·경제를 보좌하고 운영했다. 막부가 위치한 에도에는 각 번의 번저(藩邸)와 하타모토(旗本) 저택이 설치되어, 여기에 재근(在勤)하는 가로를 에도가로(江戸家老)·에도쓰메가로(江戸詰家老)라고 불렀다. 한편 지행지(知行地)에 재근하는 가로를 구니가로(國家老)·자이쇼가로(在所家老)라 불렀다. 에도시대 초기까지는 가로와 도시요리(年寄)를 분리하지 않은 번이 많았지만 점차 도시요리의 상층부가 가로로 분화되어, 도시요리라는 역직은 가로 그 자체가 아니라 가로 다음가는 역직인 경우가 일반화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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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선물을 보냈다. 사자는 후지마쓰 나니에몬(藤松何右衛門)이었다.

  • 각주 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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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0)
    쓰시마 북단의 항구. 이곳에 세키쇼(關所)를 두고 선박의 출입을 통제했다. 1672년에 오후나코시(大船越)의 해협이 개통되자 아소완(淺矛灣)을 경유하는 교역선을 관리하기 위해 사스나(佐須那)에 세키쇼를 두었다. 이후 여름에는 사스나 세키쇼에서 감찰을 하고, 와니우라 쪽은 악천후일 때나 겨울에 세키쇼의 임무를 맡았다.(『鄕土史料對馬人物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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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20)
    쓰시마의 가로(家老). 가로는 무가(武家)의 가신단 가운데 최고위 직책으로, 복수로 구성된다. 합의에 의해 정치·경제를 보좌하고 운영했다. 막부가 위치한 에도에는 각 번의 번저(藩邸)와 하타모토(旗本) 저택이 설치되어, 여기에 재근(在勤)하는 가로를 에도가로(江戸家老)·에도쓰메가로(江戸詰家老)라고 불렀다. 한편 지행지(知行地)에 재근하는 가로를 구니가로(國家老)·자이쇼가로(在所家老)라 불렀다. 에도시대 초기까지는 가로와 도시요리(年寄)를 분리하지 않은 번이 많았지만 점차 도시요리의 상층부가 가로로 분화되어, 도시요리라는 역직은 가로 그 자체가 아니라 가로 다음가는 역직인 경우가 일반화되어 갔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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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일행이 바람이 불어서 사스나(佐須奈)에 도착했다는 보고 자료번호 : kn.k_0007_005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