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하 오회분 5호묘(禹山下 五盔墳 5號墓)
출토지
집안시(集安市)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13 | 關野貞에 의해 조사·기록. | |
1950 | 1950년 8월 李浴에 의해 조사. | |
1956 | 1956년 9월 무덤문에 나무문 설치. | |
1957 | 길림성박물관 (吉林省博物館) | 1957년 4월 王承禮, 周健鵬, 曲紹伯, 蘇才에 의해 전체적인 벽화묘조사 가운데 이루어짐. |
1957 | 길림성박물관 (吉林省博物館) | 1957년 가을 曲紹伯에 의해 조사. |
1962 | 1962년 4월 무덤이 실측되고 무덤 안의 벽화가 모사. | |
1962 | 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 | 1962년 6월~8월 王承禮, 李殿福, 方起東, 韓淑華, 劉萱堂, 林至德(이상 조사) 莫東作, 鄭捷, 王紀棟(이상 촬영), 王大維, 李超雄, 曲紹伯, 劉萱堂(이상 모사)에 의해 정리·발굴을 진행하면서 봉토 보호작업 실시. 통구 5호묘라고 불림. |
1962 | 길림성박물관집안고고대 (吉林省博物館集安考古隊) | 1962년 8월~1963년 8월 王大維, 李超雄, 劉萱堂에 의해 벽화조사 및 모사. |
1963 | 1963년 6월 무덤 앞에 나무설명표지판 설치. | |
1965 | 1965년 6월 무덤 안의 벽화가 모사되고 무덤 재실측. | |
1966 | 통구고분군에 대한 조사·실측 때, 우산묘구 2105호묘(JYM2105)라고 편호. | |
1975 | 1975년 6월 재보수. | |
1976 | 1976년 5월 재보수. | |
1983 | 1983년 1월 벽화 보존을 위한 2차 화학처리 작업 시행. | |
1997 |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박물관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博物館) | 재실측. |
2004 | 2004년~2005년 孫仁杰, 遲勇에 의해 묘 주위에서 많은 암키와와 수키와 잔편들을 수습. |
구조특징
봉토석실벽화묘
오회분 5호묘는 오회분 가운데 한 기로, 5기의 무덤모양이 盔冑와 닮았다고 하여 五盔墳이라고 부름. 1966년 우산묘구 2105호묘라고 편호(JYM2105). 통구 제17호묘, 사엽총, 통구 제62호묘 등으로도 불림.
항일전쟁 중 파헤쳐짐. 오회분 5호묘는 예전에는 오회분 4호묘보다 더 크고 높았는데, 현재는 1/3만 남았다고 함.
무덤칸의 방향은 동으로 22˚기운 남향임. 외형은 절두방추형임. 묘의 네 주위에는 기단이 구축되어 있는데, 묘단석은 정연하게 가공한 화강암 석재를 사용하여 쌓음. 현재는 서측과 남측에서 볼 수 있고, 동측과 북측의 묘단석은 대부분 흙 속에 잠겨 있음. 묘실, 연도, 묘도 세부분으로 이루어짐.
묘실은 돌로 축조되었음. 묘실은 지면보다 3~4m 낮음. 다듬은 크고 가느다란 화강암석재로 축조하였고, 백회로 틈을 메웠음. 네 벽 위로 梁枋이 설치되어 있는데, 네 벽에서 10~60㎝, 높이 55㎝ 튀어 나와 있음. 梁枋 위의 천정은 말각고임구조이고, 묘실 높이는 3.94m 임. 그 1중 頂石은 뒤로 물러나서 벽면과 가지런해지고, 네 모서리에는 말각석을 설치하였는데, 올려다 보았을 때는 팔각형으로 보이고, 높이는 54㎝임. 제2중 정석은 제1중 말각석 위에서 평행고임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올려다보면 릉형이고, 높이는 66㎝ 임. 그 위로는 평평한 돌로 덮음. 천장구조는 크기가 다른 삼각석을 겹으로 쌓아 올린 2단 삼각고임으로, 1층에는 작은 삼각고임용 판석 사이에 평행고임용 판석을 끼워 넣어 평면 8각을 이루게 하였으며, 2층은 마름모꼴이 되게 함. 묘실 안에는 돌로 만든 관대 3개가 놓여져 있는데, 동서 방향으로 배열되었고, 높이는 23㎝ 임. 동·서에 위치한 두 관대는 두 벽에 바짝 붙어 있고, 석회로 틈을 발랐음. 중간에 위치한 관대는 석재 하나를 다듬어 만들었는데, 길이는 2.66m, 너비는 1.28m, 북벽과의 거리는 0.29m 임. 좌·우에 있는 동·서 두 관대와의 거리는 31㎝와 30㎝ 임. 동쪽 관대는 북벽과의 거리 35㎝, 길이 2.62m, 너비 1.27m 임. 석재가 약간 짧아서 남쪽 끝에는 작은 석재 한 개를 붙여서 보충하였음. 서쪽 관대는 북벽과의 거리 0.26m, 길이 2.67m, 너비 1.2m 임. 북쪽 끝에 작은 돌 하나를 붙여 보충함. 붙여서 보충한 석재는 얇고 작음. 그 바깥에는 비교적 두꺼운 1층 석회를 발랐음. 남벽에 있는 梁枋 아래와 연도의 동서 양벽에는 직경 5㎝, 깊이 7㎝ 정도의 작은 원형 구멍 3개가 있음. 동변의 작은 구멍은 동벽에서 1.03m 떨어져 있는 지점에 있고, 서변의 작은 구멍 2개는 각각 서벽에서 0.97m와 1.2m 떨어져 있음. 구멍이 위치한 지점으로 추측해 볼 때, 작은 구멍은 安汀挂物用으로 추정. 네 벽 제1층 천정돌의 가운데부분에는 직경 5㎝, 깊이 1.5~2㎝의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 위치는 바로 벽화에 그려진 용의 입에 해당함. 원래는 珠寶玉石류가 박혀 있었을 가능성이 있음.
연도 위에는 개정석이 있는데, 남벽 위의 梁枋부분과 동일한 거대석재로 연결. 묘실에 인접한 한 변은 정연하게 다듬었음. 높이는 1.75m 임. 다른 한 변의 면은 다듬지 않았고, 갈수록 위로 올라가 연도 입구에 이르러서는 높이는 2.86m 임. 연도에 접해 있는 묘문 안쪽 입구의 좌우 양벽과 정상부에는 약간 볼록하게 나온 문미와 문틀이 있는데, 너비는 15㎝ 임. 바닥부에는 같은 너비의 門欄이 있는데, 높이는 2㎝ 임. 연도 이남 그 바깥쪽 양측 및 윗부분에는 擋土墻을 쌓았음. 擋土墻은 동서 양쪽에서 조금씩 쌓아 올라가 꺾이면서 남쪽으로 향함. 원래는 묘도의 폭과 같았을 것으로 보임.
묘도는 이미 파괴되어 형태를 알 수 없음. 묘도의 뒤쪽 끝과 연도 입구 약 1m 지점에 위아래로 서로 눌려진 커다란 擋門石 두개가 있는데, 높이는 13.5m임. 그 안쪽 면은 정연하지 않고, 擋門石의 서쪽과 당토장 사이에는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틈이 있음.
벽화는 평평한 석재 암면 위에 직접 그림. 먼저 가는 홍색 선 혹은 검정 선으로 초고를 한 후, 홍색·갈색·녹색·황색·백색·분홍색 등의 색을 칠하고, 마지막으로 짙은 묵선으로 윤곽을 그려 마무리함. 묘실의 네벽·천정·관대, 연도 좌우 양벽에 벽화가 그려짐. 벽화에는 원래 금동장식이 연결되어 있음. 鳥獸의 눈에는 청색 옥이 많이 박혀 있음. 현재 소의 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오른쪽 눈에 청색 綠松石이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남아 있지 않음. 다만 석재의 巖面에 금동장식이 뽑혀진 흔적이 남아 있음. 네벽 网墳 상하 모서리의 작은 연꽃의 꽃술부위에는 검은 원형의 끈적한 물질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 곳에 금동의 얇은 편이 붙어 있음. 이로 볼 때, 원래는 이 곳에 금동장식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음. 이러한 둥근형태의 끈적한 물질은 梁枋과 천정에서도 볼 수 있음. 다만 분포가 규칙적이지 않고, 대부분 벽화의 빈 틈에 있음. 梁枋의 매 면에는 5~6개가 있고, 제1중 頂石의 아래 가장자리에는 각각 2개, 제2중 頂石의 아래 가장자리 매 면에는 각각 3~4개, 이 외에 頂石 아랫면과 제2중 정석 아랫부분에 모두 1~2개가 있음.
연도의 동벽과 서벽에는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 力士를 그렸는데, 연도입구를 바라보고 있음. 현재는 희미하여 명확하게 보이지 않음. 동벽의 역사는 머리를 묶었고 신발을 신었는데, 커다란 연화좌 위에 반가좌한 상태에서 활시위를 당기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음. 서벽의 역사는 극(戟: 창의 일종)을 쥐고 연화좌위에 서 있음. 연도 안쪽 입구에 튀어 나온 문미·문틀, 묘실 남벽과 이어진 묘실의 남쪽 가장자리의 숨겨서 만든 문미·문틀에는 두 방향으로 연속된 인동초 도안이 그려져 있는데, 녹색 가지와 덩굴에는 사이에 홍색, 황색, 녹색, 백색 등의 잎이 달려 있음.
묘실 네벽에는 거대한 폭의 사신도가 그려짐. 묘실 네벽 모서리는 위로 치솟는 자세의 龍面人身의 괴수와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가리를 위로 젖힌 용이 만나면서 이루는 기둥꼴의 그림으로 장식. 동벽에는 청룡이 그려져 있음. 머리는 남쪽을 향하고 있고 내려가는 자태를 취하고 있음. 용의 몸은 황색, 녹색, 홍색, 갈색으로 그렸고, 그 위에는 묵선으로 方格鱗紋을 그렸음. 목과 배부분은 분홍색을 칠했음. 팔다리부분의 색깔은 용의 몸과 같음. 뒤에는 하얀 날개가 달려 있음. 아랫부분은 묵선으로 윤곽을 그림. 각 다리에 있는 발가락 세 개는 홍색임. 벽화에 보이는 모든 39條의 용은 체형과 칠한 색깔이 대체로 같음. 서벽에는 백호가 그려져 있는데, 남쪽을 바라보고, 날려고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음. 몸은 백색이고, 그 위로 검은 선으로 긴 털을 그려 넣었음. 복부는 분홍색을 칠함. 다리 뒷부분에는 하얀 羽를 그림. 남벽은 연도가 나 있어서 동·서 양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 꼬리가 긴 주작 1마리가 있음. 두 주작은 하얀색의 復瓣연좌에 서서 서로를 향해 날개짓하고 있는데, 현재 연좌는 모호해서 판단하기 어려움. 서쪽 주작은 부리가 가늘고 뾰족함. 머리의 볏은 화염모양과 같은데, 갈색바탕에 홍색 선으로 그렸음. 긴 목은 분홍색이고, 몸은 홍색이며, 양 날개는 홍색으로 칠하고 녹색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함. 꼬리날개는 황색, 녹색, 홍색을 나누어 칠함. 동쪽 주작의 형태는 서쪽 주작과 기본적으로 같으나, 단지 백색으로 그려진 둥근 형태의 아주 긴 깃털이 밖으로 모서리를 넘어서까지 그려져 있으며, 주작의 몸에는 갈색·녹색·홍색이 펼쳐져 있고, 머리에 있는 볏은 녹색바탕에 홍색 선으로 그림. 북벽에는 현무가 그려짐. 거북이와 뱀이 뒤엉켜 있는 형태로 그려짐. 거북이 몸은 서쪽을 향하고 있고, 머리를 돌리고 위를 향하고 있으며, 아래에 있는 뱀의 머리와 서로 마주하고 있음. 거북이는 등이 홍갈색이고, 귀갑문은 없으며, 네 다리에는 모두 발가락 3개가 그려짐. 뱀의 몸색깔은 청룡과 같고, 그 위에는 역시 검은 선으로 鱗紋을 그림. 묘실 네 벽에는 사신도 외에 연화火焰网紋 도안이 가득 나타나고 있음. 网紋의 연속된 배열은 규칙적인데, 모두 수직방향으로 2조가 그려졌고, 동서 두벽은 4조가 횡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남북 두벽은 6조가 횡렬로 배치됨. 홍색·황색·검정색의 선으로 网紋을 그렸고, 그 아래 위 角点에는 분홍색의 작은 연화가 달려 있음. 오회분 4호묘와 같지 않은 점은 인물도상이 없고, 안에 그려진 한 송이 연화網紋과 한 송이 화염網紋이 서로 연속해서 규칙적으로 배열. 연화는 모두 측면에서 바라본 모양으로, 녹색·분홍색·갈색·황색으로 그렸음. 11瓣이고, 아래에는 꽃받침이 있으며, 좌우에는 각각 小柱火焰이 덧대어짐. 화염문은 모두 三柱로 그렸음. 중간의 한 柱는 비교적 크고, 홍색·녹색·황색·갈색 등의 색깔로 그렸음. 좌우 또한 小柱火焰을 덧대었는데, 다만 색깔은 각각 다름. 실 네 모서리에는 怪獸托龍頂梁이 그려졌는데, 그 형태는 기본적으로 오회분 4호묘와 같음. 동북모서리에 있는 괴수는 동벽과 북벽에 걸쳐 그려졌는데, 푸른색의 얼굴빛에 입은 크게 벌리고 있고, 입술 밖으로 이가 길게 나왔으며, 두 눈은 둥글게 크게 떴고, 하얀 색의 긴 눈썹은 뿔처럼 늘어져 있음. 위에는 홍록색 羽衣을 입었고, 흉부는 노출되어 있으며, 아래에는 회색 바지를 입었음. 왼쪽 다리는 굽어져 있고, 오른쪽 다리는 위로 올려 벌리고 있음. 뻗어 올린 팔은 각각 용 두 마리를 받쳐 들고, 서로 뒤엉키어 함께 곧바로 위쪽 끝의 梁枋을 떠받치고 있음. 그 나머지 네 모서리에 있는 용의 형상은 모두 아직 온전하나, 다만 괴수 일부는 희미하여 판단하기 어려움. 서남모서리에 있는 괴수에서는 서벽에 그려진 왼쪽 팔다리만 볼 수 있음. 동남모서리에 있는 괴수는 전혀 보이지 않음.
벽면과 천장사이의 고임받침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물고 몸을 휘감아 이루어내는 얽힌 용무늬로 장식을 넣어 한 폭의 근엄한 도안을 구성함. 梁枋의 가장자리에는, 상하 각각 릉형문 위주의 璎珞狀連續蓮花가 장식되어 있는데, 菱形은 홍색의 테두리 안에 황색·녹색·흑색·백색 등의 색깔을 채워 넣었고, 菱形의 양 끝부분에는 각각 작은 홍색의 둥근 구슬이 그려짐. 둥근 구슬의 사이에는 홍색 산호모양의 가지형 장식을 넣었음. 梁枋 아래 고임에서 뻗어 나온 네 벽 부위에는 아주 아름다운 인동화초 도안이 그려짐. 제1중 頂石 네 면에는 각각 용 한 마리가 그려져 있음. 梁枋에 발을 붙이고 있고, 배와 등은 꼭대기에 이르고 있으며, 머리는 돌려서 뒤를 보고 있음. 입은 벌리고 있는데, 바로 석벽의 작은 구멍에 맞춰져 있음. 구멍 안에는 백회를 볼 수 있는데, 원래는 珠寶玉石류가 박혀 있던 것으로 추정됨. 제1중 정석 네모서리(말각석 양끝)에는 가지와 줄기가 무성한 보리수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가지와 줄기는 갈색이고, 나뭇잎은 홍색·황색·녹색 등으로 그림. 말각석 위 도상의 빈 틈에는 雲氣紋으로 채웠음. 동남쪽에는 牛首人과 飛天이 있음. 神農으로 여겨지는 牛首人은 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하고 있고, 눈에는 터키석(綠松石)이 박혀져 있음. 옷깃이 뾰족하고 통이 큰 소매의 갈색 羽衣를 입었는데, 깃의 가장자리는 녹색이고, 허리에는 녹색의 兜巾을 매었음. 다리에는 검정색 신을 신었음. 오른손에는 벼이삭을 들고 있음. 그 뒤편에는 불의 신으로 추정되는 飛天이 있는데, 머리는 풀어 헤쳤고, 콧수염이 있음. 옷깃이 뾰족하고 통이 큰 소매의 갈색 長袍를 입었음. 깃과 소매, 옷자락은 변이 홍색임. 허리에는 백색 兜巾를 매었음. 오른손에는 횃불(火把)을 쥐고 있음. 양 무릎은 굽혀져 있고, 다리는 노출되지 않음. 동북쪽에는 사람의 몸에 용의 꼬리를 하고 있는 日月神像이 그려져 있음. 月神은 왼쪽에 위치하고 있음.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고, 머리는 산발하였음. 깃이 뾰족한 녹색 羽衣를 입었고, 허리에는 갈색 兜巾을 매었음. 두 손은 머리 위로 백색의 둥근 달을 들고 있음. 달 가운데에 있는 두꺼비는 보이지 않음. 日神은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남자의 형상을 하고 있음. 깃이 뾰족한 갈색 羽衣를 입었고 허리에는 녹색 兜巾을 매었음. 두 손은 갈색 태양을 들고 있음. 태양 중간에는 삼족오가 왼쪽을 향하여 있음. 일월신의 사이에는 보리수가 들어가 있음. 서북쪽에는 왼쪽을 향하고 있는 선인 두 명이 그려져 있음(그림7-3). 앞에 있는 선인은 용을 타고 있음. 冕服을 입었으며, 머리에는 황색 冕冠을 썼고, 앞뒤에 각각 홍색으로 감싼 流苏 4개가 있음. 깃이 홍색인 녹색 長袍를 입었는데, 袍에는 홍색의 작은 점으로 만든 品字形으로 배열한 도안무늬가 있음. 깃 안에는 백색의 내의가 드러나 있고, 허리에는 花兜巾를 매었음. 오른손은 목의 용을 잡고 있고, 왼손에는 녹색으로 된 깃털 아랫쪽에 홍색의 둥근 점이 있는 鏖尾를 잡고 있음. 뒤에 있는 선인은 飛簾을 타고 있음. 두 귀는 뾰족하게 솟아 있고, 등에는 녹색 날개 2개가 있음. 머리에는 가늘고 긴 높은 관을 썼으며, 갈색 羽袍를 입었음. 배는 약간 노출되었고, 허리에는 兜巾을 매었으며, 검정색의 큰 신을 신었음. 얼굴은 뒤를 향해 돌렸음. 왼손에는 연꽃 한송이가 있고, 오른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는데, 旌節 윗부분에는 홍색 缨 2개가 장식되어 있음. 홍색 缨 사이로 바람에 흔들리는 녹색 깃발이 있고, 旌節 꼭대기부분에는 홍색과 갈색의 幡帶가 연결되어 있음. 타고 있는 飛簾은 사슴과 같은데, 棱柱形 뿔이 있으며, 꼬리는 가늘고 길며, 몸은 홍색·황색·녹색 등의 색깔로 그렸는데, 배는 하얀색임. 서남쪽에는 바퀴를 제련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輪條는 16개임(그림7-2). 바퀴 좌우로 각각 1명이 있는데, 머리는 풀어 헤쳤음. 왼쪽에 있는 사람은 깃이 뾰족한 녹색의 긴 羽衣를 입었고, 깃은 홍색이며, 허리에는 갈색 兜巾을 매었음. 다리에는 검정색 신발을 신었음. 왼손은 바퀴를 쥐고 있고, 오른손은 망치를 들고 있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보리수 아래에 서 있음. 깃이 뾰족한 갈색의 긴 羽衣를 입었는데, 깃은 홍색임(현재는 박락되어 백색이 나타남). 제1중 말각석 아래에는 활짝 핀 연화가 있는데, 분홍색이고 八瓣임. 側方에는 잎문양이 붙어 있음. 제2중 頂石의 매 면에는 용을 타고 있는 기악천인 두 명을 그렸고, 빈틈에는 雲氣紋을 그렸음. 동남쪽 천인은 용을 타고 왼쪽을 향하면서 피리를 불고 있는데, 앞에 있는 사람은 머리를 묶고, 상반신을 노출되어 있으며, 아래는 황색 치마를 입고 있음. 팔에는 披帶를 매었음. 뒷면에 용을 타고 있는 천인은 머리를 묶었고, 갈색의 뾰족한 깃에 소매가 긴 황색 袍를 입었음. 팔에는 녹색의 披帶를 매었음. 뒷부분의 등에는 갈색의 큰 태양이 있고, 태양 중간에는 삼족오가 있음. 동북쪽에 있는 두 천인은 용을 타고,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음. 앞에 있는 천인은 퉁소를 불고 있음. 머리는 묶었고, 갈색의 뾰족한 깃에 소매가 넓은 녹색 袍를 입었으며, 팔에는 홍색 披帶를 걸었음. 뒤에 있는 천인은 긴 뿔을 불고 있음. 머리는 묶었고, 뽀족한 깃에 소매의 통이 큰 갈색의 긴 袍를 입었음. 팔에는 녹색의 扮帶를 매었음. 서북쪽 오른쪽 끝에는 회백색 바탕의 둥근 달이 있는데, 달 가운데에는 두꺼비가 있음. 두 천인은 용을 타고 왼쪽을 향하고 있음. 앞에 있는 사람은 머리에 연꽃 관을 썼음. 몸에는 뾰족한 깃에 소매의 통이 큰 갈색의 긴 袍를 입었는데, 가장자리는 황색임. 허리에는 兜巾를 매었고, 팔에는 녹색 띠를 걸치고 손에는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음. 뒤에 있는 천인은 여자의 모습이고, 완함을 쥐고 있으며, 홍색 용을 타고 있음. 천인은 머리를 묶었고, 뾰족한 깃에 소매의 통이 큰 황색의 긴 袍를 입었는데, 깃·소매·袍 가장자리는 모두 홍색임. 몸 뒤에는 바람에 날려 춤추는 듯 휘날리는 갈색 披帶가 있음. 서남모서리에 있는 두 천인은 용을 타고 왼쪽을 향하고 있음. 앞에 있는 사람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음. 머리는 묶었고, 머리는 뒤쪽으로 돌려 왼쪽 어깨를 보고 있음. 상반신은 노출되어 있음. 팔에는 녹색 披帶를 매었고, 아래에는 갈색의 긴 치마를 입었음. 손은 腰鼓를 치고 있음. 뒤에 있는 사람은 筝을 치고 있음. 머리는 묶었고, 상반신은 노출되어 있으며, 어깨에는 홍색 披帶를 매었고, 아래에는 녹색 치마를 입었음. 제2중 頂石에는 日月과 雲氣 외에 星象이 그려져 있음. 북두성좌는 북부에 있는데, 제1·2 별은 동북 頂石에 그려졌고, 나머지 5별은 서북에 그려짐. 남두성좌는 남면에 그려져 있는데, 제1·2 별은 동남 頂石에 그려졌고, 나머지 4별은 서남에 그려짐. 각 별은 원형으로, 검정색 바탕에 홍색 변을 갖추고 있고, 홍색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별자리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 제2중 頂石 아랫부분 매 모서리에는 각각 용 2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용의 몸은 서로 둥글게 뒤엉켜 있고, 용의 입은 자신의 몸을 물고 있음. 벽화중의 상서동물과 일부 짐승머리 천인의 눈은 본래 청옥과 같은 푸른 보석류로 상감하고 벽과 천장고임 곳곳에 금빛 꽃장식을 하였으나 현재는 소머리 신의 오른쪽 눈에 상감된 녹송석과 금빛꽃장식의 흔적이 남아 있음. 천정의 릉형 개정석 아래에는 청룡과 백호가 서로 감기고 얽힌 채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그렸음. 백호는 서쪽에 있고, 청룡은 동쪽에 있으며,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음. 이 외에 북부에는 크기가 다른 星象 2개가 그려져 있음. 큰 것은 북극성으로 추정됨. 천정석은 습기의 침투로 형상은 부옇게 퇴색.
관대에는 연환문이 그려져 있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고, 측면에 얼룩덜룩한 홍색만 볼 수 있음.
오회분 5호묘는 오회분 가운데 한 기로, 5기의 무덤모양이 盔冑와 닮았다고 하여 五盔墳이라고 부름. 1966년 우산묘구 2105호묘라고 편호(JYM2105). 통구 제17호묘, 사엽총, 통구 제62호묘 등으로도 불림.
항일전쟁 중 파헤쳐짐. 오회분 5호묘는 예전에는 오회분 4호묘보다 더 크고 높았는데, 현재는 1/3만 남았다고 함.
무덤칸의 방향은 동으로 22˚기운 남향임. 외형은 절두방추형임. 묘의 네 주위에는 기단이 구축되어 있는데, 묘단석은 정연하게 가공한 화강암 석재를 사용하여 쌓음. 현재는 서측과 남측에서 볼 수 있고, 동측과 북측의 묘단석은 대부분 흙 속에 잠겨 있음. 묘실, 연도, 묘도 세부분으로 이루어짐.
묘실은 돌로 축조되었음. 묘실은 지면보다 3~4m 낮음. 다듬은 크고 가느다란 화강암석재로 축조하였고, 백회로 틈을 메웠음. 네 벽 위로 梁枋이 설치되어 있는데, 네 벽에서 10~60㎝, 높이 55㎝ 튀어 나와 있음. 梁枋 위의 천정은 말각고임구조이고, 묘실 높이는 3.94m 임. 그 1중 頂石은 뒤로 물러나서 벽면과 가지런해지고, 네 모서리에는 말각석을 설치하였는데, 올려다 보았을 때는 팔각형으로 보이고, 높이는 54㎝임. 제2중 정석은 제1중 말각석 위에서 평행고임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올려다보면 릉형이고, 높이는 66㎝ 임. 그 위로는 평평한 돌로 덮음. 천장구조는 크기가 다른 삼각석을 겹으로 쌓아 올린 2단 삼각고임으로, 1층에는 작은 삼각고임용 판석 사이에 평행고임용 판석을 끼워 넣어 평면 8각을 이루게 하였으며, 2층은 마름모꼴이 되게 함. 묘실 안에는 돌로 만든 관대 3개가 놓여져 있는데, 동서 방향으로 배열되었고, 높이는 23㎝ 임. 동·서에 위치한 두 관대는 두 벽에 바짝 붙어 있고, 석회로 틈을 발랐음. 중간에 위치한 관대는 석재 하나를 다듬어 만들었는데, 길이는 2.66m, 너비는 1.28m, 북벽과의 거리는 0.29m 임. 좌·우에 있는 동·서 두 관대와의 거리는 31㎝와 30㎝ 임. 동쪽 관대는 북벽과의 거리 35㎝, 길이 2.62m, 너비 1.27m 임. 석재가 약간 짧아서 남쪽 끝에는 작은 석재 한 개를 붙여서 보충하였음. 서쪽 관대는 북벽과의 거리 0.26m, 길이 2.67m, 너비 1.2m 임. 북쪽 끝에 작은 돌 하나를 붙여 보충함. 붙여서 보충한 석재는 얇고 작음. 그 바깥에는 비교적 두꺼운 1층 석회를 발랐음. 남벽에 있는 梁枋 아래와 연도의 동서 양벽에는 직경 5㎝, 깊이 7㎝ 정도의 작은 원형 구멍 3개가 있음. 동변의 작은 구멍은 동벽에서 1.03m 떨어져 있는 지점에 있고, 서변의 작은 구멍 2개는 각각 서벽에서 0.97m와 1.2m 떨어져 있음. 구멍이 위치한 지점으로 추측해 볼 때, 작은 구멍은 安汀挂物用으로 추정. 네 벽 제1층 천정돌의 가운데부분에는 직경 5㎝, 깊이 1.5~2㎝의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 위치는 바로 벽화에 그려진 용의 입에 해당함. 원래는 珠寶玉石류가 박혀 있었을 가능성이 있음.
연도 위에는 개정석이 있는데, 남벽 위의 梁枋부분과 동일한 거대석재로 연결. 묘실에 인접한 한 변은 정연하게 다듬었음. 높이는 1.75m 임. 다른 한 변의 면은 다듬지 않았고, 갈수록 위로 올라가 연도 입구에 이르러서는 높이는 2.86m 임. 연도에 접해 있는 묘문 안쪽 입구의 좌우 양벽과 정상부에는 약간 볼록하게 나온 문미와 문틀이 있는데, 너비는 15㎝ 임. 바닥부에는 같은 너비의 門欄이 있는데, 높이는 2㎝ 임. 연도 이남 그 바깥쪽 양측 및 윗부분에는 擋土墻을 쌓았음. 擋土墻은 동서 양쪽에서 조금씩 쌓아 올라가 꺾이면서 남쪽으로 향함. 원래는 묘도의 폭과 같았을 것으로 보임.
묘도는 이미 파괴되어 형태를 알 수 없음. 묘도의 뒤쪽 끝과 연도 입구 약 1m 지점에 위아래로 서로 눌려진 커다란 擋門石 두개가 있는데, 높이는 13.5m임. 그 안쪽 면은 정연하지 않고, 擋門石의 서쪽과 당토장 사이에는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틈이 있음.
벽화는 평평한 석재 암면 위에 직접 그림. 먼저 가는 홍색 선 혹은 검정 선으로 초고를 한 후, 홍색·갈색·녹색·황색·백색·분홍색 등의 색을 칠하고, 마지막으로 짙은 묵선으로 윤곽을 그려 마무리함. 묘실의 네벽·천정·관대, 연도 좌우 양벽에 벽화가 그려짐. 벽화에는 원래 금동장식이 연결되어 있음. 鳥獸의 눈에는 청색 옥이 많이 박혀 있음. 현재 소의 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오른쪽 눈에 청색 綠松石이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남아 있지 않음. 다만 석재의 巖面에 금동장식이 뽑혀진 흔적이 남아 있음. 네벽 网墳 상하 모서리의 작은 연꽃의 꽃술부위에는 검은 원형의 끈적한 물질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 곳에 금동의 얇은 편이 붙어 있음. 이로 볼 때, 원래는 이 곳에 금동장식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음. 이러한 둥근형태의 끈적한 물질은 梁枋과 천정에서도 볼 수 있음. 다만 분포가 규칙적이지 않고, 대부분 벽화의 빈 틈에 있음. 梁枋의 매 면에는 5~6개가 있고, 제1중 頂石의 아래 가장자리에는 각각 2개, 제2중 頂石의 아래 가장자리 매 면에는 각각 3~4개, 이 외에 頂石 아랫면과 제2중 정석 아랫부분에 모두 1~2개가 있음.
연도의 동벽과 서벽에는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 力士를 그렸는데, 연도입구를 바라보고 있음. 현재는 희미하여 명확하게 보이지 않음. 동벽의 역사는 머리를 묶었고 신발을 신었는데, 커다란 연화좌 위에 반가좌한 상태에서 활시위를 당기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음. 서벽의 역사는 극(戟: 창의 일종)을 쥐고 연화좌위에 서 있음. 연도 안쪽 입구에 튀어 나온 문미·문틀, 묘실 남벽과 이어진 묘실의 남쪽 가장자리의 숨겨서 만든 문미·문틀에는 두 방향으로 연속된 인동초 도안이 그려져 있는데, 녹색 가지와 덩굴에는 사이에 홍색, 황색, 녹색, 백색 등의 잎이 달려 있음.
묘실 네벽에는 거대한 폭의 사신도가 그려짐. 묘실 네벽 모서리는 위로 치솟는 자세의 龍面人身의 괴수와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가리를 위로 젖힌 용이 만나면서 이루는 기둥꼴의 그림으로 장식. 동벽에는 청룡이 그려져 있음. 머리는 남쪽을 향하고 있고 내려가는 자태를 취하고 있음. 용의 몸은 황색, 녹색, 홍색, 갈색으로 그렸고, 그 위에는 묵선으로 方格鱗紋을 그렸음. 목과 배부분은 분홍색을 칠했음. 팔다리부분의 색깔은 용의 몸과 같음. 뒤에는 하얀 날개가 달려 있음. 아랫부분은 묵선으로 윤곽을 그림. 각 다리에 있는 발가락 세 개는 홍색임. 벽화에 보이는 모든 39條의 용은 체형과 칠한 색깔이 대체로 같음. 서벽에는 백호가 그려져 있는데, 남쪽을 바라보고, 날려고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음. 몸은 백색이고, 그 위로 검은 선으로 긴 털을 그려 넣었음. 복부는 분홍색을 칠함. 다리 뒷부분에는 하얀 羽를 그림. 남벽은 연도가 나 있어서 동·서 양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 꼬리가 긴 주작 1마리가 있음. 두 주작은 하얀색의 復瓣연좌에 서서 서로를 향해 날개짓하고 있는데, 현재 연좌는 모호해서 판단하기 어려움. 서쪽 주작은 부리가 가늘고 뾰족함. 머리의 볏은 화염모양과 같은데, 갈색바탕에 홍색 선으로 그렸음. 긴 목은 분홍색이고, 몸은 홍색이며, 양 날개는 홍색으로 칠하고 녹색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함. 꼬리날개는 황색, 녹색, 홍색을 나누어 칠함. 동쪽 주작의 형태는 서쪽 주작과 기본적으로 같으나, 단지 백색으로 그려진 둥근 형태의 아주 긴 깃털이 밖으로 모서리를 넘어서까지 그려져 있으며, 주작의 몸에는 갈색·녹색·홍색이 펼쳐져 있고, 머리에 있는 볏은 녹색바탕에 홍색 선으로 그림. 북벽에는 현무가 그려짐. 거북이와 뱀이 뒤엉켜 있는 형태로 그려짐. 거북이 몸은 서쪽을 향하고 있고, 머리를 돌리고 위를 향하고 있으며, 아래에 있는 뱀의 머리와 서로 마주하고 있음. 거북이는 등이 홍갈색이고, 귀갑문은 없으며, 네 다리에는 모두 발가락 3개가 그려짐. 뱀의 몸색깔은 청룡과 같고, 그 위에는 역시 검은 선으로 鱗紋을 그림. 묘실 네 벽에는 사신도 외에 연화火焰网紋 도안이 가득 나타나고 있음. 网紋의 연속된 배열은 규칙적인데, 모두 수직방향으로 2조가 그려졌고, 동서 두벽은 4조가 횡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남북 두벽은 6조가 횡렬로 배치됨. 홍색·황색·검정색의 선으로 网紋을 그렸고, 그 아래 위 角点에는 분홍색의 작은 연화가 달려 있음. 오회분 4호묘와 같지 않은 점은 인물도상이 없고, 안에 그려진 한 송이 연화網紋과 한 송이 화염網紋이 서로 연속해서 규칙적으로 배열. 연화는 모두 측면에서 바라본 모양으로, 녹색·분홍색·갈색·황색으로 그렸음. 11瓣이고, 아래에는 꽃받침이 있으며, 좌우에는 각각 小柱火焰이 덧대어짐. 화염문은 모두 三柱로 그렸음. 중간의 한 柱는 비교적 크고, 홍색·녹색·황색·갈색 등의 색깔로 그렸음. 좌우 또한 小柱火焰을 덧대었는데, 다만 색깔은 각각 다름. 실 네 모서리에는 怪獸托龍頂梁이 그려졌는데, 그 형태는 기본적으로 오회분 4호묘와 같음. 동북모서리에 있는 괴수는 동벽과 북벽에 걸쳐 그려졌는데, 푸른색의 얼굴빛에 입은 크게 벌리고 있고, 입술 밖으로 이가 길게 나왔으며, 두 눈은 둥글게 크게 떴고, 하얀 색의 긴 눈썹은 뿔처럼 늘어져 있음. 위에는 홍록색 羽衣을 입었고, 흉부는 노출되어 있으며, 아래에는 회색 바지를 입었음. 왼쪽 다리는 굽어져 있고, 오른쪽 다리는 위로 올려 벌리고 있음. 뻗어 올린 팔은 각각 용 두 마리를 받쳐 들고, 서로 뒤엉키어 함께 곧바로 위쪽 끝의 梁枋을 떠받치고 있음. 그 나머지 네 모서리에 있는 용의 형상은 모두 아직 온전하나, 다만 괴수 일부는 희미하여 판단하기 어려움. 서남모서리에 있는 괴수에서는 서벽에 그려진 왼쪽 팔다리만 볼 수 있음. 동남모서리에 있는 괴수는 전혀 보이지 않음.
벽면과 천장사이의 고임받침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물고 몸을 휘감아 이루어내는 얽힌 용무늬로 장식을 넣어 한 폭의 근엄한 도안을 구성함. 梁枋의 가장자리에는, 상하 각각 릉형문 위주의 璎珞狀連續蓮花가 장식되어 있는데, 菱形은 홍색의 테두리 안에 황색·녹색·흑색·백색 등의 색깔을 채워 넣었고, 菱形의 양 끝부분에는 각각 작은 홍색의 둥근 구슬이 그려짐. 둥근 구슬의 사이에는 홍색 산호모양의 가지형 장식을 넣었음. 梁枋 아래 고임에서 뻗어 나온 네 벽 부위에는 아주 아름다운 인동화초 도안이 그려짐. 제1중 頂石 네 면에는 각각 용 한 마리가 그려져 있음. 梁枋에 발을 붙이고 있고, 배와 등은 꼭대기에 이르고 있으며, 머리는 돌려서 뒤를 보고 있음. 입은 벌리고 있는데, 바로 석벽의 작은 구멍에 맞춰져 있음. 구멍 안에는 백회를 볼 수 있는데, 원래는 珠寶玉石류가 박혀 있던 것으로 추정됨. 제1중 정석 네모서리(말각석 양끝)에는 가지와 줄기가 무성한 보리수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가지와 줄기는 갈색이고, 나뭇잎은 홍색·황색·녹색 등으로 그림. 말각석 위 도상의 빈 틈에는 雲氣紋으로 채웠음. 동남쪽에는 牛首人과 飛天이 있음. 神農으로 여겨지는 牛首人은 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하고 있고, 눈에는 터키석(綠松石)이 박혀져 있음. 옷깃이 뾰족하고 통이 큰 소매의 갈색 羽衣를 입었는데, 깃의 가장자리는 녹색이고, 허리에는 녹색의 兜巾을 매었음. 다리에는 검정색 신을 신었음. 오른손에는 벼이삭을 들고 있음. 그 뒤편에는 불의 신으로 추정되는 飛天이 있는데, 머리는 풀어 헤쳤고, 콧수염이 있음. 옷깃이 뾰족하고 통이 큰 소매의 갈색 長袍를 입었음. 깃과 소매, 옷자락은 변이 홍색임. 허리에는 백색 兜巾를 매었음. 오른손에는 횃불(火把)을 쥐고 있음. 양 무릎은 굽혀져 있고, 다리는 노출되지 않음. 동북쪽에는 사람의 몸에 용의 꼬리를 하고 있는 日月神像이 그려져 있음. 月神은 왼쪽에 위치하고 있음.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고, 머리는 산발하였음. 깃이 뾰족한 녹색 羽衣를 입었고, 허리에는 갈색 兜巾을 매었음. 두 손은 머리 위로 백색의 둥근 달을 들고 있음. 달 가운데에 있는 두꺼비는 보이지 않음. 日神은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남자의 형상을 하고 있음. 깃이 뾰족한 갈색 羽衣를 입었고 허리에는 녹색 兜巾을 매었음. 두 손은 갈색 태양을 들고 있음. 태양 중간에는 삼족오가 왼쪽을 향하여 있음. 일월신의 사이에는 보리수가 들어가 있음. 서북쪽에는 왼쪽을 향하고 있는 선인 두 명이 그려져 있음(그림7-3). 앞에 있는 선인은 용을 타고 있음. 冕服을 입었으며, 머리에는 황색 冕冠을 썼고, 앞뒤에 각각 홍색으로 감싼 流苏 4개가 있음. 깃이 홍색인 녹색 長袍를 입었는데, 袍에는 홍색의 작은 점으로 만든 品字形으로 배열한 도안무늬가 있음. 깃 안에는 백색의 내의가 드러나 있고, 허리에는 花兜巾를 매었음. 오른손은 목의 용을 잡고 있고, 왼손에는 녹색으로 된 깃털 아랫쪽에 홍색의 둥근 점이 있는 鏖尾를 잡고 있음. 뒤에 있는 선인은 飛簾을 타고 있음. 두 귀는 뾰족하게 솟아 있고, 등에는 녹색 날개 2개가 있음. 머리에는 가늘고 긴 높은 관을 썼으며, 갈색 羽袍를 입었음. 배는 약간 노출되었고, 허리에는 兜巾을 매었으며, 검정색의 큰 신을 신었음. 얼굴은 뒤를 향해 돌렸음. 왼손에는 연꽃 한송이가 있고, 오른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는데, 旌節 윗부분에는 홍색 缨 2개가 장식되어 있음. 홍색 缨 사이로 바람에 흔들리는 녹색 깃발이 있고, 旌節 꼭대기부분에는 홍색과 갈색의 幡帶가 연결되어 있음. 타고 있는 飛簾은 사슴과 같은데, 棱柱形 뿔이 있으며, 꼬리는 가늘고 길며, 몸은 홍색·황색·녹색 등의 색깔로 그렸는데, 배는 하얀색임. 서남쪽에는 바퀴를 제련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輪條는 16개임(그림7-2). 바퀴 좌우로 각각 1명이 있는데, 머리는 풀어 헤쳤음. 왼쪽에 있는 사람은 깃이 뾰족한 녹색의 긴 羽衣를 입었고, 깃은 홍색이며, 허리에는 갈색 兜巾을 매었음. 다리에는 검정색 신발을 신었음. 왼손은 바퀴를 쥐고 있고, 오른손은 망치를 들고 있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보리수 아래에 서 있음. 깃이 뾰족한 갈색의 긴 羽衣를 입었는데, 깃은 홍색임(현재는 박락되어 백색이 나타남). 제1중 말각석 아래에는 활짝 핀 연화가 있는데, 분홍색이고 八瓣임. 側方에는 잎문양이 붙어 있음. 제2중 頂石의 매 면에는 용을 타고 있는 기악천인 두 명을 그렸고, 빈틈에는 雲氣紋을 그렸음. 동남쪽 천인은 용을 타고 왼쪽을 향하면서 피리를 불고 있는데, 앞에 있는 사람은 머리를 묶고, 상반신을 노출되어 있으며, 아래는 황색 치마를 입고 있음. 팔에는 披帶를 매었음. 뒷면에 용을 타고 있는 천인은 머리를 묶었고, 갈색의 뾰족한 깃에 소매가 긴 황색 袍를 입었음. 팔에는 녹색의 披帶를 매었음. 뒷부분의 등에는 갈색의 큰 태양이 있고, 태양 중간에는 삼족오가 있음. 동북쪽에 있는 두 천인은 용을 타고,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음. 앞에 있는 천인은 퉁소를 불고 있음. 머리는 묶었고, 갈색의 뾰족한 깃에 소매가 넓은 녹색 袍를 입었으며, 팔에는 홍색 披帶를 걸었음. 뒤에 있는 천인은 긴 뿔을 불고 있음. 머리는 묶었고, 뽀족한 깃에 소매의 통이 큰 갈색의 긴 袍를 입었음. 팔에는 녹색의 扮帶를 매었음. 서북쪽 오른쪽 끝에는 회백색 바탕의 둥근 달이 있는데, 달 가운데에는 두꺼비가 있음. 두 천인은 용을 타고 왼쪽을 향하고 있음. 앞에 있는 사람은 머리에 연꽃 관을 썼음. 몸에는 뾰족한 깃에 소매의 통이 큰 갈색의 긴 袍를 입었는데, 가장자리는 황색임. 허리에는 兜巾를 매었고, 팔에는 녹색 띠를 걸치고 손에는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음. 뒤에 있는 천인은 여자의 모습이고, 완함을 쥐고 있으며, 홍색 용을 타고 있음. 천인은 머리를 묶었고, 뾰족한 깃에 소매의 통이 큰 황색의 긴 袍를 입었는데, 깃·소매·袍 가장자리는 모두 홍색임. 몸 뒤에는 바람에 날려 춤추는 듯 휘날리는 갈색 披帶가 있음. 서남모서리에 있는 두 천인은 용을 타고 왼쪽을 향하고 있음. 앞에 있는 사람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음. 머리는 묶었고, 머리는 뒤쪽으로 돌려 왼쪽 어깨를 보고 있음. 상반신은 노출되어 있음. 팔에는 녹색 披帶를 매었고, 아래에는 갈색의 긴 치마를 입었음. 손은 腰鼓를 치고 있음. 뒤에 있는 사람은 筝을 치고 있음. 머리는 묶었고, 상반신은 노출되어 있으며, 어깨에는 홍색 披帶를 매었고, 아래에는 녹색 치마를 입었음. 제2중 頂石에는 日月과 雲氣 외에 星象이 그려져 있음. 북두성좌는 북부에 있는데, 제1·2 별은 동북 頂石에 그려졌고, 나머지 5별은 서북에 그려짐. 남두성좌는 남면에 그려져 있는데, 제1·2 별은 동남 頂石에 그려졌고, 나머지 4별은 서남에 그려짐. 각 별은 원형으로, 검정색 바탕에 홍색 변을 갖추고 있고, 홍색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별자리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 제2중 頂石 아랫부분 매 모서리에는 각각 용 2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용의 몸은 서로 둥글게 뒤엉켜 있고, 용의 입은 자신의 몸을 물고 있음. 벽화중의 상서동물과 일부 짐승머리 천인의 눈은 본래 청옥과 같은 푸른 보석류로 상감하고 벽과 천장고임 곳곳에 금빛 꽃장식을 하였으나 현재는 소머리 신의 오른쪽 눈에 상감된 녹송석과 금빛꽃장식의 흔적이 남아 있음. 천정의 릉형 개정석 아래에는 청룡과 백호가 서로 감기고 얽힌 채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그렸음. 백호는 서쪽에 있고, 청룡은 동쪽에 있으며,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음. 이 외에 북부에는 크기가 다른 星象 2개가 그려져 있음. 큰 것은 북극성으로 추정됨. 천정석은 습기의 침투로 형상은 부옇게 퇴색.
관대에는 연환문이 그려져 있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고, 측면에 얼룩덜룩한 홍색만 볼 수 있음.
내부규모 및 특징
1964년 보고서에서 남은 높이 3m.
1997년(2002년 보고서)에 바닥변 길이 25m, 높이 8m.
2007년 보고서에서 봉토 주변길이 130m, 높이 8m, 방향 158°.
묘실은 평면이 가지런한 횡장방형으로, 동서 길이 4.37m, 남북너비 3.56m. 묘실 네 벽은 약간 안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높이 2.18m.
묘실 남벽 정 가운데에 연도가 있는데, 방향은 158°. 길이 1.93m. 남단이 동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데, 북쪽 너비 1.62m, 남쪽 너비 1.87m.
1997년(2002년 보고서)에 바닥변 길이 25m, 높이 8m.
2007년 보고서에서 봉토 주변길이 130m, 높이 8m, 방향 158°.
묘실은 평면이 가지런한 횡장방형으로, 동서 길이 4.37m, 남북너비 3.56m. 묘실 네 벽은 약간 안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높이 2.18m.
묘실 남벽 정 가운데에 연도가 있는데, 방향은 158°. 길이 1.93m. 남단이 동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데, 북쪽 너비 1.62m, 남쪽 너비 1.87m.
역사적 의미
2004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오회분 5호묘는 구조가 웅장하고, 사용한 석재들은 매우 크고 정교하게 다듬었으며, 말각을 쌓은 것도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음. 이는 고구려석조기술수준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줌. 오회분 5호묘의 형태, 벽화내용과 기법은 기본적으로 오회분 4호묘와 같음. 다만 오회분 5호묘에 그려진 벽화기교는 오회분 4호묘보다 높음. 벽화기교방면의 이러한 차이는 화가의 기교의 차이라고 볼 수 있고, 오회묘 4호묘가 5호묘보다 축조연대가 이르다고 볼 수 있음.
고구려 후기는 대부분 봉토묘임. 하지만 봉토묘 가운데 오회분 4호묘와 5호묘 같은 거대한 봉토묘는 그 수가 많지 않음. 묘실 건축규모와 벽화·장식의 웅장하고 화려함을 볼 때, 왕족의 묘로 추정됨. 오회분은 동서로 일직선으로 배열되었고, 크기는 서로 비슷한데, 국가왕족의 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음.
길림성박물관(1964년)은 오회분 5호묘는 통구평야 고분군에서 남단에 위치. 통구지역 고구려고분의 분포는 매장시기의 선후관계와 연관시킬 수 있는데, 대체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매장하였던 것으로 추정. 그러므로 오회분 5호묘는 고구려 만기의 묘장으로 추정됨.
楊泓(1958년)은 묘실구조, 벽화의 내용과 기법으로 볼 때, 그 축조연대는 북조말년인 6세기 말엽으로 추정.
魏存成(1994년)은 고분구조가 방형의 단실로, 중원 북조 후기와 구조와 같음. 사신이 주체가 되는 등 벽화주제의 변화가 생김. 직접 돌에 벽화를 그림. 네 벽 사신 아래 그려진 인동網紋은 寧夏 高原 북위 漆棺과 연원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 6세기~7세기 초로 추정.
方起東·劉萱堂(2002년)은 집안에서 발견된 벽화묘의 연대 및 분기와 관련하여, 4기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4기로 파악. 제4기는 구조가 방형단실인데, 중원북조후기의 묘제와 같음. 묘실은 가지런하게 다듬은 대형 석조로 축조함. 묘실 꼭대기부분은 매우 간결한 큰 跨度의 말각고임식임. 묘방향은 서향임. 벽화는 백회 위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지런하게 다듬은 석벽 위에 직접 그렸음. 내용은 사신이 주체가 되어 네 벽을 차지하고, 네 모서리와 천정에는 괴수, 盤龍, 일월신, 기악신선, 일월성진 등으로 가득 채웠음. 그 가운데 그려진 인물은 대부분 높은 관을 쓰고, 큰 신발을 신었으며, 소매가 큰 옷과 넓은 띠를 갖추고 있는데, 남조대 인물의 풍조가 나타남. 이 기에 해당하는 묘장에는 사신묘, 오회분 4호묘와 5호묘가 있음. 그 축조연대는 6세기~7세기 초로 추정됨.
孫仁杰·違勇 (2007년)은 7세기 이후로 추정.
오회분 5호묘는 구조가 웅장하고, 사용한 석재들은 매우 크고 정교하게 다듬었으며, 말각을 쌓은 것도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음. 이는 고구려석조기술수준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줌. 오회분 5호묘의 형태, 벽화내용과 기법은 기본적으로 오회분 4호묘와 같음. 다만 오회분 5호묘에 그려진 벽화기교는 오회분 4호묘보다 높음. 벽화기교방면의 이러한 차이는 화가의 기교의 차이라고 볼 수 있고, 오회묘 4호묘가 5호묘보다 축조연대가 이르다고 볼 수 있음.
고구려 후기는 대부분 봉토묘임. 하지만 봉토묘 가운데 오회분 4호묘와 5호묘 같은 거대한 봉토묘는 그 수가 많지 않음. 묘실 건축규모와 벽화·장식의 웅장하고 화려함을 볼 때, 왕족의 묘로 추정됨. 오회분은 동서로 일직선으로 배열되었고, 크기는 서로 비슷한데, 국가왕족의 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음.
길림성박물관(1964년)은 오회분 5호묘는 통구평야 고분군에서 남단에 위치. 통구지역 고구려고분의 분포는 매장시기의 선후관계와 연관시킬 수 있는데, 대체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매장하였던 것으로 추정. 그러므로 오회분 5호묘는 고구려 만기의 묘장으로 추정됨.
楊泓(1958년)은 묘실구조, 벽화의 내용과 기법으로 볼 때, 그 축조연대는 북조말년인 6세기 말엽으로 추정.
魏存成(1994년)은 고분구조가 방형의 단실로, 중원 북조 후기와 구조와 같음. 사신이 주체가 되는 등 벽화주제의 변화가 생김. 직접 돌에 벽화를 그림. 네 벽 사신 아래 그려진 인동網紋은 寧夏 高原 북위 漆棺과 연원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 6세기~7세기 초로 추정.
方起東·劉萱堂(2002년)은 집안에서 발견된 벽화묘의 연대 및 분기와 관련하여, 4기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4기로 파악. 제4기는 구조가 방형단실인데, 중원북조후기의 묘제와 같음. 묘실은 가지런하게 다듬은 대형 석조로 축조함. 묘실 꼭대기부분은 매우 간결한 큰 跨度의 말각고임식임. 묘방향은 서향임. 벽화는 백회 위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지런하게 다듬은 석벽 위에 직접 그렸음. 내용은 사신이 주체가 되어 네 벽을 차지하고, 네 모서리와 천정에는 괴수, 盤龍, 일월신, 기악신선, 일월성진 등으로 가득 채웠음. 그 가운데 그려진 인물은 대부분 높은 관을 쓰고, 큰 신발을 신었으며, 소매가 큰 옷과 넓은 띠를 갖추고 있는데, 남조대 인물의 풍조가 나타남. 이 기에 해당하는 묘장에는 사신묘, 오회분 4호묘와 5호묘가 있음. 그 축조연대는 6세기~7세기 초로 추정됨.
孫仁杰·違勇 (2007년)은 7세기 이후로 추정.
자연환경
통구평원 중부에 우산하묘구 중부 남단에 위치. 집안 車站 북측에 위치한 오회분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
중심지리좌표는 동경 126° 11′902″, 북위 41° 08′247″, 묘정상 해발고도 225m 임.
서쪽으로 50m 떨어진 지점에 오회분 4호묘가 있음. 서북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지점에 우산하 2115호묘가 있음. 집안에서 果樹場에 이르는 公路가 묘남쪽에서 서~동쪽으로 지나가고 있음. 묘의 동측은 경작지임.
중심지리좌표는 동경 126° 11′902″, 북위 41° 08′247″, 묘정상 해발고도 225m 임.
서쪽으로 50m 떨어진 지점에 오회분 4호묘가 있음. 서북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지점에 우산하 2115호묘가 있음. 집안에서 果樹場에 이르는 公路가 묘남쪽에서 서~동쪽으로 지나가고 있음. 묘의 동측은 경작지임.
유물정보
瓦片 편 2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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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사, 『아! 고구려: 우리의 옛땅 그 현장 이야기』, 조선일보사출판국, 1994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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