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 운동장지점 건물지(國內城址 體育場地點)
출토지
국내성 중부의 조금 서쪽 (國內城 中部 西側)
연대
4세기 까지 소급됨
구조특징
총 5개의 층위가 확인됨. 제1층은 표토층으로 두께 0.38-0.45m임. 여러 차례 운동장을 평평하게 고르면서 형성된 퇴적층으로 회색 석탄재, 황색 모래흙,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강돌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 지질은 단단함. 이 층에서 청대의 “건륭통보”, 조선의 “상평통보” 등이 출토됨. 또 일제시기의 유리 그릇, 도자기 등 각종 현대 건축 폐기물도 있음. 제2층은 흑토층, 토질이 부드럽고 점성이 약하며 비교적 순수함. 이 층은 지표 아래 0.38-0.45m 깊이로서 두께는 0.06-0.1m임. 이 층은 모든 발굴구역에 펼쳐져 있는데, 근현대 유물 외에 소량의 깨진 홍갈색 기와편이 포함되어 있음. 기와편에는 網格文, 編織文 등 고구려시기의 암키와의 문양이 새겨져 있음. 제3층은 황갈색 점토층으로 토질이 가늘고 빽빽함. 이 층은 지표 아래 0.4-0.6m 깊이로서 두께는 0.07-0.25m임. 다량의 홍갈색 기와편과 더불어 불에 굽혀진 풀반죽 진흙덩어리가 소량 포함되어 있음. 이 층은 모든 발굴구역에 분포해 있으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점차 두꺼워짐. 이 층 아래에서 4기의 지상식 건물터를 발굴함. 제4층은 옅은 갈색 토층이고 토질은 비교적 푸석푸석함, 일부 모래뻘이 있음. 이 층은지표 아래 0.5-0.6m 깊이로서 두께는 0.15-0.48m임. 이 층은 전 발굴 구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점차 두꺼워짐. 제4층 아래에서 재구덩이 7기를 정리했으며 모두 제5층을 파괴했음. 제5층은 갈색 토층이며 토질 구조가 푸석푸석함. 가는 모래흙과 강돌을 소량 포함하고 있음. 이 층은 지표 아래 0.68-0.88m 깊이로서 두께는 0.2-0.5m임. 이 층은 발굴 구역 내에 고르게 분포하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얇아짐. 제5층 아래는 강돌 원퇴적층으로 이 층의 두께는 2m 이상임. 일부구역에는 비교적 순수한 모래뻘층이 분포하고 있음. 발굴상황을 정리해보면 제1-2층은 근현대 퇴적층이고 제3-5층은 고구려시기의 퇴적층임. 제2-3층에서 출토된 홍색 기와편은 인위적으로 깨뜨린 것으로 보임. 노출된 유적은 거의 대부분 상당 정도 파괴된 상황임. 그 외 발굴구역 북쪽의 현대 건축물도 유적의 전면노출에 영향을 미침. 발굴구역 동북부에서 4기의 건물지를 발굴함.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유적의 번호를2003JGTYC F1-F4로 매김. 4기 유적은 모두 지상 건축물로서 제3층 아래의 제4층 퇴적층에 위치해 있으며, 유적의 일부 구역이 제4층 퇴적층을 파괴시켰음. 운동장 지점의 지층과 유적의 층위 관계는 다음과 같음. 2003JGTYC F1(이하 F1 칭함)은 운동장 발굴구역의 동부에 위치함. 많이 파괴되어 유적의 범위를 확정지을 수 없음. 정리한 유적 현상은 다음과 같음. 형태는 남북방향이 길고, 동서방향이 짧은 장방형의 지상 건축물임. 동서 양측의 윤곽은 식별할 수 있으나, 남북 양단은 확정하기 힘든 상태임.
2003JGTYC F2(이하 F2로 약칭함)의 위치는 T32, T36-T38, T42 확장, T42-T45, T46 확장, T46-T48, T49 확장, T49-T50, T52 등 17개 트렌치와 확장 트렌치에 걸쳐 있음. 외형은 방형이며, 안팎 2중의 벽체 발굴. 전체 윤곽은 ‘回’자형 구조임. 바깥 벽체의 기초는 제4층 퇴적층 위에 큰 강돌을 사용해 쌓았고, 작은 강돌로 빈틈을 채워 넣음. 벽체의 네 테두리는 조금씩 파괴되었는데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틈이 있음. 그 중에서 남북 양벽의 파손 정도가 가장 심함. 북벽은 벽체 윤곽이 흐릿하게 보임. 남벽 동단의 벽체 남아 있지 않음. 잔존 상황으로 판단해 볼 때 바깥 벽체는 대략 방형으로 남북 길이 약 14m, 동서 폭 약 13.5m로서 면적은 약 189㎡임. 바깥 벽체의 잔고는 약 0.15m, 폭은 약 1.2m임. 남북방향 안팎 벽체 간격과 동서방향 안팎 벽체의 간격은 차이가 남. 동서방향 내외벽의 간격은 약 0.5-0.6m. 남북방향 내외벽의 간격은 약 1.1m. 내외 벽체 사이에서 평평하게 깐 장방형 벽돌 몇 개가 우연히 발견됨. 남아있는 것이 아주 적어서 두 벽 사이에 전체적으로 벽돌을 다 깔았는지 여부는 판단하기는 어려움. 안쪽 벽체의 윤곽도 대략 방형으로, 남북 길이 약 10m, 동서 길이 약 10.2m임. 안쪽 벽체는 크기가 비슷한 강돌로 축조하였는데, 하단의 기초가 제4층의 퇴적층을 파괴함. 먼저 제4층 퇴적층 아래로 깊이 약 0.15m의 고랑을 파고, 벽체를 쌓아 올렸는데, 그 중 북벽의 작은 강돌 위에는 큰 강돌을 덮었음. 안쪽 벽체의 잔존 높이는 약 0.15-0.2m임, 폭은 동서 벽이 남북벽보다 약간 넓은데, 동서 벽의 폭 약 1.3m 남북 벽의 폭 약1.1m. 안쪽 벽체의 북벽은 운동장 관람석 때문에 많이 파괴되었음. 서벽도 서남 모퉁이에서 3.6m 떨어진 벽체 외측과 6.5m 떨어진 벽체 내측이 후대의 교란구덩이에 의해 파괴됨. 동남 모퉁이의 내외 양측도 후대의 교란구덩이에 의해 파괴됨. 다른 부분은 잘 보존되어 있음. 안쪽 벽체 내부는 동서 길이 약 7.6m, 남북 길이 약 7.5m, 면적 약 57㎡임. 실내 지표 위에 흙을 깐 흔적은 보이지 않음. 북벽과 동벽 북부 부근에서 벽체를 따라 제4층 퇴적층 위쪽에 강돌을 ‘ㄱ’자형으로 깐 흔적을 발굴함. 강돌은 잘 엄선된 것으로 대부분 방형이며 표면이 모두 평평함. 이 강돌 포석층의 앞뒤 兩端은 모두 파괴되었고, 잔존 부분 역시 여러 곳에 결락이 있음. 잔존 상황으로 보아 포석층은 북벽 안측을 가로질러 동벽 안측의 남북방향을 따라 분포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남단은 확정할 수 없음. 포석층의 동서방향 잔존길이는 약 6.6m, 남북방향 잔존길이는 약 2.5m, 폭 약 1.1m. 강돌 포석층 동측의 파손된 곳의 남부에는 제4층 퇴적층 위에 불에 굽혀진 홍색 土面이 2곳 뚜렷하게 보임. 하나는 장방형, 다른 하나는 원형에 가까움. 그 밖에 실내 地面에 장방형 벽돌과 그 조각이 산견됨. 바깥 벽체의 동남 모퉁이 남측에서 벽돌로 쌓은 남북방향의 배수로를 발굴함. 이 배수시설의 바닥 부분에 2길로 갈라진 세로방향으로 깐 푸른색 벽돌이 조금 남아 있음. 그 동서 양측에 잔 벽돌로 쌓아올린 배수구 벽이 있으며, 덮개는 보이지 않음. 배수구 폭 약 0.15m, 잔존길이 약 0.65m. 건물지의 방향은 동으로 15도 기울어졌음. 문지나 부뚜막 등은 발견하지 못함.
2003JGTYC F3(이하 F3로 약칭)의 위치는 F3 유적은 T49-T50, T52 확장, T52-T54, T55 확장, T55-T56, T57 확장, T57 등 11개 트렌치 및 확대 발굴 면적에 걸쳐 있음. 건물지 북변 부분은 현대 건축물(집안시 제1유치원 남쪽 교사동 뒤쪽의 시멘트 地面) 아래에 깔려있어 발굴이 불가능함. 발굴 정리한 유적현상으로 추측해 볼 때, 건물지의 전체 형태는 장방형 혹은 방형. F2와 마찬가지로 내외 2중 벽체의 ‘回’자형 구조임. 바깥 벽체는 비교적 손상이 심해 일부 단층 강돌 기초만 남아 있어 벽체의 폭을 확인할 수 없음. 제4층 퇴적층 위에 위치. 벽체 기초는 주로 큰 강돌을 쌓아 만들었고 일부 작은 강돌로 보충했음. 그 중, 동벽 북단은 작은 강돌을 사용한 흔적이 뚜렷함. 남벽이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큰 자갈돌을 쌓아 만든 벽체를 발굴했음. 석괴의 외단은 비교적 가지런히 깔아 동서방향으로 열을 이루고 있는데, 남벽 기초의 테두리를 쌓은 돌임. 동서 양벽에 잔존한 강돌의 기초로 대체적인 방향을 판단할 수 있음. 바깥 벽체의 동남 모퉁이의 강돌 포석층 위에 커다란 석괴가 있는데 초석으로 추정됨. 서남 모퉁이의 남측에서도 길이 약 0.9m, 폭 약 0.6m의 장방형 석괴를 발굴함. 북벽 부분은 현대 건축물로 인해 발굴하지 못함. 남벽의 잔존길이 약 10.3m, 동벽의 잔존길이 약 10.5m, 서벽의 잔존길이 약 8.6m. 바깥 벽체가 많이 파괴되어 완전한 벽체를 확인할 수 없었음. 그로 인해 내외 벽체의 간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움. 내외 벽체 사이의 공백지대는 제4층 퇴적층임. 안쪽 벽체는 대략 방향이며 남북 길이 약 8.5.m, 동서 너비 약 8m임. 북벽과 동벽의 폭이 남벽과 서벽보다 현저히 넓음. 북벽과 동벽의 폭은 약 2.1-2.5m, 남벽과 서벽의 폭은 약 1m. 내벽의 건축 방식은 F2 내벽의 건축방식과 비슷함. 또 먼저 제4층 퇴적층에 깊이 0.25m 정도의 고랑을 파고, 자갈을 채워 넣은 다음 크기가 다른 큰 강돌로 벽체를 축조함. 서남 모퉁이에 자갈 기초위에 큰 강돌로 쌓아 올린 벽체가 남아 있고, 상하층 벽체 사이에 채워넣은 흙이 한 층 남아 있음. 서벽 남단에도 큰 강돌로 쌓아올린 벽체가 있는데, 쌓아올린 방식은 一縱一橫으로 석괴를 놓았고, 외측에는 세로방향, 내측에는 가로방향으로 강돌을 놓았음. F3의 실내에 몇 기의 현대식 건축물이 존재함. 그 밖에 기타 유적은 보이지 않고,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놓은 곳은 보이지 않음. 모두 제4층의 퇴적층임.
F3의 서측 3m 거리에 F3의 서벽과 평행한 남북 방향의 벽체 기초가 남아 있음. 벽체 기초는 제4층 퇴적층 깊이 0.35m의 고랑을 파고 크기가 다른 강돌을 사용해 쌓았는데, 벽체 잔존길이는 약 10m로서 보존이 비교적 양호한 구간의 벽체 폭은 약 1.5m나 됨.
2003JGTYC F4(이하 F4로 약칭)는 T59-T61, T62 확장, T62-T64, T65 확장, T65-T66 등 10개의 트렌치와 확대 발굴 면적에 걸쳐있음. 심하게 파괴되었는데, 전체적으로 F2, F3와 구조가 같음. 내외 2중 벽체를 갖춘 ‘回’자형 구조임. 바깥 벽체의 기초는 제4층 퇴적층 위에 위치해 있고, 일부 구역의 기초가 제4층 퇴적층을 파괴함. 그 중 동벽 기초는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주로 작은 강돌을 사용해 쌓았으며 남북 양단의 강돌은 비교적 큼. 동벽 남단 모퉁이 부근의 벽체 기초 모양은 비교적 가지런함. 이 구간 북쪽의 벽체는 많이 파괴되어 있음. 동벽의 전체 길이는 약 13.6m, 남은 폭은 약 0.75m. 동북 모퉁이에서 길이 약 2.2m의 북벽 기초를 정리했는데, 축조방식은 동벽과 비슷함. 서북부는 근대 집터에 의해 파괴되었고, 서남부도 현대의 하수구에 의해 교란되었음. 남벽의 기초는 근현대 하수구에 의해 파괴되었고 겨우 東半部만 보존되어 있음. 동남 모퉁이 부근의 남벽 구간에 트인 곳이 있으며 보존된 남벽 일부 구간에 강돌로 3층을 쌓은 흔적이 있음. F4를 파괴한 근현대 건물지와 하수구 사이에서 길이 약 1.2m의 서벽 기초를 확인함. 이를 통해 바깥 벽체의 길이가 약 12.25m임을 확인할 수 있었음. 내벽읙 경우 동벽의 기초가 잘 남아 있음. 남벽은 그 東半部의 기초가 남아 있는데, 가장자리의 돌은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있음. 서벽은 일부 기초가 남아 있음. 북벽 구역은 현대 건축물에 의해 덮여져 있어 발굴하지 못함. 남벽과 서벽의 경우, 제4층 퇴적층에 깊이 0.25m 또는 0.3m 정도의 고랑을 파고 벽체의 기초를 조성함. 다만 지세가 낮은 곳에 위치한 동벽은 고랑을 파지 않고 기초를 조성함. 벽체의 기초에 사용된 강돌은 비교적 큼. 동벽의 길이는 약 10.4m. 남벽과 북벽의 추정 길이는 약 7.5m임.
내외 벽체 사이는 제4층 퇴적층임. 실내 : 내벽 안쪽의 실내에는 뚜렷한 유적이 보이지 않음. 그 퇴적물도제4층의 퇴적물임. 동벽의 중부 구역 부근에 불에 구워진 타원형의 홍색 燒土面 한 덩어리가 있음. 다만 결절면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음.
2003JGTYC F2(이하 F2로 약칭함)의 위치는 T32, T36-T38, T42 확장, T42-T45, T46 확장, T46-T48, T49 확장, T49-T50, T52 등 17개 트렌치와 확장 트렌치에 걸쳐 있음. 외형은 방형이며, 안팎 2중의 벽체 발굴. 전체 윤곽은 ‘回’자형 구조임. 바깥 벽체의 기초는 제4층 퇴적층 위에 큰 강돌을 사용해 쌓았고, 작은 강돌로 빈틈을 채워 넣음. 벽체의 네 테두리는 조금씩 파괴되었는데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틈이 있음. 그 중에서 남북 양벽의 파손 정도가 가장 심함. 북벽은 벽체 윤곽이 흐릿하게 보임. 남벽 동단의 벽체 남아 있지 않음. 잔존 상황으로 판단해 볼 때 바깥 벽체는 대략 방형으로 남북 길이 약 14m, 동서 폭 약 13.5m로서 면적은 약 189㎡임. 바깥 벽체의 잔고는 약 0.15m, 폭은 약 1.2m임. 남북방향 안팎 벽체 간격과 동서방향 안팎 벽체의 간격은 차이가 남. 동서방향 내외벽의 간격은 약 0.5-0.6m. 남북방향 내외벽의 간격은 약 1.1m. 내외 벽체 사이에서 평평하게 깐 장방형 벽돌 몇 개가 우연히 발견됨. 남아있는 것이 아주 적어서 두 벽 사이에 전체적으로 벽돌을 다 깔았는지 여부는 판단하기는 어려움. 안쪽 벽체의 윤곽도 대략 방형으로, 남북 길이 약 10m, 동서 길이 약 10.2m임. 안쪽 벽체는 크기가 비슷한 강돌로 축조하였는데, 하단의 기초가 제4층의 퇴적층을 파괴함. 먼저 제4층 퇴적층 아래로 깊이 약 0.15m의 고랑을 파고, 벽체를 쌓아 올렸는데, 그 중 북벽의 작은 강돌 위에는 큰 강돌을 덮었음. 안쪽 벽체의 잔존 높이는 약 0.15-0.2m임, 폭은 동서 벽이 남북벽보다 약간 넓은데, 동서 벽의 폭 약 1.3m 남북 벽의 폭 약1.1m. 안쪽 벽체의 북벽은 운동장 관람석 때문에 많이 파괴되었음. 서벽도 서남 모퉁이에서 3.6m 떨어진 벽체 외측과 6.5m 떨어진 벽체 내측이 후대의 교란구덩이에 의해 파괴됨. 동남 모퉁이의 내외 양측도 후대의 교란구덩이에 의해 파괴됨. 다른 부분은 잘 보존되어 있음. 안쪽 벽체 내부는 동서 길이 약 7.6m, 남북 길이 약 7.5m, 면적 약 57㎡임. 실내 지표 위에 흙을 깐 흔적은 보이지 않음. 북벽과 동벽 북부 부근에서 벽체를 따라 제4층 퇴적층 위쪽에 강돌을 ‘ㄱ’자형으로 깐 흔적을 발굴함. 강돌은 잘 엄선된 것으로 대부분 방형이며 표면이 모두 평평함. 이 강돌 포석층의 앞뒤 兩端은 모두 파괴되었고, 잔존 부분 역시 여러 곳에 결락이 있음. 잔존 상황으로 보아 포석층은 북벽 안측을 가로질러 동벽 안측의 남북방향을 따라 분포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남단은 확정할 수 없음. 포석층의 동서방향 잔존길이는 약 6.6m, 남북방향 잔존길이는 약 2.5m, 폭 약 1.1m. 강돌 포석층 동측의 파손된 곳의 남부에는 제4층 퇴적층 위에 불에 굽혀진 홍색 土面이 2곳 뚜렷하게 보임. 하나는 장방형, 다른 하나는 원형에 가까움. 그 밖에 실내 地面에 장방형 벽돌과 그 조각이 산견됨. 바깥 벽체의 동남 모퉁이 남측에서 벽돌로 쌓은 남북방향의 배수로를 발굴함. 이 배수시설의 바닥 부분에 2길로 갈라진 세로방향으로 깐 푸른색 벽돌이 조금 남아 있음. 그 동서 양측에 잔 벽돌로 쌓아올린 배수구 벽이 있으며, 덮개는 보이지 않음. 배수구 폭 약 0.15m, 잔존길이 약 0.65m. 건물지의 방향은 동으로 15도 기울어졌음. 문지나 부뚜막 등은 발견하지 못함.
2003JGTYC F3(이하 F3로 약칭)의 위치는 F3 유적은 T49-T50, T52 확장, T52-T54, T55 확장, T55-T56, T57 확장, T57 등 11개 트렌치 및 확대 발굴 면적에 걸쳐 있음. 건물지 북변 부분은 현대 건축물(집안시 제1유치원 남쪽 교사동 뒤쪽의 시멘트 地面) 아래에 깔려있어 발굴이 불가능함. 발굴 정리한 유적현상으로 추측해 볼 때, 건물지의 전체 형태는 장방형 혹은 방형. F2와 마찬가지로 내외 2중 벽체의 ‘回’자형 구조임. 바깥 벽체는 비교적 손상이 심해 일부 단층 강돌 기초만 남아 있어 벽체의 폭을 확인할 수 없음. 제4층 퇴적층 위에 위치. 벽체 기초는 주로 큰 강돌을 쌓아 만들었고 일부 작은 강돌로 보충했음. 그 중, 동벽 북단은 작은 강돌을 사용한 흔적이 뚜렷함. 남벽이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큰 자갈돌을 쌓아 만든 벽체를 발굴했음. 석괴의 외단은 비교적 가지런히 깔아 동서방향으로 열을 이루고 있는데, 남벽 기초의 테두리를 쌓은 돌임. 동서 양벽에 잔존한 강돌의 기초로 대체적인 방향을 판단할 수 있음. 바깥 벽체의 동남 모퉁이의 강돌 포석층 위에 커다란 석괴가 있는데 초석으로 추정됨. 서남 모퉁이의 남측에서도 길이 약 0.9m, 폭 약 0.6m의 장방형 석괴를 발굴함. 북벽 부분은 현대 건축물로 인해 발굴하지 못함. 남벽의 잔존길이 약 10.3m, 동벽의 잔존길이 약 10.5m, 서벽의 잔존길이 약 8.6m. 바깥 벽체가 많이 파괴되어 완전한 벽체를 확인할 수 없었음. 그로 인해 내외 벽체의 간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움. 내외 벽체 사이의 공백지대는 제4층 퇴적층임. 안쪽 벽체는 대략 방향이며 남북 길이 약 8.5.m, 동서 너비 약 8m임. 북벽과 동벽의 폭이 남벽과 서벽보다 현저히 넓음. 북벽과 동벽의 폭은 약 2.1-2.5m, 남벽과 서벽의 폭은 약 1m. 내벽의 건축 방식은 F2 내벽의 건축방식과 비슷함. 또 먼저 제4층 퇴적층에 깊이 0.25m 정도의 고랑을 파고, 자갈을 채워 넣은 다음 크기가 다른 큰 강돌로 벽체를 축조함. 서남 모퉁이에 자갈 기초위에 큰 강돌로 쌓아 올린 벽체가 남아 있고, 상하층 벽체 사이에 채워넣은 흙이 한 층 남아 있음. 서벽 남단에도 큰 강돌로 쌓아올린 벽체가 있는데, 쌓아올린 방식은 一縱一橫으로 석괴를 놓았고, 외측에는 세로방향, 내측에는 가로방향으로 강돌을 놓았음. F3의 실내에 몇 기의 현대식 건축물이 존재함. 그 밖에 기타 유적은 보이지 않고,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놓은 곳은 보이지 않음. 모두 제4층의 퇴적층임.
F3의 서측 3m 거리에 F3의 서벽과 평행한 남북 방향의 벽체 기초가 남아 있음. 벽체 기초는 제4층 퇴적층 깊이 0.35m의 고랑을 파고 크기가 다른 강돌을 사용해 쌓았는데, 벽체 잔존길이는 약 10m로서 보존이 비교적 양호한 구간의 벽체 폭은 약 1.5m나 됨.
2003JGTYC F4(이하 F4로 약칭)는 T59-T61, T62 확장, T62-T64, T65 확장, T65-T66 등 10개의 트렌치와 확대 발굴 면적에 걸쳐있음. 심하게 파괴되었는데, 전체적으로 F2, F3와 구조가 같음. 내외 2중 벽체를 갖춘 ‘回’자형 구조임. 바깥 벽체의 기초는 제4층 퇴적층 위에 위치해 있고, 일부 구역의 기초가 제4층 퇴적층을 파괴함. 그 중 동벽 기초는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주로 작은 강돌을 사용해 쌓았으며 남북 양단의 강돌은 비교적 큼. 동벽 남단 모퉁이 부근의 벽체 기초 모양은 비교적 가지런함. 이 구간 북쪽의 벽체는 많이 파괴되어 있음. 동벽의 전체 길이는 약 13.6m, 남은 폭은 약 0.75m. 동북 모퉁이에서 길이 약 2.2m의 북벽 기초를 정리했는데, 축조방식은 동벽과 비슷함. 서북부는 근대 집터에 의해 파괴되었고, 서남부도 현대의 하수구에 의해 교란되었음. 남벽의 기초는 근현대 하수구에 의해 파괴되었고 겨우 東半部만 보존되어 있음. 동남 모퉁이 부근의 남벽 구간에 트인 곳이 있으며 보존된 남벽 일부 구간에 강돌로 3층을 쌓은 흔적이 있음. F4를 파괴한 근현대 건물지와 하수구 사이에서 길이 약 1.2m의 서벽 기초를 확인함. 이를 통해 바깥 벽체의 길이가 약 12.25m임을 확인할 수 있었음. 내벽읙 경우 동벽의 기초가 잘 남아 있음. 남벽은 그 東半部의 기초가 남아 있는데, 가장자리의 돌은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있음. 서벽은 일부 기초가 남아 있음. 북벽 구역은 현대 건축물에 의해 덮여져 있어 발굴하지 못함. 남벽과 서벽의 경우, 제4층 퇴적층에 깊이 0.25m 또는 0.3m 정도의 고랑을 파고 벽체의 기초를 조성함. 다만 지세가 낮은 곳에 위치한 동벽은 고랑을 파지 않고 기초를 조성함. 벽체의 기초에 사용된 강돌은 비교적 큼. 동벽의 길이는 약 10.4m. 남벽과 북벽의 추정 길이는 약 7.5m임.
내외 벽체 사이는 제4층 퇴적층임. 실내 : 내벽 안쪽의 실내에는 뚜렷한 유적이 보이지 않음. 그 퇴적물도제4층의 퇴적물임. 동벽의 중부 구역 부근에 불에 구워진 타원형의 홍색 燒土面 한 덩어리가 있음. 다만 결절면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음.
역사적 의미
국내성지의 중앙으로서 오래 전부터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음. 2003년도에 발굴한 지층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제5층의 퇴적층에서 4세기의 권운문와당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유적층의 상한을 서기 4세기로 설정할 수 밖에 없음. 제4층 아래에 위치한 7기의 재구덩이는 청자와 시유도기 등을 의도적으로 고온에 태운 다음 깨뜨려서 매납한 것으로 보아 어떠한 의례행위 특히 제사의례와 관련하여 조성된 유구일 가능성이 높음. 제3층 아래에 위치한 건물지 4기는 전체적인 외형이나 방향 등이 모두 동일하므로 동일한 시기에 조성된 건물군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이 지역은 국내성지 내에 현존하는 가장 큰 공터임. 현재는 고구려역사유적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음.
유물정보
다양한 토기와, 자기, 기와가 출토됨.
참고문헌
· 董峰, 「國內城中新發現的遺蹟和遺物」『高句麗硏究文集』, 延邊大學出版社, 1993
· 宋玉彬·集安市博物館, 『國內城: 2000-2003年集安國內城與民主遺址試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
· 宋玉彬·集安市博物館, 『國內城: 2000-2003年集安國內城與民主遺址試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