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 사구협건물지점(國內城址 社區協公樓地點)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吉林省 集安市)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2008 |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집안시문물국이 조직한 고고팀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文物局聯合考古隊) | 10월 29일부터 11월 19일까지 진행함. 집안시 사구협 건물을 건설하기 위해 고구려 거주지에 대하여 발굴을 진행하였음. 발굴 계획면적은 100㎡였으나, 유구 상황에 따라 140㎡로 확장함. 집터 2기, 독 구덩이 1개, 재구덩이 1곳 등을 발굴하였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文物局 2009 「2008年集安市國內城社區協公樓地點高句麗居住址的發掘」『北方文物』2009-3(執筆:解峰, 王鵬勇, 于麗群) 을 발표함. |
구조특징
평지성 내 거주지임.
발굴 구역 내 지층은 3층으로 나눌 수있으며 T1 동벽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음.
제1층은 제1a층과 제1b층으로 나뉨. 제1a층은 현대의 흙 다짐층으로 두께는 0.15-0.3m임. 제1b층은 건축폐기물이 포함된 현대 퇴적층으로 지표에서 깊이는 0.35-0.6m이고, 두께는 0.2-0.3m임.
제2층은 회흑색 토층으로 토질은 푸석푸석함. 강자갈이 소량 섞여 있으며, 니질 황갈색 및 회색 토기편이 소량 포함되어 있음. 청대 유물도 있음. 지표에서 깊이는 0.45-0.8m임. 두께는 0.1-0.15m임.
제3층은 棕褐色 토층으로 토질이 푸석푸석함. 강자갈이 대량 섞여 있으며, 니질 황갈색 및 회색 토기편이 소량 포함되어 있음. 지표에서 깊이는 0.9-1.2m이고, 두께는 0.2-0.35m임. 고구려 문화층임. 제3층 아래는 생토층임.
유구로 집터 2기, 독 구덩이, 재 구덩이가 발견되었음.
출토유물로 토기, 동기, 철기, 기와, 전돌 등이 있음.
토기는 모두 16건으로 호(罐), 바리(鉢), 시루(甑), 옹(甕), 동이(盆) 등이 있음. 1건만 복원 가능함. 다수는 잔편임. 주로 구연부와 바닥 및 손잡이 부분임. 주로 니질의 회색 토기와 니질의 황갈색 토기임. 또 소량의모래가 섞인 홍갈색 토기도 있음.
발굴 구역 내 지층은 3층으로 나눌 수있으며 T1 동벽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음.
제1층은 제1a층과 제1b층으로 나뉨. 제1a층은 현대의 흙 다짐층으로 두께는 0.15-0.3m임. 제1b층은 건축폐기물이 포함된 현대 퇴적층으로 지표에서 깊이는 0.35-0.6m이고, 두께는 0.2-0.3m임.
제2층은 회흑색 토층으로 토질은 푸석푸석함. 강자갈이 소량 섞여 있으며, 니질 황갈색 및 회색 토기편이 소량 포함되어 있음. 청대 유물도 있음. 지표에서 깊이는 0.45-0.8m임. 두께는 0.1-0.15m임.
제3층은 棕褐色 토층으로 토질이 푸석푸석함. 강자갈이 대량 섞여 있으며, 니질 황갈색 및 회색 토기편이 소량 포함되어 있음. 지표에서 깊이는 0.9-1.2m이고, 두께는 0.2-0.35m임. 고구려 문화층임. 제3층 아래는 생토층임.
유구로 집터 2기, 독 구덩이, 재 구덩이가 발견되었음.
출토유물로 토기, 동기, 철기, 기와, 전돌 등이 있음.
토기는 모두 16건으로 호(罐), 바리(鉢), 시루(甑), 옹(甕), 동이(盆) 등이 있음. 1건만 복원 가능함. 다수는 잔편임. 주로 구연부와 바닥 및 손잡이 부분임. 주로 니질의 회색 토기와 니질의 황갈색 토기임. 또 소량의모래가 섞인 홍갈색 토기도 있음.
역사적 의미
고구려시기의 건물지 유적임.
F1은 F2의 다짐층 위에 직접 건축하였음. 다만 F1에서는 출토 유뮬이 없기 때문에 조성시기와 성격을 파악하기 힘든 상태임.
F2는 상대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지만, 발굴면적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다짐층의 가장자리까지 발굴하지 못하였음. 다만 드러난 다짐층은 건물지의 범위를 초월하였는데, 이 다짐층은 F2 뿐 아니라 다른 건물과 공용일 가능성이 있음. 또한 F2의 동, 남 벽체 바깥의 기둥구멍은 벽체기초와 연접해 있는데, 처마를 받치는 기둥을 세울 때 설치한 것으로 파악됨. 서, 북 양벽 바깥의 초석은 회랑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함. 파괴가 심해 문길은 발굴하지 못했음. 이로 인해 F2의 방향을 확정할 수 없었음. 또한 F2가 무너지며 형성된 퇴적층에서 출토된 기와의 수량이 적고 또한 파손이 비교적 심한 것으로 보아 일찍이 교란된 것으로 보임.
F2의 조영방법, 건축구조와 규모 등으로 보아 모두 국내성지 체육장 지점의 F2, 민주유적 1호 원락의 F1 및 2호 원락의 F5 등 고구려시기의 건물지 유적과 유사하며, 토기는 고구려 중기의 풍격을 지니고 있음. 그리고 제3층에서 고구려 초기의 풍격을 지니고 있는 단지 1개와 토기편이 출토되었음.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F2의 조영시기는 고구려 중기로 추정할 수 있음. 이 밖에 층위관계와 출토유물의 정황을 결합해 보면, K1과 H1도 고구려 중기의 유구임을 추정할 수 있음. K1과 H1은 F2 부근에 위치했지만, 정보량의 부족으로 F2와의 관계를 명확히 밝힐 수는 없음.
국내성지 체육장 지점, 민주유적 등은 이미 발굴한 상층의 유구를 보호하기 위해 아래 지층에 대해 전면 발굴을 진행하지 못했는데, 이 유적의 제3층에서 채집한 정보를 통해 상기한 다른 건물지 유적의 상한을 유추해 볼 수 있음.
F1은 F2의 다짐층 위에 직접 건축하였음. 다만 F1에서는 출토 유뮬이 없기 때문에 조성시기와 성격을 파악하기 힘든 상태임.
F2는 상대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지만, 발굴면적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다짐층의 가장자리까지 발굴하지 못하였음. 다만 드러난 다짐층은 건물지의 범위를 초월하였는데, 이 다짐층은 F2 뿐 아니라 다른 건물과 공용일 가능성이 있음. 또한 F2의 동, 남 벽체 바깥의 기둥구멍은 벽체기초와 연접해 있는데, 처마를 받치는 기둥을 세울 때 설치한 것으로 파악됨. 서, 북 양벽 바깥의 초석은 회랑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함. 파괴가 심해 문길은 발굴하지 못했음. 이로 인해 F2의 방향을 확정할 수 없었음. 또한 F2가 무너지며 형성된 퇴적층에서 출토된 기와의 수량이 적고 또한 파손이 비교적 심한 것으로 보아 일찍이 교란된 것으로 보임.
F2의 조영방법, 건축구조와 규모 등으로 보아 모두 국내성지 체육장 지점의 F2, 민주유적 1호 원락의 F1 및 2호 원락의 F5 등 고구려시기의 건물지 유적과 유사하며, 토기는 고구려 중기의 풍격을 지니고 있음. 그리고 제3층에서 고구려 초기의 풍격을 지니고 있는 단지 1개와 토기편이 출토되었음.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F2의 조영시기는 고구려 중기로 추정할 수 있음. 이 밖에 층위관계와 출토유물의 정황을 결합해 보면, K1과 H1도 고구려 중기의 유구임을 추정할 수 있음. K1과 H1은 F2 부근에 위치했지만, 정보량의 부족으로 F2와의 관계를 명확히 밝힐 수는 없음.
국내성지 체육장 지점, 민주유적 등은 이미 발굴한 상층의 유구를 보호하기 위해 아래 지층에 대해 전면 발굴을 진행하지 못했는데, 이 유적의 제3층에서 채집한 정보를 통해 상기한 다른 건물지 유적의 상한을 유추해 볼 수 있음.
자연환경
집안시의 團結路와 西盛街가 교차하는 부군의 국세 구역 내부의 민간거주지 공터. 국내성지의 서북쪽임.
유물정보
錢幣 1점 외 銅器 2점, 鐵鏃 1점, 罐 6점, 鉢 1점, 甑 1점, 甕 1점, 盆 1점 외 土器 1점, 器耳 5점, 板瓦 5점, 塼 1점,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文物局, 「2008年集安市國內城社區辦公樓地點高句麗居住址的發掘」『北方文物』 2009-3,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