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고구려문화유산자료

민주유적(民主遺址)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432
  • 위치(출토지)
    太王鎭 民主村 三隊
  • 지역
    집안(集安市)
  • 유형
    건물지>기타
  • 형태사항
    2점 
출토지
태왕진 민주촌 삼대 (太王鎮 民主村 三隊)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36년 일본인 關野貞과 池內宏이 石柱와 礎石 조사함. 池內宏, 1938 『通溝』上, 日滿文化協會에 발표함.
1961년 고구려의 유적으로 파악하고 輯安縣級 문물보호단위로 공포.
1984년 『집안현문물지』에 “高句麗石柱” 항목 기술함. 石柱의 偏西北 40m 지점에 고구려 시기 대형 건축유적이 있다고 기술함.
2003년 8월-11월 도시개발공사에 협력하기 위해 石柱유적 서측의 채소밭구역 긴급 구조발굴.
대형 건물지 3기 발굴, 石柱 기초와 주변 지역 발굴. 총 발굴면적은 3,606.72㎡.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4 『國內城, 2000-2003年集安國內城與民主遺址試掘報告』文物出版社에 발표함.
구조특징
유적은 크게 동측의 석주유적과 서측의 건물지로 구분할 수 있음
2003년 발굴시 채소밭 구역에서 총 3개의 지층 확인. 제1층은 경작 토층인데 흑갈색의 부식토로 토질이 푸석푸석함. 두께는 0.20~0.22m임. 제2층은 갈색토, 수분이 많아 부식된 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토질은 비교적 단단함. 두께 0.10~0.15m. 이 층은 논 경작 이후 잔존한 경작층임. 제2층 아래에서 대형 건물지 3기를 발굴했는데, 건물지는 모두 제3층에 자리잡고 있었음. 제3층은 황갈색 모래흙층, 과립형태의 흑색 점토를 소량 함유. 토질은 비교적 부드러움. 제3층 퇴적층에 대형 건물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유적 보존을 위해 그 아래층은 아직 발굴하지 않음. 건물지의 위치는 石柱 서부의 채소밭 구역에서 2개의 경작층 아래임. 동서방향의 건물지 3조 발굴, 각기 독립적인 院落式 건물지임.
院落式 건물지 3조는 모두 비교적 많이 훼손되어 있어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 힘든 상태임. 발굴상황으로 보아 건물지 3조는 남북방향의 長方形 院落式 건물지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음. 각 院落의 남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데, 동측의 石柱 2기와 함께 동서방향의 軸線上에 위치하여 긴밀한 공존관계임을 알 수 있음. 민주유적의 유적기호를 2003JM으로 부여하고, 3조의 건축물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차례대로 1호 院落, 2호 院落, 3호 院落(2003JMⅠ, 2003JMⅡ, 2003JMⅢ)으로 편호함.
담장의 축조방식 : 3기 院落의 담장은 靑石, 화강암, 석회암 석괴를 사용하여 축조했으며, 벽체 내부는 강돌로 채움. 벽체는 비교적 심하게 파괴되었는데, 잔존 상황으로 보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안으로 들여쌓은 퇴물림 축조법의 특징이 관찰됨. 벽체의 주체 부분은 강돌로 구성되었으나 다수의 석괴는 이미 존재하지 않음.
유적 내부의 흙다짐층 : 원락 유적 내부 구역의 토질은 顆粒 형태의 흑색 점토를 소량 함유한 황갈색 점토층으로 제3층의 황갈색 사질토층과는 차이가 있음. 이 점토는 아마 유적 내부에 깐 흙다짐층으로 추정됨.
역사적 의미
3기 院落 내부에서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2호 院落 내의 제3층 퇴적층에서는 “開元通寶” 1건이 발견됨. 그밖에 網格紋을 시문한 홍갈색 암키와편, 시유 토기, 니질의 회색토기와 황갈색토기, 모래가 혼입된 회갈색토기와 황갈색 토기편 등이 있음. 단지(罐), 시루(甑) 등의 기형이 있는데, 그 재질과 형태는 국내성지에서 출토된 고구려시기의 토기와 차이가 없음. 또한 1호 院落과 2호 院落에서 발견된 팔각형 초석은 고구려시기 초석 기둥자리[柱坐]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 이로 보아 3기 院落은 고구려시기의 건축유적으로 파악됨. 다만 유적에서는 건축 규모에 비해 건축부재는 극소량만 출토됨. 이로 보아 이 유적은 미완성된 고구려 시기의 건물지일 가능성도 있음.
자연환경
유적의 남쪽 약 0.6㎞에 압록강이 있으며, 유적의 서부는 雲峰발전소 생활구역임. 전체적으로 보아 민주유적은 禹山과 압록강 사이의 평원지대에 위치하고 있음. 민주유적에 대한 인식은 종래 石柱에 한정되어 있었음. 동서방향으로 분포한 석주 2기의 간격은 약 40m이며, 원위치로 추정됨. 현재 두 기의 石柱는 민가 내에 세워져 있는데, 이미 이 구역은 주택지로 바뀌었음. 石柱의 西部는 현재 농경지임. 고구려 시기 대형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역은 이전에는 논이었으나, 2003년 발굴 당시에는 채소밭으로 경작되고 있었음. 채소밭의 서측은 논인데, 두 부분이 현재 이 일대에서 유일한 농경지임. 도시개발공사가 논의 동부구역까지 미쳐 민간 주택으로 건설되고 있음. 石柱와 채소밭 사이, 채소밭과 논 사이에 각각 남북방향의 비포장도로가 있는데, 남쪽으로 압록강으로 통함. 동측 비포장도로의 북단은 개발구역의 주요 간선도로인 鴨江路와 닿아 있고, 서측 비포장도로는 개발구역시장을 사이에 두고 鴨江路와 접함. 채소밭 구역의 남북 양측에는 2003년 발굴 당시 현대식 건물이 꽉 들어차 있었고, 남측은 民主 3隊 주택지임. 북측은 東에서 西로 각각 개발구역 주유소, 개발구역 오피스텔, 이동통신 철탑 및 5층 빌라 한 채가 있었음. 채소밭 북부에는 종래 禹山에서 흘러나와 東에서 西로 흘러 압록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하천이 있었는데, 오래 전 토사의 퇴적으로 인해 매몰되었음. 또한 소하천 구간은 대부분 현대식 건축물로 덮어져 버렸는데(5층 빌라 포함), 일부 구역에는 아직도 고립된 웅덩이가 남아 있음.
참고문헌
· 關野貞, 「滿洲輯安縣及び平壤附近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二)」『考古學雜誌』 5-4, 日本考古學會, 1914
· 池內宏, 『通溝』 上: 滿洲國通化省輯安縣高句麗遺蹟, 日滿文化協會, 1938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李殿福(車勇杰·金仁經 譯), 『中國內의 高句麗遺蹟』, 學硏文化社, 1994
· 魏存成(신용민 역), 『高句麗考古』, 호암미술관, 1996
· 徐廷昊, 「集安 民主遺蹟 建物址의 性格에 관한 硏究」『高句麗硏究』 19, 고구려발해학회, 2005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민주유적(民主遺址) 자료번호 : ku.d_0001_0040_0030_2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