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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이수원자남 유적 (梨樹園子南遺址; 果樹園子南遺址)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초기
  • 위치
  • 유물번호
    S000442
  • 위치(출토지)
    集安市 黨校 內
  • 지역
    집안(集安市)
  • 유형
    건물지>기타
  • 형태사항
    동서 길이 약 150m, 남북 너비 약 80m.  , 6점 
출토지
집안시 당교 내 (集安市 黨校 內)
연대
4세기(338년으로 편년되는 ‘戊戌’명 권운문 와당 출토)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37년 일본학자들이 이 일대를 조사하여 건물 초석과 와당, 기와편 등을 확인하고, 만주국의 병사 막사가 있는 곳이라 하여 병사유적[兵舍遺址]이라고 명명함. 일제시기에 ‘戊戌’명과 ‘十谷民造’명 권운문 와당 등이 출토됨.
1958년 8월 원래 식량창고였던 이곳에서 곡식을 햇빛에 말리기 위한 지면을 정리하다가 백옥이배(白玉耳杯) 1건, 금동화살촉(鎏金箭頭) 20건, 금동그릇 뚜껑 1건, 금동갈고리 1건 등이 출토됨.
1980년대 유적에서 고구려 시기의 연화문, 인동문, 수면문 와당을 다수 채집함.
구조특징
유적 서쪽에 동서로 배열된 거대한 화강암 초석 4개가 있었음. 초석열 연장선상의 지하에는 초석이 대량으로 묻혀 있었음. 당시 건축 규모를 상상할 수 있음.
역사적 의미
일제시기에 출토된 ‘戊戌’명과 ‘十谷民造’명 권운문와당 등은 이 유적이 4세기에는 이미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함. 이 유적에서는 권운문와당 이외에도 蓮花紋, 忍冬紋, 獸面紋 등의 화려한 와당과 더불어 方格紋, 蓆紋, 菱形紋 등의 붉은색 기와편도 많이 출토되었음. 이는 이 유적에 화려한 기와건물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함. 또한 백옥이배(白玉耳杯), 금동화살촉, 금동그릇뚜껑, 금동갈고리 등 고급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백옥이배는 漢代 궁중에서 사용하던 물품으로 확인됨. 건물지의 규모와 출토유물의 양상으로 보아 고구려 시기의 별궁이나 관청 등으로 추정됨. 왕실이나 귀족의 거주지로 추측하기도 함. 현재 이 건축물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 유적에서 권운문와당이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4세기경에 이미 국내성지 외곽에도 중요한 건축물을 조영했음을 파악할 수 있음.
자연환경
뒤로는 禹山을 등지고 있으며 남쪽으로 집안분지가 펼쳐짐. 남쪽으로 고구려 두 번째 도성이었던 국내성지가 바라다보이며, 북쪽 약 100m 거리에 우산하고분군 3341호와 3340호로 편호된 대형 봉토석실묘가 있음.
주변보다 높은 대지에 위치. 주변 평지보다 7-10m 높고, 경사도는 약 5°임.
유물정보
와당을 비롯한 다수의 유물 출토됨.
참고문헌
· 藤田亮策·梅原末治, 『朝鮮古文化綜鑑』 4, 養德社, 1966
· 吉林省文物志編纂委會, 『集安縣文物志』, 198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李殿福(車勇杰·金仁經 譯), 『中國內의 高句麗遺蹟』, 學硏文化社, 1994
· 魏存成(신용민 역), 『高句麗考古』, 호암미술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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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원자남 유적 (梨樹園子南遺址; 果樹園子南遺址) 자료번호 : ku.d_0001_0040_0030_2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