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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만보정 0242호묘(萬寶汀 0242號墓)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446
  • 위치(출토지)
    吉林省 集安市. 座標(最北邊基準) 東京 126°09′56.6〞, 北緯 41°07′56.4〞, 海拔高度 196m
  • 지역
    집안(集安市)
  • 유형
    고분>적석총
  • 형태사항
    가로: 17.20m, 세로: 45m, 높이: 1.4~3.5m  , 12점  , 광실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 만보정 평지 남부.
좌표(최북변기준)는 동경 126°09'56.6", 북위 41°07'56.4", 해발고도는 196m(吉林省 集安市. 座標(最北邊基準) 東京 126°09'56.6", 北緯 41°07'56.4", 海拔高度 196m)
연대
3세기 말엽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76집안문관소
(集安文管所)
조사기간은 1975년 7월에서 11월임. 조사내용은 전면 정리 및 발굴.
구조특징
무덤은 대다수가 기단(방단)적석묘와 계단(방단계제)적석묘이고, 일부 봉토석실(동실)묘도 보임. 이 외에도 겉으로 보기에는 비교적 큰 장방형의 적석묘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기의 무덤이 연접된 것으로, 축조할 때 분구가서로 연결된 무덤도 있음. 이러한 무덤에는 1기의 묘를 단독으로 축조하면서 서로 연결시킨 형태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의 기단이 있고, 그 공동의 기단 위에 다시 계단(방단계제적석묘)을 단독적으로 축조한 형태가 있음. 이러한 형태의 무덤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차례대로 축조됨. 남면 무덤의 북쪽 기단은 북면의 남쪽 계단에 이어 있고, 나머지 세면은 계단으로 축조. 남묘의 분구는 북묘의 분구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 빈 공간은 없음. 이러한 형태의 무덤을 “방단계제적석곶묘”라고 부르는데, 만보정 242호묘가 바로 이러한 “방단계제적석곶묘”임.
고분의 발굴전 상황은 분구와 네 주변은 모두 무질서하게 쌓여진 돌무지 같았음. 잔존 길이는 50m, 너비는 20.05~23.50m임. 고분 형식은 장방형 방단계제적석곶묘임.
고분구조는 먼저 외형은 4기의 무덤이 연접되었고, 묘실에 도굴을 당한 흔적이 있음. 축조방식은 먼저 강자갈을 이용해서 전체 곶묘의 기단을 만들었는데, 기단석은 지면과 평행하거나 5~10㎝ 정도 높음. 그 위에 4기의 방단계제묘를 구축하였는데, 북쪽 묘가 먼저 축조되고, 이후에 남쪽 묘가 축조됨. 북쪽 묘는 완전히 갖추어진 방단계제적석묘임. 남면의 무덤에는 동·서·남 3면에만 계단이 있고, 그 계단 바깥에는 정연하게 배열된 보호석이 기대어 받치고 있음.
S1묘는 곶묘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무덤임. 제1단 계단은 기단 동·서·북 각 변에서 안으로 1m 들여 쌓았는데, 남북 길이 14.50m, 동서 너비 17.20m, 높이 1.10m 임. 제2단 계단은 제1단 계단 각변 위에서 각각 안으로 약 0.8m 들여 쌓았는데, 남북 길이 13.90m, 동서 너비 15.60m, 높이 0.80m 임. 제3단 계단은 제2층 계단 각변 위에서 각각 안으로 약 0.9m 들여 쌓았는데, 남북 길이 12.10m, 동서 너비 13.80m, 높이 0.80m 임. 보호석은 대다수 장방형이고, 크기는 불규칙적임. 가장 큰 것은 길이가 80㎝, 너비가 27㎝에 달함. 제2단 계단의 가운데 부분에는 강자갈로 쌓은 석렬 10줄 있는데, 남북 종방향으로 쌓여진 석렬은 6줄이고, 횡방향 석렬은 4줄임. 석렬은 지표에서 1.8m 높이에 축조하여, 석렬의 상부는 제2층 계단과 대체로 평행하고, 석렬의 폭은 0.3m 임. 석렬 사이 공간에는 강자갈로 채우고, 그 위에 0.1m 두께의 깬돌과 강자갈을 평평하게 깔았으며, 깬돌과 강자갈 윗면에 0.40m 두께로 불에 녹은 용석이 깔려 있음. 용석의 범위는 동서 길이 4.1m, 남북 너비 3.5m 임. 용석은 1800~2000°C의 열에 녹음. 돌은 녹아서 모양이 변하였거나, 혹은 돌들이 녹아 서로 엉켜지면서 각종 모양을 띠고 있음. 묘실은 불에 녹은 가운데 부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 다만 묘광 구덩이와 장구는 아직 발견되지 않음. 분구 상부에 원형의 함몰된 구덩이가 있음. 불에 탄 용석층의 중심부분에 해당되어서, 도굴된 후에 형성된 도굴갱으로 추정. 용석층 북측에서 불에 탄 인골 3점이 나옴. 묘실부분에서는 부장품은 아직 출토되지 않음. 계단북측 바깥에서는 호·단지 잔편, 제1단 계단 남쪽의 상면에서는 철제 재갈·금동제 방울·토기 잔편 등이 출토. 이러한 현상은 도굴 혹은 장례풍속과 관계가 있음.
S2묘는 곶묘 중, 북쪽에서 2번째에 위치. S2묘의 북쪽 계단은 S1묘의 남쪽 계단에 잇대어 축조. 제1층 계단은 남북 길이 12m, 동서 너비 17.2m, 높이 1m 임. 중간부분에는 크기가 작은 강자갈을 채워서 평평하게 함. 제2단 계단은 제1단 계단 각 변 위에서 각각 안으로 약 1m 들여쌓았는데, 높이는 0.6m 임. 계단 내부는 자갈과 역석을 채워서 평평하게 함. 제3단 계단은 제2단 계단 각 변 위에서 각각 안으로 약 0.8m 들여 쌓았는데, 높이는 0.5m 임. 내부에는 자갈과 역석을 채워서 평평하게 함. 제4단 계단은 파괴되어, 높이 및 너비 등을 알 수 없음. 계단을 쌓는데 사용한 석재는 모두 산에서 채집한 불규칙적이고 납작한 돌이고, 계단 내부에 채운 돌은 대부분 강자갈임. 계단 내면에는 횡방향으로 높이 1.80m의 석렬을 쌓았고, 석렬 사이는 돌로 채워 평평하게 함. 보호석은 각 변에 모두 있으나, 그 수는 다름. 남측에는 12개의 보호석이 있음. 제1단 계단의 보호석은 2단 계단에 있는 보호석보다 크지만, 그 수는 적음(그림 4). 분구 정상부는 역석과 자갈로 덮었음. 묘실은 제1·2단 계단 안쪽에 구축. 장방형의 수혈임. 묘실바닥은 지표임. 묘도는 묘실동변에 나 있음. 묘도 네벽 높이는 묘실과 서로 같음. 묘실 석재는 불규칙적인 강자갈로, 분구의 역석보다 약간 큼. 네 벽은 비교적 가지런하고 정연함. 묘광 안에서는 유골 및 어떠한 유물도 출토되지 않았음. 다만 묘도 입구에서 토기 잔편이 출토. 이 외에 1층 계단 서북모서리에서 매우 많은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는데, 기형은 명확하지 않음.
S3묘는 곶묘 중, 북쪽에서 3번째 묘임. S3묘 북쪽 단은 S2묘의 남쪽 계단에 잇대어 있음. 축조방식은 S1·S2묘와 같음. 파괴가 심하여, 동서 양면은 2층 계단만 남아 있고, 남면의 형태는 명확하지 않음. 묘의 남아 있는 높이는 1m 정도임. 제1단 계단은 곶묘의 공동 기초 위에서 안으로 1m 들여 쌓았는데, 남북 길이는 11m, 동서 너비는 17.20m, 높이는 0.40m 임. 제2단 계단은 제1층 계단 위에서 각각 안으로 약 0.80m 들여 쌓았는데, 높이는 0.30m 임. 묘정상부는 심하게 파괴되어 형태가 명확하지 않음. 제1단 계단의 서남쪽부분에 남북방향으로 장방형의 묘실이 있는데, 납작한 돌로 축조함. 중간에 0.7m 너비의 격벽이 있어, 매장공간이 쌍실을 이룸. 묘실의 네 벽은 안으로 기울어짐. 묘실 바닥은 지표에서 0.4m 위에 위치하며, 바닥에는 자갈과 판석이 평평하게 깔려 있음. 천정은 여러 개의 돌을 남북으로 배열하고, 그 상부는 역석으로 덮었음. 묘실에서는 인골이 출토되지 않았음. 묘실 서쪽에서는 회색 단지 1점, 동쪽 묘실에서는 철제 손칼(刀) 1점이 출토. 묘실 바깥의 역석무지에서는 철제 괭이와 회·홍색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호 혹은 단지류임. 건축구조와 출토된 유물 등을 볼 때, 부부합장묘로 추정.
S4묘는 파괴가 심함. 남은 높이는 0.3~0.4m 임.
내부규모 및 특징
S2묘실 길이 2.80m, 너비 2m, 높이 1.45m, 방향 90°. 묘도 길이 4.70m
S3묘실 길이 2.80m, 너비 1.06m, 높이 0.80m
역사적 의미
집안의 고구려무덤 증 만보정 242호묘와 같은 곶묘는 적지 않지만, 발굴정리된 무덤은 많지 않음. 곶묘의 발굴보고는 환인현 고력묘자촌 무덤의 발굴보고 중에서도 다루고 있음(『桓仁縣考古調査發掘簡報』). 이러한 형태로 배열된 축조방법은 고구려 전기의 가족장제도를 반영한 것임.
만보정 242호묘는 비록 4기의 묘실로 나누어져 있으나, 각각의 무덤은 축조방법에서 공통됨. 축조순서로 보면 먼저 북쪽 묘가 축조되고, 나중에 남쪽 묘가 축조됨. 남쪽 묘의 북쪽 기단은 북묘의 남쪽 기단이 되며, 한 줄로 연결된 4기의 무덤은 공동의 기초 위에 축조. 하나의 기초에서 4기의 무덤이 순차적으로 축조되었으며, 기초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각 무덤 사이의 축조 연대는 그리 크게 벌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
만보정 242호묘의 계단구축방법은 일치. 계단 주위에는 이를 보호하도록 버텨놓은 보호석이 있는데, 이 점은 후래의 고구려 대형적석묘(장군총, 태왕릉, 천추묘 등)에서 보이는 것과 상당히 유사. 다만 만보정 242호묘의 보호석은 형태가 약간 작고, 그 수는 약간 많음. 계단적석묘는 고구려 후기가 되면 더욱 정교하고 규모가 거대해지는데, 이는 고구려석조건축기술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완성된 성과임.
분구 윗면 함몰된 곳의 용석은 고구려 전기의 적석묘에서 자주 발견되는 일종의 화장흔적이라고 할 수 있음.
출토유물을 보면, 단지·금동기·철기 등이 있음. 출토된 말재갈은 형태와 제작기술이 낙양소구한묘에서 출토된 재갈Ⅱ와 유수노하심 중층 유적에서 출토된 재갈과 유사함. 토기 형식 등을 고려해 볼 때, 이 무덤의 축조연대는 고구려 전기 즉 3세기 말엽으로 추정.
S2호묘는 묘도를 갖춘 횡혈식 매장부 구조를 가진 무덤으로서 고구려 적석묘가 수혈식의 석광구조에서 횡혈식의 석실구조로의 변화의 과도기 모습을 보여주므로, 고구려에서 횡혈식 매장부가 3세기 말경에 출현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음.
현재 무덤은 많이 파괴되어 발굴 조사 당시의 상황을 추적하기 어려운 상황임. 특히 S4묘의 경우, 분구의 상당부가 파괴되어 지표면에 석렬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임.
자연환경
만보정 평지 남부에 위치. 만보정은 집안현성 북쪽 산골짜기에 위치하는데, 남북으로 좁고 긴 충적평지로, 동․서․북 삼면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음. 만보정 일대에는 많은 고구려의 대․중․소 무덤들이 남북방향으로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음.
남단에는 비교적 큰 적석곶묘(만보정 186~188호묘)가 있고, 북측에는 기단(방단)적석묘가 있음. 남․북은 한 줄로 이어져 있음. 열의 서쪽으로는 다른 적석묘가 남북으로 배열되어 이 줄과 평행을 이루고 있음.
동쪽에는 통구하가 흐르고 있는데, 통구하는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과 합쳐짐. 남쪽으로 약 5里 떨어진 지점에는 국내성이 있음. 북쪽으로 약 3리 떨어진 지점에는 환도산성이 있음.
유물정보
금동 말안장테두리(金銅鞍橋) 1점, 금동사미(金銅鉈尾) 4점, 금동띠고리(金銅鉸具) 1점, 금동방울(金銅鈴) 7매. 철괭이(鐵鐝) 1점 외 철기류(鐵器類) 9점, 토기류(土器類) 2점
참고문헌
· 趙偉勤·周云台, 「集安萬寶汀墓區242號古墓淸理簡報」『考古與文物』 1982-6, 1982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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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정 0242호묘(萬寶汀 0242號墓) 자료번호 : ku.d_0001_0040_0030_2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