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산 0871호묘(七星山 0871號墓)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 통구촌. 중심지리좌표는 동경 126°9'52.01", 북위 41°7'1.38". 해발고도는 232.06m.(吉林省 集安市 通溝村. 中心地里座標 東經 126°9'52.01", 北緯 41°7'1.38". 海拔高度 232.06m)
연대
2세기를 넘지않을 것으로 추정.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66 | 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 | 실측 등. |
1997 |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문물보관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文物保管所) | 35m×35m×5.5m의 초대형 계단적석석광묘로 파악. |
2003 |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문물보관소(손인걸, 손기, 동우파, 왕상빈)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文物保管所(孫仁杰, 孫奇, 佟友波, 王祥斌)) | 묘 주변에서 흘러내린 돌들과 잡풀 등의 정리작업과 더불어, 무덤의 형태·구조·규모, 그리고 무덤주변 유적에 대해 보다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짐. 그 조사과정 가운데, 유물 6점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이 기와임. |
1980년대 | 집안현문물보관소 (集安縣文物保管所) | 여러 차례 조사를 통해, 왕릉으로 비정. |
2004~2005 | 장복유, 손인걸, 지용 (張福有, 孫仁杰, 遲勇) | 여러 차례 조사를 통해, 보다 진일보된 연구 성과 획득. |
구조특징
칠성산0871호묘는 일찍이 도굴을 당하여, 묘 정상부에는 묘바닥까지 이르는 큰 구덩이가 있었고, 묘실은 존재하지 않았음. 무덤 위에서 도굴하면서 꺼내진 돌들은 대략 5,000 입방미터인데, 주로 묘의 서남측에 쌓여 있음. 돌무지는 무덤 아래가 비교적 멀리까지 흘러내림. 일찍이 동서로 향해 있는 석렬은 1970년대 농민들이 묘 남측에 계단식 밭을 개간할 때, 훼손이 많이 됨. 북측에 있는 돌무지는 골짜기 및 민가들이 있는 곳에 위치한 까닭으로, 비교적 파괴가 심함.
형식은 계단적석묘이고, 동측 묘변방향은 185°임. 북변길이 46m, 동변길이 48m, 남변길이 46m, 서변길이 40m임. 평면은 대략 제형임. 정리된 후의 네 모서리를 기점으로, 묘정상 높이는 서북모서리 3.61m, 동북모서리 9.2m, 동남모서리 8.7m, 서남모서리 5.21m로, 계장 양단의 고도차는 5m에 가까움. 묘 정상부는 원래 평평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중앙부에는 큰 구덩이가 있고, 묘정상부의 남은 너비는 16m 정도임. 무덤은 점토층 위에 바로 축조되었고, 각 변의 바닥에서 아직 기초시설은 발견되지 않음.
무덤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차례로 축조한 것으로, 먼저 예정된 묘지 중앙부에 돌무더기를 쌓은 후, 안에서 바깥으로 높낮이를 맞추어 울타리 쌓듯이 돌을 쌓아 올림. 외견은 점차 낮아지는 층층의 계장임. 네면 계장의 높이·간격·각 면의 울타리의 수가 일치되지 않았고, 또한 모서리 연접방법도 일치시키지 않아서 규칙성을 갖고 축조하지 않은 것으로 보임. 남아 있는 울타리 석렬 아랫부분의 노출정황을 볼 때, 무덤 중앙 돌무지 너비는 약 30m이고, 높이는 6m보다 낮지 않을 것으로 추정됨. 사용된 석재는 모두 가공된 자연 산돌이고, 석재크기는 일반적으로 0.4~0.6m 사이임. 아직 절개·단면조사를 진행하지 않아서, 돌무지의 내부구조는 명확하게 알 수 없음. 지세가 비교적 높은 북측과 동측에 위치한 계장의 보존상태가 약간 좋고, 서측에 남아 있는 계장 대부분은 분구 표면에서 볼 수 있음. 남면은 도굴로 인한 파괴와 버려진 돌들이 덮음으로, 쉽게 관찰할 수 없음. 비록 다수의 계장이 붕괴되어 본 위치를 이탈하고, 또한 석재도 대부분 결실되었지만, 서면에서는 8줄, 북면에서는 10줄, 동면에서는 12줄의 울타리 석렬을 볼 수 있음. 계장 사이는 모두 깨진 산돌로 채웠고, 아울러 작은 강자갈을 경사지게 쌓아 올렸는데, 봉한 돌의 두께는 약 0.1~0.3m 임.
무덤 북변 내에는 10줄의 계장이 있음. 묘 중심에서 약 8m 떨어진 지점에 축조하였는데, 묘정상부에 근접함. 계장의 총 높이는 0.8m임. 계장은 중심 돌무지에서부터 축조하였는데, 현재 바깥으로 드러난 계장 높이는 0.4m 임. 석재는 대부분 비교적 정연한 자연산석으로, 크기는 0.4m×0.6m 정도임. 계장 바깥쪽에는 장대석을 세워서 계장석이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는데, 세운 장대석의 일반적인 길이는 0.6m, 너비 0.25m, 두께 0.25m 정도임. 이 계장 석렬은 무덤 동북모서리에서 동면에 세워진 12줄의 계장 석렬과 연결됨. 북측 제9줄 계장은 제10줄 계장의 바깥 1.5m 지점에 축조하였는데, 전자보다 0.4m 정도 낮음. 남아 있는 계장 돌의 총높이는 1.2m 정도이고, 석재와 축조방법은 전자와 같음. 외측에 계장을 보호하는 돌을 기대어 세움. 9줄 계장 동쪽 끝은 동면의 제10줄 계장 석렬과 연결되었다고 추정. 서쪽 끝은 파괴가 심함. 북측 제8줄 계장은 제9줄 계장에서 1.4m 떨어진 지점에 축조하였는데, 계장석의 높이는 약 2m 정도임. 정상부는 제9줄 계장보다 0.5m 정도 낮음. 계장에 기대어서 보호하는 버팀석은 아직 발견되지 않음. 계장을 쌓는데 사용한 돌은 대부분 가공되지 않은 자연 깨진 산돌로, 길이 0.3~0.6m, 너비 0.3~0.4m, 두께 0.2m 정도임. 양끝부분의 접한 정황은 명확하지 않음. 북측 제7줄 계장의 높이는 2m 정도이고, 남쪽으로 1.7~1.8m 지점에 제8줄 계장이 있음. 전(前) 계장보다 0.7m 낮음. 바깥에는 버팀석이 있음. 계장에 쌓은 돌 또한 편평한 모양임. 양끝 모두 지금은 존재하지 않음. 북측 제6줄 계장은 제7줄 계장에서 약 1.2m 떨어진 지점에 축조되었는데, 높이는 1.9m 임. 제7줄 계장보다 0.8m 낮음. 계장축조방법과 석재는 모두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음. 서북쪽 구석은 서면의 제5줄 계장과 연결됨. 동쪽 끝부분은 파괴되어 명확하지 않음. 북측 제5줄 계장은 제6줄 계장에서 약 1.6m 떨어진 지점에 축조. 정상부는 제6줄 계장보다 0.6m 정도 낮음. 축조방법은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음. 제5줄 계장의 서쪽 끝은 서면의 제4줄 계장과 연결되고, 아울러 서쪽 제3줄 계장과도 연결됨. 동쪽 끝부분의 연결은 명확하지 않음. 가운데부분에는 계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워서 설치한 장대석을 볼 수 있음. 계장은 가운데부분의 돌무더기 위에서부터 시작하여 높이로 볼 때 먼저 쌓은 돌무지 주위에 주변과 접할 수 있음. 북측 제4줄 계장은 제5줄 계장에서 약 1.7m 떨어진 지점에 축조하였는데, 계장의 높이는 2.6m 임. 제5줄 계장보다 0.8m 정도 낮음. 계장 아래에서 평평하게 깐 깨진 산돌 1층을 볼 수 있는데, 그 두께는 약 0.4m임. 계장하부에 보이는 석재는 비교적 크고 두꺼운 반면에, 계장 상부에는 앞에서와 같은 납작한 돌을 사용함. 계장 바깥에 역시 버팀석을 세움. 제4줄 계장은 서북모서리에서 서측의 제5줄 계장과 연결된 후, 더욱 확장되어 서면의 제3·4줄 계장과 연결됨. 동쪽 끝부분 동면은 제5줄 계장과 연결됨. 북측 제3줄 계장은 제4줄 계장에서 약 1.6m 떨어진 지점에 축조되었는데, 제4줄 계장보다 1.2m 정도 낮음. 계장은 지표 위에 바로 축조하였고, 높이는 2m여 정도임. 계장축조방법과 석재는 제4·5줄 계장과 같음. 석재는 대부분 돌임. 계장 외측에 세워진 버팀석은 비교적 작고, 몇 개가 연접되어 있음. 석판은 일반적으로 길이 1.2m, 너비 약 0.4~0.5m, 두께 약 0.15~0.2m 정도임. 서쪽 끝부분은 서면의 제1줄 계장과 연결되었고, 동쪽 끝부분은 동면의 제3줄 계장과 연결. 북측 제2줄 계장은 제3줄 계장에서 약 1.5m 떨어진 지점에 축조. 제3줄 계장보다 1m 정도 낮은데, 아마 파손되었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 계장은 지표면 바로 위에 축조하였고, 계장 높이는 1.3m 임. 계장을 쌓는데 사용한 석재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산석으로, 석재의 크기는 0.6m×0.4m×0.3m 정도임. 계장 바깥에 버팀석을 세웠는데, 버팀석은 일반적으로 0.8m×0.4m×0.3m 정도임. 계장의 서쪽 끝부분은 서측 제3줄 계장과 연결되고, 동쪽 끝부분은 동면의 제2줄 계장과 서로 연결. 제1줄 계장은 지표면에 축조. 북쪽으로 약 1.3m 떨어진 지점에 제2줄 계장이 축조되어 있음. 제1줄 계장은 일찍이 파괴되어 중간에 석재 1층만이 겨우 남아 있고, 동북모서리 부분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음. 계장의 높이는 1m 정도임. 계장을 쌓는데 사용한 돌은 비교적 크고, 일부는 가공하였는데, 석재의 크기는 0.8m×0.6m×0.4m 정도임. 장의 바깥에는 버팀석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가 2.5m이지만, 대부분은 길이 1~1.5m, 너비 0.8~0.4m, 두께 0.4m 임. 계장의 서쪽 끝부분은 서측의 제2줄 계장과 연결되어 있고, 동쪽 끝부분은 동면의 제1줄 계장과 연결됨.
동측면은 지세가 낮은 산기슭 아래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계장을 쌓은 돌을 비교적 높게 하고 계장 층수 또한 많게 함으로써, 높이를 맞추고자 하였음. 동측면에서는 12줄의 계장을 볼 수 있는데, 다른 3면보다 많음. 동측면의 제3~12줄 계장은 축조방법이 북면의 계장과 기본적으로 일치하는데, 간격은 조금 조밀함. 다만 파손이 심하여 석재의 결실이 비교적 많음. 제1·2줄의 계장은 보존이 비교적 양호. 제2줄 계장은 거의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음. 제2줄 계장은 제3줄 계장과 약 1.5m 떨어져 있고, 높이는 약 2m이며, 제3줄 계장보다 0.3m 정도 낮음. 계장은 지표면 위에 축조하였고, 남쪽 끝부분은 약간 파괴됨. 계장 축조에 사용된 석재 대부분은 자연 산돌이 깨진 것인데, 돌들은 가공되지 않은 것으로, 크기는 일반적으로 0.6m×0.4m×0.3m 임. 제1줄 계장 또한 지표면에 축조. 제2줄 계장 외측 1/3·2/3 지점과 제1줄 계장과의 사이로 각각 동남방향으로 호선을 그리며 쌓은 계장이 있음. 호선 계장 동쪽 끝이 제 1줄 계장과 연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임. 그 작용에 대해서는 더욱 진일보한 연구가 필요. 제1줄 계장과 제2줄 계장과의 거리는 가장 먼 것은 7m에 달하고, 반호형(半弧形)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러한 반호형 계장은 산비탈에 무덤이 자리하였기 때문에, 붕괴되어 외장된 것으로 보임. 제1줄 계장은 대부분 붕괴되어, 석재 1층만 겨우 볼 수 있는데, 석재는 약간 가공되었고, 크기는 일반적으로 1m×0.6m×0.4m 정도임. 계장 네면 바깥 주위에는 버팀석이 한 줄 돌아가는데, 현재는 대부분 파손. 버팀석 중 가장 큰 것은 길이가 2m, 너비 1m, 두께가 0.5m 정도이지만, 일반적으로는 1.5m×1m×0.4m 정도임. 산기슭 위에 위치한 서면의 버팀석은 대부분 납작한 형태이고, 크기가 작은데, 일반적으로 0.6m×0.4m×0.3m 정도임.
동기류, 철기류, 기와류가 출토되었음. 기와류는 대부분 분구표면 중·상부에서 대부분 출토되었고, 아랫쪽에서는 비교적 적은 양이 출토. 중앙 도굴갱 안과 남쪽의 버려진 돌무지 중에서는 출토되지 않음. 암키와와 수키와만 출토되었을 뿐, 와당은 출토되지 않음. 기와출토범위는 분구표면의 약 1/2에 해당. 암키와는 밀집되어 출토되었는데, 체적은 4.5입방미터임. 묘상에 남아 있는 기와의 총량은 약 10~12입방미터로 추정됨. 만약 촘촘히 덮는다면, 이들 기와들의 면적은 150㎡를 넘을 것으로 추정. 또한 경사도와 맞물리는 관계를 고려한다면, 덮은 면적은 약 100㎡로 추정됨. 그러므로 칠성산0871호묘에 사용된 기와는 단지 석광을 덮는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 암키와의 색깔은 회색과 짙은 회색이 약 95%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나머지 5%는 엷은 홍색이며, 갈색은 극소수임. 기와 대부분은 두께가 고르지 않음. 배면에는 모두 굵은 승문이 있고, 내면에는 포문이 있음. 와신에 부호가 새겨진 암키와가 극소수 출토되기도 하나, 문자가 새겨진 암키와는 없음. 기와 가장자리의 승문에는 마르기 전에 손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많이 보임. 손가락으로 횡·사·평행·교차 등 여러 모양으로 무늬효과를 내어, 장식성을 갖추고 있음. 수키와 또한 대부분 회색이고, 와태(瓦胎)는 대다수가 비교적 얇음. 모제임. 내면에는 모두 포문이 있음. 와두에 근거하여 무견(無肩)과 유견(有肩) 두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무견형식의 수량이 훨씬 많음. 유견수키와는 모두 사견(斜肩)임. 견상(肩上)에 돌출된 부분이 있음. 경부를 보면 요경(凹頸), 평경(平頸) 두 종류가 있음. 무견수키와 형태에는 두 종류가 있음.
형식은 계단적석묘이고, 동측 묘변방향은 185°임. 북변길이 46m, 동변길이 48m, 남변길이 46m, 서변길이 40m임. 평면은 대략 제형임. 정리된 후의 네 모서리를 기점으로, 묘정상 높이는 서북모서리 3.61m, 동북모서리 9.2m, 동남모서리 8.7m, 서남모서리 5.21m로, 계장 양단의 고도차는 5m에 가까움. 묘 정상부는 원래 평평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중앙부에는 큰 구덩이가 있고, 묘정상부의 남은 너비는 16m 정도임. 무덤은 점토층 위에 바로 축조되었고, 각 변의 바닥에서 아직 기초시설은 발견되지 않음.
무덤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차례로 축조한 것으로, 먼저 예정된 묘지 중앙부에 돌무더기를 쌓은 후, 안에서 바깥으로 높낮이를 맞추어 울타리 쌓듯이 돌을 쌓아 올림. 외견은 점차 낮아지는 층층의 계장임. 네면 계장의 높이·간격·각 면의 울타리의 수가 일치되지 않았고, 또한 모서리 연접방법도 일치시키지 않아서 규칙성을 갖고 축조하지 않은 것으로 보임. 남아 있는 울타리 석렬 아랫부분의 노출정황을 볼 때, 무덤 중앙 돌무지 너비는 약 30m이고, 높이는 6m보다 낮지 않을 것으로 추정됨. 사용된 석재는 모두 가공된 자연 산돌이고, 석재크기는 일반적으로 0.4~0.6m 사이임. 아직 절개·단면조사를 진행하지 않아서, 돌무지의 내부구조는 명확하게 알 수 없음. 지세가 비교적 높은 북측과 동측에 위치한 계장의 보존상태가 약간 좋고, 서측에 남아 있는 계장 대부분은 분구 표면에서 볼 수 있음. 남면은 도굴로 인한 파괴와 버려진 돌들이 덮음으로, 쉽게 관찰할 수 없음. 비록 다수의 계장이 붕괴되어 본 위치를 이탈하고, 또한 석재도 대부분 결실되었지만, 서면에서는 8줄, 북면에서는 10줄, 동면에서는 12줄의 울타리 석렬을 볼 수 있음. 계장 사이는 모두 깨진 산돌로 채웠고, 아울러 작은 강자갈을 경사지게 쌓아 올렸는데, 봉한 돌의 두께는 약 0.1~0.3m 임.
무덤 북변 내에는 10줄의 계장이 있음. 묘 중심에서 약 8m 떨어진 지점에 축조하였는데, 묘정상부에 근접함. 계장의 총 높이는 0.8m임. 계장은 중심 돌무지에서부터 축조하였는데, 현재 바깥으로 드러난 계장 높이는 0.4m 임. 석재는 대부분 비교적 정연한 자연산석으로, 크기는 0.4m×0.6m 정도임. 계장 바깥쪽에는 장대석을 세워서 계장석이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는데, 세운 장대석의 일반적인 길이는 0.6m, 너비 0.25m, 두께 0.25m 정도임. 이 계장 석렬은 무덤 동북모서리에서 동면에 세워진 12줄의 계장 석렬과 연결됨. 북측 제9줄 계장은 제10줄 계장의 바깥 1.5m 지점에 축조하였는데, 전자보다 0.4m 정도 낮음. 남아 있는 계장 돌의 총높이는 1.2m 정도이고, 석재와 축조방법은 전자와 같음. 외측에 계장을 보호하는 돌을 기대어 세움. 9줄 계장 동쪽 끝은 동면의 제10줄 계장 석렬과 연결되었다고 추정. 서쪽 끝은 파괴가 심함. 북측 제8줄 계장은 제9줄 계장에서 1.4m 떨어진 지점에 축조하였는데, 계장석의 높이는 약 2m 정도임. 정상부는 제9줄 계장보다 0.5m 정도 낮음. 계장에 기대어서 보호하는 버팀석은 아직 발견되지 않음. 계장을 쌓는데 사용한 돌은 대부분 가공되지 않은 자연 깨진 산돌로, 길이 0.3~0.6m, 너비 0.3~0.4m, 두께 0.2m 정도임. 양끝부분의 접한 정황은 명확하지 않음. 북측 제7줄 계장의 높이는 2m 정도이고, 남쪽으로 1.7~1.8m 지점에 제8줄 계장이 있음. 전(前) 계장보다 0.7m 낮음. 바깥에는 버팀석이 있음. 계장에 쌓은 돌 또한 편평한 모양임. 양끝 모두 지금은 존재하지 않음. 북측 제6줄 계장은 제7줄 계장에서 약 1.2m 떨어진 지점에 축조되었는데, 높이는 1.9m 임. 제7줄 계장보다 0.8m 낮음. 계장축조방법과 석재는 모두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음. 서북쪽 구석은 서면의 제5줄 계장과 연결됨. 동쪽 끝부분은 파괴되어 명확하지 않음. 북측 제5줄 계장은 제6줄 계장에서 약 1.6m 떨어진 지점에 축조. 정상부는 제6줄 계장보다 0.6m 정도 낮음. 축조방법은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음. 제5줄 계장의 서쪽 끝은 서면의 제4줄 계장과 연결되고, 아울러 서쪽 제3줄 계장과도 연결됨. 동쪽 끝부분의 연결은 명확하지 않음. 가운데부분에는 계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워서 설치한 장대석을 볼 수 있음. 계장은 가운데부분의 돌무더기 위에서부터 시작하여 높이로 볼 때 먼저 쌓은 돌무지 주위에 주변과 접할 수 있음. 북측 제4줄 계장은 제5줄 계장에서 약 1.7m 떨어진 지점에 축조하였는데, 계장의 높이는 2.6m 임. 제5줄 계장보다 0.8m 정도 낮음. 계장 아래에서 평평하게 깐 깨진 산돌 1층을 볼 수 있는데, 그 두께는 약 0.4m임. 계장하부에 보이는 석재는 비교적 크고 두꺼운 반면에, 계장 상부에는 앞에서와 같은 납작한 돌을 사용함. 계장 바깥에 역시 버팀석을 세움. 제4줄 계장은 서북모서리에서 서측의 제5줄 계장과 연결된 후, 더욱 확장되어 서면의 제3·4줄 계장과 연결됨. 동쪽 끝부분 동면은 제5줄 계장과 연결됨. 북측 제3줄 계장은 제4줄 계장에서 약 1.6m 떨어진 지점에 축조되었는데, 제4줄 계장보다 1.2m 정도 낮음. 계장은 지표 위에 바로 축조하였고, 높이는 2m여 정도임. 계장축조방법과 석재는 제4·5줄 계장과 같음. 석재는 대부분 돌임. 계장 외측에 세워진 버팀석은 비교적 작고, 몇 개가 연접되어 있음. 석판은 일반적으로 길이 1.2m, 너비 약 0.4~0.5m, 두께 약 0.15~0.2m 정도임. 서쪽 끝부분은 서면의 제1줄 계장과 연결되었고, 동쪽 끝부분은 동면의 제3줄 계장과 연결. 북측 제2줄 계장은 제3줄 계장에서 약 1.5m 떨어진 지점에 축조. 제3줄 계장보다 1m 정도 낮은데, 아마 파손되었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 계장은 지표면 바로 위에 축조하였고, 계장 높이는 1.3m 임. 계장을 쌓는데 사용한 석재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산석으로, 석재의 크기는 0.6m×0.4m×0.3m 정도임. 계장 바깥에 버팀석을 세웠는데, 버팀석은 일반적으로 0.8m×0.4m×0.3m 정도임. 계장의 서쪽 끝부분은 서측 제3줄 계장과 연결되고, 동쪽 끝부분은 동면의 제2줄 계장과 서로 연결. 제1줄 계장은 지표면에 축조. 북쪽으로 약 1.3m 떨어진 지점에 제2줄 계장이 축조되어 있음. 제1줄 계장은 일찍이 파괴되어 중간에 석재 1층만이 겨우 남아 있고, 동북모서리 부분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음. 계장의 높이는 1m 정도임. 계장을 쌓는데 사용한 돌은 비교적 크고, 일부는 가공하였는데, 석재의 크기는 0.8m×0.6m×0.4m 정도임. 장의 바깥에는 버팀석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가 2.5m이지만, 대부분은 길이 1~1.5m, 너비 0.8~0.4m, 두께 0.4m 임. 계장의 서쪽 끝부분은 서측의 제2줄 계장과 연결되어 있고, 동쪽 끝부분은 동면의 제1줄 계장과 연결됨.
동측면은 지세가 낮은 산기슭 아래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계장을 쌓은 돌을 비교적 높게 하고 계장 층수 또한 많게 함으로써, 높이를 맞추고자 하였음. 동측면에서는 12줄의 계장을 볼 수 있는데, 다른 3면보다 많음. 동측면의 제3~12줄 계장은 축조방법이 북면의 계장과 기본적으로 일치하는데, 간격은 조금 조밀함. 다만 파손이 심하여 석재의 결실이 비교적 많음. 제1·2줄의 계장은 보존이 비교적 양호. 제2줄 계장은 거의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음. 제2줄 계장은 제3줄 계장과 약 1.5m 떨어져 있고, 높이는 약 2m이며, 제3줄 계장보다 0.3m 정도 낮음. 계장은 지표면 위에 축조하였고, 남쪽 끝부분은 약간 파괴됨. 계장 축조에 사용된 석재 대부분은 자연 산돌이 깨진 것인데, 돌들은 가공되지 않은 것으로, 크기는 일반적으로 0.6m×0.4m×0.3m 임. 제1줄 계장 또한 지표면에 축조. 제2줄 계장 외측 1/3·2/3 지점과 제1줄 계장과의 사이로 각각 동남방향으로 호선을 그리며 쌓은 계장이 있음. 호선 계장 동쪽 끝이 제 1줄 계장과 연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임. 그 작용에 대해서는 더욱 진일보한 연구가 필요. 제1줄 계장과 제2줄 계장과의 거리는 가장 먼 것은 7m에 달하고, 반호형(半弧形)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러한 반호형 계장은 산비탈에 무덤이 자리하였기 때문에, 붕괴되어 외장된 것으로 보임. 제1줄 계장은 대부분 붕괴되어, 석재 1층만 겨우 볼 수 있는데, 석재는 약간 가공되었고, 크기는 일반적으로 1m×0.6m×0.4m 정도임. 계장 네면 바깥 주위에는 버팀석이 한 줄 돌아가는데, 현재는 대부분 파손. 버팀석 중 가장 큰 것은 길이가 2m, 너비 1m, 두께가 0.5m 정도이지만, 일반적으로는 1.5m×1m×0.4m 정도임. 산기슭 위에 위치한 서면의 버팀석은 대부분 납작한 형태이고, 크기가 작은데, 일반적으로 0.6m×0.4m×0.3m 정도임.
동기류, 철기류, 기와류가 출토되었음. 기와류는 대부분 분구표면 중·상부에서 대부분 출토되었고, 아랫쪽에서는 비교적 적은 양이 출토. 중앙 도굴갱 안과 남쪽의 버려진 돌무지 중에서는 출토되지 않음. 암키와와 수키와만 출토되었을 뿐, 와당은 출토되지 않음. 기와출토범위는 분구표면의 약 1/2에 해당. 암키와는 밀집되어 출토되었는데, 체적은 4.5입방미터임. 묘상에 남아 있는 기와의 총량은 약 10~12입방미터로 추정됨. 만약 촘촘히 덮는다면, 이들 기와들의 면적은 150㎡를 넘을 것으로 추정. 또한 경사도와 맞물리는 관계를 고려한다면, 덮은 면적은 약 100㎡로 추정됨. 그러므로 칠성산0871호묘에 사용된 기와는 단지 석광을 덮는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 암키와의 색깔은 회색과 짙은 회색이 약 95%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나머지 5%는 엷은 홍색이며, 갈색은 극소수임. 기와 대부분은 두께가 고르지 않음. 배면에는 모두 굵은 승문이 있고, 내면에는 포문이 있음. 와신에 부호가 새겨진 암키와가 극소수 출토되기도 하나, 문자가 새겨진 암키와는 없음. 기와 가장자리의 승문에는 마르기 전에 손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많이 보임. 손가락으로 횡·사·평행·교차 등 여러 모양으로 무늬효과를 내어, 장식성을 갖추고 있음. 수키와 또한 대부분 회색이고, 와태(瓦胎)는 대다수가 비교적 얇음. 모제임. 내면에는 모두 포문이 있음. 와두에 근거하여 무견(無肩)과 유견(有肩) 두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무견형식의 수량이 훨씬 많음. 유견수키와는 모두 사견(斜肩)임. 견상(肩上)에 돌출된 부분이 있음. 경부를 보면 요경(凹頸), 평경(平頸) 두 종류가 있음. 무견수키와 형태에는 두 종류가 있음.
역사적 의미
칠성산0871호묘는 칠성산묘구 중에서 대형무덤이고, 지리위치는 우월하며, 능역은 개활하고, 배장묘(제대), 능단, 묘역포석판 등 시설이 있는 것 등으로 보아 고구려의 왕릉으로 추정.
무덤은 계장식 축조방법을 채용. 축조방법은 안에서 바깥으로,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축조하면서 겹겹이 계장을 구축. 계장과 계장사이에는 돌로 채움. 계장의 높이를 바깥으로 갈수록 계단상태로 점점 낮아지게 하면서 계장식의 적석묘를 구축. 이러한 건축구조는 바깥에서 안으로 겹겹히 들여 쌓는 계단묘보다 이른 형태임. 높은 계장의 무덤은 계단묘의 서막이라고 설명할 수 있음. 계장식 축조방법은 규칙적이지 않고, 축조상의 편의성이 보임. 계장과 계장사이의 거리는 같지 않고, 계장 양끝부분의 만나는 곳은 가지런하지 못하며, 심지어 땅의 형세에 따라 변화하거나 자의대로 계장을 증가시킴. 이러한 모습들은 모두 계단식축조방식보다 먼저 출현하는 제작방법임. 석재 사용에 있어서 계장은 대부분 자연산석이고, 강자갈을 일부 사용. 사용된 돌들은 대부분 가공되지 않았고, 일부에서 약간 가공된 돌들이 보이는데, 이는 초기 고구려적석묘의 특징임. 무덤 동쪽의 제1줄 계장과 2줄 계장 사이의 비스듬한 벽은 대략 반호형임. 무덤 남면 제1줄 계장과 동면 제1줄 계장이 만나는 곳은 각을 이루지 않고, 한 쪽이 약간 반호상태로 계장을 쌓았음. 이러한 제작방법은 장백현 간구자고분군의 적석묘축조방법과 유사. 분구에서 수집된 대량의 암키와는 모두 승문이며, 승문 위에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넓은 띠무늬를 만듦. 수키와의 이음새부분은 와견이 낮거나 보이지 않았는데, 이러한 제작방법은 초기 기와의 풍격·특징과 같음.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칠성산0871호묘의 연대는 2세기를 넘지 않는 고구려초기왕릉이라고 할 수 있음. 장복유, 손인걸, 지용등은 고구려 제6대왕인 태조왕으로 비정하기도 하였고, 집안 왕릉 보고서에서는 동천왕의 무덤으로, 위존성은 산상왕릉으로 비정한 바 있음. 왕호와 장지명 등을 고려하여 임기환은 신대왕이나 고국천왕으로 비정하기도 함. 그러나, 동제보요장식이나 철제 갑옷편으로 보아 2세기 초로는 볼 수 없으며, 뒤이어 축조된 임강묘와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3세기대로 비정하는 것이 합리적임.
무덤은 계장식 축조방법을 채용. 축조방법은 안에서 바깥으로,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축조하면서 겹겹이 계장을 구축. 계장과 계장사이에는 돌로 채움. 계장의 높이를 바깥으로 갈수록 계단상태로 점점 낮아지게 하면서 계장식의 적석묘를 구축. 이러한 건축구조는 바깥에서 안으로 겹겹히 들여 쌓는 계단묘보다 이른 형태임. 높은 계장의 무덤은 계단묘의 서막이라고 설명할 수 있음. 계장식 축조방법은 규칙적이지 않고, 축조상의 편의성이 보임. 계장과 계장사이의 거리는 같지 않고, 계장 양끝부분의 만나는 곳은 가지런하지 못하며, 심지어 땅의 형세에 따라 변화하거나 자의대로 계장을 증가시킴. 이러한 모습들은 모두 계단식축조방식보다 먼저 출현하는 제작방법임. 석재 사용에 있어서 계장은 대부분 자연산석이고, 강자갈을 일부 사용. 사용된 돌들은 대부분 가공되지 않았고, 일부에서 약간 가공된 돌들이 보이는데, 이는 초기 고구려적석묘의 특징임. 무덤 동쪽의 제1줄 계장과 2줄 계장 사이의 비스듬한 벽은 대략 반호형임. 무덤 남면 제1줄 계장과 동면 제1줄 계장이 만나는 곳은 각을 이루지 않고, 한 쪽이 약간 반호상태로 계장을 쌓았음. 이러한 제작방법은 장백현 간구자고분군의 적석묘축조방법과 유사. 분구에서 수집된 대량의 암키와는 모두 승문이며, 승문 위에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넓은 띠무늬를 만듦. 수키와의 이음새부분은 와견이 낮거나 보이지 않았는데, 이러한 제작방법은 초기 기와의 풍격·특징과 같음.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칠성산0871호묘의 연대는 2세기를 넘지 않는 고구려초기왕릉이라고 할 수 있음. 장복유, 손인걸, 지용등은 고구려 제6대왕인 태조왕으로 비정하기도 하였고, 집안 왕릉 보고서에서는 동천왕의 무덤으로, 위존성은 산상왕릉으로 비정한 바 있음. 왕호와 장지명 등을 고려하여 임기환은 신대왕이나 고국천왕으로 비정하기도 함. 그러나, 동제보요장식이나 철제 갑옷편으로 보아 2세기 초로는 볼 수 없으며, 뒤이어 축조된 임강묘와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3세기대로 비정하는 것이 합리적임.
자연환경
통구고분군 칠성산묘구 북변에 위치함. 통구하 서안의 칠성산 남쪽 비탈에 위치. 북쪽에서 흘러오는 통구하는 산기슭 아래를 거쳐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과 합류함. 무덤은 서북이 높고, 동남쪽이 낮은 산비탈에 위치.
고분의 주변환경은 산과 강으로 둘러 싸여져 매우 훌륭함. 고분 서쪽으로는 골짜기가 있고, 북쪽으로는 높은 산과 접해져있음. 동․남쪽의 지세는 매우 광활함. 강 너머 국내성이 내려다 보임.
서남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 칠성산211호묘가 있음. 동북쪽으로 약 2㎞ 떨어진 지점에는 산성하전창편36호묘가 있음. 무덤 북측의 1조의 배장묘(제대)를 제외하고, 칠성산871호묘 주위에 기타 다른 무덤은 보이지 않음.
고분의 주변환경은 산과 강으로 둘러 싸여져 매우 훌륭함. 고분 서쪽으로는 골짜기가 있고, 북쪽으로는 높은 산과 접해져있음. 동․남쪽의 지세는 매우 광활함. 강 너머 국내성이 내려다 보임.
서남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 칠성산211호묘가 있음. 동북쪽으로 약 2㎞ 떨어진 지점에는 산성하전창편36호묘가 있음. 무덤 북측의 1조의 배장묘(제대)를 제외하고, 칠성산871호묘 주위에 기타 다른 무덤은 보이지 않음.
유물정보
銅製 步搖 1점 外 銅器類 2점, 鐵製 鏢 1점 外 鐵器類 2점, 瓦類.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傅佳欣, 『集安高句麗王陵』, 文物出版社, 2004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張福有·孫仁傑·遲勇, 『高句麗王陵通考』,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張福有·孫仁杰·遲勇, 「高句麗王陵通考要報」『東北史地』 2007-4, 2007
· 임기환, 「고구려의 장지명 왕호와 왕릉비정」『고구려 왕릉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
· 傅佳欣, 『集安高句麗王陵』, 文物出版社, 2004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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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환, 「고구려의 장지명 왕호와 왕릉비정」『고구려 왕릉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