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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吉林省 集安市)
연대
4세기 중엽을 상한, 4세기 초로 추정.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75~1976집안현문물보관소
(集安縣文物保管所)
1976년 봄 농업학대한운동에 맞추어 정리 작업이 이루어짐. 통구대대가 현재 이곳에 계단식 밭을 만들었을 때, 이 묘에 대해 정리를 진행.
구조특징
일찍이 심하게 파괴됨. 발굴당시 정황을 보면, 묘의 동북·서남부분은 보존이 비교적 양호하여 아랫면에서 2~3단의 계단을 볼 수 있었다고 함. 하지만 그 위의 계단이 파괴되면서 정확한 층수를 확인할 수 없음.
칠성산1096호묘는 방단계제적석묘임. 산비탈을 따라 서남쪽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위치. 바닥에는 길이 30~130㎝, 너비 25~60㎝, 두께 20~30㎝의 강자갈을 약 50㎝ 정도 두께로 깔았음. 무덤 네 주위 60~100㎝의 범위에 두께 20~30㎝의 석회암을 깔았음.
분구 정상부에는 묘실로 추정되는 3개의 구덩이가 있음. 첫 번째 구덩이의 상부에서는 천정석으로 보이는 큰 돌이 발견되었는데, 돌의 길이는 2m 정도임. 제2·3 구덩이에서는 천정석이 발견되지 않음. 두 번째 구덩이는 묘의 서쪽부분에서 약 6m 정도 떨어져 있음. 가지런한 한줄의 석렬은 제1묘실과 2묘실의 격벽이 됨. 즉 제1묘실의 동벽이 제2묘실의 서벽이 됨. 묘의 서쪽 가장자리에서 약 12m 떨어진 지점에 석렬이 발견되는데, 제2묘실의 동벽 및 제3묘실의 서벽으로 추정. 묘실은 일찍이 파괴되어 구조를 명확히 알 수 없음. 제2묘실의 남쪽부분에 한 줄의 묘도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무덤은 묘도와 작은 묘실 3개를 갖추고 있는 적석묘라고 할 수 있음.
통구고분군의 실측 보고서에 표현된 것과 실제 보고된 고분 편호가 서로 맞질 않아서 고분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음.
묘도와 묘실이 근접한 부근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동기, 철기, 금동마구 및 시유도기편 등이 출토됨.
역사적 의미
칠성산 1096호묘는 동일 분구 내에 3개의 매장부가 있는 다실묘로, 특히 2호 묘실에서는 묘도가 확인되기도 함. 묘의 형태를 보면 중형의 계단(방단계제)적석묘임. 묘실이 비교적 작고 축조기술이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천정석이 있고 묘도가 있는 경우, “방단계제동실묘”라고 부름. 반면 적석묘 가운데, 절천정총· 장군총 등과 같이, 묘실이 비교적 높고 크며, 축조가 정연한 무덤을 “방단계제석실묘”라고 부름. 한편 봉토묘 가운데 각저총· 무용총· 삼실총 같은 무덤은 “봉토석실묘”라고 부름. 즉 이러한 무덤과 구별을 편하게 하기 위해, 비교적 작은 무덤을 “방단계제동실묘”로 부르고 있는 것임. 이러한 방단계제적석묘는 석광적석묘에서 방단계제석실묘로 발전하는 중간단계의 무덤형태임. 4세기 대에 이르러, 방단계제석실묘와 봉토석실묘가 출현하지만, 방단계제동실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님. 이것은 방단계제동실묘와 방단계제석실묘가 선후관계가 있는 것은 아님. “방단계제석실묘”라는 새로운 묘제를 채용한 이후에도, 옛 묘제인 “방단계제동실묘”는 여전히 존재. 즉 방단계제동실묘는 방단계제석실묘 및 봉토석실묘와 매우 장기간 병존함.
기존에 발견된 고구려무덤 가운데, 일부에서 짐승뼈들이 출토되는데, 칠성산1096호묘에서도 말뼈들이 무덤의 기단석 부근에서 출토되었음. 처음 발견되어 도굴로 인한 것인지 알 수 없음. 다만, 『北史』고구려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집안에 안치해 두고 …… 초상에는 눈물을 흘리며 곡하지만, 장사지낼 때는 북치고 춤추며 풍악을 울리여 장송한다. 매장이 끝나면 죽은 사람이 생존시에 썼던 의복·장신구·수레·말 등을 가져다가 무덤 옆에 놓아두는데, 장래에 참석한 사람들이 다투어 그것을 가져간다.”는 기록이 있어서, 고구려 당시의 장송의례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으나, 아직 명확하지 않음. 묘에서 출토된 철제 꺽쇠와 철제 장막걸이쇠는 방단계제동실묘에서 보임. 철제 장막걸이쇠는 관이나 묘벽에 있는 못으로, 휘장 등을 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됨. 고구려의 무덤이 지표 위에 축조되어서, 관은 대부분 썩어 존재하지 않아, 원래 면모를 볼 수는 없음. 집안에서 출토된 금동기는 고구려에서 제작한 것으로, 금동기는 적석묘에서 많이 출토됨. 봉토묘에서는 출토량이 적은데, 이는 봉토묘의 유물은 도굴이 용이한 까닭이라고 추정됨. 적석묘에서 출토된 금동기는 대부분 마구이고, 다른 장식품은 매우 적음. 이는 집안지역이 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 것임. 또한 말은 대부분 전쟁에 사용되었는데, 많이 귀하며, 마구도 신경을 써서 연구하였기 때문.
칠성산1096호묘에서 출토된 동기를 보면 동한~위진시기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과 같음. 칠성산 1096호묘에서 출토된 구연부가 외반되고 바닥이 평평하며 3개의 짐승말 모양의 다리를 가진 용머리 초두는 서진대의 호북한양채전1호묘와 남경등저산서묘에서 출토된 초두와 상당히 유사함. 그러므로 이 동기는 고구려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고 추정. 칠성산1096호묘에서 출토된 황색시유도기호는 고구려에서 만든 것임. 황색시유도기호의 태유(胎釉) 모두 삼실묘에서 출토된 황색시유도기와 상당히 유사하나, 형태상으로는 약간 차이가 있는데, 삼실묘에서 출토된 황색시유도기호는 입이 넓고 밖으로 벌여졌으며, 복부에 가로로 손잡이가 4개가 있음. 삼실묘의 축조연대는 일반적으로 5세기 초~중엽으로 추정. 삼실묘의 축조연대와 비슷한 마선구 1호묘와 장천2호묘에서 출토된 황색시유도기와도 비슷함. 이것은 4·5세기 이후, 고구려의 토기제작기술에 매우 큰 향상이 있었다는 것으로, 그 중 입이 넓게 벌어진 사이호는 고구려 황색시유도기 가운데, 독특한 풍격을 가진 토기임. 칠성산1096호묘에서 출토된 황색시유도기호가 비록 입이 밖으로 벌어졌으나, 입술 폭이 비교적 좁고, 복부에 손잡이가 달려있지 않음. 그 형태는 같은 묘에서 출토된 2개의 회색 도기호와 같은데, 한대 도기호의 풍격을 갖추고 있음. 이는 당시 한문화의 영향아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음. 소성 수준은 높지 않고, 일부는 유약이 얇게 발라져 있고, 광택이 없음. 일부는 유약이 형성되지 못하고, 작고 부서진 조각 대부분은 태토가 물러서 유약이 박리되었음. 그러므로 축조연대는 삼실묘에 비하여 이르다고 할 수 있음. 삼실묘의 연대는 5세기 이후로 추정되는데, 칠성산1096호묘의 축조연대는 4세기 중엽을 상한, 4세기 초로 추정됨.
자연환경
칠성산1096호묘는, 칠성산묘구 동부에 윛. 칠성산묘구는 집안현성 西郊 약 1㎞ 지점에 위치. 통구고분군 중 무덤이 가장 밀집된 묘구임. 통구대대 제9 생산대의 작은 산기슭에 위치.
묘 주위에는 다른 고분들이 드문드문 있음. 그 서변은 다른 적석묘와 서로 연접하였고, 서북쪽으로 70~80m 밖으로는 고구려시기의 무덤들이 분포. 무덤의 뒤쪽에는 낮은 언덕이 있고, 남쪽의 작은 산기슭 아래에는 통구대대사원의 주택이 있음. 동쪽 비탈에서 0.5리도 되지 않는 곳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압록강으로 유입되는 통구하가 있고, 동쪽으로 향해서는 국내성 전경을 볼 수 있음.
유물정보
金銅製鞍橋 2점 外 金銅器類 55점. 銅製鼎 1점 外 銅器類 3점. 鐵製鏃 2점 外 鐵器類 21점. 黃色施釉陶器 3점 外 土器類 2점. 馬骨.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張雪巖, 「集安縣兩座高句麗積石墓的清理」『考古』 1979-1,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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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산 1096호묘(七星山 1096號墓) 자료번호 : ku.d_0001_0040_0030_3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