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자산성내의 고분군(山城子山城內의 古墳群)
출토지
집안 산성자산성(集安 山城子山城)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13 | 關野貞이 谷井·금서 문학사, 율산 공학사 등과 함께 조선총독부의 촉탁을 받아서 조사, 고분의 존재 확인. 관야정, 1914 「만주집안현급び평양부근に어ける고구려시대の유적(1, 2)」『고고학잡지』5-3, 4에 발표. | |
1982 | 이전복, 1982 「고구려환도산성」『문물』1982-6 ; 1982 「집안고구려산성자산성고략」『구시학간』1982-1; 1994, 『동북고고연구』(2) 중주고적출판사. 李殿福(길림성 박물관)이 산성 내에서 고구려시기의 고분 37기 확인. 적석묘와 봉토묘로 분류한 다음, 적석묘는 다시 적석묘, 방단적석묘, 계단적석묘로 세분. 적석묘는 대부분 서벽 아래쪽의 산기슭에 분포. 봉토묘는 궁전지 서남쪽 30m 지점에 위치. 제2급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됨. | |
2001~2003 |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의 金旭東(팀장), 李光日(집행팀장), 谷德平, 賈瑩, 王昭, 張玉春, 趙昕, 于立群, 劉慶彬. 집안시박물관의 王鵬勇, 林世賢, 董峰, 四平市文物管理委員會協公室 趙殿坤, 德惠市文物保護所 孫東文, 九臺市文物保護所 姚啓龍, 中國人民解放軍 總裝備部勘探測繪總院 楊林春, 吉林大學 文學院考古學系在校硏究生 唐淼, 張小輝, 李蜀蕾, 王樂, 華陽, 金君麗, 何景成 등 참여. 산성 내에서 고구려시기의 고분 38기 확인.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박물관 편저, 2004《환도산성-2001~2003년 집안환도산성조사시굴보고》문물출판사에서 발표. 2003년 조사 당시 산성 내부에서 총 38기의 무덤을 확인. 주로 남부의 臺地와 산 아래의 평탄하고 완만한 지대에 분포. 산성 내부를 자연 골짜기를 경계로 4구역으로 구분했는데, 그 중 서측 산기슭 아래의 Ⅰ구역 동부와 동벽 안쪽의 Ⅲ구역 동부에 비교적 밀집 분포해 있음. 모두 고구려 시기에 속함. 적석묘, 방단적석묘, 봉토묘 등 3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적석묘 30기, 방단적석묘 6기, 봉토묘 2기임. |
구조특징
적석묘가 모두 30기가 발견되었음. 석재는 인공적인 손질을 거치지 않은 화강암를 쌓아 만들었음. 석재는 대부분 규칙적이지 않으며, 크기가 다름. 구조도 대체로 완전하지 않음. 심하게 파괴되었음.
궁전지 동측의 완만한 산비탈에 6호묘, 7호묘, 8호묘, 9호묘, 10호묘, 11호묘, 12호묘, 13호묘, 14호묘, 15호묘, 16호묘, 17호묘 등 12기가 밀집 분포. 고분 간의 거리는 3-20m로 소형 고분군 형성.
Ⅰ구역 동부의 고분군은, Ⅰ구역 동부에 위치, 산성 내부를 관통하는 골짜기 북단 부근의 평탄한 대지상에 23호묘, 24효묘, 26호묘, 27호묘, 28호묘, 29호묘, 30호묘, 31효묘, 32호묘 등 10기가 소형 고분군을 이룸.
방단적석묘가 모두 6기가 발견되었음. 기단은 모두 단층이며, 잘 다듬은 장방형 혹은 장조형 돌을 쌓아 축조하였음. 고분의 주체 구조는 화강암을 사용하여 쌓았음. 석재의 모양은 일정하지 않음.
봉토묘가 모두 2기 발견되었음.
궁전지 동측의 완만한 산비탈에 6호묘, 7호묘, 8호묘, 9호묘, 10호묘, 11호묘, 12호묘, 13호묘, 14호묘, 15호묘, 16호묘, 17호묘 등 12기가 밀집 분포. 고분 간의 거리는 3-20m로 소형 고분군 형성.
Ⅰ구역 동부의 고분군은, Ⅰ구역 동부에 위치, 산성 내부를 관통하는 골짜기 북단 부근의 평탄한 대지상에 23호묘, 24효묘, 26호묘, 27호묘, 28호묘, 29호묘, 30호묘, 31효묘, 32호묘 등 10기가 소형 고분군을 이룸.
방단적석묘가 모두 6기가 발견되었음. 기단은 모두 단층이며, 잘 다듬은 장방형 혹은 장조형 돌을 쌓아 축조하였음. 고분의 주체 구조는 화강암을 사용하여 쌓았음. 석재의 모양은 일정하지 않음.
봉토묘가 모두 2기 발견되었음.
역사적 의미
고구려시기 고분으로 추정되지만 조영시기를 파악하기는 힘듦. 궁전지 앞의 봉토묘를 근거로 342년 前燕의 환도성 함락 또는 427년 평양천도 이후 산성자산성이 쇠락하거나 폐기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하지만(이전복 1982 및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박물관 편저, 2004), 궁전지 유적은 6세기 이후에 조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따라서 고분의 조영시기에 대해서도 보다 면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음.
참고문헌
· 關野貞, 「滿洲輯安縣及び平壤附近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一·二)」『考古學雜誌』 5-3·4, 日本考古學會, 1914
· 池內宏, 『通溝』 上: 滿洲國通化省輯安縣高句麗遺蹟, 日滿文化協會, 1938
· 李殿福, 「高句麗丸都山城」『文物』 1982-6, 1982
· 金旭東 主編, 『丸都山城:2001~2003年西安丸都山城調査試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
· 池內宏, 『通溝』 上: 滿洲國通化省輯安縣高句麗遺蹟, 日滿文化協會, 1938
· 李殿福, 「高句麗丸都山城」『文物』 1982-6, 1982
· 金旭東 主編, 『丸都山城:2001~2003年西安丸都山城調査試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