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하 356호묘(山城下 0356號墓)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吉林省 集安市)
연대
1~3세기로 추정됨.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76 | 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방기동, 위존성, 소흥균, 곽문괴, 류훤당, 하명, 임지덕, 염의지, 유람, 장설암)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方起東, 魏存成, 蘇興鈞, 郭文魁, 劉萱堂, 何明, 林至德, 閻毅之, 柳嵐, 張雪岩)) | 9월 말~11월 초에 조사됨. 농업생산력에 협력하기 위해 통구촌 농민의 협조하에 95기의 고분을 정리조사 하였는데 54기는 심각하게 파괴당하였고 41기만 파괴가 경미한 상태였음. 41기 고분 중에 2기는 적석묘이고 39기는 봉토묘임. 조사 당시 출토된 유물은 172건임. |
구조특징
1976년 조사시에는 대형방단계제봉석석광묘(연접묘)에 동서 길이 33m, 남북 너비 20-13m, 높이 2.6m 정도, 1997년 조사시에는 대형유단적석석광묘(연접묘)동서 길이 28m, 남북 너비 15m, 높이 2.2m로 확인됨.
평면은 장방형이고 묘향은 310°임.
분구 위에는 3개의 교란된 것으로 보이는 함몰갱이 있으며, 불에 탄 용석이 있음.
가장 동부의 고분은 JSM356①, 중부의 고분은 JSM356②, 서부의 고분은 JSM356③로 편호됨. 세 고분의 길이와 너비는 고르지 않음. JSM356①은 동서 길이 12.5m, 남북 너비 19m, 높이 2.3m임. JSM356②는 동서 길이 11.5m, 남북 너비 19m, 높이 2.6m임. JSM356③은 동서 길이 10.5m, 남북 너비 16m, 높이 1.7m임.
고분 외형을 보면 한 겹의 산돌로 덮여졌는데 언덕모양을 띠고 있음.
JSM356①의 봉석를 제거해보니 4~5층의 매우 정연하지 않은 계단이 노출됨. 계단을 축조한 돌은 비교적 작은데 보통 길이가 15~25㎝임. 각 계단은 2~3층으로 쌓았으며 계단 사이는 30~40㎝의 높이 차이가 남.
계단은 축조상 비교적 복잡함. 밖에서 안으로 제4층 내지 제5층 계단이 계단석으로 축조됨. 제4층 계단은 지면으로부터 축조되어 편평함을 이룬 후 제5층은 제4층의 상면에 축조하여 계단을 형성함. 반면 바깥면의 세층의 계단은 계장식으로 축조하는데 즉 3층 계장은 돌로 동시에 지면으로부터 축조하고 중간에 산돌으로 틈을 메움. 세층은 다음 차례의 낮은 계단에 기대어 외부를 보호하도록 함.
세 고분의 축조시간은 모두 같지는 않음. JSM356①과 JSM356②의 두 고분은 원래 1개의 완전한 고분으로 원래 하나의 묘터 위에 축조됨. 지면으로부터 높이가 약 1.5m 정도인 곳에 당시 축조되었는데 JSM356①의 동에서 서로 12.5m 되는 곳에서 동서 너비 약 90㎝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긴 공간이 하나 나타남. 이 공간이 고분을 동서 양단으로 나누며 이후 각기 동서 양측에 고분을 축조하였음. 공간의 동측은 JSM356①의 서쪽이며 공간의 서측은 JSM356②의 동쪽이 되어서 JSM356①와 JSM356②는 서로 마주하여 매우 정연하게 축조하였음. 두 벽을 다 축조한 뒤에 생긴 공간에는 산돌으로 메워 외관을 보면 묘는 마치 하나의 온전한 고분처럼 보임. 따라서 두 고분 축조의 연대 차이는 없음.
JSM356③은 JSM356②의 서쪽에 위치함. JSM356②의 서쪽 바깥쪽에는 경사를 띠는 둘레돌이 축조되었으며 JSM356③은 JSM356②의 서쪽 둘레돌에 연접하여 동쪽 둘레돌로 삼았음. 이처럼 JSM356③은 앞의 JSM356①과 JSM356②이 다 축조된 이후에 재차 축조한 세 번째 고분이므로 축조연대는 JSM356①과 JSM356②에 비해 늦음.
세 묘실은 모두 교란되어진 상태이며 묘실의 확실한 범위 역시 불분명함. JSM356①은 묘정의 깊이가 약 55㎝인 곳을 중심으로 길이와 너비가 약 2m 정도인 범위에서 부분적으로 작은 강자갈로 가지런히 깔은 석면을 발견하였음. 그 서쪽 면에서 소형 돌로 축조한 불규칙한 석장이 일부가 있으며 서북모서리에서는 귀달린잔 하나를 발견함.
JSM356②의 교란갱의 범위는 묘정 깊이 약 80㎝인 곳을 중심으로 길이 3m, 너비 2m임. 교란갱의 북측에는 불타 흘러내린 상태의 용석 한 덩어리와 불타서 변형된 강자갈들이 있음. 또한 불타서 훼손된 청동기와 불에 타서 흘러내린 상태의 돌이 함께 엉겨 붙어 있기도 함.
JSM356③은 묘정 깊이가 약 60㎝인 곳을 중심으로 길이와 너비가 2-1.1m인 범위내에 중소형 돌로 축조한 일부가 있으며 그 사이에는 강자갈 한 겹이 깔려 있는데 비교적 석면이 가지런함. 그 위에서는 철제 거멀못이 하나 발견되었으며 교란갱 밖의 남측에서는 호의 잔편이 세 편 보임.
위의 정황을 보면 출토 유물의 부위와 강자갈이 깔린 곳은 묘실이 자리한 곳일 가능성이 있음.
평면은 장방형이고 묘향은 310°임.
분구 위에는 3개의 교란된 것으로 보이는 함몰갱이 있으며, 불에 탄 용석이 있음.
가장 동부의 고분은 JSM356①, 중부의 고분은 JSM356②, 서부의 고분은 JSM356③로 편호됨. 세 고분의 길이와 너비는 고르지 않음. JSM356①은 동서 길이 12.5m, 남북 너비 19m, 높이 2.3m임. JSM356②는 동서 길이 11.5m, 남북 너비 19m, 높이 2.6m임. JSM356③은 동서 길이 10.5m, 남북 너비 16m, 높이 1.7m임.
고분 외형을 보면 한 겹의 산돌로 덮여졌는데 언덕모양을 띠고 있음.
JSM356①의 봉석를 제거해보니 4~5층의 매우 정연하지 않은 계단이 노출됨. 계단을 축조한 돌은 비교적 작은데 보통 길이가 15~25㎝임. 각 계단은 2~3층으로 쌓았으며 계단 사이는 30~40㎝의 높이 차이가 남.
계단은 축조상 비교적 복잡함. 밖에서 안으로 제4층 내지 제5층 계단이 계단석으로 축조됨. 제4층 계단은 지면으로부터 축조되어 편평함을 이룬 후 제5층은 제4층의 상면에 축조하여 계단을 형성함. 반면 바깥면의 세층의 계단은 계장식으로 축조하는데 즉 3층 계장은 돌로 동시에 지면으로부터 축조하고 중간에 산돌으로 틈을 메움. 세층은 다음 차례의 낮은 계단에 기대어 외부를 보호하도록 함.
세 고분의 축조시간은 모두 같지는 않음. JSM356①과 JSM356②의 두 고분은 원래 1개의 완전한 고분으로 원래 하나의 묘터 위에 축조됨. 지면으로부터 높이가 약 1.5m 정도인 곳에 당시 축조되었는데 JSM356①의 동에서 서로 12.5m 되는 곳에서 동서 너비 약 90㎝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긴 공간이 하나 나타남. 이 공간이 고분을 동서 양단으로 나누며 이후 각기 동서 양측에 고분을 축조하였음. 공간의 동측은 JSM356①의 서쪽이며 공간의 서측은 JSM356②의 동쪽이 되어서 JSM356①와 JSM356②는 서로 마주하여 매우 정연하게 축조하였음. 두 벽을 다 축조한 뒤에 생긴 공간에는 산돌으로 메워 외관을 보면 묘는 마치 하나의 온전한 고분처럼 보임. 따라서 두 고분 축조의 연대 차이는 없음.
JSM356③은 JSM356②의 서쪽에 위치함. JSM356②의 서쪽 바깥쪽에는 경사를 띠는 둘레돌이 축조되었으며 JSM356③은 JSM356②의 서쪽 둘레돌에 연접하여 동쪽 둘레돌로 삼았음. 이처럼 JSM356③은 앞의 JSM356①과 JSM356②이 다 축조된 이후에 재차 축조한 세 번째 고분이므로 축조연대는 JSM356①과 JSM356②에 비해 늦음.
세 묘실은 모두 교란되어진 상태이며 묘실의 확실한 범위 역시 불분명함. JSM356①은 묘정의 깊이가 약 55㎝인 곳을 중심으로 길이와 너비가 약 2m 정도인 범위에서 부분적으로 작은 강자갈로 가지런히 깔은 석면을 발견하였음. 그 서쪽 면에서 소형 돌로 축조한 불규칙한 석장이 일부가 있으며 서북모서리에서는 귀달린잔 하나를 발견함.
JSM356②의 교란갱의 범위는 묘정 깊이 약 80㎝인 곳을 중심으로 길이 3m, 너비 2m임. 교란갱의 북측에는 불타 흘러내린 상태의 용석 한 덩어리와 불타서 변형된 강자갈들이 있음. 또한 불타서 훼손된 청동기와 불에 타서 흘러내린 상태의 돌이 함께 엉겨 붙어 있기도 함.
JSM356③은 묘정 깊이가 약 60㎝인 곳을 중심으로 길이와 너비가 2-1.1m인 범위내에 중소형 돌로 축조한 일부가 있으며 그 사이에는 강자갈 한 겹이 깔려 있는데 비교적 석면이 가지런함. 그 위에서는 철제 거멀못이 하나 발견되었으며 교란갱 밖의 남측에서는 호의 잔편이 세 편 보임.
위의 정황을 보면 출토 유물의 부위와 강자갈이 깔린 곳은 묘실이 자리한 곳일 가능성이 있음.
역사적 의미
출토 유물인 귀달린잔은 모래 섞인 재질로 매우 거칠며 손으로 제작하였으며 기형이 정연하지 못함. 철제 괭이는 서한의 철제 괭이와 매우 유사함.
방단계제봉토석광묘에서 철제 거멀못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목제의 장구가 있었다고 추정됨. 철제 거멀못으로 제작된 장구는 목재가 두껍고 무거우며 거칠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제작은 비교적 간단했을 것임. 형식은 목곽식으로 추정됨.
해당 고분의 묘실을 보면 묘실의 석광은 아주 분명치 않으며 가장자리는 정연하지 않는데 이는 교란과 유관한 것 이외에 축조상 일정한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음. 당시 매장할 때 고분 축조를 마친 후 먼저 묘광을 축조하지 않고 먼저 관곽을 놓은 후에 돌로 주위를 막아 견고히 하고 돌로 덮었기 때문에 장구가 부패한 뒤에는 천정석이 없고 정성을 들여 축조한 석광이 없어 바로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묘실의 천정부에는 함몰갱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음.
고분에서는 불에 탄 용석과 불타서 훼손된 청동기와 불에 타서 녹은 돌이 하나로 엉겨붙은 것들이 있는데 이런 의식은 묘상에서 진행된 것이 확실함. 고구려는 화장습속이 있었고 이런 습속은 5세기 이전의 적석묘 중에서 비교적 유행함.
JSM356①와 JSM356②무덤은 하나의 분구에 두 기가 있는 쌍 무덤이며 JSM356②에 연접하여 JSM356③이 축조되었으므로 JSM356①와 JSM356②의 비슷한 시기로 비정되고 JSM356③은 가장 늦게 축조되었음.
방단계제봉토석광묘에서 철제 거멀못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목제의 장구가 있었다고 추정됨. 철제 거멀못으로 제작된 장구는 목재가 두껍고 무거우며 거칠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제작은 비교적 간단했을 것임. 형식은 목곽식으로 추정됨.
해당 고분의 묘실을 보면 묘실의 석광은 아주 분명치 않으며 가장자리는 정연하지 않는데 이는 교란과 유관한 것 이외에 축조상 일정한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음. 당시 매장할 때 고분 축조를 마친 후 먼저 묘광을 축조하지 않고 먼저 관곽을 놓은 후에 돌로 주위를 막아 견고히 하고 돌로 덮었기 때문에 장구가 부패한 뒤에는 천정석이 없고 정성을 들여 축조한 석광이 없어 바로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묘실의 천정부에는 함몰갱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음.
고분에서는 불에 탄 용석과 불타서 훼손된 청동기와 불에 타서 녹은 돌이 하나로 엉겨붙은 것들이 있는데 이런 의식은 묘상에서 진행된 것이 확실함. 고구려는 화장습속이 있었고 이런 습속은 5세기 이전의 적석묘 중에서 비교적 유행함.
JSM356①와 JSM356②무덤은 하나의 분구에 두 기가 있는 쌍 무덤이며 JSM356②에 연접하여 JSM356③이 축조되었으므로 JSM356①와 JSM356②의 비슷한 시기로 비정되고 JSM356③은 가장 늦게 축조되었음.
자연환경
산성하 동대파편 고분군의 중상부에 위치.
환도산과 우산의 서쪽 기슭이 마치 두 개의 천연 병풍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에 너비 약 0.5㎞로 동북에서 서남으로 이어지는 협곡이 있음. 이 협곡의 동북에서 통구하가 북에서 꺾어져 남으로 흐르고 있는데 통구하 서북과 동남의 하안가는 오랜 기간 충적되어 형성된 하곡대지임. 동대파 지역의 고분군은 이 대지 동측의 산아래의 완만한 지대에 위치하고 있음.
동대파편 고분군이 자리한 지대는 산세를 따라 동고서저로 형성되었는데 범위는 서북에서 동남까지의 길이 약 400m, 너비 약 200m 정도임.
고분군의 고분은 기본적으로 질서 있게 배열되었는데 묘지의 남부와 언덕 위에는 대다수 적석묘(봉석묘)이며 북쪽으로 봉토묘가 점차 많아져 북부는 모두 봉토묘를 이루고 있음.
환도산과 우산의 서쪽 기슭이 마치 두 개의 천연 병풍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에 너비 약 0.5㎞로 동북에서 서남으로 이어지는 협곡이 있음. 이 협곡의 동북에서 통구하가 북에서 꺾어져 남으로 흐르고 있는데 통구하 서북과 동남의 하안가는 오랜 기간 충적되어 형성된 하곡대지임. 동대파 지역의 고분군은 이 대지 동측의 산아래의 완만한 지대에 위치하고 있음.
동대파편 고분군이 자리한 지대는 산세를 따라 동고서저로 형성되었는데 범위는 서북에서 동남까지의 길이 약 400m, 너비 약 200m 정도임.
고분군의 고분은 기본적으로 질서 있게 배열되었는데 묘지의 남부와 언덕 위에는 대다수 적석묘(봉석묘)이며 북쪽으로 봉토묘가 점차 많아져 북부는 모두 봉토묘를 이루고 있음.
유물정보
單耳杯 外 陶器 1점, 鐵扒鋦 外 鐵器 1점.
참고문헌
· 吉林省博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張雪岩, 「吉林集安東大坡高句麗墓葬發掘簡報」『考古』 1991-7, 1991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吉林集安東大坡高句麗墓葬發掘簡報」『吉林集安高句麗墓葬報告集』 (再收錄), 科學出版社, 2009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張雪岩, 「吉林集安東大坡高句麗墓葬發掘簡報」『考古』 1991-7, 1991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吉林集安東大坡高句麗墓葬發掘簡報」『吉林集安高句麗墓葬報告集』 (再收錄), 科學出版社, 2009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