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하 1411호묘(山城下 1411號墓)
출토지
집안시(集安市)
조사내용
|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 1969 | 길림성박물관 (吉林省博物館) | 각 변 길이 13.6m, 높이 약 4m의 봉토석실의 쌍실묘 확인. |
| 1997 | 길림성박물관,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박물관 (吉林省博物館,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博物館) | 각 변 길이 18m, 높이 7m로 확인. |
| 2004, 2005 | 조사기간, 조사기관 등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張福有, 孫仁杰, 遲勇 등이 집안 경내의 고구려유적을 전면 재조사하면서 정리함. |
구조특징
대형 봉토석실쌍실묘
장방형에 南偏東 2°.
2개의 묘실이 동서로 배열되어 있는데 각기 묘문과 연도(甬道)가 있음. 동묘실은 일찍 열렸음. 현지인에 의하면 서묘실의 연도(甬道)는 역시 활짝 열려 있어 후에 빗물에 침식되었으며, 지금은 봉토에 막혀 버림. 동묘실을 조사 및 실측했으나 서묘실은 아직 정리되지 않아 구조가 상세하지 않음. 동묘실은 커다란 석재로 축조하였는데 석재는 거칠게 가공되어 모서리가 곧지 않으며, 대체로 정연한 한 면이 묘실로 향하며, 틈에는 백회를 말라 메웠음. 동묘실은 장방형으로 남북 길이 3.36m, 동서 너비 2.02m임. 묘실 네 벽은 대략 안으로 기울어졌으며, 높이는 1m이며, 그 위에는 4층의 평행고임식 천정을 축조하였으며, 이후 천정돌을 더하여 합계한 전체높이는 2.72m임. 동묘실에는 어떤 유물도 남아 있지 않음. 묘문은 남벽 중앙부에 설치되었으며 정연한 석판으로 구축하였는데 높이 1.35m, 너비 0.9m임. 좌우 문틀(門框)은 2개의 직립한 석판으로 만들었는데 모두 너비 30㎝, 두께 15㎝이며, 그 위에는 장대석 하나가 가로로 걸쳐 있어 문미(門楣)를 이루며, 문턱(門檻)은 2개의 석조로 축조하였는데 높이가 10㎝임. 묘문 바깥에는 묘문에 붙은 연도(甬道)의 천정석과 바닥석에는 각기 2개의 원형 문지도리구멍(門樞孔)이 뚫려 있음. 또한 밖으로 절반이 열리는 2짝의 판석으로 된 돌문이 설치되었는데 한 짝은 이미 훼손되었으며 지금은 하나만 남은 상태임.
연도(甬道)는 높이 1.6m, 너비 1.2m, 세로길이 2.06m임. 좌우의 양 벽에는 대략 다듬어진 자연석조로 축조되었으며, 천정은 2개의 대석판이 덮혀 있음.
고분 동측 북부에 봉토 기저부에 기대어 석비가 하나 세워져 있음. 碑身은 약간 한쪽으로 기울어졌으며, 바닥부는 유실되어 내려온 봉토에 매몰됨. 방위와 碑底 아래에 가지런하고 평평한 기초 등이 없는 정황을 보면, 이 석비는 확실히 위치가 옮겨졌으며 원래는 분롱 정상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음. 석비는 화강암질이며, 위는 정교하고 아래는 거친 팔각기둥 모양을 띠며, 정상부는 무딘 팔각원추 모양을 다듬음. 원기둥의 8변의 각 길이는 고르지 않아 형상은 아주 규칙적이지 않지만 보기에 모서리선은 가지런하고, 石面은 정연하며, 상당히 규칙적으로 보임. 頂部 팔각원추의 직경은 0.48m, 높이 0.14m이며, 원기둥의 바닥부는 직경 0.85m, 전체 높이 1.16m임. 碑身에는 글자를 새긴 흔적이 없음.
장방형에 南偏東 2°.
2개의 묘실이 동서로 배열되어 있는데 각기 묘문과 연도(甬道)가 있음. 동묘실은 일찍 열렸음. 현지인에 의하면 서묘실의 연도(甬道)는 역시 활짝 열려 있어 후에 빗물에 침식되었으며, 지금은 봉토에 막혀 버림. 동묘실을 조사 및 실측했으나 서묘실은 아직 정리되지 않아 구조가 상세하지 않음. 동묘실은 커다란 석재로 축조하였는데 석재는 거칠게 가공되어 모서리가 곧지 않으며, 대체로 정연한 한 면이 묘실로 향하며, 틈에는 백회를 말라 메웠음. 동묘실은 장방형으로 남북 길이 3.36m, 동서 너비 2.02m임. 묘실 네 벽은 대략 안으로 기울어졌으며, 높이는 1m이며, 그 위에는 4층의 평행고임식 천정을 축조하였으며, 이후 천정돌을 더하여 합계한 전체높이는 2.72m임. 동묘실에는 어떤 유물도 남아 있지 않음. 묘문은 남벽 중앙부에 설치되었으며 정연한 석판으로 구축하였는데 높이 1.35m, 너비 0.9m임. 좌우 문틀(門框)은 2개의 직립한 석판으로 만들었는데 모두 너비 30㎝, 두께 15㎝이며, 그 위에는 장대석 하나가 가로로 걸쳐 있어 문미(門楣)를 이루며, 문턱(門檻)은 2개의 석조로 축조하였는데 높이가 10㎝임. 묘문 바깥에는 묘문에 붙은 연도(甬道)의 천정석과 바닥석에는 각기 2개의 원형 문지도리구멍(門樞孔)이 뚫려 있음. 또한 밖으로 절반이 열리는 2짝의 판석으로 된 돌문이 설치되었는데 한 짝은 이미 훼손되었으며 지금은 하나만 남은 상태임.
연도(甬道)는 높이 1.6m, 너비 1.2m, 세로길이 2.06m임. 좌우의 양 벽에는 대략 다듬어진 자연석조로 축조되었으며, 천정은 2개의 대석판이 덮혀 있음.
고분 동측 북부에 봉토 기저부에 기대어 석비가 하나 세워져 있음. 碑身은 약간 한쪽으로 기울어졌으며, 바닥부는 유실되어 내려온 봉토에 매몰됨. 방위와 碑底 아래에 가지런하고 평평한 기초 등이 없는 정황을 보면, 이 석비는 확실히 위치가 옮겨졌으며 원래는 분롱 정상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음. 석비는 화강암질이며, 위는 정교하고 아래는 거친 팔각기둥 모양을 띠며, 정상부는 무딘 팔각원추 모양을 다듬음. 원기둥의 8변의 각 길이는 고르지 않아 형상은 아주 규칙적이지 않지만 보기에 모서리선은 가지런하고, 石面은 정연하며, 상당히 규칙적으로 보임. 頂部 팔각원추의 직경은 0.48m, 높이 0.14m이며, 원기둥의 바닥부는 직경 0.85m, 전체 높이 1.16m임. 碑身에는 글자를 새긴 흔적이 없음.
내부규모 및 특징
1997년 각 변 길이 18m, 높이 7m.
역사적 의미
해당 고분은 통구고묘군 가운데 그런대로 상중등급의 규모라 할만 하고 거칠게 축조되어 고구려 중소귀족의 고분에 속함. 고분의 방향은 남쪽을 향해 이미 열려진 동묘실를 보자면 정부는 4층의 평행고임식 천정으로 통구고묘군 고구려 봉토묘 형식의 변천 순서에 비추어 보자면 연대는 약 5세기 중후기에 해당함.
해당 고분에 보이는 석비는 우산하 1080호묘에서도 확인됨. 석비는 본래 묘상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광개토왕릉비문에서도 “墓上立碑”란 표현이 확인되고 있음. 묘상입비는 고구려가 늦어도 5세기 중후기가 시작되면 왕릉이 아니라 중소 귀족묘에서도 나타나 적어도 6세기까지 지속됨. 산성하 1411호묘와 우산하 1080호묘의 석비는 광개토왕릉비와 같은 명문이 없어 석비의 성격을 판단하기 어려우나 광개토왕릉비에 보이는 수묘인연호가 표기되었을 가능성 있음. 귀족묘의 석비는 고구려왕릉의 “묘상입비”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그 연대는 왕릉의 석비연대인 4세기말에서 5세기초보다 조금 늦으며, 특히 산성하 1411호묘의 석비는 5세기초로부터 멀지 않음.
해당 고분에 보이는 석비는 우산하 1080호묘에서도 확인됨. 석비는 본래 묘상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광개토왕릉비문에서도 “墓上立碑”란 표현이 확인되고 있음. 묘상입비는 고구려가 늦어도 5세기 중후기가 시작되면 왕릉이 아니라 중소 귀족묘에서도 나타나 적어도 6세기까지 지속됨. 산성하 1411호묘와 우산하 1080호묘의 석비는 광개토왕릉비와 같은 명문이 없어 석비의 성격을 판단하기 어려우나 광개토왕릉비에 보이는 수묘인연호가 표기되었을 가능성 있음. 귀족묘의 석비는 고구려왕릉의 “묘상입비”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그 연대는 왕릉의 석비연대인 4세기말에서 5세기초보다 조금 늦으며, 특히 산성하 1411호묘의 석비는 5세기초로부터 멀지 않음.
자연환경
산성하 1411호묘는 산성하 묘구의 서북 모서리에 위치함. 산성하 묘구는 남으로 집안현성과 약 2.5㎞ 떨어진 곳에 위치함. 통구하가 깊고 험한 협곡을 따라 동에서 서로 환도산성 남벽 아래를 통과하다 산성의 서남모서리에서 꺾어져 남쪽으로 향해 국내성을 통과하고, 이후 서쪽으로 압록강에 유입됨. 산성하 묘구는 환도산성 남벽 동단과 통구하의 사이에 평평하게 펼쳐진 골짜기에 위치함. 이곳은 대다수 대형적석묘와 소형 봉토동실묘가 있는데 비교적 대형의 봉토석실묘가 8기 있음. 산성하 1411호묘의 동남 100-150m 범위 내에는 형묘, 제묘, 절천정묘, 귀갑묘 등이 자리하고 있음.
참고문헌
· 吉林省博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國家文物局 篇,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3
· 方起東·林至德, 「集安洞溝兩座樹立石碑的高句麗古墓」『考古與文物』 1983-2, 1983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洞溝兩座樹立石碑的高句麗古墓」『吉林集安高句麗墓葬報告集』 (再收錄), 科學出版社, 2009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國家文物局 篇,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3
· 方起東·林至德, 「集安洞溝兩座樹立石碑的高句麗古墓」『考古與文物』 1983-2, 1983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洞溝兩座樹立石碑的高句麗古墓」『吉林集安高句麗墓葬報告集』 (再收錄), 科學出版社, 2009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