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하 전창 145호묘(山城下 塼廠 0145號墓)
출토지
집안시(集安市)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66 | 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 | 산성하 145호묘(JSM0145)로 편호. |
1997 | 길림성박물관,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박물관 (吉林省博物館,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博物館) | 편호 중복현상으로 산성하 전창 145호묘(JS塼M145, JSZM0145)로 개편함. 길이 42m, 너비 36㎝, 높이 3.5m의 초대형 계단적석석광묘로 확정함. |
2003 |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박물관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博物館) | 10월 20일-11월 6일(18일간) 孫仁杰, 遲勇이 묘광을 정리하는 동시에 탐색갱을 설치하여 무덤 주위를 발굴하였고, 발굴 시 유물 80여건을 출토함. |
2005 | 집안시문물국 (集安市文物局) | 4월-5월 孫仁杰, 遲勇이 조사. |
구조특징
계장식 계단석광묘(階墻式 階壇石壙墓, 2003년 조사), 유단적석석광묘(有壇積石石壙墓, 2005년 조사)
자연 풍화된 산돌로 축조함.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언덕으로 인해 고분의 양끝은 약 2m의 고도 차이가 있음. 고분의 남측에는 계단 14단이 설치되었고, 동면에는 현재 9단이 남아 있고, 서면에는 10단이 보이고 있으며, 북면은 아직 정리하지 않아 계단 수를 자세히 알 수 없음. 고분 정상부의 함몰갱은 석광이 있던 자리임. 묘상의 봉한 돌은 비교적 적음. 고분 정리를 통해 고찰해 보면 축조법은 JQM871호묘의 축조법과 기본적으로 동일. 우선 지표의 아점토 위에 자연 깨진산돌(碎山石塊)로 길이 및 너비 약 28m, 높이 2.5m의 丘狀으로 돌을 쌓음. 다시 돌무지의 네 둘레에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계장식 계단을 축조함. 마지막에 고분 頂部의 중앙에 묘광을 축조함.
계단은 동측에 아직 3단, 북측에 2단이 보존되어 있으며, 서측과 남측에는 아직 전면적인 정리를 하지 않아 정황이 상세하지 않음. 계장석은 조금 규정화되지만 크기가 균일하지 않는데 큰 것은 0.7m×0.5×0.3m, 작은 것은 약 0.2×0.2×0.1m임. 돌무지의 내부 구조는 해부하지 않아 명확치 않음. 계장 설명은 남면을 축조순서에 따라 안에서 밖으로 서술함. 제14단 계장은 북으로 묘 중심과 약 6m 떨어진 곳에 축조되었는데 동남에서 서북 방향에 이르는 계장의 높이는 약 0.9m이며 돌무지 위에 축조됨. 계장 축조석재는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연 산돌로, 석괴의 크기는 고르지 않지만 대다수 길이 0.6-0.4m, 너비 0.4-0.2m임. 이 계장의 동단에는 동면 제 9단 계장과, 서단은 서면의 제 10단 계장과 접할 수 있음. 제13단 계장은 제14단 계장 밖에서 약 1m 거리에 축조되었으며, 방향은 동일하며, 석재와 축조법 역시 동일함. 계장의 높이는 약 0.7m이며, 양단이 서로 접하는 곳은 명확하지 않으며, 頂面은 제14단 계장과 0.2m 정도의 높이 차이가 있음. 제12단 계장은 북으로 제13단 계장과 약 1m 거리에 위치하며, 계장 높이는 약 0.7m이며 축조법과 사용된 석재는 모두 위의 계장과 동일하며, 계장의 양단이 연접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음. 제11단 계장은 북으로 제12단 계장과 약 0.7m 떨어져 있으며, 계장 높이는 약 0.8m임. 서단 계장의 벽체는 아래로 미끄러져 밖으로 움직였으며, 구축방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하며, 양단의 연접은 명확하지 않음. 제10단 계장은 북으로 제11단 계장과 약 1.3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약 0.7m이며, 양단의 벽체면은 다수가 붕괴되었으며, 축조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하며, 양단의 연접은 명확하지 않음. 제9단 계장은 북으로 제10단 계장의 약 1.6m 떨어져 있으며, 계장 높이는 약 0.7m이며, 축조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하지만 양단의 연접은 명확하지 않음. 제8단 계장은 북으로 제9단 계장과 약 0.8m 떨어져 있으며, 이 계장은 기울어진 상태로 거의 정동에서 정서 방향이며, 계장 높이는 0.8m이며, 축조 석재는 위의 계장과 동일하며, 계장의 동서 양단은 연접이 안 될 수 있음. 제7단 계장은 북으로 제8단 계장과 약 1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0.8m이며, 벽체는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며, 축조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함. 제6단 계장은 북으로 제7단 계장과 약 0.6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0.6m이며, 축조법은 변화가 없음. 제5단 계장은 북으로 제6단 계장과 약 0.7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약 0.6m이며, 벽체는 돌무지 위에 축조하였으며, 사용된 석재는 비교적 작음. 제4단 계장은 북으로 제5단 계장과 약 1.2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0.6m이며, 돌무지 위에 축조하였으며, 석재와 축조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함. 제3단 계장은 북으로 제4단 계장과 약 0.8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1.1m이며, 지표 위에 직접 축조하였음. 계장 축조에 사용된 석괴는 비교적 큰데 일반적으로 0.6×0.5×0.2m 정도이며,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연 산돌(碎山石)임. 계장 양단의 연접은 명확하지 않음. 제2단 계장은 북으로 제3단 계장과 약 0.9m 떨어져 있으며, 계장 높이는 0.8m이며, 지표로부터 축조하였으며, 계장 축조에 사용된 석괴는 제3단 계장과 동일함. 제1단 계장은 북으로 제2단 계장과 약 1m 떨어져 있으며, 축조석은 파괴되어 겨우 1-2층만 남아 있으며, 지표에 직접 축조하였음. 이 계장의 外側에는 계장을 보호하는 板狀石이 보이는데 석판이 큰 것은 0.8m 정도이며, 다수는 이미 외장력에 의해 붕괴됨. 계장과 계장 사이에는 깨진 산돌(碎山石塊)로 메웠는데 이 부분의 석괴는 모두 작음. 보편적으로 0.4×0.3×0.2m 정도임. 동서 양측의 계단 축조법은 사용된 석재 모두 남면과 일치하는데 오직 계단의 단수가 일치하지 않으므로 장황하게 서술하지 않음.
고분 頂部, 즉 남면의 제14단·동면의 제9단·서면의 제10단 계장의 중앙에는 길이 및 너비 약 13m인 방형의 평대가 있는데 석광은 평대의 중앙부에 구축되었음. 석광은 이미 도굴당해 교란되었으며, 석광을 축조한 석재는 이미 다수가 존재하지 않고 동변과 북변만이 1층 보일 뿐임. 석재는 상대적으로 가공된 산돌로 큰 것은 0.5m를 넘지 않음. 석광의 깊이는 0.4m 정도이며, 바닥에는 강돌(河卵石)이 깔려 있고 부서진 작은 깨진 산돌(碎山石)이 함께 섞여 있음. 바닥돌의 두께는 약 0.2m이며, 산돌과 강돌의 크기는 서로 비슷하여 모두 약 8㎝ 정도임. 바닥에 깔린 돌의 범위에 따르면 석광은 장방형으로 동서 길이 5m, 남북 너비 4.5m 정도임.
자연 풍화된 산돌로 축조함.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언덕으로 인해 고분의 양끝은 약 2m의 고도 차이가 있음. 고분의 남측에는 계단 14단이 설치되었고, 동면에는 현재 9단이 남아 있고, 서면에는 10단이 보이고 있으며, 북면은 아직 정리하지 않아 계단 수를 자세히 알 수 없음. 고분 정상부의 함몰갱은 석광이 있던 자리임. 묘상의 봉한 돌은 비교적 적음. 고분 정리를 통해 고찰해 보면 축조법은 JQM871호묘의 축조법과 기본적으로 동일. 우선 지표의 아점토 위에 자연 깨진산돌(碎山石塊)로 길이 및 너비 약 28m, 높이 2.5m의 丘狀으로 돌을 쌓음. 다시 돌무지의 네 둘레에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계장식 계단을 축조함. 마지막에 고분 頂部의 중앙에 묘광을 축조함.
계단은 동측에 아직 3단, 북측에 2단이 보존되어 있으며, 서측과 남측에는 아직 전면적인 정리를 하지 않아 정황이 상세하지 않음. 계장석은 조금 규정화되지만 크기가 균일하지 않는데 큰 것은 0.7m×0.5×0.3m, 작은 것은 약 0.2×0.2×0.1m임. 돌무지의 내부 구조는 해부하지 않아 명확치 않음. 계장 설명은 남면을 축조순서에 따라 안에서 밖으로 서술함. 제14단 계장은 북으로 묘 중심과 약 6m 떨어진 곳에 축조되었는데 동남에서 서북 방향에 이르는 계장의 높이는 약 0.9m이며 돌무지 위에 축조됨. 계장 축조석재는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연 산돌로, 석괴의 크기는 고르지 않지만 대다수 길이 0.6-0.4m, 너비 0.4-0.2m임. 이 계장의 동단에는 동면 제 9단 계장과, 서단은 서면의 제 10단 계장과 접할 수 있음. 제13단 계장은 제14단 계장 밖에서 약 1m 거리에 축조되었으며, 방향은 동일하며, 석재와 축조법 역시 동일함. 계장의 높이는 약 0.7m이며, 양단이 서로 접하는 곳은 명확하지 않으며, 頂面은 제14단 계장과 0.2m 정도의 높이 차이가 있음. 제12단 계장은 북으로 제13단 계장과 약 1m 거리에 위치하며, 계장 높이는 약 0.7m이며 축조법과 사용된 석재는 모두 위의 계장과 동일하며, 계장의 양단이 연접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음. 제11단 계장은 북으로 제12단 계장과 약 0.7m 떨어져 있으며, 계장 높이는 약 0.8m임. 서단 계장의 벽체는 아래로 미끄러져 밖으로 움직였으며, 구축방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하며, 양단의 연접은 명확하지 않음. 제10단 계장은 북으로 제11단 계장과 약 1.3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약 0.7m이며, 양단의 벽체면은 다수가 붕괴되었으며, 축조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하며, 양단의 연접은 명확하지 않음. 제9단 계장은 북으로 제10단 계장의 약 1.6m 떨어져 있으며, 계장 높이는 약 0.7m이며, 축조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하지만 양단의 연접은 명확하지 않음. 제8단 계장은 북으로 제9단 계장과 약 0.8m 떨어져 있으며, 이 계장은 기울어진 상태로 거의 정동에서 정서 방향이며, 계장 높이는 0.8m이며, 축조 석재는 위의 계장과 동일하며, 계장의 동서 양단은 연접이 안 될 수 있음. 제7단 계장은 북으로 제8단 계장과 약 1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0.8m이며, 벽체는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며, 축조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함. 제6단 계장은 북으로 제7단 계장과 약 0.6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0.6m이며, 축조법은 변화가 없음. 제5단 계장은 북으로 제6단 계장과 약 0.7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약 0.6m이며, 벽체는 돌무지 위에 축조하였으며, 사용된 석재는 비교적 작음. 제4단 계장은 북으로 제5단 계장과 약 1.2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0.6m이며, 돌무지 위에 축조하였으며, 석재와 축조법은 위의 계장과 동일함. 제3단 계장은 북으로 제4단 계장과 약 0.8m 떨어져 있으며, 계장의 높이는 1.1m이며, 지표 위에 직접 축조하였음. 계장 축조에 사용된 석괴는 비교적 큰데 일반적으로 0.6×0.5×0.2m 정도이며,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연 산돌(碎山石)임. 계장 양단의 연접은 명확하지 않음. 제2단 계장은 북으로 제3단 계장과 약 0.9m 떨어져 있으며, 계장 높이는 0.8m이며, 지표로부터 축조하였으며, 계장 축조에 사용된 석괴는 제3단 계장과 동일함. 제1단 계장은 북으로 제2단 계장과 약 1m 떨어져 있으며, 축조석은 파괴되어 겨우 1-2층만 남아 있으며, 지표에 직접 축조하였음. 이 계장의 外側에는 계장을 보호하는 板狀石이 보이는데 석판이 큰 것은 0.8m 정도이며, 다수는 이미 외장력에 의해 붕괴됨. 계장과 계장 사이에는 깨진 산돌(碎山石塊)로 메웠는데 이 부분의 석괴는 모두 작음. 보편적으로 0.4×0.3×0.2m 정도임. 동서 양측의 계단 축조법은 사용된 석재 모두 남면과 일치하는데 오직 계단의 단수가 일치하지 않으므로 장황하게 서술하지 않음.
고분 頂部, 즉 남면의 제14단·동면의 제9단·서면의 제10단 계장의 중앙에는 길이 및 너비 약 13m인 방형의 평대가 있는데 석광은 평대의 중앙부에 구축되었음. 석광은 이미 도굴당해 교란되었으며, 석광을 축조한 석재는 이미 다수가 존재하지 않고 동변과 북변만이 1층 보일 뿐임. 석재는 상대적으로 가공된 산돌로 큰 것은 0.5m를 넘지 않음. 석광의 깊이는 0.4m 정도이며, 바닥에는 강돌(河卵石)이 깔려 있고 부서진 작은 깨진 산돌(碎山石)이 함께 섞여 있음. 바닥돌의 두께는 약 0.2m이며, 산돌과 강돌의 크기는 서로 비슷하여 모두 약 8㎝ 정도임. 바닥에 깔린 돌의 범위에 따르면 석광은 장방형으로 동서 길이 5m, 남북 너비 4.5m 정도임.
내부규모 및 특징
동변 길이 약 31.5m, 서변 길이 약 36m, 북변 길이 약 37m, 남변 길이 약 37m, 높이 3.8m.(사면의 길이가 불일치)
역사적 의미
해당 고분은 칠성산 871호묘 및 마선구 626호묘와 동일한 계장식 계단의 구축방식을 채용함. 해당 고분의 높이는 약 4m로 계장 각 단의 높이는 겨우 0.8m 정도인데 고분의 높이가 약 7m이며 계장의 높이는 2m에 가까운 칠성산 871호묘의 구조에 비하면 많이 작음. 고구려 고분은 낮고 작은 무덤에서 높고 큰 무덤으로 발전한다는 연구에 따르면 해당 고분의 연대는 칠성산 871호묘 등에 비해 빠른 것으로 판단됨. 또한 고분을 축조하는데 사용된 돌을 보면 해당 고분은 사용된 석재는 모두 자연의 깨진 산돌(碎山石塊)로 아직 가공흔적이 없음. 이는 고구려 조기 적석묘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임. 이 밖에 묘광안에서 陶壺가 출토되는데 회백색 陶壺는 전형적 한대 陶壺의 풍격임. 한편 가장자리가 꺾이고(折沿), 입이 모아지고(斂口), 목이 긴(長頸) 陶壺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고구려 조기 陶壺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음. 종합 분석해보면 해당고분은 칠성산 871호묘보다 연대가 빨라서 기원 1세기 전후(2003년 조사) 또는 기원 2세기로 추정됨(2005년 조사).
고분의 규모가 아주 크며, 국내성과 환도산성의 사이의 절벽 위에 위치하여 지세가 높고 시야가 광활한 점을 볼 때, 묘주의 신분 지위가 높았음을 알 수 있음. 그러나 묘상에 기와류와 묘주의 신분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자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아직 왕릉임을 확인할 수 없음.
고분의 규모가 아주 크며, 국내성과 환도산성의 사이의 절벽 위에 위치하여 지세가 높고 시야가 광활한 점을 볼 때, 묘주의 신분 지위가 높았음을 알 수 있음. 그러나 묘상에 기와류와 묘주의 신분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자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아직 왕릉임을 확인할 수 없음.
자연환경
우산 서쪽 기슭의 성후촌 4조 북측 산 위에 위치함. 포권구 구장의 서북 산정상에 자리하고 있음. 국내성 북쪽 약 1㎞ 거리에 남북 방향의 골짜기가 있는데 현지인은 狍圈溝 라고 부름. 포권구 계곡 입구는 특히 문이 활짝 열린 대문과 같으며, 포권구 길이 약 500m는 포권구의 溝掌임.
고분의 동북은 점차 우산의 주봉에 접하게 되며, 서북은 단애인데 통구하가 단애 아래를 지나 구불구불 꺾여 남쪽에서 압록강으로 유입됨. 포권구 남쪽은 국내성 북문과 멀리 마주하고 있는데 서로간의 거리는 2㎞를 넘지 않음. 이곳의 지세는 우뚝 솟아 북으로 환도성, 남으로 국내성이 조망되며, 산성하 고분군과 만보정 고분군은 뚜렷히 눈에 들어옴. 고분의 북쪽 50m 거리에 기단적석묘 JSZM0244, 서남 20m 거리에는 계단적석묘 JSZM0147가 있으며, 동남으로 포권구와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맞은 편 산마루의 JSZM0036호묘가 있음.
고분의 동북은 점차 우산의 주봉에 접하게 되며, 서북은 단애인데 통구하가 단애 아래를 지나 구불구불 꺾여 남쪽에서 압록강으로 유입됨. 포권구 남쪽은 국내성 북문과 멀리 마주하고 있는데 서로간의 거리는 2㎞를 넘지 않음. 이곳의 지세는 우뚝 솟아 북으로 환도성, 남으로 국내성이 조망되며, 산성하 고분군과 만보정 고분군은 뚜렷히 눈에 들어옴. 고분의 북쪽 50m 거리에 기단적석묘 JSZM0244, 서남 20m 거리에는 계단적석묘 JSZM0147가 있으며, 동남으로 포권구와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맞은 편 산마루의 JSZM0036호묘가 있음.
유물정보
銅器 1점
帶卡 1점, 馬銜1점, 牛掌 1점 外 鐵器類 18점
陶器類 3점
帶卡 1점, 馬銜1점, 牛掌 1점 外 鐵器類 18점
陶器類 3점
참고문헌
· 吉林省博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國家文物局 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3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JSZM145號墓調査報告」『吉林集安高句麗墓葬報告集』, 科學出版社, 2009
· 國家文物局 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3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JSZM145號墓調査報告」『吉林集安高句麗墓葬報告集』, 科學出版社,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