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장군총 서남 건축유적지(集安 將軍塚 西南 建築遺蹟址)
출토지
집안시 태왕진 과수촌 3조
연대
고구려 중기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2003년 8월 4일 ~ 9월 20일 |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 | · 장군총 서남쪽 대지 위에서 이른 시기, 즉 고구려 시기 건축 구조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학술계는 고분과 관련된 건축유적으로 추정함. · 유적지는 보존 상태가 각기 다른데 1960년대에 유적지 중·북부가 대량의 군부대 병영을 건설하면서 유적지를 치명적으로 파괴함. 유적지 남부는 군부대 운동장으로 개발되었는데 유적지에 대한 파괴는 상대적으로 작음. 유적지의 동부는 1980년대 장군총을 왕래하는 현대 도로를 건설하면서 일정 정도 파괴됨. · 집안 고구려 유적 본체 보호 공정에 보조를 맞추어 진일보하게 이 중요 유적의 연대 및 성질을 확인하기 위해 이 유적에 대해 고고발굴을 진행함. 유적지 현황을 고려하면 이번 발굴은 탐색갱과 시굴갱을 서로 결합한 결합방식을 채택했으며, 유적지 남반부에서 유적 보호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구역은 전면을 드러냄. 유적 동부 및 북부에 대해서 현대 심하게 교란된 구역은 탐색갱이나 시굴갱을 서로 결합한 발굴방식을 택함. · 발굴 총면적은 1800㎡이며, 벽체(城體)·산수(散水)·배수구(涵洞)·문지(門址) 등의 유적으로 조성된 고구려 시기 대형 건축지이며, 대량의 고구려시기 건축 구조재가 출토되었음. |
구조특징
유적지는 과거에 도로가 통과하였고, 주민들의 통해이 잦아, 파괴가 심각하다. 때문에 온전한 건축배치 역시 불명확하다. 다만 현존 유적지 현상을 근거로 유적지 북부에 남은 두 줄의 벽체는 유적지 남부 벽체의 주향과 일치하고, 따라서 함께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벽체는 모두 비교적 넓으며, 그 구조 특징과 규격은 민주 유적지에서 확인된, 정원 혹은 부속건물 ‘원락(院落)’의 벽체와 유사하였다. 벽체 바깥쪽에는 배수를 위한 산수석을 설치한 것이 확인되었다. 또 벽체와 산수석의 배치를 종합해 볼때 동서로 대칭하는 2개의 원락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벽체는 모두 비교적 넓으며, 그 구조 특징과 규격은 민주 유적지에서 확인된, 정원 혹은 부속건물 ‘원락(院落)’의 벽체와 유사하였다. 벽체 바깥쪽에는 배수를 위한 산수석을 설치한 것이 확인되었다. 또 벽체와 산수석의 배치를 종합해 볼때 동서로 대칭하는 2개의 원락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의미
장군총 서남 건축 유적지는 심하게 파괴되어 원래의 건축 형식과 배치가 명확치 않고 출토유물도 건축부재만 있어 시대구분 근거는 약하다. 건축물의 성격 판단에 대해서도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유적지와 장군총의 정확한 관계는 명확치 않다. 다만 장군총 서남 건축지의 규모가 방대한 점이나, 장군총과 가까운 점, 배치 방향이 장군총과 부합하는 점 등은 두 유적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추정하게 한다. 학자들은 이 유적이 대체로 장군총 피장자의 제사와 관련된 시설로 파악하고 있다.
자연환경
건축유적은 집안시 태왕진 과수촌 3조에 위치하며 서남쪽으로 국내성과 약 7.5km 떨어져 있다. 통구 고분군 내 우산묘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유적은 용산(龍山) 남쪽 기슭의 지세가 약간 완만하고 좁고 긴 대지 위에 자리하고 있고, 동북으로 장군총과 약 100m 떨어져 있다. 지형적으로는 남북 길이 약 150m, 동서 너비 40-50m 비교적 평탄 대지로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은 지세이다.
유물정보
유적의 남벽 이북 40m 내의 구역에서 건축부재만 출토되었고, 나머지 구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2011, 「集安將軍墳西南建築遺址的考古發掘」『邊疆考古硏究』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