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 관지고성(吉林 官地古城 ; 官地城址)
출토지
吉林市 小官地居民區
조사내용
|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 1983년 4월 ~ 1985년 말 | 길림시 문물관리위원회(吉林市文物管理委員會) | · 길림시 문물관리위원회를 주축으로 7개 縣과 區의 문화재 일제조사와 문물지 편찬이 이루어졌음. · 이 조사에서 정리된 성들은 여러 시기에 걸친 것으로 총 63개가 조사되었는데, 이 때 새로 고구려 성이라고 밝혀진 것들이 많았음. 당시 고구려 성으로 조사된 것은 문물지의 표에 따르면, 용담산성, 동단산산성, 삼도령자산성, 랍법소립자산성, 횡도자남산산성, 육가자동산산성, 성자구패성, 지방구패성의 10개의 성곽이며 표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본문 설명에 고구려 성으로 나와있어 표를 만들때 누락된 것으로 보이는 대마종령산성, 표에도 나와있지 않고 본문에도 요금시대의 성이라고 결론짓고 있으나 고구려 시기의 토기편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관지고성도 고구려성에 포함시킬 수 있음. |
구조특징
평지성으로 장방형임. 성벽의 대부분은 이미 남아있지 않으며 겨우 서북모서리만 남아있음(國家文物局, 1993).
역사적 의미
성내 지표에 다량의 토기편이 흩어져 있는데, 이들 토기편은 서단산문화, 漢 ·부여 문화, 고구려 문화, 발해 문화, 요·금 문화에 속함. 이곳은 축성이전에 일찍이 사용되었던 옛 유적이었음을 알 수 있음. 관지고성의 연대는 요금시대의 유적이라고 초보적인 단정을 함[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3].
고고학자 이문신은 “고구려가 이곳(길림시교 일대)을 다스린 것은 아마도 광개토왕·장수왕 시기로 국력이 팽창하여 부여를 복속시킨 이후일 것”이라고 하였음. 고구려의 군사력이 제2송화강 유역까지 미친 시기에 대해서 『길림통지』에서는 대체로 남북조 북위 효문제(471-499재위) 延興(471-476) 년간 일 것으로 기록하였음[김진광, 2012].
고고학자 이문신은 “고구려가 이곳(길림시교 일대)을 다스린 것은 아마도 광개토왕·장수왕 시기로 국력이 팽창하여 부여를 복속시킨 이후일 것”이라고 하였음. 고구려의 군사력이 제2송화강 유역까지 미친 시기에 대해서 『길림통지』에서는 대체로 남북조 북위 효문제(471-499재위) 延興(471-476) 년간 일 것으로 기록하였음[김진광, 2012].
자연환경
吉林市 小官地居民區 남쪽 250m에 위치함. 제2송화강 우안에서 약 250m 떨어진 완만한 언덕위에 위치함.
유물정보
성 안에 마제 석기, 토기편(夾砂褐陶片, 繩文灰陶片, 泥質灰陶片) 및 도자기편(瓷片) 등이 흩어져 있음(國家文物局, 1993). 성내 지표에 다량의 토기편이 흩어져 있는데, 이들 토기편은 각각 서단산 문화, 漢, 부여 문화, 고구려 문화, 발해 문화, 요금 문화에 속함.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3, 『吉林市文物志』, 吉林文史出版社
· 國家文物局, 1993, 『中國文物地圖集』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 王禹浪·王宏北, 1994,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上), 哈爾濱出版社
· 董學增, 2004, 「吉林市歷史與文物回眸」『東北史地』2004-7
· 李鍾洙, 2004, 『夫余文化硏究』, 吉林大學 박사학위논문
· 김진광, 2012, 『북국발해탐험』, 박문사
· 양시은, 2013, 『고구려성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國家文物局, 1993, 『中國文物地圖集』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 王禹浪·王宏北, 1994,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上), 哈爾濱出版社
· 董學增, 2004, 「吉林市歷史與文物回眸」『東北史地』2004-7
· 李鍾洙, 2004, 『夫余文化硏究』, 吉林大學 박사학위논문
· 김진광, 2012, 『북국발해탐험』, 박문사
· 양시은, 2013, 『고구려성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