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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하산산성; 후성산성; 후석성산성(夾河山山城; 後城山城; 後石城山城)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784
  • 위치(출토지)
    遼寧省 庄河市 荷花山鎭 郭家村
  • 지역
    집안(集安市)
  • 유형
    성곽>산성
  • 형태사항
    둘레 4,650m(國家文物局 主編, 2009,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下), 西安地圖出版社; 5,000m)  , 2점 
출토지
요녕성 장하시 하화산진 곽가촌(遼寧省 庄河市 荷花山鎭 郭家村)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2005대련시문물고고연구소
(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
과거에도 문물부는 여러 차례 조사를 진행했었는데, 이번 2005년 11월~12월 조사에서는 전성과 후성을 포괄하는 성산산성의 둘레, 뻗은 방향, 구조 및 분포 상황 등에 대한 조사와 측량을 진행하였음(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 2006, 「大連城山山城2005年調査報告」『東北史地』2006-4).
구조특징
산세를 따라 돌을 축조한 포곡식 산성으로, 평면은 불규칙한 평행사변형임. 남벽과 북벽은 넓고, 동벽과 서벽은 좁음. 선성은 전체적으로 서남-동북방향임. 성문 3개(國家文物局 主編,2009,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下), 西安地圖出版社;남문과 북문 2개), 치 5개, 요망대 1개 설치, 남문과 북문에 모두 옹성이 설치되어 있음. 남문과 북문은 홍립자산과 협하산 두 산 사이의 낮고 오목한 곳에 위치함. 남문이 정문임. 동반부의 일부 성벽은 홍립자산에 위치하며, 길이도 비교적 짧음. 서반부의 일부 성벽은 협하산 위에 위치하며 길이가 비교적 긺.
후성의 성벽은 편의상 A, B, C, D구간으로 나누어 조사함.
A구간은 후성의 남벽으로 실제로는 동남-서북 방향으로 뻗어있음. 이 구간의 성벽이 가장 길며, 전체 길이 약 1,455m임. 경사도의 기복이 가장 크며, 서쪽 구간 중간 쯤의 경사도가 동쪽 중간 구간보다 큼. 성문 1개, 치 3개, 요망대 1개 등이 설치되어 있음.
A구간의 동반부는 남문을 기점으로 동쪽 구간인데 길이 약 286m로 매우 짧음.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산능선을 따라 위쪽으로 분포하며, 종점은 홍립자산의 제2고봉으로 해발 293m임. 성벽 일부 구간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나 일부 구간은 모두 무너졌음. 성벽 축조 방식은 비교적 규칙적인데, 기타 구간은 대부분 크기가 다르고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괴를 쌓아 올렸음. 어떤 구간에는 거석이 수풀처럼 버티고 서 있어서 성벽을 쌓지 않았음에도 마치 거석이 성벽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음. 일반적으로 특히 가파른 곳에는 성벽을 쌓아올린 석괴가 매우 크고 두께는 육중함. 성벽은 사다리 모양으로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음. 남문의 옹성 좌측 바깥 모서리를 기점으로 3m 지점의 성벽 아래의 너비는 5.4m, 성벽 위의 너비는 3.7m임. 성문 부군의 성벽이 특히 넓으며, 석괴를 쌓는 방식도 가공한 것으로 문의 양측에 있는 기석이 비교적 큼. 기점에서 33-48m 구간의 성벽 윗면부터 1개의 원형 구멍과 3개의 방형 구멍이 출현하기 시작하는데, 원형 구멍은 그다지 규칙적이지 않으며, 직경 35㎝, 길이 45㎝로 대부분 괴석을 쌓아 원형일 이루었음. 3개의 방형 구멍은 원형 구멍에서 약 15m 떨어져 있으며, 각 돌구멍의 간격은 1-3m임. 한 변의 길이는 모두 30㎝ 내외이고, 깊이는 35-50㎝임. 기점에서 동쪽으로 58m 사이의 성벽은 보존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하며, 잔고 3.5m 내외임. 대부분의 성돌은 가공을 하지 않았음. 기점에서 48-122m 떨어진 구간의 성벽은 심하게 파괴되었고, 일부 구간은 완전히 무너졌음. 기점에서 84m 떨어진 지점에는 1호 치가 있는데 벽체가 돌출해 있으며, 파괴가 심함. 평면은 사다리형이며, 바깥은 넓고 안은 좁으며, 길이 3.6-4.2m, 너비 2.3-3.2m, 잔고 0.2-1m임. 가공한 석재를 올렸음. 기점에서 141m 떨어진 곳을 시작으로 성벽을 쌓은 석재는 조잡하게 다듬어졌는데, 축조 방식은 비교적 규칙적이며, 6-15층이 잔존하고 있음. 성벽 위의 너비는 3.1-3.5m이며, 아래 너비는 3.5-3.8m임. 기점에서 동쪽으로 286m되는 곳은 홍립자산 제2고봉인데 성벽이 북쪽으로 꺾이기 시작하며, 성벽 모서리에 2호 치가 있음. 벽체가 돌출하였고, 동쪽을 향해 있으며, 평면은 장방형임. 외측은 평평하고 곧으며, 양측이 활모양임. 남북 길이 9.2m, 동서 너비 4.6m로 2층 기단이 남아있음. 이 치는 A구간 성벽의 종점이며, B구간 성벽의 기점임.
A구간의 서반부는 남문에서 서쪽 요망대까지의 구간으로 성벽 길이는 1,079m임. 1개의 치와 1개의 요망대가 있음. 대다수 구간의 성벽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일부 구간은 파괴가 심함. 파괴되지 않은 구간의 성벽은 높이 5m로 원래 성벽의 높이임.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은 구간의 성벽은 너비 3-4.4m, 잔고 2-3m, 일부 구간의 성벽 너비는 2.7-3.5m, 잔고 1.9-2.5m임. 보존이 좋지 않은 구간의 잔고는 0.5-1.2m임. 이 구간의 종점은 협하산의 가장 높은 산정상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산등성이가 매우 좁으며, 경사도가 아주 큼. 일부 구간은 산세가 수직이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고, 성벽의 축조가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부 구간은 성벽을 쌓지 않고 천연암석을 성벽으로 삼았고, 성벽을 쌓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성벽을 쌓았으나 성벽의 높낮이는 일정하지 않음. 낮은 곳은 할석으로 성벽을 쌓아 봉쇄함. 험준한 정상부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 중에는 1-2개의 석괴로 성벽을 쌓아 봉쇄하기도 함. 무너지지 않아 어떠한 위험도 막아낼 수 있음.
남문 옹성 우측에 3호 치가 있는데 잘 다듬은 화강암 성돌로 쌓아올렸으며 대체로 장방형임. 서측은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으며 동측 길이는 8m, 요금시기에 보축하여 길이가 10.6m에 달함. 너비는 5m인데 그 뒤 보축하여 7.8m에 달함. 6층의 석괴가 잔존하며, 높이는 1.2m인데 후대에 높이를 더하여 1.4m에 이름.
남문에서 534m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 협하산 가장 높은 지점까지는 자연암석 구간인데 길이는 약 300m임. 산세가 험준하며 이 협하산에서 가장 험요한 지대임. 천연 단열대가 한 곳 있는데 너비는 1m에 못미치고, 깊이는 바닥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천험한 곳으로 양측은 장방형에 가까운 평평한 거석이며 하나는 직립해 있고, 다른 하나는 엎드려 있음. 마치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은데 심곡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함. 직립한 석괴의 길이는 2m, 높이는 1.1m, 두께 0.3m임. 이 구간의 오목한 곳에는 동일한 모양의 석괴를 사용해 성벽을 쌓아 봉쇄함.
가장 높은 지점에서 서쪽으로 향하여 경사도가 감소되면서 완만해지고, 해발477m의 제2고봉에 이른 다음 성벽이 북쪽으로 꺾이기 시작함. 모퉁이에서 꺾어 돌고, 산정상부는 비교적 평평하고 완만하며 개활함. 이 지점에 원형의 요망대가 있는데, 인공석과 천연석을 결합한 원형의 대로, 인공적으로 가공한 석괴는 비교적 규칙적임. 직경6m로 현재 5층석이 남아있음. 잔존 최고 높이 2m이며, 최저 1.2m임. 원래 정상부는 비교적 평평한데, 그 위에 쇄석을 둘러서 만든 둥근 테두리가 있으며, 직경은 각각 50㎝와 50-60m임.
B구간 성벽(동벽)의 전체 길이는 1,045m로 대부분의 구간은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나 일부 심하게 무너진 구간도 있음. 성벽은 대부분 납작하고 평평하며 약간 작은 석재로 축조하였는데 일부 구간은 상당히 규칙적으로 쌓았음. 지세 때문에 일반적으로 외측의 성벽은 비교적 높고 내측의 성벽은 비교적 낮음. 2호 치를 제외하고, 성문 1개, 치 1개 등이 설치되어 있음. 보존이 비교적 양호한 성벽은 너비가 3.1-4m, 잔고 3.1m인데 일부 구간의 내외측 성벽의 높이는 2-3.2m로 구분됨. 파괴가 심한 구간은 성벽이 전혀 없고 일부 구간은 20-60m 정도만 남아있음.
2호 치에서 473m되는 지점에 3호문이 있는데 성벽을 쌓는 방법이 비교적 규칙적이고, 문 기초부는 이미 남아있지 않으며, 트인 곳이 있음. 이 곳 지세는 평탄하고 완만하며, 산 아래를 왕래할 수 있는데 성문이 확실함. 이곳에서 북으로 30m 되는 곳은 자연 암석 구간인데 암석은 거대하며, 인공의 흔적은 없음. 4호치와 연결되며, 2호치와 514m 떨어져 있음. 이 치의 평면은 장방형에 가깝고 한 편은 길고 다른 한 편은 약간 짧으며 원 기초는 길이 3-4m, 너비 4m임. 후대에 중수하여 단단하게 만들어 길이가 3.85-5m에 달하고, 잔고 0.5-1.6m, 방위각 123도임. 치 우측의 성벽 윗변에도 돌구멍이 있음.
B구간의 기점에서 198m 지점을 시작으로 성벽 윗면에 일렬로 연속하는 방형의 돌구멍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9개가 남아있고, 간격은 1.5-1.6m임. 일반적으로 바깥쪽으로 치우친 외벽에서 약 80-86㎝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방형과 장방형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길이 30㎝, 너비 22-25㎝, 깊이 50㎝ 정도임. 바깥 지세는 완만한 비탈임. 이 지점에서 북으로 50m 되는 지점에서 또 22개의 방형 돌구멍이 연속적으로 발견됨. 형태와 크기는 앞의 것과 같음. 돌구멍은 일반적으로 성벽의 윗면에 위치하며 연속적으로 분포하고, 성벽의 윗면은 상대적으로 비교적 가지런하며, 쇄석을 사용해 평평하게 만들었음. 방형의 돌구멍이 연속하는 외측은 산비탈이 상대적으로 개활하고 평평하며 완만함. 이곳의 돌구멍은 방형의 나무 혹은 원형의 나무가 썩은 뒤에 남은 주공일 것으로 생각됨. 동벽의 기타 구간에서 간간히 돌구멍이 발견되며, 실제 돌구멍의 수량은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며, 벽체가 파괴되어서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임.
해발 334m 인 홍립자산 최고점에서 이 구간의 종점까지의 성벽은 기본적으로 파괴되었는데 어떤 구간은 성벽이 보이지 않음. 성벽의 서북방향으로 꺾였다가 다시 북쪽방향으로 꺾이고, B구간 성벽의 종점에서 대략 150m의 범위내에서 지세가 상대적으로 평평하고 완만한데 성벽이 보이지 않으며, 원 성벽의 기초 흔적도 보이지 않음. 이 사이에서 대량의 석재가 한 곳에 흩어져 있는데, 석재를 깔아서 채운 곳은 마치 바다 속의 암초와 같음. 세월이 많이 흘러 석두상의 이끼가 이미 짙은 녹색을 띰. 이 구간의 벽체는 당시에 쌓은 것이 아니며 후성을 공격할 시에 떨어진 것으로 공성의 돌파구로 만든 것임. 앞으로의 상세한 연구가 필요함.
C구간의 성벽(북벽)은 전체 길이 1,137m로 북문과 치 1개가 설치되어 있음. 동반부는 비교적 짧으며, 서반부는 비교적 긺. 성벽의 보존 상태가 일반적으로 좋지 않으며, 대부분의 구간이 무너졌고 일부 구간은 1-2층의 석괴만 보임. 일부 구간은 성벽이 보이지 않음. 개별 구간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성벽은 잔고 3.5m임.
북문은 두 산 사이의 낮은 오목한 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옹성의 흔적이 보임.
옹성 서측에서 대략 200m 떨어진 곳은 5호 치인데 벽체 바깥으로 돌출, 평면은 장방형이고 길이 4.1m, 너비 3.9m임. 서반부 말단은 경사도가 가팔라 해발 415.2m의 산머리를 경과할 때, 성벽이 보이지 않으며, 산세가 아주 험준한 까닭에 경사도가 80도에 달함. 성벽을 축조하지 않고 천연 산등성이를 성벽으로 삼았음.
D구간 성벽(서벽)은 전체 길이 1,013m로 산세가 가장 높고 기본적으로 모두 해발 400m 이상의 고산 위에 있음. 성벽은 산등성이 상의 산봉우리를 뚫고 넘으며 연접하여 축조하였음. 뻗어나가는 변화가 비교적 크며, 남에서 북방향이며, 처음에는 북향하다가 동북향으로 꺾임. 또 동쪽 모서리에서 꺾이고, 마지막에 동북방향으로 꺾임. 이 구간의 성벽은 보존 상태가 가자 나쁘며, 성벽은 상대적으로 낮음. 일부 구간은 1, 2층의 성벽 기초석만 남았는데 잔고는 15-20㎝ 정도이고, 가장 좁은 곳은 겨우 1.9㎝임. 기타 유적은 보이지 않음.
성내 중부의 북쪽에 깊은 도랑이 하나 있고, 도랑 북면 산비탈에 속칭 원형의 ‘희대(戱臺)’유적이 있는데, 지면 부근과 경작지에서 일찍이 일정 수량의 회색 기와가 발견되었음. 대부분 민무늬이며, 내측은 포문임. 이와 같은 회색 기와는 요금시기에 해당하므로 이후 지속적으로 이 산성은 연용하였음을 말해줌. 그 외에 문둔테석이 발견되었음.
역사적 의미
협하산산성(후성산성)은 전성과 합쳐서 성산산성으로 불리는 고구려시기의 대형산성으로 ‘자매성(姉妹城)’의 형식을 띰. 고구려 산성 중에서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는 형식임. 성산산성은 위패산성, 대흑산산성, 득리사산성 등 3기의 산성과 함께 고구려 요동반도 남부에 위치하여 요동지구를 縱深으로 통과하는 험요한 곳에 자리잡아 요동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함.
자연환경
요녕성 장하시 서부(遼寧省 庄河市 西部) 산구역에 위치함. 산성은 하화산진 곽가촌(荷花山鎭 郭家村), 성산산성 동북 립자산(砬子山) 상에 위치(國家文物局 主編, 2009, 『中國文物地圖集』遼寧分冊(下), 西安地圖出版社). 산성은 전성산(前城山) 서북의 협하산(夾河山)과 홍립자산(紅砬子山; 속칭 砬子山)산등성이에 위치하며, 지금은 하화산진(荷花山鎭)에 속함.
후성과 전성 사이에 협하가 있음. 두 성 사이의 직선거리는 약 1.5㎞임(26㎞;합이빈학원학보). 협하산(夾河山; 後城)의 동남쪽에 전성이 있음. 협하(夾河)는 전성산(前城山)의 동북부의 요령자(腰岺子)에서 발원해 동북에서 서로 흐르다가 벽류하(碧流河)에 유입됨. 협하의 전체 길이는 17㎞임. 전성과 후성(협하산산성) 2기의 성을 포괄하여 성산산성(城山山城)이라 칭함. 벽류하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다가 황해로 유입되는데, 보란점시(普蘭店市)와 장하시(庄河市)의 경계가 되며, 대련지구의 최대 담수 하천임.
지세는 서고동저, 남고북저임. 협하산산성(夾河山山城; 後城山城) 동면의 홍립자산(紅砬子山; 현지에서는 東山)의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334m임. 협하산산성(후성산성) 서면의 협하산(夾河山; 현지에서는 西山)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로 최고 지점은 해발 481.9m임. 협하산(夾河山)은 홍립자산(紅砬子山; 현지에서는 東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고 완만한 편이지만 산세가 가파르고 험요한 개별 구간에는 성벽을 쌓지 않고 천연 거석을 성벽으로 삼았고, 전반적으로 낮고 오목한 곳에는 모두 석괴를 쌓아 성벽을 축조하였음. 홍립자산과 협하산 두 산 사이는 산간분지와 계곡인데 지면의 도처에 크기가 서로 다른 화강암석이 널려 있음.
유물정보
기와(瓦) 1점, 문확석(門確石; 臼形石) 1점
참고문헌
· 譚其驤, 『中國歷史地圖集釋文匯編』 東北卷, 中央民族學院出版社, 1988
· 陳大爲, 「遼寧境內高句麗遺跡」『遼海文物學刊』 1989-2, 1989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1994
· 王綿厚, 「鴨綠江右岸高句麗山城硏究」『遼海文物學刊』 1994-2, 1994
· 陳大爲, 「遼寧高句麗山城再探」『北方文物』 1995-3, 1995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6
· 許明綱, 「大連地區高句麗四座山城略考」『博物館研究』 1996-1, 1996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高句麗渤海硏究集成』 高句麗 卷(三), 哈爾濱出版社, 1997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 張翠敏, 王宇, 「大連城山山城2005年調査報告」『東北史地』 2006-4, 2006
· 王禹浪·王文軼, 『遼東半島地區的高句麗山城』, 哈爾濱出版社, 2008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下), 西安地圖出版社, 2009
· 王禹浪·王文軼·王宏北, 「遼東半島高句麗山城槪述」『黑龍江民族叢刊』 2010-2, 2010
· 王禹浪·王文軼, 「大連地區的高句麗山城」『黑龍江民族叢刊』 2011-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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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하산산성; 후성산성; 후석성산성(夾河山山城; 後城山城; 後石城山城) 자료번호 : ku.d_0001_0060_005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