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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지
왕청문촌 용두산 산등성이
연대
서한 중 후기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98년 발견 · 旺淸門鎭龍頭山에서 석개묘 1기(XWLM1)을 발견
2002년 5월· 조사 기관 : 무순시박물관고고대
· 조사 참가자 : 초경전(肖景全), 장파(張波), 이영발(李榮發), 오곤(吳坤), 동해(童海)
· 5월 5일 무순시박물관고고대가 新賓縣紅廟子鄕흑구산성에서 고고조사를 실시할 때 왕청문 용두산 석개묘(XWLM1)를 고찰하면서 무덤이 도굴당한 것을 발견함.
· 이후 부근에서 2기의 석개묘(XWLM2, XWLM3)를 발견함. M2는 교란되어 묘혈 한쪽이 파여졌고, 개석은 열려 세워져 있었음.
· 석개묘가 계속해서 파괴당하지 않도록 고고대는 3기의 묘장에 대해 구제성 정리를 실시함. 정리공작은 반(半) 개월이 지속되었음.
역사적 의미
용두산 석개묘는 명확한 표지유물이 발굴되지 않았으나, 대체로 서한(전한) 중후기의 일반무덤으로 파악된다. 유적이 위치한 왕청문진 지역은 동쪽으로 길림성 통화현과 인접해있으며, 남쪽으로는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인 환인이 약 40km거리에 있다. 지리적으로만 보자면 해당 지역은 고구려 건국초, 비교적 빠른 시점에 고구려의 세력하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왕청문진의 서쪽 4km 지점에는 동강연 조선족 촌이 있고, 부이강을 따라서 조선족 자치촌들이 존재한다. 또 10km 지점에는 고려가(高麗街)등, 고구려의 명칭을 사용하는 지명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다만 해당유적은 이보다 이른 시기에 조영된 것으로 파악되지만, 고구려인 구성의 지역적 기반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파악된다.
자연환경
왕청문진은 부이강이 'ㄷ'자 형태로 굽어 흐르는 만곡지점 자연 퇴적평지이다. 일대의 부이강 주변은 모두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강을 따라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유적은 왕청문진 서쪽의 왕청하와 부이강이 합류하는 지점 동쪽 강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유물정보
1998년 석개묘(덮개 돌 무덤) 1기를 발견하였고, 무순시 박물관 고고대가 2002년 5월 고고조사를 시행하여 같은 유형의 무덤 2기를 추가 조사하였다. 3기의 무덤은 순서대로 1-3호묘라 명명하였다. 1호묘는 이미 도굴당한 상태였으며, 2호묘의 덮개돌은 부근에 세워져 있고 무덤은 상당부분 파괴되어 있었다. 부장품의 수습과 정리작업이 진행되었으며 2010년 요녕고고문집에 보고서를 수록하였다.
참고문헌
· 李新全, 2008, 「高句麗早期遺存及其起源硏究」, 吉林大博士論文
· 華玉冰, 2008, 「中國東北地區石棚硏究」, 吉林大博士論文
· 肖景全, 2010, 「新賓王淸門鎭龍頭山石蓋墓」『遼寧考古文集(二)』, 科學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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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 왕청문진 용두산 석개묘(新賓 旺淸門鎭 龍頭山 石蓋墓) 자료번호 : ku.d_0001_0070_0050_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