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인 고검지산성(桓仁 高儉地山城)
출토지
환인만족자치현 화래진 고검지촌
연대
고구려 초기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50년대 말 | · 1950년대 말 문화재 조사(文物普査)때 고검지산성을 발견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간단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초보적인 측량을 진행했을 뿐 발굴은 아직 진행되지 못하였음. | |
1980년 | · 1980년 시급문물보호단위로 공포됨. | |
1990년 4월 | · 1990년 4월 환인현 문물지를 편찬했을 때 고검지산성에 대하여 초보적인 측량을 진행하였음. | |
1994년 5월 | · 1994년 5월 본계시 박물관과 환인현 문관소에서 관련 인원을 조직하여 산성에 대한 측량을 진행하였으며 아울러 성내에서 비교적 정밀한 조사 작업이 이루어졌음. | |
2002년 | · 2002년 성급문물보호단위로 공포됨. 누차에 걸친 조사에서 얻은 결과를 종합적으로 간단히 보고함. | |
2008년 9 ~ 10월 2009년 7 ~ 8월 | 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본계시박물관(本溪市博物館), 환인현문물국(桓仁縣文物局) | · ‘山城保護北城墻維修加固工程’에 맞춰 위의 세 기관이 연합하여 산성 북벽의 일부 구간에 대하여 최초로 발굴을 진행하였는데, 산성 북벽 서쪽 구간의 북문지, 성벽 내측의 성벽 오르는 길(坡道) 두 곳, 치(馬面) 유적 등을 발견하였음. |
구조특징
산성은 평면으로는 타원형이며, 동서가 넓고 남북면은 좁으며, 성 내부의 지세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다. 성이 위치한 주봉은 해발 831m이며,계곡을 감싸고 3개의 봉우리에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석축의 성벽이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보존 상황은 양호한 편에 속한다.
고검자산성의 성벽은 둘레가 길이 1,373m에 이르며, 자연지형을 이용해 축조하였다. 특이한 것은, 자연암반이 성벽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구역에서도 암석 바깥에 인공성벽을 덧대어 쌓았다는 점이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성벽을 인공적으로 축조한 것이다.
성벽은 북벽과 동벽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성가퀴[女墻]와 기둥구멍[柱洞]의 흔적도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다만, 개활지로 이어지는 남쪽 산비탈의 성벽은 많이 무너진 상태이다.
문지(門址)는 모두 4곳으로, 남벽에 한 곳, 북벽에 두 곳, 동벽에 한 곳이 있다. 특히 남문은 성의 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성의 가장 낮은 부분에 위치하면서 주요 관문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검자산성의 성벽은 둘레가 길이 1,373m에 이르며, 자연지형을 이용해 축조하였다. 특이한 것은, 자연암반이 성벽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구역에서도 암석 바깥에 인공성벽을 덧대어 쌓았다는 점이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성벽을 인공적으로 축조한 것이다.
성벽은 북벽과 동벽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성가퀴[女墻]와 기둥구멍[柱洞]의 흔적도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다만, 개활지로 이어지는 남쪽 산비탈의 성벽은 많이 무너진 상태이다.
문지(門址)는 모두 4곳으로, 남벽에 한 곳, 북벽에 두 곳, 동벽에 한 곳이 있다. 특히 남문은 성의 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성의 가장 낮은 부분에 위치하면서 주요 관문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의미
산성은 요녕성 본계시 환인현 화래진 고검지촌에 있다. 본래 고검지촌은 목우자진(木盂子鎭)에 속하였으나, 다른 두 진과 합병하여 화래진에 속하게 되었다. 산성이 위치한 고검지산은 주봉이 해발 831m가 되는 높은 산이다. 산성이 위치한 지역은 본계현과 신빈현, 환인현이 접하는 지역이다.
지리적인 위치를 고려할 때, 고검지 산성은 요동에서 고구려의 첫 수도인 환인(桓仁)으로 들어가는 교통로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방어의 거점으로 이용된 시설이라는 것이 명확하다. 학자에 따라서는 고구려의 창암성으로 추정하는 연구도 있으나, 출토유물과 전형적인 고구려 산성의 축조 방법등을 종합해 볼 때, 고구려 초기 산성임에는 명확하다. 또 성내에서 발견된 대량의 주거지는 성내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와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되며, 고검지 산성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이다.
성벽의 축조방법에 있어서는, 인공적으로 가공한 쐐기형돌, 그 연결 부분에 사용한 긴 북꼴돌 등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여서 고구려 축성의 기본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지리적인 위치를 고려할 때, 고검지 산성은 요동에서 고구려의 첫 수도인 환인(桓仁)으로 들어가는 교통로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방어의 거점으로 이용된 시설이라는 것이 명확하다. 학자에 따라서는 고구려의 창암성으로 추정하는 연구도 있으나, 출토유물과 전형적인 고구려 산성의 축조 방법등을 종합해 볼 때, 고구려 초기 산성임에는 명확하다. 또 성내에서 발견된 대량의 주거지는 성내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와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되며, 고검지 산성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이다.
성벽의 축조방법에 있어서는, 인공적으로 가공한 쐐기형돌, 그 연결 부분에 사용한 긴 북꼴돌 등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여서 고구려 축성의 기본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자연환경
산성이 위치한 지역은 환인현 현중심에서 서북쪽 약 42km 지점이며, 약 7km 거리에 목우자촌(원 木盂子鎭), 남쪽으로 2.2km거리에 고검지촌이 있고, 서쪽으로 1.5km 거리에 두도구문둔(頭道溝門屯)이 있다. 산성은 해발 831m에 달하는 높은 산에 위치한다. 성 바깥으로는 동서 양측으로 2갈래의 협곡이 펼쳐지는데, 서쪽은 이도구이며, 동쪽은 언덕을 지나 삼도구가 속한다. 북쪽으로는 높은 산들이 펼쳐져 있고, 남쪽에는 완만한 개활지가 있다. 서쪽으로 2.5km 거리에는 속칭 홍석립자, 또는 태고립자라고 불리는 산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환인현과 신빈현의 분계점지점이다. 이 봉우리의 서쪽으로는 태자하가 흐르는데, 태자하의 발원지 중에 하나이다.
유물정보
성내에서 토기, 각종 철기 등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손으로 빚어 제작하였으며, 소성온도는 비교적 낮다. 토기 바탕흙은 주로 모래가 혼입된 토기이며, 토기 색깔은 회갈색이 다수를 차지하며 일부는 홍갈색이다.
참고문헌
· 梁志龍·王俊輝, 2011, 「遼宁省桓仁县高俭地高句丽山城调査」『東北史地』2011-1
· 遼寧省 文物考古硏究所, 2012, 「2008-2009年遼寧桓仁縣高儉地高句麗山城發掘簡報」『東北史地』2012-3
· 정원철, 2012, 「2008-2009年 遼寧 桓仁縣 高儉地高句麗山城 發掘簡報」(번역문) 『백산학보』93호
· 遼寧省 文物考古硏究所, 2012, 「2008-2009年遼寧桓仁縣高儉地高句麗山城發掘簡報」『東北史地』2012-3
· 정원철, 2012, 「2008-2009年 遼寧 桓仁縣 高儉地高句麗山城 發掘簡報」(번역문) 『백산학보』9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