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 석대자산성(瀋陽 石臺子山城)
출토지
기반산 석대자산성
연대
고구려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80년 | · 석대자산성은 1980년 전국 제2차 문물 일제 조사기간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당시 조사 기록에 따르면 “원래 東陵區滿堂鄕石臺子村 북쪽 산에 옛 성이 있는데, 연대와 성격은 未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음. | |
1987년 ~ 1989년 | · 1987년 8월 중순, 潘陽市문물조사대가 東陵區에 대한 문물 재조사를 진행할 때 石臺子村북쪽의 산위에서 “토벽터(土圍址)” 한 곳을 발견하였고, 동시에 산에서 청동기 시대의 모래섞인 홍색 토기편, 토기 다리(器足)와 魏晋시기의 회색 토기편 등을 채집하였음. 그 가운데 니질의 모래섞인 회갈색 토기, 홍갈색 토기 등의 구연부(口沿), 파수(器耳)는 고구려 문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음. · 재조사 팀이 조사와 발견의 정황을 즉시 潘陽市의 문화 주관 부서(部門)에 보고하였고, 시 정부와 문물주관 부서의 책임자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중요시함. · 1987년 10월 2일, 심양시 문화 주관의 副市長長毓茂및 문화국 부국장 沈長吉등이 모두 현장에 가서 조사를 지도함. · 심양시 문물 고고대의 팀원(同志)은 산성에 대한 고고조사를 진행하였음. 아울러 산성 북부의 동측 절벽에서 비교적 두터운 문화퇴적층을 발견하였고, 비교적 복잡한 문화층이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음. 산성의 문화 내용, 특징, 연대 등 다방면의 문제에 대하여 주요 지침을 확인하고 조사를 깊이 전개함. · 이를 위해, 1988-1989년에, 심양시 문물고고공작대는 여러 차례 고고조사를 진행하였음. 棋盤山댐이 완공된 지 여러해 지나고, 원래의 도로는 전부 끊어지고, 수몰지구의 마을을 외부로 이주하여 이미 인적이 한가해져 석대자산성 내외에 풀과 나무가 빽빽하게 가득차, 조사 작업을 진행하기가 매우 어려웠음. · 성벽을 따라 도로를 개설하여, 산성 벽체의 주향(走向)과 전체적인 범위 등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를 마무리함. | |
1990년 10월 ~ 11월 | 반양시문물고고공작대(潘陽市文物考古工作隊) | · 석대자산성에 대한 시굴 조사 진행. · 조사 지점 : 시굴면적은 총 158㎡. 산성내 동북부의 서로 마주 바라보는 개활한 평탄지. · 겨울철에 진입하였기 때문에, 작업이 잠시 멈추었다가, 또 1991년 5월에서 6월까지의 시굴을 거쳐, 시굴 작업은 빨리 끝났음. · 모두 5*5m의 피트 6개, 1*4m의 트렌치 1개를 시굴함. · T1~T4(나중에 이 4개의 피트는 SIT201로 편호하였음)에서 고구려시기의 거주지 1기(SF1이라 편호함)를 정리하였음. · T5에서 석축의 아궁이(竈址) 1곳을 정리하였음. · T6에서 아궁이(竈址)와 일부(火坑)를 정리하였음. · 재구덩이(灰坑) 20곳을 정리하였음. · 또 산성 서북부 “土城”내의 “망대(瞭望臺, 點將臺)”에 1*4m의 트렌치를 설치함(91TG2로 편호). · 시굴면적은 총 158㎡. · 출토유물 : 고구려시기의 토기, 철기, 골기, 석기, 청동기 및 짐승뼈 등을 출토. 청동기 시기의 문화유적도 발견함. · 시굴 기간 동안 석대자산성의 형식구조에 대해 가졌던 다양한 인식은 추후 (後期) 정식 발굴과정에서 일정 오류가 있음이 확인되었음. 다만 평면은 불규칙한 형태이고, 여러 곳에 성문지가 있다는 것, 성벽 외측을 따라 여러 개의 치(馬面)가 설치된 고구려 시기 산성이라는 초보적 이해를 하게됨. · 정식 고고발굴을 진행하기에 앞서, 순차적으로 발굴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산성내 자연지세와 지형에 따라 산성 내부를 4개의 구역으로 구획함. ① SI 구역 · 성내 북부에 위치 · 이곳 지세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높음. · 서측은 산성내 북부의 높은 지점이며, 동북측은 약간 평탄한 臺地임. · 북측에 북문지가 있음. ② SⅡ 구역 · 성내 중부에 위치함 · 남북 양 대지 사이의 골짜기로, 상대적으로 낮고 움푹 들어갔음. · 북측은 SI 구역과 서로 연결되며, 남측은 SⅢ 구역과 접함. · 서측은 서문지이며, 동측에 동문지가 있음. ③ SⅢ 구역 · 성내 남측 동부에 위치. · 지세는 상대적으로 평탄함. · 동측은 절벽임 · 남쪽에 남문지가 있음. 문지 가까운 곳은 저지대임. · 서측은 성내 남부의 감제고지인 SⅣ 구역과 접함. ④ SⅣ 구역 · 성내의 서남부에 위치함, · 지세는 상대적으로 높음 · 가장 높은 지점에 “망대(瞭望臺, 點將臺)”터가 있음. · 이 곳을 별도 구역으로 나눈 주요 원인은 “망대(瞭望臺, 點將臺)” 터 바깥에 “토벽터(土圍子)”가 있기 때문임. 토벽터 동남쪽이 문지가 있음. |
1997년 5월 ~ 2006년 | · 국가문물국의 승인을 거쳐, 1997년 5월부터 2006년까지 10년 간 3차에 걸친 고고발굴을 진행하였고, 발굴 작업은 SI 구역부터 시작하였음. (1) 제1차 발굴 · 1997년 5월부터 1998년 10월 하순까지, 2단계로 진행. ① 제1단계 · 시기 : 1997년 5월 12일부터 1998년 1월 15일까지 · 발굴 면적 : 총 4860㎡임. · SI 구역 북측에 10*10m 피트 15개를 설치하고 SIT 101~SIT 105, SIT 201~SIT 205(그 중에 SIT 201 시굴 중에 F1 주거지(房址)의 T1~T4 발견), SIT 301~SIT 305로 편호하였으나 SIT 105, SIT 302, SIT 303 등만 발굴함. · 북측 성벽터에 1*15m 트렌치를 설치하고, 97QTG1으로 편호함. · SI 구역에 1*5m 트렌치 1개를 설치하고 97SITG2으로 편호함(나중에 보충 발굴할 때 06T3으로 편호하였음). · 1997년 7월 19일에, 97SITG1 트렌치에서 석축 성벽 벽체를 발견한 뒤, 고고발굴의 방향을 산성 성벽의 형식, 구조, 배치 등으로 선회하였음. · 산성 성벽의 외측 전면을 노출하여 외벽 부분을 조사 정리하였으며, 모두 9개의 치(馬面)를 조사 정리하였음. · 북문, 서문, 동문 모두 3곳에 성문지가 있으며 2곳에 암거(暗渠; 涵洞)가 있음을 확인하였음. · 또 성벽을 서벽, 남벽, 동벽으로 구분하고 3개 트렌치를 설치하여 성벽을 절개하였음. 트렌치는 97SITG2, 97SITG3, 97SITG4로 편호하였음. · 1단계 고고발굴을 거쳐, 석대자산성 성벽, 치(馬面), 성문지, 암거(暗渠;涵洞), 배수시설 등 유적의 기본 상황을 확인하였으며, 산성의 형식과 구조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음 ② 제2단계 · 시기 : 1998년 4월 하순부터 10월까지. · 발굴 면적 : 총 453 ㎡. · 제1단계에서 발견한 성문지와 배수시설에 대한 조사, 정리를 진행하였음. · 북문지 : 발굴 면적 120㎡, 문길(門道)과 문길 내측 암거((暗渠; 涵洞)의 입수구, 암거((暗渠; 涵洞) 및 문길 외측의 계단식 석축 배수구를 정리하였음. · 서문지 : 발굴면적 70㎡, 문지가 불에 탄 유적 현황을 보존하기 위해, 문지 상층의 무너진 퇴적층과 문지 내외 양측의 일부 퇴적층에 대한 조사, 정리를 진행하였음. · 남문지 : 발굴면적 60㎡, 문길(門道) 부분을 정리하고, 문길 하부에 위치한 암거((暗渠; 涵洞)을 발견하였음. · 동문지 : 발굴 면적 178㎡, 문길 일부와 문길(門道) 내외 양측의 배수구, 물받이(沉井), 암거(暗渠; 涵洞) 및 明渠를 정리하였음. · SⅡ 구역 중부에 1*5m 규모의 트렌치 1개를 설치하고 SⅡTG1으로 편호하였으며, SⅡ 구역 대형 건물지(建築基址)의 위치를 확인하였음. · 4개의 성문지 확인, 성문 구조가 기본적으로 일치하며, 서문지를 제외하고 동문지, 북문지와 남문지 아래에 암거((暗渠; 涵洞)가 설치된 것을 확인하였고, 북문지, 동문지의 암거((暗渠; 涵洞) 내외 양측에서 또 배수구거, 물받이(沉井) 등 유적이 설치되어 있음을 확인하였음. · 4개 성문지는 모두 불에 타서 훼손된 원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음. (2) 제2차 발굴 · 발굴 시기 : 2000년 5월~8월 · 발굴 대상 : SⅡ구역 · 발굴 면적 : 700㎡ · SⅡ구역 1호 트렌치(SⅡTG1) 서쪽으로 33m 연장하여 발굴함. · SⅡ 구역 내에서 “1호 석축건물지” 유적과 “2호 석축 건물지” 유적을 발견하였음. (3) 제3차 발굴 · 발굴 시기 : 2002년 5월부터 2006년 10월 말까지. · 발굴 대상 : SⅠ구역에 대한 추가 발굴, SⅢ 및 SⅣ구역. · 발굴 면적 : 총 820㎡ · 발굴 유적 : 주거지(房址) 24개, 재구덩이(灰坑), 저장구덩이(窖穴), 灰溝 등 유적 174개를 발굴하였음. · SI 구역에 설치한 피트에 대한 추가 발굴을 진행하여, SIT101-SIT105, SIT301-SIT303을 발굴하였고, 또 SIT101의 서남측에 10*8m 피트를 증설하고 SIT001로 편호하였음. ① SⅢ구역 발굴 ㉠ 2002년 5월부터 10월까지 · SⅢ구역 동쪽과 서쪽으로 구분하여 트렌치 설치. · 동쪽 구역 : 5*5m의 피트 3개 설치, 발굴면적 70㎡, SⅢ02DT1· SⅢ02DT3로 편호하였음. 주거지(房址) 1기를 발견하고 SⅢ02DF1로 편호함. 또 재구덩이(灰坑) 1개 발견하였음. · 서쪽 구역 : 5*5m의 피트 4개 설치, SⅢXT101, SⅢXT102, SⅢXT201, SⅢXT202로 편호. 일부 확장 발굴 진행. 발굴면적은 총 124㎡. 주거지(房址) 5기를 발견하고 SⅢXF1, SⅢXF2, SⅢXF3, SⅢXF4, SⅢXF5로 편호함. 그중 SⅢXF3, SⅢXF5 등의 일부 조사 정리, 또 재구덩이(灰坑) 38개를 조사, 정리하였음. ㉡ 2003년 7월부터 10월까지 · SⅢ 구역의 중부에 트렌치를 설치하였는데, SⅢ 구역의 유적 분포상황과 官府성격의 건물지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었음. · 산성의 기준점 : SI 구역SIT201 서남모서리를 기준점으로 삼아서 산성의 남북 기준선을 확정하였는데, 기준선은 산성내 북측 성벽 내측에서 시작해서 산성 남벽 내측에서 끝남. 전체 길이 359m. 기준선 위에 각 10m마다 기점을 정하고 아울러 편호함. · SⅢ 구역의 트렌치 설치 : 동서방향으로 모두 트렌치 11개를 설치하였으며 트렌치는 SⅢTG18~SⅢTG28로 편호하였음. 트렌치 간격은 10m, 너비 1m, 4m 간격으로 1m의 격벽(隔梁)을 남김. 지형적 원인으로 트렌치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음. 가장 긴 트렌치는 SⅢTG21인데 길이는 110m임. 가장 짧은 트렌치는 SⅢTG28로 길이 35m임. 트렌치의 총 길이는 900m에 달함. · 발굴 중에 비교적 중요한 유적에 대해서는 일부 트렌치를 확장하였음 · 발굴 총면적 : 940㎡. 주거지(房址) 유적 82곳, 재구덩이(灰坑) 69개, 灰溝18곳 발견. ㉢ 2004년 5월 · SⅢD 구역 동부에 5*5 피트 18개를 설치하고, SⅢ04DT101~SⅢ04DT106, SⅢ04DT201~SⅢ04DT206, SⅢ04DT303~SⅢ04DT304, SⅢ04DT403~SⅢ04DT404, SⅢ04DT503~SⅢ04DT504, SⅢ04DT603~SⅢ04DT604로 편호하였음. · 발굴 면적 500㎡, 주거지(房址) 3곳, 재구덩이(灰坑) 7곳 발굴. ㉣ 2005년 · SⅢD 구역 피트 서측에 이어서 5*5m의 피트 13개를 설치하고 SⅢ05DT1~SⅢ05DT13을 편호하였음. · 발굴 면적 310㎡ · 주거지 5곳, 재구덩이(灰坑) 19곳 정리하였음. ② SⅣ 구역의 망대(瞭望臺, 點將臺) 발굴 · 이 구역은 산성 남부의 감제고지임. · 1991년 1*4m 트렌치를 설치하고 발굴 진행. · 2002년 5월~8월 : 발굴 면적 300㎡. 망대 1곳, 주거지(房址) 3곳 발견. 주거지(房址)는 SⅣF1~SⅣF3으로 편호함. · 2004년 : 망대 바깥 둘레의 토벽(土圍墻) 에 대한 발굴 진행. 04ⅣTG1으로 편호함. (4) 보충 발굴 · 일부 유적 현상, 상황, 성격 등의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2006년 북문지, 서문지, 10호 치(馬面), 91SIT6, 91SITG2, SIF1 아궁이(竈址), SⅢD 구역의 일부 유적 등에 대한 보충 발굴 진행. ① 북문지 · 북문지는 제1차 발굴 중에 발견되었는데, 두 차례의 화재를 입어 무너져 두 차례 수축한 현상이 있음. · 지층 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북문지 문길(門道) 동측에 대하여 7*2m 트렌치 하나를 설치하고, 북문지 동측 문길 벽체 일부와 새로 드러난 성벽 내부의 축조 구조를 정리하고, 지층퇴적상황을 조사하였음. · 문길(門道) 동측 상층의 벽체는 제1차 화재 퇴적층 상면에 축조한 사실을 파악함. 북문지가 두 차례에 걸쳐 축조된 사실을 확정함. ② 91SIT6(현재 편호 SI06T4) · 1991년에 조사했던 91SIT6에 대하여 확장 조사를 진행하였음 · 발굴 면적 60㎡. · 주거지(房址) 1곳을 발견하여 정리하였고, 주거지(房址)는 SIF25로 편호하였음. 재구덩이(灰坑) 3곳을 조사, 정리하였음. ③ 97SITG2(현재 편호 06T3) · 발굴 면적 30㎡ · 주거지(房址) 1곳을 조사, 정리함(편호 SIF24). ④ 10호 치(馬面) · 10호 치(馬面)의 성격을 확정하기 위하여, 벽체 부분에 7*5m 피트를 설치하고(현재 편호 06T5), 벽체 내측에 2*5m 트렌치 하나를 설치하였음 · 발굴 면적 45㎡ · 10호 치(馬面)는 산성 동측 암거(暗渠;涵洞)의 부속시설임을 확인하였으며, 성벽 저부를 통과하는 암거(暗渠;涵洞)임을 확인하였음(편호 2호 암거(暗渠;涵洞) ⑤ SIF1내 아궁이(竈址) · SIF1내의 아궁이(竈址)를 새로이 정리하고, 아궁이 내에 남아있는 탄화된 곡물을 추출하였음. ⑥ 서문지 · 문길(門道) 양측에 5*5m의 피트 2개를 설치하여, XMT1, XMT2로 편호하였음. · 문길(門道) 부분과 문길 외측을 전면 정리함. · 발굴 면적 130㎡. ⑦ SⅢD 구역의 보충 발굴 · 2004, 2005년에 발굴했던 SⅢ04D 구역 동부의 피트에 대한 보충발굴을 진행. · 발굴면적 180㎡ · 2004년 발굴 구역 내에서 주거지(房址) 6곳을 발견하여 기존에 조사했던 주거지(房址) 건축의 구조 문제를 보완하였으며, 여러 건축 양식 주거지 사이의 층위관계를 확인함. ⑧ SⅢ06DT404 · SⅢ06DT404에 대한 확장 조사를 진행하였고, 주거지(房址) 1곳을 발견, 조사 정리하였음(편호SⅢ06DF1) | |
· 석대자산성은 1990-1991년의 시굴과 1997-2006년의 3차례에 걸친 고고발굴을 진행하였음. · 산성내의 거주지, 성벽 벽체, 성문지, 치(馬面), 배수구 시설, 대형 석축 건물지, 망대 등에 대하여 고고발굴을 진행하였음 · 산성 성벽 외벽, 성문지 4개, 치 9개, 성벽 저부를 통과하는 암거(暗渠;涵洞) 2곳 및 성문 저부를 통과하는 암거(暗渠;涵洞)와 문지 내외의 배수시설 3곳 등을 전면 조사 정리하였음. · 산성 내에서 망대(瞭望臺, 點將臺) 1곳, 대형 석축 건물지 1組, 주거지 45곳, 움구덩이(窩穴)와 재구덩이(灰坑) 190곳을 발굴 정리하였음. · 고구려시기의 유적이외에 청동기 시기의 문화 유적과 明代의 토성과 주거지도 발견, 정리함. 청동기 시기의 주거지 1곳, 明代의 주거지 4곳을 조사 정리하였음. |
구조특징
산성의 성벽은 모두 석재로 바닥의 너비는 6-7m이고 단면은 사다리꼴 이다. 현존하는 성벽 중 가장 높은 것은 약 4.2m이다. 석재는 쐐기꼴, 직사각형, 사각형, 'ㄱ'자 곱돌, 양쪽에 홈이 파인 형태, 석판,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여 사용하였다. 고구려 산성의 특징인 치성이 10개가 확인되었다. 또 성의 물 구멍인 수구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의미
석대자산성은 조망할 수 있고, 철령과 환인으로 나아가는 주요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또 고구려 산성의 주요 축성법인 치성을 9개 이상 설치한 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주요 방어시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산성은 자연 지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높은 봉우리에는 망대를 설치하였다. 주요지역에 문과 배수시설을 설치하였고, 평평한 지대에는 창고와 주거지를 축조했음을 유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통하여 석대자산성이 방어와 주거를 겸한, 고구려의 주요 방어 거점 성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자연환경
심양 시 중심에서 북동방향 약 26km 지점에 위치한 석대자산성 유적이다. 현재 석대자 산성 남쪽으로는 댐 건설로 생성된 기반산 호수가 동서로 약 5km, 남북으로 최대 1200m 크기로 존재하기 때문에 산성의 동쪽 면과 남쪽 면은 호수와 접해 있다.
석대자 산성은 심양에서 북쪽으로 철령시, 동쪽으로 무순시로 나아가는 교통로 상에 위치하면서 주변조망이 가능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산성의 규모로 볼 때에도 당대에 적지 않은 주민이 산성 주변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대자 산성은 심양에서 북쪽으로 철령시, 동쪽으로 무순시로 나아가는 교통로 상에 위치하면서 주변조망이 가능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산성의 규모로 볼 때에도 당대에 적지 않은 주민이 산성 주변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정보
3차례 발굴조사를 통하여 1100여점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종류는 토기, 철기, 동기, 골각기, 석기, 화폐 등 다양하다. 주로 고구려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 많은 석재들도 남아있다.
참고문헌
· 佟達, 1964, 「新賓五龍高句麗山城」『考古』1964-12
· 撫順市文化局文物工作隊, 1964, 「遼寧撫順高爾山古城址調查簡報」『考古』1964-12
· 曲瑞琦·瀋長吉, 1978, 「瀋陽新樂遺址試掘報告」『考古學報』1978-4
· 趙曉剛·付永平, 1978, 「遼寧大學青銅時代遺址發掘簡報」『邊疆考古研究』5
· 瀋陽市文物管理辦公室, 1982, 「瀋陽新民髙臺山遺址」『考古』1982-2
· 新民縣文化館·瀋陽市文物管理辦公室, 1983, 「新民市高臺山新石器時代遺址1976年發掘簡報」『文物資料叢刊』1983-7
· 瀋陽市文物管理辦公室, 1986, 「新民高臺山第二次發掘」『遼海文物學刊』1896-1
· 瀋陽市文物管理辦公室, 1993, 『瀋陽市文物志』, 瀋陽出版社
· 陳大爲, 1995, 「遼陽岩州城山城」『遼海文物學刊』1995-1
· 畢恭, 2002, 『遼東志』, 上海古籍出版社
· 武家昌·梁志龍·王俊輝, 2003, 「桓仁米倉溝高句麗壁畫墓」『遼寧考古文物』, 遼寧民族出版社
·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集安市博物館, 2004a 『國內城』, 文物出版社
·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集安市博物館, 2004b 『丸都山城』, 文物出版社
·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集安市博物館, 2004c 『集安高句麗王陵』, 文物出版社
· 遼寧省文物考古研究所, 2004, 『五女山城』, 文物出版社
· 李曉鍾, 2007, 「瀋陽地區戰國秦漢考古初步研究」『瀋陽考古文集』1, 科學出版社
· 王成生, 2009, 「從考古資料看西漢遼東等五郡治的地望」『遼寧考古文集』2, 科學出版社
· 遼寧省文物考古研究所·瀋陽市文物考古研究所, 2010, 「瀋陽市石臺子高句麗山城蓄水設施遺址」『考古』2010-12
· 遼寧省文物考古研究所·撫順市博物館, 2007, 「遼寧撫順市施家墓地發掘簡報」『考古』2007-10
·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2012, 『石臺子山城』上, 文物出版社
· 撫順市文化局文物工作隊, 1964, 「遼寧撫順高爾山古城址調查簡報」『考古』1964-12
· 曲瑞琦·瀋長吉, 1978, 「瀋陽新樂遺址試掘報告」『考古學報』1978-4
· 趙曉剛·付永平, 1978, 「遼寧大學青銅時代遺址發掘簡報」『邊疆考古研究』5
· 瀋陽市文物管理辦公室, 1982, 「瀋陽新民髙臺山遺址」『考古』1982-2
· 新民縣文化館·瀋陽市文物管理辦公室, 1983, 「新民市高臺山新石器時代遺址1976年發掘簡報」『文物資料叢刊』1983-7
· 瀋陽市文物管理辦公室, 1986, 「新民高臺山第二次發掘」『遼海文物學刊』1896-1
· 瀋陽市文物管理辦公室, 1993, 『瀋陽市文物志』, 瀋陽出版社
· 陳大爲, 1995, 「遼陽岩州城山城」『遼海文物學刊』1995-1
· 畢恭, 2002, 『遼東志』, 上海古籍出版社
· 武家昌·梁志龍·王俊輝, 2003, 「桓仁米倉溝高句麗壁畫墓」『遼寧考古文物』, 遼寧民族出版社
·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集安市博物館, 2004a 『國內城』, 文物出版社
·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集安市博物館, 2004b 『丸都山城』, 文物出版社
·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集安市博物館, 2004c 『集安高句麗王陵』, 文物出版社
· 遼寧省文物考古研究所, 2004, 『五女山城』, 文物出版社
· 李曉鍾, 2007, 「瀋陽地區戰國秦漢考古初步研究」『瀋陽考古文集』1, 科學出版社
· 王成生, 2009, 「從考古資料看西漢遼東等五郡治的地望」『遼寧考古文集』2, 科學出版社
· 遼寧省文物考古研究所·瀋陽市文物考古研究所, 2010, 「瀋陽市石臺子高句麗山城蓄水設施遺址」『考古』2010-12
· 遼寧省文物考古研究所·撫順市博物館, 2007, 「遼寧撫順市施家墓地發掘簡報」『考古』2007-10
·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2012, 『石臺子山城』上, 文物出版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