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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고구려 하고성지(高句麗 下古城址)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810
  • 위치(출토지)
    遼寧省 蓋州市
  • 지역
    영구(營口市)
  • 유형
    성곽>평지성
  • 형태사항
    1점 
출토지
요녕성 개주시(遼寧省 蓋州市)
연대
한대~고구려
구조특징
고구려시기 평곽성임. 성은 현재 전부 파괴되어 정황을 알 수 없음.
고구려의 홍색 승문기와 등이 출토되었다고 함.
역사적 의미
孫進己·馮永謙(1989)에 의하면 『魏書』馮文通傳에는 436년 “文通至遼東 …… 高麗乃處之於平郭, 壽從北豊”이라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 권18에도 같은 기록이 있어, 평곽(平郭)은 漢의 현으로 하고성(下古城)이었는데, 고구려가 계속해서 평곽성(平郭城)으로 사용한 것으로 봄. 『三國志』 公孫度傳에 “文帝踐祚 遺使卽拜恭車騎將軍, 假節, 封平郭候.”이라는 기록이 있음. 이 기록은 公孫氏 시기에 ‘평곽(平郭)’이라는 명칭이 보이는 자료로 ‘평곽(平郭)’이 그 당시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줌. 그 지역은 後漢의 옛 땅이었음.
여호규(1999)는 평곽성(平郭城)으로 추정함. 『晉書』 卷109 載記 제9 慕容皩 載記 및 『資治通鑑』 卷95 晉記 17 咸康 2년 春正月 기사를 보면, 336년 前燕 慕容皩이 慕容仁을 평정할 때, 창려(昌黎) 동쪽에서 출발하여 결빙된 바다를 따라 300여리를 행군하여 역림구(歷林口)에 이른 다음, 군량을 모두 버리고 평곽으로 진공하였다고 함. 慕容皩 군사는 결빙된 바다를 건너기 위해 몸을 가볍게 하고, 역림구(歷林口)에서 평곽(平郭)이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이기 때문에 군량을 버렸을 것으로 추정함. 역림구(歷林口)는 강의 하구로서 대릉하(大陵河) 동쪽에서 300여리 거리라면 요하(遼河) 하구가 위치한 영구(營口)일 가능성이 높음. 따라서 평곽은 영구(營口)에서 군량을 버리고 결빙된 바다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지역으로 추정됨. 현재 영구~개주(營口~蓋州) 사이에는 길이와 폭이 20~30 여㎞인 염전이 있고, 염전지대 앞쪽으로는 갯벌이 해안가를 따라 펼쳐져 있는데, 극심하게 추운 겨울에는 해안가가 결빙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이로 미루어 볼 때, 한대(漢代)의 평곽(平郭)은 개주시 하고성(蓋州市 下古城)일 가능성이 높음. 한편 개주시 하고성(蓋州市 下古城)에서는 고구려시기의 붉은색 승문 기와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고구려가 요동지역을 장악한 이후, 종래의 평곽성을 일정 기간 재사용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함. 이와 관련하여 436년 고구려로 내항한 북연왕 풍문통(北燕王 馮文通)을 처음으로 ‘평곽(平郭)’에 안치하였다가 북풍(北豊)으로 옮긴 기사가 주목됨(『魏書』卷97 列傳85 載記 馮文通傳). 고구려가 요동지역을 처음 점령한 다음에도 ‘평곽(平郭)’이라는 종전 명칭을 그대로 이용하고, 평지토성도 재사용한 것임.
자연환경
蓋縣縣城 안에 위치함.
대청하(大淸河)가 범람하여 형성된 해안평지, 즉 대청하(大淸河) 하류에 위치함. 대청하(大淸河)는 영구시(營口市) 동부 산구에서 발원하여, 개현현성(蓋縣縣城)을 지난 후 서외자(西崴子)에서 요동만(遼東灣)으로 유입됨. 대청하(大淸河)는 독립수계(獨立水系)에 속함. 하고성자(下古城子) 서측은 요동만(遼東灣)과 인접해 있고, 동측은 천산산맥(千山山脈)과 잇닿아 있음.
유물정보
기와(瓦) 1점
참고문헌
· 孫進己·馮永謙, 『東北歷史地理』, 黑龍江人民出版社, 1989
· 余昊奎, 『高句麗 城』 Ⅱ(遼河流域篇), 國防軍史硏究所, 1999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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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하고성지(高句麗 下古城址) 자료번호 : ku.d_0001_011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