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고령산성(蘭姑嶺山城)
출토지
요녕성 개주시 와룡천진 요보촌(遼寧省 蓋州市 臥龍泉鎭 腰堡村)
구조특징
산성의 성벽을 통해 분석해 볼 때, 주봉과 마주 보는 남측 산골짜기가 주성이고, 서측에도 작은 성이 있는 것으로 보임(崔艳茹·馮永謙·催德文, 1996; 崔艳茹, 2009). 산성의 형태는 매우 특수하고, 구조가 복잡하나, 산성은 파괴가 너무 심하여 명확하게 보이지 않음. 성벽, 성문, 우물 등이 남아 있음.
고려성산 주봉 꼭대기에 원형의 성이 있는데, 직경은 30m임(王禹浪·王文軼(2008)은 답사 당시, 원형의 성을 찾지 못하였다고 함. 다만 산정상부에 비교적 평탄한 대지가 있는데, 대지 면적은 대략 60㎡이고, 윗면에는 나무가 무성했다고 기록함).
북벽은 원형의 성 동북쪽 100m 지점에서 시작하여 좁은 산등성이를 따라 서쪽으로 축조함. 성 부근에서는 북측을 둥글게 돌아 나가며 성의 서북 모서리를 이룸.
서벽은 서북 모서리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나가다가 서남 산등성이 끝까지 이르러서는 동쪽으로 꺾어 비교적 낮은 산등성이로 내려온 후, 다시 직각으로 꺾어 산등성이를 따라 남쪽 끝까지 내려옴.
동벽은 원형의 성 동쪽 주봉 아래에서 북벽과 연결됨. 남동쪽의 주봉보다 약 100m 정도 낮은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하였는데, 이 산등성이의 남쪽 끝까지 이어짐.
남벽은 서벽과 동벽 사이의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구간에 축조함. 산골짜기의 입구로서 입구의 너비는 40m이며, 이곳에 성문과 수구문을 설치함. 성벽은 무너졌고 석괴가 흩어져 있음.
익장(翼墻)은 주봉 서남모서리 아래에 비교적 낮은 산등성이가 남쪽으로 뻗어 있는데, 이 산등성이에 인공적으로 축조한 성벽이 있음. 다만 이 산등성이는 동·서벽의 산등성이보다 짧음. 성벽은 자연석괴로 외벽을 쌓고 중간에는 흙을 층층이 쌓아서 축조함.
고려성산 주봉 꼭대기에 원형의 성이 있는데, 직경은 30m임(王禹浪·王文軼(2008)은 답사 당시, 원형의 성을 찾지 못하였다고 함. 다만 산정상부에 비교적 평탄한 대지가 있는데, 대지 면적은 대략 60㎡이고, 윗면에는 나무가 무성했다고 기록함).
북벽은 원형의 성 동북쪽 100m 지점에서 시작하여 좁은 산등성이를 따라 서쪽으로 축조함. 성 부근에서는 북측을 둥글게 돌아 나가며 성의 서북 모서리를 이룸.
서벽은 서북 모서리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나가다가 서남 산등성이 끝까지 이르러서는 동쪽으로 꺾어 비교적 낮은 산등성이로 내려온 후, 다시 직각으로 꺾어 산등성이를 따라 남쪽 끝까지 내려옴.
동벽은 원형의 성 동쪽 주봉 아래에서 북벽과 연결됨. 남동쪽의 주봉보다 약 100m 정도 낮은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하였는데, 이 산등성이의 남쪽 끝까지 이어짐.
남벽은 서벽과 동벽 사이의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구간에 축조함. 산골짜기의 입구로서 입구의 너비는 40m이며, 이곳에 성문과 수구문을 설치함. 성벽은 무너졌고 석괴가 흩어져 있음.
익장(翼墻)은 주봉 서남모서리 아래에 비교적 낮은 산등성이가 남쪽으로 뻗어 있는데, 이 산등성이에 인공적으로 축조한 성벽이 있음. 다만 이 산등성이는 동·서벽의 산등성이보다 짧음. 성벽은 자연석괴로 외벽을 쌓고 중간에는 흙을 층층이 쌓아서 축조함.
역사적 의미
산성은 해발 800m 이상의 고려성산(高麗城山)에 축조하였고, 성벽은 모두 주봉의 산등성이와 연결되지 않은 산등성이에 축조함. 이 성의 형태는 매우 특수하고 복잡함(崔艳茹·馮永謙·催德文, 1996). 산성의 서북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 있는 해룡천산성(海龍川山城), 산성의 서남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 있는 적산산성(赤山山城)을 볼 수 있는 등 주위를 훤하게 볼 수 있는 곳에 성이 축조됨. 즉 영구시(營口市)의 고구려산성 가운데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에 축조되었다고 할 수 있음(崔艳茹·馮永謙·催德文, 1996)
축조시기에 대하여 崔艳茹(2009)의 견해는 다음과 같음. 404년 광개토대왕은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요동공략을 시도하였는데, 모용씨(慕容氏)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결국 요동(遼東)을 확보함. 이 때 고구려는 요동지역에 방어적 성격의 산성을 대거 축조함. 영구(營口)지구에 위치한 산성들은 404년 이후 광개토대왕이 요동지역을 장악하면서 세운 것으로, 고구려 중기 혹은 이후에 축조되었다고 할 수 있음.
王禹浪·王文轶(2008)은 2008년 조사 당시에 성벽은 발견하지 못하였음. 이 결과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음. 첫 번째는 산성이 실제로 있으나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고, 두 번째는 산성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임. 실제 답사를 통해 판단해 볼 때, 산골짜기 길에서 이 먼 산 위에까지 와서 산성을 축조하기는 불가능함. 그리고 산봉우리가 높고 가파라서 오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성벽을 축조할 필요가 없다고 추정됨. 그리고 지역주민들조차 돌로 축조한 성벽이 없다고 언급함. 이로 볼 때, 이 산에 산성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짐. 고려성이란 지명에 대해서는 지역 주민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유추해 볼 때, 예전에 난고령산 아래에 고려인(조선족이 거주하였는데, 그들을 ‘고려’라고 칭했을 가능성도 있음)이 살았기 때문에, 이 지역을 고려성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음. 『蓋平縣志』성보편에 “고려성”이란 지명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이곳에 성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잘못임.
축조시기에 대하여 崔艳茹(2009)의 견해는 다음과 같음. 404년 광개토대왕은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요동공략을 시도하였는데, 모용씨(慕容氏)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결국 요동(遼東)을 확보함. 이 때 고구려는 요동지역에 방어적 성격의 산성을 대거 축조함. 영구(營口)지구에 위치한 산성들은 404년 이후 광개토대왕이 요동지역을 장악하면서 세운 것으로, 고구려 중기 혹은 이후에 축조되었다고 할 수 있음.
王禹浪·王文轶(2008)은 2008년 조사 당시에 성벽은 발견하지 못하였음. 이 결과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음. 첫 번째는 산성이 실제로 있으나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고, 두 번째는 산성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임. 실제 답사를 통해 판단해 볼 때, 산골짜기 길에서 이 먼 산 위에까지 와서 산성을 축조하기는 불가능함. 그리고 산봉우리가 높고 가파라서 오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성벽을 축조할 필요가 없다고 추정됨. 그리고 지역주민들조차 돌로 축조한 성벽이 없다고 언급함. 이로 볼 때, 이 산에 산성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짐. 고려성이란 지명에 대해서는 지역 주민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유추해 볼 때, 예전에 난고령산 아래에 고려인(조선족이 거주하였는데, 그들을 ‘고려’라고 칭했을 가능성도 있음)이 살았기 때문에, 이 지역을 고려성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음. 『蓋平縣志』성보편에 “고려성”이란 지명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이곳에 성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잘못임.
자연환경
개주시 동쪽 45㎞ 떨어진 와룡천진 요보촌에서 동북쪽으로 약 2.5㎞(崔艳茹·馮永謙·催德文(1996)은 5華里라고 기록함) 떨어진 고려성산 위에 위치함. 난고령주봉(蘭姑岭主峰)은 고려성산 동남에 위치함. 지역주민들이 이 일대 산을 난고령(蘭姑岭)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산성을 난고령산성이라고 부름. 『蓋平縣志』권1 『城堡』에 “고려성이 난고령 북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문헌에 기재된 산성이 바로 난고령산성인 것으로 추정됨(崔艳茹·馮永謙·催德文, 1996; 崔艳茹, 2009). 난고령산 아래에 촌락 1개가 있었는데, 고려인(조선족)이 거주하였다고 하여 고려성(高麗城)이라고 불렸다고 함. 현재는 교통이 불편해서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음(王禹浪·王文轶, 2011).
산성 서북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 해룡천산성(海龍川山城)이, 산성 서남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 적산산성(赤山山城)이 있음.
고려성산은 해발 800여m로,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임. 주봉에서 동서쪽으로 양 날개처럼 뻗어 나가는 산등성이는 주봉보다 약 30m 낮으며, 매우 좁고 가파름. 동남쪽과 서남쪽으로 뻗은 두 줄기는 주봉보다 100m정도 낮은 산등성이임(王禹浪․王文轶(2008)은 “四”자 형태에서 “四”의 맨 아래에 있는 횡 하나만 빠진 모양이라고 표현하기도 함). 주봉의 꼭대기에는 돌로 축조된 원형 성벽이 있음. 난고령산은 높고 험준하며, 산 정상부로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음(王禹浪·王文轶, 2011). 산 남쪽이 산골짜기 입구인데, 너비는 약 40m임(崔艳茹·馮永謙·催德文, 1996; 崔艳茹, 2009).
산성 서북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 해룡천산성(海龍川山城)이, 산성 서남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 적산산성(赤山山城)이 있음.
고려성산은 해발 800여m로,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임. 주봉에서 동서쪽으로 양 날개처럼 뻗어 나가는 산등성이는 주봉보다 약 30m 낮으며, 매우 좁고 가파름. 동남쪽과 서남쪽으로 뻗은 두 줄기는 주봉보다 100m정도 낮은 산등성이임(王禹浪․王文轶(2008)은 “四”자 형태에서 “四”의 맨 아래에 있는 횡 하나만 빠진 모양이라고 표현하기도 함). 주봉의 꼭대기에는 돌로 축조된 원형 성벽이 있음. 난고령산은 높고 험준하며, 산 정상부로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음(王禹浪·王文轶, 2011). 산 남쪽이 산골짜기 입구인데, 너비는 약 40m임(崔艳茹·馮永謙·催德文, 1996; 崔艳茹, 2009).
참고문헌
· 崔艶茹·馮永謙·催德文, 『營口市文物志』, 遼寧民族出版社, 1996
· 王禹浪·王文軼, 『遼東半島地區的高句麗山城』, 哈爾濱出版社, 2008
· 崔艶茹, 「營口地區山城調査與檢討」『東北史地』 2009-3, 2009
· 王禹浪·王文軼, 「營口地區的高句麗山城」『哈爾濱學院學報』 2011-9, 2011
· 王禹浪·王文軼, 『遼東半島地區的高句麗山城』, 哈爾濱出版社, 2008
· 崔艶茹, 「營口地區山城調査與檢討」『東北史地』 2009-3, 2009
· 王禹浪·王文軼, 「營口地區的高句麗山城」『哈爾濱學院學報』 2011-9,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