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자산성; 팔과수성자산성; 팔과수고력성(古城子山城; 八棵樹城子山城; 八棵樹高力城)
출토지
요녕성 개원시 팔과수향(구 팔과수진)(遼寧省 開原市 八棵樹鄕(舊 八棵樹鎭))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80 | 철령시문물관리소 (鐵嶺市文物管理所) | 1980년대 이래 철령시 문물관리소에서 여러 차례 조사함. |
1985 | 1985년 9월 1일 철령시 문물보호단위로 공포됨. |
구조특징
고성자산성의 모습은 멀리서 조망할 때 복두(覆頭)같으며, 정상부는 아주 평탄함. 성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구축하였는데, 서쪽이 트인 반원형의 산골짜기에 축조하였음. 규모는 전체 길이 약 1,100m임.
성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하였음. 성벽은 마사토(山皮土)와 깬돌(碎石)을 혼합해서 축조하였고 성벽은 토축임(왕우랑·왕굉북, 1994) 남벽과 북벽의 중간 지점에는 소성(小城)이 있는데, 현지 주민들은 이것을 “남(북)화원(南(北) 花園)”이라고 부름. 이러한 종류의 소성은 산등성이 바깥으로 돌출한 자연 산세를 이용해, 바깥으로 돌출한 성벽 내측에 내벽(內墻)을 보축하여 만들었음. 이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산봉우리 안팎에 모두 성벽을 축조한 것임. 이러한 종류의 시설은 산성의 방어와 관련 있음. 남측의 소성은 동서 길이 56m, 남북 최대 너비 14m임.
성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하였음. 성벽은 마사토(山皮土)와 깬돌(碎石)을 혼합해서 축조하였고 성벽은 토축임(왕우랑·왕굉북, 1994) 남벽과 북벽의 중간 지점에는 소성(小城)이 있는데, 현지 주민들은 이것을 “남(북)화원(南(北) 花園)”이라고 부름. 이러한 종류의 소성은 산등성이 바깥으로 돌출한 자연 산세를 이용해, 바깥으로 돌출한 성벽 내측에 내벽(內墻)을 보축하여 만들었음. 이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산봉우리 안팎에 모두 성벽을 축조한 것임. 이러한 종류의 시설은 산성의 방어와 관련 있음. 남측의 소성은 동서 길이 56m, 남북 최대 너비 14m임.
역사적 의미
대형산성의 과도성(過渡城), 위성성(衛星城)설이 있음. 고성자산성은 아랍하(阿拉河)와 청하(淸河), 두 하천이 만나는 곳의 구릉산지 서단(西端)에 있어 특별히 중요한 지리위치에 자리하고 있음. 전쟁이 발생했을 때 대성과 호응하여 대성을 호위, 공제하는 작용을 하며 또 중 소형 산성에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성도 병사를 파병하는 등 군사적 지원을 함. 고성자산성은 마가채산성, 용담사산성과 마찬가지로 철령 최진보산성과 서풍 성자산산성 2기의 대형산성 사이에 위치하므로, 지리위치상 2개의 대형산성과 방어체계상 연관 관계가 있을 것임(주향영·조준위·이아빙, 1996).
군사방어 및 지방거점성설이 있음. 고성자산성은 철령 청룡산산성(장루자산성), 개원 마가채산성 등 요하 상류 일대 고구려산성과 여러 측면에서 유사함. 입지조건을 보면, 이들은 송료대평원에서 요하 지류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하였을 뿐 아니라, 하천과 나란히 달리던 산줄기에서 하천 연안의 충적평지 쪽으로 돌출한 지형에 자리잡고 있음. 그리고 축성방식에 있어서도 지형조건에 따라 토벽과 토석혼축성벽 등을 다양하게 구사하였음. 그러므로 고성자산성은 요하 상류일대의 다른 고구려산성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되었고, 성격과 기능도 유사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입지조건을 볼 때 고성자산성은 송료대평원에서 요하의 지류로 진입하는 길목은 아니지만, 청하의 여러 지류가 갈라지는 분기점 바로 안쪽에 자리잡고 있음. 특히 고성자산성에서 청하 상류를 따라 동남쪽으로 가면 혼하, 휘발하의 분수령이 나오며, 이곳을 통해 압록강 중류일대로 나아갈 수 있음. 따라서 고성자산성은 송료대평원에서 청하를 거쳐 혼하나 휘발하 일대로 나아가는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하였다고 파악됨. 삼면이 청하와 아랍하라는 천연해자로 둘러싸여 있고, 산줄기에 잇닿은 동쪽을 제외하면 삼면이 급경사인 돌출지형이라는 사실 등은 고성자산성이 군사방어성임을 단적으로 보여줌. 한편, 고성자산성은 둘레 1.1㎞로 대체로 중형산성으로 분류되지만 주거용 공간은 비교적 넓은 편임. 성 내부에는 동서 방향의 평탄한 골짜기가 두 갈래로 기다랗게 놓여 있고, 산등성이 안쪽 경사면도 아주 완만하여 주거용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 그리고 성벽 안쪽 거의 전 구간에 병사용 주거지를 마련한 것으로 보아 내부 공간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일반 주거용으로 활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연못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비탈에서 토기편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은 이를 반영함. 특히 서벽 안쪽 대지에서 기와편이 대량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부근에 상당히 중요한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충정됨. 따라서 고성자산성도 다른 고구려산성처럼 군사방어뿐 아니라 지방지배를 위한 거점성으로 기능하였다고 추정됨. 고성자산성은 송료대평원에서 청하 상류일대의 여러 소지류로 진입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는 군사적 기능과 함께 청하 연안일대를 지배하기 위한 지방 거점성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고 추정됨(여호규, 1999).
군사방어 및 지방거점성설이 있음. 고성자산성은 철령 청룡산산성(장루자산성), 개원 마가채산성 등 요하 상류 일대 고구려산성과 여러 측면에서 유사함. 입지조건을 보면, 이들은 송료대평원에서 요하 지류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하였을 뿐 아니라, 하천과 나란히 달리던 산줄기에서 하천 연안의 충적평지 쪽으로 돌출한 지형에 자리잡고 있음. 그리고 축성방식에 있어서도 지형조건에 따라 토벽과 토석혼축성벽 등을 다양하게 구사하였음. 그러므로 고성자산성은 요하 상류일대의 다른 고구려산성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되었고, 성격과 기능도 유사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입지조건을 볼 때 고성자산성은 송료대평원에서 요하의 지류로 진입하는 길목은 아니지만, 청하의 여러 지류가 갈라지는 분기점 바로 안쪽에 자리잡고 있음. 특히 고성자산성에서 청하 상류를 따라 동남쪽으로 가면 혼하, 휘발하의 분수령이 나오며, 이곳을 통해 압록강 중류일대로 나아갈 수 있음. 따라서 고성자산성은 송료대평원에서 청하를 거쳐 혼하나 휘발하 일대로 나아가는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하였다고 파악됨. 삼면이 청하와 아랍하라는 천연해자로 둘러싸여 있고, 산줄기에 잇닿은 동쪽을 제외하면 삼면이 급경사인 돌출지형이라는 사실 등은 고성자산성이 군사방어성임을 단적으로 보여줌. 한편, 고성자산성은 둘레 1.1㎞로 대체로 중형산성으로 분류되지만 주거용 공간은 비교적 넓은 편임. 성 내부에는 동서 방향의 평탄한 골짜기가 두 갈래로 기다랗게 놓여 있고, 산등성이 안쪽 경사면도 아주 완만하여 주거용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 그리고 성벽 안쪽 거의 전 구간에 병사용 주거지를 마련한 것으로 보아 내부 공간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일반 주거용으로 활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연못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비탈에서 토기편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은 이를 반영함. 특히 서벽 안쪽 대지에서 기와편이 대량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부근에 상당히 중요한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충정됨. 따라서 고성자산성도 다른 고구려산성처럼 군사방어뿐 아니라 지방지배를 위한 거점성으로 기능하였다고 추정됨. 고성자산성은 송료대평원에서 청하 상류일대의 여러 소지류로 진입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는 군사적 기능과 함께 청하 연안일대를 지배하기 위한 지방 거점성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고 추정됨(여호규, 1999).
자연환경
개원시 팔과수향(구 팔과수진)에서 동쪽으로 7.5㎞ 거리의 고성자촌(古城子村) 동쪽(동북 100m; 曹桂林·王鐵軍, 『遼海文物學刊』1994-2) 산에 위치함. 남쪽으로 청하(淸河)와 1.5㎞ 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 청하의 지류인 아랍하(阿拉河)와 2.5㎞ 떨어져 있음. 아랍하는 동에서 서로 흐르다가 청하에 유입되며, 고성자산성은 두 하천이 만나는 곳의 구릉산지 서쪽 끝(西端)에 있어 특별히 중요한 지리위치에 자리하고 있음.
고성자산성의 서쪽으로는 충적평원이 펼쳐져 있는데, 남북 양쪽의 청하와 그 지류인 아랍하 연안에도 충적평지가 기다랗게 펼쳐져 있음. 청하와 아랍하는 산성이 위치한 동서 방향의 산줄기를 휘감으면서 나란히 서류하다가 산성 서쪽 3-4㎞ 지점에서 합류한 다음 서쪽으로 흘러나감. 그리고 팔과수향 소재지 서쪽 7㎞ 지점에서 서남류하던 연반하(碾盤河)와 합류하여 큰 하천을 이룬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흘러나가고 있음. 현재 청하와 연반하 합류지점 서쪽에는 개원-청원간 도로의 소피둔 다리가 있고, 청하 하류에는 청하댐이 건설되었는데, 소피둔 다리 직전 지점까지 수몰되었음. 이처럼 고성자산성 서쪽 일대는 청하와 아랍하, 청하와 연반하의 합류지점으로서 청하 중상류 일대 가운데 충적평지가 가장 넓게 발달한 지역임. 그리고 송요대평원에서 청하를 거슬러오다가 청하 본류를 비롯하여 연반하와 아랍하 등 여러 방면으로 교통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함. 특히 고성자산성에서 청하 상류를 거쳐 동남쪽으로 나아가면 혼하(渾河)·휘발하(揮發河)·청하의 분수령인 청원(淸原)·유하(柳河)의 경계지역이 나옴. 고성자산성은 청하 중상류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음.
고성자산성의 서쪽으로는 충적평원이 펼쳐져 있는데, 남북 양쪽의 청하와 그 지류인 아랍하 연안에도 충적평지가 기다랗게 펼쳐져 있음. 청하와 아랍하는 산성이 위치한 동서 방향의 산줄기를 휘감으면서 나란히 서류하다가 산성 서쪽 3-4㎞ 지점에서 합류한 다음 서쪽으로 흘러나감. 그리고 팔과수향 소재지 서쪽 7㎞ 지점에서 서남류하던 연반하(碾盤河)와 합류하여 큰 하천을 이룬 다음 다시 서쪽으로 흘러나가고 있음. 현재 청하와 연반하 합류지점 서쪽에는 개원-청원간 도로의 소피둔 다리가 있고, 청하 하류에는 청하댐이 건설되었는데, 소피둔 다리 직전 지점까지 수몰되었음. 이처럼 고성자산성 서쪽 일대는 청하와 아랍하, 청하와 연반하의 합류지점으로서 청하 중상류 일대 가운데 충적평지가 가장 넓게 발달한 지역임. 그리고 송요대평원에서 청하를 거슬러오다가 청하 본류를 비롯하여 연반하와 아랍하 등 여러 방면으로 교통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함. 특히 고성자산성에서 청하 상류를 거쳐 동남쪽으로 나아가면 혼하(渾河)·휘발하(揮發河)·청하의 분수령인 청원(淸原)·유하(柳河)의 경계지역이 나옴. 고성자산성은 청하 중상류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음.
유물정보
철촉(鐵鏃) 1점, 토제숟가락(陶匙) 1점, 그물추(網墜) 1점, 방추차(紡輪) 1점, 암키와편(板瓦片) 1점, 마포흔기와(布文瓦) 1점, 와편(瓦片) 1점, 돌절구(石臼) 1점
참고문헌
· 陳大爲, 「遼寧高句麗山城初探」『中國考古學會第五次年會論文集』, 文物出版社, 1988
· 陳大爲, 『遼寧境內高句麗遺蹟』 『遼海文物學刊』 1989-2, 1989
· 細谷良夫, 『中國東北部における淸朝の史跡』, 東北大學, 1991
· 王綿厚, 「鴨綠江右岸高句麗山城硏究」『遼海文物學刊』 1994-2, 1994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합이빈출판사, 1994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4
· 陳大爲, 「遼寧高句麗山城再探」『北方文物』 1995-3, 1995
· 曹桂林·王鐵軍, 「鐵嶺境內五座高句麗山城簡介」『遼海文物學刊』 1994-2, 1994
· 周向永·趙俊偉·李亞冰, 「遼寧開原境內的高句麗城址」『北方文物』 1996-1, 1996
· 余昊奎, 『高句麗 城』 Ⅱ(遼河流域篇), 國防軍史硏究所, 1999
· 李龍彬, 「鐵嶺境內高句麗山城的幾個問題」『東北史地』 2008-4, 2008
· 國家文物局,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 西安地圖出版社, 2009
· 周向永·許超, 『鐵嶺的考古與歷史』, 遼海出版社, 2010
· 魏存成, 「中國境內發現的高句麗山城」『社會科學戰線』 2011-1,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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