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총관(烏喇摠管)의 장백산(長白山) 행차에 함께 수행할 것을 청하는 조선의 상서(上書)
接伴使請偕行白山帖
接伴使請偕行白山帖
삼가 大人께서 皇命을 공경히 받들어 욕되게도 遠邦에 오셔서, 산천을 모두 거치고, 험조함을 두루 맛보셨습니다. 그럼에도 志氣는 彌勵하시고 용감히 나아감을 게을리 하지 않으시니, 최선을 다하는 의리와 쉼 없는 충성은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함을 일으키고 감탄을 자아냅니다. 저희들은 무엄하게도 大人을 인도하는 임무를 맡게 되어 대인의 모습을 직접 뵐 수 있으니, 감히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쏟아 (저희) 임금께서 (大朝를) 존경하는 뜻을 감히 몸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窮僻진 변방의 郡邑에 물품과 인력이 거의 없어 받들어 모시는 禮節이 모양을 갖추지 못해 하루 종일 불안해 하며, 오직 아래에서 죄를 얻게 될까 저는 이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閤下께서 곡진히 賑恤을 베푸셔서 (費用을) 대단히 절약해 주시고 음식은 모두 閤下의 行廚에서 쓰시며 조금이라도 저희 쪽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시니, 감격한 나머지 부끄러운 마음 깊고도 깊었습니다.
전해 들으니, 閤下께서 兩江의 水源을 살피기 위해 행차가 장차 長白山 頂上으로 향할 것이라 하는데, 저희들은 이에 우려하는 마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 대저 산 정상 연못의 물이 넘쳐 서쪽으로 흘러내려 압록강의 상류가 됩니다. 그러나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그 사이가 몇 백 리이며 모두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깊고 험한 골짜기입니다. 사냥꾼과 화전민도 겨우 헤쳐 갈 수 있으니, 蜀道와 井陘도 그 험난함을 비교하기에 부족합니다. 지금 閤下께서 귀하신 몸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땅에 가벼이 가신다면 아마도 神明의 도움이 있더라도 필히 가는 중에 곤란한 일을 당하실 것이니, 이것이 저희들이 불안해 하며 걱정하는 이유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번 交界를 살펴보는 일은 실로 皇上께서 小邦을 염려해 주셔서 간악한 백성들이 國境을 넘나드는 문제를 일으키는 폐단을 막으려 하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大人께서 필히 몸소 가서 보려고 하시는 것 또한 당연한 職分입니다. 다만 산길의 험준함이 그와 같으니 귀하신 분의 행차는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 나라 일을 실현하려는 정성이 비록 간절하더라도 위험을 경계해야하는 것 또한 중요하니, 閤下께서 이에 어찌 신중함을 헤아리는 방도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극히 외람된 줄 알며 죄받음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알지만, 망령되이 (大人의) 너그러운 관용을 믿고 문득 이렇게 아뢰겠습니다. 지금 閤下의 행차에 다만 筆帖式·大通官 각 1명 및 甲軍 20명만을 대동하고 있은 즉 간소함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는 말 및 식량을 실은 말이 모두 38마리이며 각 말에는 마부가 딸려 있습니다. 저희 나라의 관원 중 大人의 행차를 뒤따라 가는 자가 또한 5∼6명에 달하며 이들도 각기 타는 말 및 마부와 從人이 있습니다. 아울러 길을 찾고 여는 사람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거의 70여 명에 이르며, 한 사람이 각기 15일치 식량을 가지고 갑니다. 길은 험하고 말은 약하여 무겁게 실을 수 없는데 만일 말이 가지 못함에 이르게 되면 장차 사람이 짐을 지고 가야 할 것이니, 마땅히 데려갈 숫자는 말은 80여 필, 사람은 130여 명에 이르게 됩니다. 長白山의 높이와 크기는 해내에서 으뜸이어서 비록 한 여름이라도 氷雪이 녹지 않습니다. 하물며 지금 비가 연일 계속 내리는 것으로 보아 이미 장마의 기운이 있습니다. 만일 계곡에서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친다면 많은 사람과 가축이 필히 죽거나 다치거나 하는 우환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삼가 閤下께서 沿路를 지나오신 것을 보면 仁慈하시다는 명성이 자자하신데, 오직 한 가지 일이라도 폐가 생길까 한 사람이라도 다치게 될까를 걱정하시는 것은 아마도 皇上이 어린 아이를 보살펴 주시는 인자함을 몸 받으셔서 그러하실 것입니다. 지금 만일 불행히 만에 하나 위와 같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閤下의 惻隱之心으로써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있을 뿐만이 아니며 어찌 皇上의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政事에 대해 해를 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의 어리석은 생각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鴨綠江이 山 정상의 大池에서 발원하여 물길이 연이어 만나고 澗谷이 분명해지는 것은, 명석한 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 보면 알 수 있습니다.
閤下께서 혹 수행한 사람 중에 날래고 명민한 자 세 사람을 뽑아 저희 나라의 역관 및 안내인과 같이 가서 살펴보게 하고 또 畵師로 하여금 그림을 그려서 돌아오게 한다면 水源·山逕이 가히 마음과 눈에 분명해질 것이니 이것으로 돌아가셔서 아뢴다면 아마도 不可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閤下께서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또 들으니, 閤下께서 저희들로 하여금 수행하지 말고 우선 茂山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게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필시 閤下께서 저희들의 노쇠하고 병약한 상황을 걱정하셔서 이런 곡진히 걱정하시는 下敎를 내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이미 임금의 명을 받아 欽差 大臣의 행차를 접대해야 하는데, 스스로 편안한 곳에 있으면서 閤下로 하여금 홀로 험한 길을 무릅쓰게 한다면, 이는 실로 義理와 職分에서 감히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삼가 원컨대 閤下께서 너그러이 살펴주셔서 특별히 저희들 중 한명이라도 뒤따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康熙 51년 5월 7일.
전해 들으니, 閤下께서 兩江의 水源을 살피기 위해 행차가 장차 長白山 頂上으로 향할 것이라 하는데, 저희들은 이에 우려하는 마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 대저 산 정상 연못의 물이 넘쳐 서쪽으로 흘러내려 압록강의 상류가 됩니다. 그러나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그 사이가 몇 백 리이며 모두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깊고 험한 골짜기입니다. 사냥꾼과 화전민도 겨우 헤쳐 갈 수 있으니, 蜀道와 井陘도 그 험난함을 비교하기에 부족합니다. 지금 閤下께서 귀하신 몸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땅에 가벼이 가신다면 아마도 神明의 도움이 있더라도 필히 가는 중에 곤란한 일을 당하실 것이니, 이것이 저희들이 불안해 하며 걱정하는 이유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번 交界를 살펴보는 일은 실로 皇上께서 小邦을 염려해 주셔서 간악한 백성들이 國境을 넘나드는 문제를 일으키는 폐단을 막으려 하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大人께서 필히 몸소 가서 보려고 하시는 것 또한 당연한 職分입니다. 다만 산길의 험준함이 그와 같으니 귀하신 분의 행차는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 나라 일을 실현하려는 정성이 비록 간절하더라도 위험을 경계해야하는 것 또한 중요하니, 閤下께서 이에 어찌 신중함을 헤아리는 방도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극히 외람된 줄 알며 죄받음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알지만, 망령되이 (大人의) 너그러운 관용을 믿고 문득 이렇게 아뢰겠습니다. 지금 閤下의 행차에 다만 筆帖式·大通官 각 1명 및 甲軍 20명만을 대동하고 있은 즉 간소함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는 말 및 식량을 실은 말이 모두 38마리이며 각 말에는 마부가 딸려 있습니다. 저희 나라의 관원 중 大人의 행차를 뒤따라 가는 자가 또한 5∼6명에 달하며 이들도 각기 타는 말 및 마부와 從人이 있습니다. 아울러 길을 찾고 여는 사람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거의 70여 명에 이르며, 한 사람이 각기 15일치 식량을 가지고 갑니다. 길은 험하고 말은 약하여 무겁게 실을 수 없는데 만일 말이 가지 못함에 이르게 되면 장차 사람이 짐을 지고 가야 할 것이니, 마땅히 데려갈 숫자는 말은 80여 필, 사람은 130여 명에 이르게 됩니다. 長白山의 높이와 크기는 해내에서 으뜸이어서 비록 한 여름이라도 氷雪이 녹지 않습니다. 하물며 지금 비가 연일 계속 내리는 것으로 보아 이미 장마의 기운이 있습니다. 만일 계곡에서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친다면 많은 사람과 가축이 필히 죽거나 다치거나 하는 우환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삼가 閤下께서 沿路를 지나오신 것을 보면 仁慈하시다는 명성이 자자하신데, 오직 한 가지 일이라도 폐가 생길까 한 사람이라도 다치게 될까를 걱정하시는 것은 아마도 皇上이 어린 아이를 보살펴 주시는 인자함을 몸 받으셔서 그러하실 것입니다. 지금 만일 불행히 만에 하나 위와 같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閤下의 惻隱之心으로써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있을 뿐만이 아니며 어찌 皇上의 함께 고통을 나누시는 政事에 대해 해를 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의 어리석은 생각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鴨綠江이 山 정상의 大池에서 발원하여 물길이 연이어 만나고 澗谷이 분명해지는 것은, 명석한 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 보면 알 수 있습니다.
閤下께서 혹 수행한 사람 중에 날래고 명민한 자 세 사람을 뽑아 저희 나라의 역관 및 안내인과 같이 가서 살펴보게 하고 또 畵師로 하여금 그림을 그려서 돌아오게 한다면 水源·山逕이 가히 마음과 눈에 분명해질 것이니 이것으로 돌아가셔서 아뢴다면 아마도 不可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閤下께서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또 들으니, 閤下께서 저희들로 하여금 수행하지 말고 우선 茂山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게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필시 閤下께서 저희들의 노쇠하고 병약한 상황을 걱정하셔서 이런 곡진히 걱정하시는 下敎를 내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이미 임금의 명을 받아 欽差 大臣의 행차를 접대해야 하는데, 스스로 편안한 곳에 있으면서 閤下로 하여금 홀로 험한 길을 무릅쓰게 한다면, 이는 실로 義理와 職分에서 감히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삼가 원컨대 閤下께서 너그러이 살펴주셔서 특별히 저희들 중 한명이라도 뒤따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康熙 51년 5월 7일.
색인어
- 지명
- 長白山, 長白山, 鴨綠江, 茂山